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종 보통 운전면허를 따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수동 트럭으로 시험을 친 경험이 있을것이다. 그런데 이 트럭들은 앞부분에 보닛이 없는 캡오버(Cab Over)방식 차량이다. 적재물을 더 많이 싣기 위해 적재함을 최대한 늘리고, 운전석 공간을 엔진 위로 올린 것이다. 적재효율은 좋을지 몰라도, 운전석은 좁고 불편하며, 무엇보다 안전성이 떨어진다. 이제는 화물의 운송효율보다 운전하는 사람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환경을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르노삼성차는 17일 경기도 용인 르노삼성중앙연구소에서 르노 마스터를 출시하며, 운수종사자의 안전과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문화를 바꾸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유럽에서 입증된 경상용차

르노 마스터는 1980년 1세대 모델 출시 후, 97년 2세대, 2010년에 3세대 모델을 거쳐 2014년에는 3세대 부분변경 모델을 내놓았다. 유럽 시장에서는 다양한 모델을 바탕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상용차이다. 전기, 디젤 등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갖춘 것은 물론이거니와, 뒷바퀴 굴림, 앞바퀴 굴림, 네바퀴 굴림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모델이 존재한다.

마스터 S는 전장 5,050mm, 전폭 2,020mm, 전고 2,305mm로 스타렉스보다는 조금 넓고 큰 크기이다. 마스터 L은 전장이 500mm 길고, 전고가 180mm높다. 측면 슬라이딩 도어는 크고 넓으며, 뒷면 리어스윙도어는 마스터 S 180도, 마스터 L이 270도까지 열려 적재물 상하차가 쉽다. 국내에 수입되는 것과 같은 밴 모델의 경우 높이에 따라 3가지 모델이 있으며 이번에 들여오는 마스터 모델들은 기본 S(8큐빅미터)와 큰 L 모델(10.8큐빅미터) 두 가지이다. 적재함규격은 2,505x1,705x1,750mm이다(L모델은 S에 비해 510mm 더 길고, 190mm 높다).

국내에 들어오는 마스터의 구동방식은 앞바퀴 굴림방식이다. 뒷바퀴를 굴리기 위해 필요한 프로펠러 샤프트가 사라지면서, 바닥에서부터 적재함까지 높이가 545mm밖에 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덕분에 손으로 커다란 물품을 싣거나 내릴 때 무척 편리하다. 뿐만 아니라, 기존처럼 중량물을 실으려고 무거운 리프트 장치를 하지 않아도 경사로만으로 충분히 적재가 가능하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기본 마스터 S 모델에, 급경사와 수풀이 우거진 산악, 오프로드를 달릴 수 있는 어드밴처 바이크 두 대를 라이더가 탑승한 채 적재하는 것을 시연했다.

 

경상용차 운수종사자에게 안전과 쾌적함을

캡오버 방식이 아닌, 소위 ‘세미 보닛’이라 불리는 컨벤셔널 캡(Conventional Cab) 경상용차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현대차가 2000년 내놓은 리베로는 세미 보닛 방식이면서, 경상용차 최초로 4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적은 적재함 규격은 기존의 포터, 봉고 대비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했고, 2007년을 끝으로 단종되었다.

지금껏 국내에서는 효율성을 우선시하여, 캡오버 방식의 소형 상용차가 많이 쓰여왔다. 무엇보다도 화물을 많이 싣는 과적과 가격이 우선시 되어, 포터나 봉고, 다마스와 라보는 대체 불가능한 시장을 만들었다. 이 차량들은 차체 크기 대비 효율적이라는 장점이 있는 반면, 여유공간이 거의 없다. 정면충돌에서 캡오버 방식의 소형 상용차 안전성은 매우 취약하다. 이 차량들에 에어백이 들어간 것은 근 수년만의 일이다. 라보와 다마스같은 초소형 상용차는 오토바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안전성으로, 여전히 많은 운전자들이 사고시 중상 이상의 피해를 입는 위험에 노출되어있다. 이렇게 운수종사자들의 안전은 철저히 배제된 채, 비정상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최근 경상용차 시장에는 현대 솔라티 밴, 이베코 데일리 등 다양한 컨벤셔널 캡 차량이 추가되었다. 이베코 데일리의 경우, 크기는 솔라티와 비슷하면서, 적재량은 1.5톤-3톤 가량인 현대 마이티와 비슷한 상용차다. 르노 마스터는 스타렉스보다 조금 큰 적재량 1톤-2톤의 경상용차다.

