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국내에서는 반응이 조용하다. 모터스포츠에 대한 관심의 부족을 감안하더라도 폭스바겐이 ‘전설의 부활’을 테마로 준비하고 있는 이벤트라면,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관심을 갖고 지켜볼만한 가치가 있을 텐데 말이다. 폭스바겐이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리는 ‘파이크스피크 국제 힐클라임(Pikes peak International Hill Climb, 이하 파이크스피크 힐클라임)’ 레이스에 출전하기 위한 ‘ID R’레이싱카를 공개했다.

 

전설의 힐클라임 레이스

‘파이크스피크 힐클라임’은 1916년에 처음 시작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레이스이며, 미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레이스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도로나 서킷에서 열리는 일반적인 레이스와는 달리 산악도로에서 열린다. 출발지점의 고도가 해발 2,862m나 되지만, 피니쉬라인은 그보다 훨씬 높은 4,301m에 위치한다.

폭스바겐이 파이크스피크 힐클라임에 참가하는 이유는 이곳에서 수많은 모터스포츠의 전설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파이크스 피크 힐클라임은 지금까지도 자동차에게 가장 가혹한 조건을 가진 레이스 중 하나로 여겨지며, 이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한 레이스카들은 쉴 새 없이 진화해왔다. 약 20km의 코스에서, 1916년의 우승기록은 21분이지만 1925년에는 18분으로 줄어들었다. 1958년에는 14분으로 단축되었지만, 10분의 벽이 깨진 것은 비교적 최근인 1994년이다. 2012년 이전에는 비포장도로였지만, 현재는 도로 전체가 아스팔트로 포장되었다.

파이크스피크 힐클라임의 코스 길이는 ‘약 20km’다. 코스의 상승고도는 1439m, 평균경사도는 7%에 이른다. 수많은 헤어핀 커브가 포함된 156굽이의 도로를 달려 올라가야하며, 도로 가장자리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약간의 실수로 차가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는 모습도 종종 목격하게 될 만큼 위험하다.

특이하게도 뉘르부르크링 노르드슐라이페처럼 ‘파이크스피크 0분 00초’라는 랩타임보다는 매년 대회 순위가 더 중시되는데, 이는 날씨와 같은 자연환경에 의해 매년 노면 상태가 바뀌고, 기록도 이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여름이지만 눈이 내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환경을 고려해 기록을 측정하는 위치도 매년 조금씩 바뀌기 때문에 서로 다른 해의 대회 랩타임을 초단위로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대신 가혹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문은 크게 열려있다. 포뮬러 원처럼 레이스카의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지 않고, 특히 ‘무제한(Unlimited)’ 카테고리에 출전하는 차들은 이름 그대로 어떤 것이어도 상관없다. 전기차라도, 레이스카의 엔진을 실어도, 엔진을 두 개 싣고 나와도 상관없다.

실제로 파이크스피크에는 여러 자동차 메이커들의 프로토타입 레이스카가 출전해 우승하기도 했다. 지난 2012년 현대자동차는 리즈밀렌 레이싱과 손잡고 제네시스 쿠페 레이스카를 출전시켜 당시 파이크스피크 최고기록을 경신했고, 푸조는 2013년 랠리카의 섀시와 르망24시 레이스카의 엔진을 결합한 208 레이스카를 출전시켜 사상 최초로 8분대의 기록을 내기도 했다.

파이크스피크는 전기 레이스카를 비교적 일찍 받아들인 레이스이기도 하다. 스즈키 모터스포츠 디비전의 사장이자 레이스 드라이버인 타지마 노부히로는 2012년부터 전기차로 파이크스피크 힐클라임에 출전하고 있으며, 미쓰비시를 비롯한 여러 기업의 지원을 받아 팀 APEV(Association for the Promotion of Electric Vehicles)가 개발한 E-러너 파이크스피크 스페셜 레이스카로 전기차 최고기록인 9분 46초.530을 기록했다.

 

폭스바겐의 파이크스피크 힐클라임 도전

폭스바겐 역시 파이크스피크 힐클라임에 참전했었다. 폭스바겐 모터스포츠는 1981년 최초로 ‘트윈엔진’을 탑재한 골프와 시로코 레이스카를 개발했고, 트윈엔진 골프는 1985년부터 1987년까지 파이크스피크 힐클라임에 출전했다.

