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가 일상에서 널리 사용된다면, 몇몇 대기업의 실험적인 차가 아니라 누구나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온다면 우리의 일상 또한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자동차의 운전석에서 앞만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일을 하거나, 혹은 더 많은 휴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다가올 변화의 일부에 불과하다.

자율주행차가 스스로 사람을 태우고 목적지에 데려다줄 수 있다면, 원하는 시간에 사람을 데리러 올 수도 있을 것이고, 부모가 직접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주지 않더라도 자동차에게 배웅과 마중을 부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미래에는 모든 가정이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아도, 공유 형 자율주행차가 수많은 사람들의 발이 되어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30년 전 SF영화에서 보던 장면들이 이미 현실에서 구현되고 있다. 자율주행차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과 같은 모습의 자동차가 스스로 장애물을 회피하고 목적지를 향하는 것은 그저 과도기적인 형태일 뿐이다. 다가올 미래에 자동차를 사용하는 방법이 달라진다면, 자동차의 모양과 탑재된 기능도 변하지 않을까?

스위스의 콘셉트카 전문기업 린스피드(RINSPEED)는 스스로를 ‘창의적 싱크탱크’라고 부른다. 1979년 창립되어 초창기에는 포르쉐와 같은 스포츠카의 튜닝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현재는 고성능차보다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진 콘셉트카를 만들고, 자동차 디자인과 기술자문을 하는 회사로 더 유명하다.

그리고 주목해야 할 것으로 린스피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친환경 자동차와 경량 스포츠카 콘셉트를 주로 선보이다가, 2013년 선보인 ‘마이크로맥스 콘셉트’를 시작으로 개인보다는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할 자율주행차 콘셉트를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제네바모터쇼에서 린스피드는 스냅(SNAP)이라는 자율주행차 콘셉트를 내놓을 예정이다. 스냅은 이미 올해 CES와 같은 이벤트에서 이미지와 영상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스냅을 미래형 ‘버스’로 분류하는 이도 있지만, 정확히는 지금까지 시판된 적 없는 타입의 자동차라 해야 할 것이다. 상자 형태의 차체만을 보고 버스라 말하기엔 지금까지의 차와 너무나 다르다.

스냅의 차체는 길이 4,685mm, 폭1,960mm, 높이 1,842mm의 상자모양 차체에 4개의 바퀴가 달린 형태로, 동력은 28kW(최대 51kW) 전기모터가 담당한다. 12kWh 용량의 리튬-철 폴리머(LiFePO4)배터리를 탑재해 한 번 충전으로 100km의 거리를 달릴 수 있고, 최고속도는 80km/h다. 성능만으로 본다면 별로 특별할 것은 없어 보인다. 언듯 보기에 버스를 닮은 것은 맞지만, 버스라고 단정내리기보다 공간 활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능적인 형태라 봐야하지 않을까?

재미있게도 스냅 콘셉트는 ‘포드(POD)’라는 이름의 승객이 탑승하기 위한 안전 셸과 ‘스케이트보드(SKATEBOARD)’라는 섀시로 상하 분리가 된다. 하나의 스케이트보드에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포드를 연결할 수 있다. 포드의 종류에 따라 승용차로 사용할 수도, 캠핑카로 사용하거나 화물을 실어 나를 수도 있고, 푸드트럭과 같은 쇼핑 포드를 꾸밀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 린스피드는 스냅 콘셉트의 다양한 활용성보다도 ‘짧은 IT제품의 수명주기’를 고려했음을 더욱 강조한다. 포드와 스케이트보드를 분리,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은 필요한 부분만을 쉽게 교체할 수 있기 때문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쉽게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는 것.

특히 스케이트보드의 경우 내구성이 뛰어난 기계부품과 IT부품을 탑재하고 있는데, 설계수명이 지나 구식이 되더라도 쉽게 재활용 할 수 있으며, 포드는 스케이트보드보다 훨씬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린스피드 스냅은 미래에서 온 자동차라 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전기모터 시스템과 함께 앞뒤바퀴 모두 조향이 가능한 구동장치는 ZF가 공급했고, 자율주행을 위한 기술 또한 여러 회사의 협력을 받아 개발했다. 보잉 드림라이너에 장착되는 이베오의 라이더 센서, 미국 통신회사 스프린트의 스마트 네트워크 솔루션, 톰톰의 자율주행용 맵 기술, NXP와 하만이 공동으로 개발한 스마트안테나와 NSX 센서 융합 솔루션과 같은 최신 기술이 탑재되었다.

특히 하만은 린스피드 스냅 콘셉트를 위한 ‘트루 레벨 5’ 개인인증기술을 개발해 적용했다. 차량이 승객을 인식하고, 각각의 개인 데이터를 보호할 뿐 아니라, 승객의 선호도와 습관에 맞춰 차량을 세팅하고 클라우드 데이터를 통한 인포테인먼트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용 자율주행차가 실현된다면 이 같은 개인별 인증과 정보 보호 기술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에서도 한걸음 앞서나간 모습을 보여준다.

재미있게도 우리나라 회사가 스냅 콘셉트의 개발에 참여했다. 코오롱은 반투명한 소재에 한국의 전통 상감기법을 적용한 시트와 트림 장식을 제공해 스냅 콘셉트의 인테리어에 악센트를 주었다고 한다.

린스피드 스냅과 같은 콘셉트카는 자동차 메이커가 보유한 기술을 보여줄 뿐 아니라, 미래의 자동차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지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물론 린스피드는 자동차의 대량생산을 하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스냅 콘셉트를 거리에서 실제로 만나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많은 자동차 메이커들이 스냅과 같은 차량들을 내놓기 시작한다면 거리의 모습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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