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세 덕분인지 이탈리아 자전거 부품 메이커 캄파뇰로가 자전거 부품의 유일무이한 원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꽤 많다. 지금이야 시마노/캄파뇰로/스램 3사가 자전거 부품 시장의 거의 전부나 다름없으니, 캄파뇰로에서 ‘유러피언 클래식’의 향기를 느낀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불과 90년대 후반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부품 메이커와 브랜드가 있었다. 아뿔싸, ‘불과’가 아니라 벌써 20년 전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보물 중에는 자전거 부품도 있다. 특히 처음 나왔을 때 ‘이게 뭐야’하고 찬 밥 취급받던 실패작들은 얼마 안 가 금방 단종 되는데, 훗날 ‘옛날에 이런 것도 있었지’ 하고 생각나서 찾아보니 귀하신 몸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더라.

필자가 오래된 자전거 부품을 모으기 시작한 건 학생 때 가벼운 주머니 사정 때문이었는데, 싸면서도 만듦새가 괜찮아 보이는 부품들을 모으다보니 클래식바이크 마니아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이왕 주홍글씨로 낙인이 찍힌 몸, 여전히 가벼운 주머니사정상 필자는 변속 레버, 뒷변속기를 주로 모은다. 연도별로 늘어놓으면 자전거 역사 이야기도 할 수 있지만 지루할 것 같으니, 좀 삐딱한 시각으로 ‘변태적인’ 부품들 몇 가지를 모아봤다.

 

마빅 851 SSC (MAVIC 851 SSC)

변속기 메이커 마빅이라고 하니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름인데’라는 생각을 했다면 제대로 짚었다. 지금은 자전거 휠을 주로 만드는 마빅이지만, 예전에는 핸들바와 스템을 비롯해 가장 복잡한 부품 중 하나인 변속기까지 만드는 종합 컴포넌트 브랜드였다.

SSC(Special Service de Course)는 마빅의 레이스용 부품에 붙는 명칭이고, 851 SSC는 레이스용 로드바이크에 장착되던 디레일러다. 참고로 구조가 거의 같은 801이라는 모델도 있다. 그러나 851 SSC는 체인 풀리에 니들베어링이 들어가고, 알루미늄 표면을 아노다이징 처리하는 등 디테일한 차이가 있다. 필자가 갖고 있는 디레일러는 851 SSC의 후기형 모델로, 90년대 초반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중고로 구입했다. (풀리 중 하나가 오리지널 마빅 제가 아닌, 선투어 제다)

마빅 851 SSC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사용되던 디레일러다. 요즘 디레일러와 가장 큰 차이라면 자전거 프레임에 장착되는 부분이 L자 형태로 구부러지지 않고, 디레일러의 몸통 전체가 I자 형태라는 것. 사실 당시 프랑스의 생플렉스(SIMPLEX)나 캄파뇰로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산 변속기가 비슷한 구조였다.

마빅 851 SSC는 디레일러의 모든 부품을 100% 분해할 수 있다. 심지어 움직이는 부분의 경첩조차 강철 핀을 끼운 다음, 끝에 스냅 링을 끼워 고정한다. 조립은 분해의 역순인데 특별한 전용 공구도 필요 없다. 각지고 딱딱한 형상이 촌스러워 보이지만, 이런 투박함이야말로 마빅 변속기만의 매력. 지금도 이베이를 뒤지면 제법 나오지만, 가격은 꽤 비싸다.

 

시마노 듀라에이스 시리즈 (CRANE, DURA-ACE EX, DURA-ACE AX)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의 자전거 부품 메이커 시마노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의 계시를 받아 최고급 로드바이크 변속기 라인업인 듀라-에이스를 만든 것은 아니다. (참고로 시마노의 창립연도는 1921년으로 캄파뇰로보다 오래 되었다.) 듀라에이스의 모태가 된 고급 투어링/로드바이크용 변속기가 있었으니, 그 이름을 ‘황새(CRANE)’라고 하더라.

듀라-에이스는 1970년대 후반 시마노 크레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시마노가 (주로) 미국과 유럽 자전거 시장에서 캄파뇰로와 경쟁하기 위해 고급스러우면서 참신한 이미지가 필요했고, 이에 브랜드 명을 듀라-에이스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사진의 듀라에이스 변속기는 ‘7200’이라는 모델 넘버가 붙는 ‘듀라에이스 EX’로 2세대 모델이다. 참고로 1세대 7100 모델은 나오고 금방 단종 되었는데, 구조와 디자인은 2세대 모델과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 희대의 변태 부품 중 하나인 에어로다이내믹스 콘셉트의 ‘7300 듀라에이스 AX’가 등장한다. 당시 ‘에어로 로드바이크’ 붐이 불고 있었고, 시마노가 내놓은 ‘공기역학적 디자인’의 디레일러가 바로 이것. 사실 지금과 비교하면 공기역학을 적용하나 안하나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혁신적인 물건이라곤 차마 말 못하겠고, 결과적으로 기괴한 부품이 탄생했다.

