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스포츠카를 즐기는 시대가 이제 끝나가는 것 같다. 디젤엔진을 장착하고도 0-100kmh 가속성능이 5초대인 스포츠 세단이 쏟아지고, 넓고 편안하면서도 빠른 럭셔리 GT 쿠페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아주 소량의 짐밖에 싣지 못하는 불편한 2인승 퓨어 스포츠카는 점점 판매량이 줄어든다. 로드스터는 고성능 슈퍼카가 아닌 이상에야, 허세만 가득한 바보들이나 타는 실용성 떨어지는 차로 인식되기도 한다. 물론 아직 열광하는 사람은 많지만 판매량이 저조하다 보니 메이커에서도 새롭게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제조사들은 판매량이 적어진 스포츠카 생산라인을 유지해야 할지, 고민을 한다. 아무리 플랫폼을 공유한다 해도 고성능을 꾀하면 서스펜션부터 해서 엔진, 변속기, 시트까지 단독부품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가격이 비싼 럭셔리 쿠페를 제외하면 조립라인을 유지하는데 적자를 면치 못한다. 애초부터 스포츠카는 값비싼 슈퍼카를 제외하고는 수익성이 높지 않으며 문화적,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 메이커들의 이 같은 고민들은 순수 스포츠카의 생존과 직결된다.

미국 시장에서 로드스터가 예전보다 적게 팔리긴 하지만 과거가 어찌되었든, 현대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어떻게든 상품성을 개선해 판매할 방법을 찾는다. 알파로메오 4C Spider, BMW Z4, 쉐보레 코르벳 컨버터블, 피아트 124 스파이더, 마쯔다 MX-5 미야타, 닛산 370Z, 그리고 포르쉐 718 박스터까지. 이 모델들은 요즘 인기몰이중인 SUV정도의 이익을 얻지는 못하지만, 구매자들에게 크로스오버 모델로는 달성할 수 없는 브랜드에 대한 매력이나 조종성, 스포티함 같은 감성적인 면을 충족시켜 준다.

스포츠카들이 수요를 이유로 다들 단종되는 판국에, 신형 로드스터의 개발소식은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최근에도 혼다의 신형 차량 디자인으로 이슈가 된 소위 ‘베이비 NSX’가 있었다. 실제 차량이 될 것이라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콘솔게임에 등장하는 가상의 차량으로 밝혀졌다. 실제 차를 만드는 것과 동일하게 설계를 거쳐 푸조, 현대, 부가티 등 많은 회사들이 그란투리스모에 가상의 차를 등장시키는데, 혼다는 '그란투리스모 스포트'에 '혼다 스포츠 비전 GT'를 데뷔한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베이비 NSX가, 미드십으로 변경된 S2000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이런 여러 추측에 대해, 혼다의 고급 브랜드 어큐라에서는 한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베이비 NSX는 실현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어큐라 브랜드 리더인 에밀 코르코르는 ‘누가 베이비 NSX를 좋아하지 않겠느냐’ 물으면서, 가능성을 부인했다. 에밀은 NSX에서 얻은 고성능을 위한 하이브리드 기술을 언급하며, 어큐라 브랜드에서는 '앞으로 하이브리드 기술에 집중하며 연료효율과 고성능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형 S2000에 대한 전망 역시 당분간 불투명하다. 레드존이 8,800RPM부터 시작하는 2리터 자연흡기 250마력 1,240kg, 경량 로드스터 S2000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던 매니아들에게는 나쁜 소식이다. 해외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캐나다 혼다 직원의 말을 인용하며 '로드스터 프로젝트는 죽었다'고 전했다. 캐나다 혼다의 생산계획 관리자 하야토 모리는 '혼다 사람들은 S2000을 되살리는데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모리는 현재 치솟고 있는 SUV, 크로스 오버의 인기를 보고, 스포츠카로는 돈을 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마니아들은 한가닥 희망을 놓지 않는다. 2017년 10월 다카히로 하치고 혼다 사장은 ‘신형 로드스터(S2000)는 가능하다, 다만 가까운 미래에는 아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혼다에서 경량 스포츠카를 생산하려면 마쯔다 MX-5가 인기를 얻고 경량 로드스터가 쏟아졌듯, 시장이 열려야만 제조하겠다는 뉘앙스다. 당장 탈 로드스터가 필요하다면 시장에 있는 다른 차를 타라는 얘기다.

