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빠르다고 알려졌지만, 대체 얼마나 빠른지는 정확히 모르는 차. 지금까지의 부가티 치론을 가리키는 말로 적당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1,500마력의 최대출력과 베이론을 능가한다는 설명만으로 의심 없이 최고를 확신할 수 있지만, 치사하게도 부가티는 치론이 얼마나 빠른 차일지에 대해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직접 사서 테스트해볼 수 있는 차도 아니니, 궁금하더라도 부가티가 기록을 공개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부가티가 치론의 기록을 이제야 공개하는 이유는? 뻔하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가 시작되니까. 작년에 공개되어 ‘1,500마력의 슈퍼카’라는 주제로 화제를 모았으나, 올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다시 꺼내기엔 명분이 부족하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가진 양산차’라는 타이틀을 내세운다면 한 번 더 무대에 올리더라도 세간의 화제를 모을 게 분명하다. 결코, 치론의 예약에 실패했다거나, 살 돈이 없어서 삐딱한 시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부가티는 지난 8월, 레이싱 드라이버 후안 파블로 몬토야와 함께 0-400-0km/h 주행기록 측정을 시작했다. 흔히 사람들이 제로백이라고 부르는 0-100km/k 가속기록 측정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일단 정지 상태에서 400km/h에 도달한 다음, 브레이킹을 시작해 완전히 멈출 때까지의 기록이다. 엔진의 엄청난 성능, 그에 걸맞는 브레이크와 타이어 성능을 보여주기 위한 기록 측정인 셈.

드라이버인 후안 파블로 몬토야는 현재 인디카 시리즈에서 활동 중인, 전 F1 드라이버다. 이 베테랑 드라이버는 이미 레이스에서 자신의 최고속도 기록인 407km/h를 달성한 바 있고, 부가티 치론으로 420km/h의 속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이번 0-400-0km/h 기록 측정에서 ‘헬멧과 안전장구를 착용하지 않고 운전하기로’ 했다고. 물론 부가티 치론을 구입하는 고객 대부분은 헬멧을 착용하지 않고 운전할 것이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우려할 만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는 기록 측정을 마친 후 “운전이 아주 쉬웠다. 기록 측정을 위해 복잡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은 것을 보고 차의 성능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는 말을 남겼다. 평소와 다른 특별한 세팅을 한 차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치론으로 낸 기록이라는 의미이며, 한편으로 치론이 얼마나 안전한 차인지를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부가티 치론이 항상 400km/h 이상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전을 위해’ 최고속도가 380km/h로 제한되는데, 키를 이용해 운전석 시트 후방에 숨겨진 리미터를 해제하면 420km/h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여전히 리미터가 걸려있는 상태이며, 일단 부가티에 의하면 치론은 그 이상의 속도를 낼 수도 있다고 한다. 

단, 엔진은 힘이 넘치더라도 치론에 장착된 타이어가 450km/h 이상의 속도를 견딜 수 없다고. 타이어 1g이 400km/h에서 3,600g의 하중을 발생시킬 정도다. 극단적으로 가벼우면서도 엄청난 내구성을 요구받기 때문에 부가티는 미쉐린과 함께 전용 타이어를 개발했고, 최신의 기술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치론의 성능을 모두 발휘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속도를 더 높이기 위해서는 더 좋은 타이어가 필요하다는 말로 들린다.

매끄러운 선형 파워 그래프를 그리는 치론의 엔진은 터보랙을 없애기 위해 2-스테이지 터보를 장착했다. 최대가속을 내기 위해 출발 직후에는 터보차저를 사용하지 않으며, 엔진 회전수가 3,800rpm에 도달하면 비로소 2개의 터보차저가 터빈을 돌리기 시작한다. 

이번 주행에서 치론은 약 32.6초, 출발지점에서 2,621m 지점에서 400km/h를 돌파했고, 콜럼비아 출신의 레이싱 드라이버는 브레이킹을 시작했다. 후방 날개는 각도를 49도로 바짝 세워 에어브레이크로 작동하기 시작하고, 작동 직후인 400km/h에서 900kg의 다운포스를 발생시켜 뒷바퀴 액슬을 누른다. 프론트 8개, 리어 6개의 피스톤이 장착된 티타늄 디스크브레이크 캘리퍼는 카본 세라믹 로터를 움켜쥐기 시작한다. 브레이킹을 시작한 후 불과 9.3초, 491m만에 치론은 완전히 제자리에 멈췄다. 

이번 주행기록은 GPS를 기반으로 측정했으며, 부가티가 아닌 SGS/TUV가 담당했다. 부가티 치론은 불과 3,112m의 직선 도로에서 400km/h에 도달했다가 완전히 멈췄고, 이것은 기존 베이론의 성능을 능가했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명실공히 세계 최고수준의 성능을 지녔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부가티는 여전히 치론의 최고속도 기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부가티는 내년에 치론의 최고속도 기록 주행을 진행할 계획이며, 목표는 2010년 세워진 베이론 슈퍼스포트의 431.072km/h를 능가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틀림없이 모터쇼를 앞두고 기록을 공개한 다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카라고 선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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