인간은 같은 정보를 건네주어도 보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는 습성이 있다. 인간의 뇌는 우리 자신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성능이지만, 어째서인지 이러한 습성 때문에 모르고 지나쳐버리는 것도 상당히 많다. 혹은 알고는 있지만 아주 적은 부분만 알고 있는 것, 우리가 최근까지 겪었던 많은 일도 이러한 경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여하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기본적인 습성 덕분에 특정한 것에 대해 과소평가를 하거나, 심지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일도 많다. 

지난 5월초, 프랑스 현지에서 진행된 허친슨의 미디어 캠프를 통해 그 중 하나를 제대로 바로잡고 넘어갈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허친슨은 타이어 브랜드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타이어를 여러번 구매해야 할 정도로 자전거를 열심히 타거나 타본 라이더라면, 허친슨 타이어에 대해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허친슨 타이어는 로드바이크는 물론 MTB 타이어까지 품질 높은 제품라인업을 통해 수많은 프로 라이더와 함께해온 브랜드다. 더구나 튜브리스 타이어를 가장 먼저 자전거 시장에 소개한 브랜드로 끊임없이 혁신적이고, 인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왔다. 여러분은 허친슨이 어떤 기업이라고 알고 있었는가? 아마 많은 사람이 타이어 기업이라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허친슨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허친슨의 주 활동 업계 종사자가 아닐까 싶다.

1853년, 파리에서 남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몽타흐쥐라는 작은 소도시에서 시작된 허친슨은 설립된 지 이미 100년, 아니 150년을 훌쩍 넘어 164년의 역사를 맞고 있다.  워낙 실감이 되지 않는 년수라 현실감조차 없지만, 1853년이 조선 25대 왕 철종 4년이었던 시대라고 본다면 시간의 흐름이 조금은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허친슨은 프랑스인에게 있어 이미 살아있는 유산이라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뿐더러 실제로 근무하는 직원 모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허친슨은 분명 타이어 브랜드가 맞지만, 완전히 타이어 기업은 아니다. 어찌 보면, 인류 최초의 양산 고무장화를 만든 기업이 바로 허친슨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프랑스는 사람을 위한 인도는 고사하고 대부분의 길이 모두 비포장 길이라 비가 조금만 내려도 진창길로 변하기 일쑤였다. 이때 등장한 허친슨의 고무장화는 프랑스인 표현으로도 '대박'이라는 표현이 아까울 정도라고 한다. 에이글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이 고무장화는 허친슨 그룹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건재한 브랜드이다. 이렇게 고무제품에 대한 노하우를 쌓아가다 타이어 제조로 사업영역을 확장해오며, 무려 164년의 세월 동안 고무에 대한 연구를 이어왔다. 현재는 자동차, 철도, 비행기, 방위, 일반산업 등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산업현장의 곳곳에 허친슨의 제품이 쓰이고 있던 것. 지금도 그들은 허친슨이 프랑스에 처음 뿌리를 내렸던 몽타흐쥐에서 여전히 생산라인을 가동하며,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507 Fab House

허친슨 몽타흐쥐 공장 부지에는 특별한 건물이 하나있다. 끝이 은색으로 반짝이는 유난히 눈에 띄는 커다란 굴뚝이 보이고, 그 곳에는 507 Fab House라는 이름의 허친슨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을 직역 해보면 ‘끝내주는 507 건물’ 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에펠탑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구스타브 에펠의 손길을 거쳐 재탄생한 507 Fab House는 160년 허친슨의 시작과 현재가 모두 담겨있는 곳이다.

건물 내부엔 구스타브 에펠의 상징인 철골 구조물이 여전히 그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100년 전 공장이 가동되던 때에는 철골 기둥에 기대어 잠시 휴식을 취하던 근로자가 있었을 터. 현실 세계에서 미래와 현재가 이어진 타임 게이트를 찾는다면, 이곳도 그 중 하나 일 것이다. 

 

신기술과 전통의 조화

허친슨의 첫 자전거 타이어가 등장한 때는 1890년. 그로부터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자전거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에서 프랑스인 선수가 프랑스에서 생산한 타이어로 수많은 우승을 일궈내는 데 일조해왔다. 그만큼 자전거 타이어는 허친슨의 가장 큰 유산 중 하나다. 그래서 이 타이어를 생산하는 공정조차도 그들의 유산이다.

고무 원료를 자신들이 연구한 비율대로 배합해 컴파운드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모델에 맞는 트레드 형상으로 찍어내는 작업, 그리고 타이어 형상을 잡아주며 타이어가 림에 잘 고정되도록 잡아주는 비드 또한, 이 곳 몽타흐쥐 허친슨 공장 한자리에서 모두 행해진다.

실제로 눈앞에서 느껴본 컴파운드를 만들어내는 작업과 공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시간과 과정을 필요로 했다. 그만큼 사람의 손길이 끊임없이 필요했다. 배합하고 롤러 사이에 통과시켜 주무르고 식히는 과정을 반복하다 생산하는 타이어에 맞는 틀이 기다리는 곳으로 보내지게 된다. 특별하게 설계된 거푸집을 통과한 컴파운드는 생산할 타이어의 폭에 맞춰 준비되고, 트레드가 그려진 틀에 둘러져 구워지면 컴파운드의 모습을 조금씩 갖춰간다.

여기에 케블라를 직물구조로 짜낸 천과 접합하면, 비로소 온전한 모습의 컴파운드를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준비된 컴파운드는 케블라 천의 도움을 받아 버텨내야 하는 힘의 방향을 결정하면서, 펑처에 훨씬 강해지는 성질을 부여한다. 이후부터는 사람의 손으로 직접 타이어를 조합한다.

능숙한 근로자의 손을 거쳐 타이어의 구성요소가 합쳐진 타이어는, 마지막으로 170도로 구워내 완전히 접합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으로 하루에 3,000개내지 4,000개 정도의 타이어를 이곳 몽타흐쥐에서 생산해내고 있다. 한 세기를 훌쩍 지나 현재도 프랑스인과 함께하고 있는 허친슨은 프랑스인이라면 누구나 자부심을 가질 만한 유산이다. 적어도 근로자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과 기업에 대해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었으며, 아주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약간의 질투심마저 피어올랐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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