 

세미 보닛, 주행안전을 위한 기능

르노삼성차가 행사장에서 가장 크게 강조한 것은 ‘안전’이었다. 르노 마스터는 충돌시 운전석을 보호하는 세미 보닛 구조에, 급제동과 충돌시 충격을 상쇄하고 흉부 압박을 줄이는 프리텐셔너, 로드리미터가 장착되어있다. 경상용차에서는 보기 어려운 능동 안전시스템도 탑재됐다. 60km/h이상에서 동작하는 차선이탈 경보 시스템(LDW)이 최초로 적용되었으며, 차체자세 제어장치(ESC), 트레일러 흔들림 조절 기능 TSA가 탑재되어 있다. 적재물에 따라 이상적인 제동력을 분배하는 EBD-ABS, 급제동시 최단거리로 정지하도록 제동력을 최대한 써서 보조하는 브레이크 보조 시스템(BAS) 또한 기본으로 장착되어있다. 주차시 사고예방과 편의를 위해 후방감지기도 기본이다. 추가로 장착할 수 있는 옵션으로는 실내 가죽 시트 외에도, 내비게이션과 후방카메라(80만 원), T맵과 전방카메라 패키지 (102만 원), 전방카메라 패키지에 측면까지 커버해 차량 주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스카이뷰 카메라 패키지(165만 원)등 안전과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것들이 준비되어 있다.

 

높은 효율과 주행 보조기능

르노 마스터에는 트렉션 제어 기능 익스텐디드 그립 컨트롤(Extended Grip Control)이 탑재되어 있다. 일반적인 차량이 눈이나 진흙, 모래처럼 마찰이 적은 노면에서 주행할 때 한쪽 바퀴가 헛돌아서 주행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익스텐디드 그립 컨트롤은 바퀴 회전수를 바탕으로, 엔진 토크와 브레이크를 제어를 제어해 최적의 트랙션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가상 LSD 역할을 한다. 르노삼성 QM3 RE 시그니처 모델에 장착되어있는 그립 컨트롤과 같은 기술로, 앞바퀴 굴림 방식이 급경사에서 불리할 수 있는 문제를 해소한다.

르노 마스터에 장착된 2.3리터 트윈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145마력(3,500RPM), 최대토크 36.7kgf.m(1,500RPM)를 발휘한다. 저회전부터 높은 토크를 발휘하는 디젤엔진은, 유로6를 만족하는 배기가스 선택적 환원 촉매 방식(SCR)을 장착했다. 연비는 마스터 S가 복합 10.8km/l, 마스터 L이 10.5km/l로 경쟁사인 포터 일반캡 모델 복합연비 9.6km/l에 비해 앞바퀴 굴림 방식 특유의 높은 연비를 발휘한다.

르노 마스터는 6단 수동 변속기임에도 오토 스탑/스타트기능이 탑재되어 정차시 시동을 껐다가 브레이크에 발을 띄면 다시 시동이 걸린다. 에코모드는 엔진 출력과 히터, 에어컨을 제어하여 연비를 상승시킨다. ESM(Energy Smart Management)기능은 감속, 정차시 모터로 회생제동하는 장치다. 회생제동은 친환경차량에서 효율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기술이기도 하지만 일반차량에서는 활용도가 떨어져 장착하지 않았다. 르노 F1팀에서 쓰인 기술을 바탕으로, 최근 르노 얼라이언스 그룹에 넓게 보급되고 있는 고효율 연비 개선기술이다. ESM 기술이 하이브리드 차량처럼 엔진을 끈 채 모터로만 저속 주행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전기계통 전력공급을 보조하는 배터리를 충전해서 알터네이터의 부하를 줄인다. 브레이크는 앞뒤 모두 디스크를 장착했다. 언덕길에서 2초간 브레이크를 밟아주어 출발을 돕는 경사로 밀림방지장치(HSA)또한 기본으로 장착됐다.

효율과 안전성이 뛰어난 세미보닛 타입 르노 마스터는 중소기업과 10대 미만의 차량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개인사업자에게 알맞은 경상용차다. 차체, 일반 부품과 엔진, 동력전달 부품 모두 3년 또는 10만 km까지 품질을 보증한다. 여기에 2년 또는 6만 km까지 추가 보증 연장도 가능하다.

 

열악한 운전자의 처우, 개선되야

과거, 대형 카고트럭 등 중, 대형상용차를 만들던 삼성상용차에서 야무진이라는 경상용차를 출시한 적이 있었다. 봉고, 포터와 같은 캡오버 방식이었지만, 과적에 약하다는 이유로 고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일본에서 적재량이 1.5톤으로 설계된 차량을 국내에 1톤 적재차량으로 공급했지만, 3톤이상 싣는 것이 당연한 운전자들에게는 실망감을 주었다. 많이 실을 수 있다고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다가 아니다. 과적이 아닌 맞는 화물을 실을 수 있도록 문화 그리고 법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

이미 긴 시간동안 유럽에서 사용되며 입증된 차량이고, 안전성은 물론 편의사양까지 경쟁차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운전석의 환경이 개선되면, 운전자의 능률 또한 높아진다. GDP 3만 달러 시대에, 언제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운전해야 할까. 르노 마스터 S의 가격은 2,900만 원, 마스터 L은 3,100만 원이다. 스타렉스보다 훨씬 크고 많은 화물을 적재할 수 있으면서 4천만 원대 후반인 현대 마이티, 6천만 원대인 솔라티 밴에 비해 무척 공격적인 가격이다. 르노삼성이 운전종사자의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 만들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계속 변하고 있다. 의식이 개선되고, 경상용차 과적 금지 법안이 마련된다면 열악한 운전종사자들의 처우가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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