하지만 MX-5로는 출력에 목마르다. 포르쉐 718은 뭔가 과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좀 더 빠른 코너링을 원하는 마니아들은 혼다가 만드는 S2000의 부활을 손꼽아 기다린다.

경량보다는 GT에 가깝지만, 333마력 3.7리터 V6 자연흡기 VQ엔진으로 감성과 스포츠함을 내세우던 370Z의 미래도 좋지는 않다. 닛산은 올해 Z 출시 50주년을 기념한 페어레이디 370Z 헤리티지 에디션를 내놓았다. 하지만 370Z은 2017년 미국에서 포드 머스탱이 8만 2천대가 팔린 것과 비교해 4,614대가 팔리면서, 미국시장에서 가장 적게 팔린 양산형 스포츠카로 기록되었다. 악마의 Z로 명성을 날리던 페어레이디 S30Z 시대에는 가장 잘 팔리던 스포츠카중 하나였는데, 언제나 영원한 것은 없다.

해외 매체의 기사를 통해 닛산자동차 내부에는 판매량이 감소해 단종을 검토할지 모르는 Z 시리즈를 계속 살려야된다는 의견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필리프 클레인 닛산 최고 계획 책임자(CPO)는 페어레이디 Z를 어떻게 할지 아직 확정된 것이 없으며,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달, 닛산의 마이클 번스 부사장이 페어레이디가 없어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확인해줬다. 마이클 부사장은 Z의 미래를 위해 상품성을 개선할 여러 가지 옵션을 연구중이라고 말했다.

Z는 페어레이디 240Z등 닛산을 대표하는 의미있는 모델이므로, 중장기적으로는 상품성 개선을 통해 어떻게든 살아 남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없는 차나 마찬가지다. 매번 페이스리프트만 거듭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완전 새로운 신형을 개발해서 나올 가망도 없다. 회수할 가망이 없는 수익성이 부족한 양산형 스포츠카에, 개발비를 펑펑 쏟아부을 수 있는 회사는 지금으로서는 찾기 힘들다. 물론 전기차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소형 퓨어 스포츠카는 세계적으로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다. 그 자리를 럭셔리 쿠페와 스포츠세단이 대신 매우는 형세다. 이제 순수한 스포츠카를 즐기기란 참 힘들게 됐다. 포르쉐는 앞으로 생산하는 차량의 다운사이징을 하지 않는 대신 전동화 하기로 했다. 대부분 슈퍼카 제조사들도 전동화로 돌아섰으며, 고집 센 황소 람보르기니도 플래그십 모델인 아벤타도르에 V12를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장착해 고성능을 꾀하겠다고 밝혔다. 전동화는 환경문제를 넘어서 고성능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럽의 배기가스 규제를 보고 있노라면, 스포츠카의 종말이 아니라, 조만간 내연기관을 쓴 차량은 다 사라질 것만 같다. 9,000RPM까지 회전하는 혼다 S2000의 F20C 엔진만 해도 자연흡기 상태로 현재의 배기가스 기준을 지키면서 고성능을 낼 수 없기 때문에 단종된 것이다. 만일 전기차만 굴러다니는 세상이 온다면, 클러치가 있는 수동 변속기 모델은 전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마니아들은 이제 서킷에서 내연기관 차량을 찾을 수밖에 없다. 전기 스포츠카가 빨리 보급이 될지, 내연기관 차량의 규제가 빠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새로운 스포츠카와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 환경규제도 지키고 스포츠카의 감성과 변속하는 그 손맛을 찾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수소연료를 기반으로 내연기관이 상용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즐거웠다. 굿바이, 퓨어 스포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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