듀라에이스 AX 디레일러는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변속 케이블 하우징을 사용하지 않는다. 체인스테이 위로 뻗어 나온 케이블이 디레일러 상단의 가이드를 따라 변속기에 직결되는 구조다. 아무 자전거에나 장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케이블이 체인스테이 위를 지나는 방식의 ‘듀라에이스에 간택 받은 자전거’에만 장착이 가능했다.

 

캄파뇰로 크로체 다우네 (CAMPAGNOLO CROCE D'AUNE)

캄파뇰로도 1980년대 ‘에어로’ 디자인의 열풍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디자인을 버리고, 매끄럽고 둥글둥글한 디자인의 디레일러를 내놓기 시작했다. ‘C-레코드’라는 최상급 레이스용 부품들이 유명한데, 이 특이한 생김새의 디레일러는 레코드와 코러스의 중간에 위치했던 ‘크로체 다우네(CROCE D'AUNE)’ 등급의 부품이다.

레코드와 코러스가 비슷한 구조인 반면, 크로체 다우네 디레일러 혼자 변속레버를 작동해 케이블을 당기면 ‘막대가 밀어서’ 변속하는 실험적인 방식을 사용한다. 캄파뇰로는 크로체 다우네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런 방식의 변속기를 만들지 않았다. 다른 변속기들과 비교해 훨씬 정교하고 비싸지만, 성능에는 이점이 별로 없다.

이미 오래전 단종 되었지만, 독특한 구조와 모양이 클래식 부품 수집가들의 입맛을 당기게 한다. 이베이 등에 간혹 올라오는데, 유난히 이탈리아에서 판매하는 이가 많다. 역시 캄파뇰로!

 

선투어 슈퍼브 테크 (SUNTOUR SUPERBE TECH)

일본의 선투어는 현재 사라진 부품 메이커지만, 부품의 품질만은 동시대의 시마노를 능가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특히 듀라-에이스의 라이벌이었던 ‘선투어 슈퍼브(SUPERBE)’ 리어 디레일러는 체인 풀리에 카트리지 베어링을 넣고, 금속 부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안쪽까지 정밀하게 가공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선투어는 특허도 많았고, 실험적인 부품도 많이 만들었다. 로드바이크용 디레일러인 슈퍼브 시리즈가 있었음에도 ‘슈퍼브 테크(SUPERBE TECH)’라는 변속기를 내놓았는데, MTB용 롱 케이지 모델이 흔하지만, 간혹 로드바이크용 숏 케이지 모델도 만날 수 있다.

슈퍼브 테크는 일반적인 디레일러와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평행사변형 링크 대신, 디레일러 몸통 내부를 깎고 안에 디스크와 로드를 넣어 관절이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며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선투어가 디스크-로드 방식 외 내부가 기어 방식으로 연결된 변속기의 특허도 냈다는 것. 하지만 실제로 기어 방식으로 움직이는 모델이 생산되었는지는 하나씩 구입해서 뚜껑을 따보기 전엔 확인할 길이 없다. 참고로 변속기를 ‘완전 분해’ 했다간, 내부 스프링의 힘이 엄청나기 때문에 원래대로 조립하는 데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내부 촬영이라는 선택의 대가로, 수없이 실패를 반복하며 조립에 무려 8시간이 넘게 걸렸음을 고백한다.

 

삭스-우레 주빌리 (SACHS-HURET JUBILEE)

‘주빌리’는 기념일, 특히 50주년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말이다. 이 변속기는 1970년에 처음 출시되었는데, 프랑스의 자전거 부품 메이커 우레(HURET)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주빌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평행사변형으로 움직이는 작동방식은 당시 캄파뇰로나 다른 메이커의 디레일러와 비슷하지만, 극단적으로 가벼움을 추구했다. 필자가 가진 주빌리 디레일러는 2세대인데, 1세대 모델은 링크가 헐거워지는 고질병이 있어 이를 해결한 모델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단순하고 가벼운 변속기를, 곳곳에 구멍을 내 무게를 더 줄였다. 무게는 142g 정도, 스램 레드 디레일러보다 가볍다. 그런데 독일의 어떤 경량 자전거 부품 마니아는 이 주빌리를 분해해 카본과 티타늄으로 복제해서 ‘극’ 초경량 디레일러를 만들었다. 참고로 저 디레일러를 장착한 자전거의 무게는 3.3kg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삭스의 레이스용 디레일러 기술을 바탕으로, 스램은 1세대 포스 디레일러를 출시한다. 참고로 삭스-우레는 스램의 전신인 그립시프트 사에 인수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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