골프 GTI에 탑재되었던 16V 4기통 엔진은 326마력을 내도록 튜닝 되었고, 이 엔진을 레이스카의 앞뒤에 세로로 장착해 50:50의 무게배분과 4륜구동을 구현했다. 당시 파이크스피크 힐클라임 코스는 오프로드였기 때문에 무엇보다 가벼운 무게와 파워가 중시되었고, 낮은 무게중심으로 민첩한 코너링 성능을 끌어내면서 동시에 600마력 이상의 최대출력을 남김없이 뿜어낼 수 있도록 했다.

레이스가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폭스바겐의 트윈엔진 골프는 1987년 파이크스피크 힐클라임에서 윤활계통의 문제로 피니쉬라인을 불과 200m 남기고 리타이어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같은 레이스를 통한 새로운 도전 그 자체가 이제는 전설이되어 남아있다.

그리고 폭스바겐은 올해 다시 한 번 파이크스피크에 도전한다. 과거 트윈엔진 골프라는 비범한 차량을 만들었듯, 이번에 만들어낸 레이스카 역시 평범한 차는 아니다. 폭스바겐의 신생 전기차 브랜드의 이름을 붙인 ‘ID R 파이크스피크’는 모터쇼에 등장할법한 미래적인 디자인의 ‘전기’레이스카다. 그러나 쇼를 위한 프로토타입이 아니라, 실제 레이스에서 ‘최강의 전기차’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차다.

단순히 출력만을 키운다고 승리할 수 있는 레이스가 아니다. 언덕에서의 폭발적인 가속과 제동, 코너링 후의 재 가속. 이를 위해 강력한 힘과 민첩함 모두가 필요하다. 공기저항과 차를 노면에 단단하게 붙들어놓을 수 있도록 누르는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에어로다이내믹스 디자인이 적용되었고, 그 결과 마치 르망24시에 출전하는 레이스카 같은 모습을 갖췄다.

강력한 출력을 위해서는 그에 걸 맞는 고성능 배터리가 필요하다. 무제한의 힘을 쏟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 강하고 용량이 큰 배터리일수록 무겁다. 폭스바겐이 가장 신경쓴 부분 중 하나가 에너지 용량과 중량의 이상적인 균형이다.

고전압을 필요로 하는 레이스카의 파워트레인을 위해 고밀도 리튬이온 배터리 셀을 장착하고, 제동 시의 에너지를 회수해 다시 배터리를 충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효율이 높을수록 더 가벼운 배터리 시스템을 탑재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파워트레인은 과거의 골프가 그러했듯 2개의 모터가 앞뒤에 장착되며, 시스템출력 680마력을 낸다. 차량의 총중량은 1,100kg에 불과하다.

파이크스피크 힐클라임 도전을 위해 차량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레이스 드라이버다. 폭스바겐은 최고의 드라이버와 손을 잡았다. 프랑스 출신의 레이스 드라이버 로맹 뒤마(Romain Dumas)가 폭스바겐 ID R의 시트에 앉는다. 푸조와 포르쉐, 아우디의 르망 레이스카 시트에 앉았던 드라이버이자 포르쉐 919 하이브리드를 몰아 2016 WEC LMP1 클래스를 시즌 챔피언의 자리에 올린 주인공이기도 하다. 파이크스피크에서도 3번의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폭스바겐은 이 레이스카에 메이커의 모든 기술, 미래를 향한 비전을 집약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의지는 레이스카의 이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전기차 시대를 향한 비전을 나타내는 ‘ID’와 레이스의 ‘R’, 이 두 단어가 모여 이 레이스카의 이름이 되었다.

폭스바겐이 올해 파이크스피크 힐클라임에 참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폭스바겐은 전설을 만들고자 한다. 폭스바겐, ID, R이라는 세 단어를 2018년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전기차’로 역사책에 기록할 수 있다면 폭스바겐은 목표를 이루게 될 것이다.  2018년 6월 24일, 폭스바겐의 도전이 성공할 수 있을지, 더 나아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전기차는 다른 내연기관 레이스카와 비교해 어떤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인지 결과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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