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기자로 지내다보면, 일반적으로는 가보기 어려운 곳을 방문하는 진귀한 경험을 얻기도 한다. 이번에는 우리나라 자동차 제조사 중 하나인 르노삼성자동차의 용인 연구소에 방문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곳은 기존에는 르노삼성자동차 중앙연구소로 불리었으나, 최근에는 르노테크놀로지코리아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르노테크놀로지코리아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중요 연구소 중 하나로써, C, D세그먼트 세단과 SUV 부분 개발을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삼성자동차 중앙연구소로 1998년 처음 설립되었으며, 세계 최고의 연구소를 만들자는 목적으로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진 연구소이다.

이곳에서는 설계와 디자인, 충돌테스트를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있다. 이렇게 설계된 연구소는 무척 드물다고. 르노 그룹 안에서 연구소는 대륙별로 존재하지만, 신차 개발이 가능한 연구소는 프랑스와 루마니아, 한국 세 곳뿐이다. 완성차 뿐만 아니라 얼라이언스의 부품도 개발한다. 르노 그룹의 미드십 스포츠카 르노 알핀(Alpine) A110에는 1.8리터 가솔린 터보엔진이 들어간다. 이 엔진과 ECU 소프트웨어를 이곳에서 개발하고 튜닝하기도 했다. 이날 방문에서는 디자인 연구소, 충돌테스트, 전자파 시험방을 둘러볼 수 있었다.

 

르노 디자인 아시아

르노테크놀로지코리아에는 르노 디자인 아시아(RDA)가 있다. 중국과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차량 디자인을 개발하고, 프랑스 본사 메인 디자인센터와 공유한다. 한국 지역이 얼마 전 새롭게 개편된 아프리카-중동-인도-태평양 지역본부(AMI 태평양)에 속하게 되면서 그 중요성은 더 커졌다. 르노 디자인 아시아의 예산은 르노삼성이 아닌, 르노 그룹 디자인 예산과 통합 운영한다.

르노 디자인 아시아 총괄 라파엘 리나리 상무는 ‘프랑스 디자이너들에게 RDA는 급변하는 디자인 트렌드를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한국 시장은 트렌드에 민감하고 또 IT기술과의 빠른 접목에 대한 기대치가 무척 높다. 또한 거대시장 중국과 가깝기 때문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XM3 인스파이어의 디자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라파엘 상무는 모든 한국의 트렌드를 XM3 인스파이어에 반영했다면서, 굉장히 디테일에 신경 쓰면서도 전체적 외관은 단순하면서도 세련되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단순해 보이는 차량 디자인이지만, 차량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섬세한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도록 공들였다고 말했다.

 

XM3 인스파이어와 SM6 부분변경에 ADAS 적용

르노삼성은 아직까지 첨단주행보조시스템인 ADAS에 대한 적응이 소극적이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현재 기술력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판단, 더 높은 수준으로 개발해 장착하기로 했다. 대부분 현재 적용된 ADAS는 고속도로에서 거리에 따라 속도만 줄이는 수준이지만 얼라이언스는 고속도로에서 추월 가능한 수준(SAE 기준 레벨3)으로 2022년까지 개발해 적용한다. 앞으로 출시될 SM6의 페이스리프트에는 ADAS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ADAS 기술은 XM3 인스파이어에도 탑재된다.

 

지금까지 40여종 충돌테스트, 1종류 테스트에만 70여대

르노 디자인 아시아를 나와 원형 중정을 지나 건물 반대편으로 향했다. 이쪽에는 약 200여 미터에 달하는 충돌실험장이 있다. 각종 더미를 비롯해, 차량을 충돌시키는 벽, 천장에는 조명과 초고속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한 차량 실험할 때는 플랫폼에서부터, 각 부품별로 조립해서 시험을 거듭하고 최종적으로 완성차를 충돌시켜 안전성능을 확인한다. 아무리 시뮬레이션 기술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실제 실험을 거쳐야만 그 차량의 문제점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다.

개발 초기에는 각 부품을 소량생산해 직접 손으로 조립하기 때문에 차량 대당 가격은 몇 억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차량을 파일럿 또는 파이로트(pilot)라고 부른다. 이 상태에서 정면, 측면, 25% 오프셋, 보행자 충돌 실험 등을 거친 후에 최종 양산에 들어가기 전 까지 계속 버전업 된 파일럿 차량을 충돌실험하게 된다. 양산수준에 가까워지게 되면 가격이 점차 낮아지긴 하지만 여전히 양산되는 수준에 비하면 비싸다. 이런 차량 충돌 실험으로만 70여대를 사용한다고 한다.

 

인체와 차량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전자파적합시험

휴대폰이나 노트북, TV 같은 전자기기는 우리 몸에 가깝에 붙여 사용하는 전자기기인 만큼 전자파가 인체에 무해한지 확인하는 EMC, 전자파 적합 시험을 거치게 된다. 그중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불필요한 전자파가 인체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지 시험하는 전자파 장해 시험(EMI)를 받게 된다.

전자파에 노출되어 손상되는 경우는 쉽게 보자면 전자레인지를 생각하면 된다. 흔히 알려진 바로는, 전자파에 자주 노출되는 환경에 근무한 사람들 자녀는 딸이 많다거나 남성의 경우 불임을 초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자기기가 가득 내장되어 있는 차량 역시 인체가 가까이 하는 만큼 전자파 인증을 받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차량 제조시 검사한 자료를 요구한 후, 차량이 출시된 사후에 완성차를 임의로 구입해 안전도를 검사하는 사후 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사전 인증제도로, 인증관이 실험장에 입회하에 검사를 진행한다.

차량 내부에는 ECU를 비롯한 많은 전자제어장비들이 있다. 이런 장비들은 불필요한 전자기 잡음(노이즈, noise)에 취약하기 때문에 서로 오작동을 일으키진 않는 지 확인이 필요하다. 최근 자동차들은 노이즈를 줄이기 위해 각 부품마다 전자파 실드를 적용하여 불필요한 잡음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만든다. 전기차 케이블의 경우 아직 명확한 기준이 없지만, 일반 내연차량 법규 수준에 맞춰 시험하고 있다. 저가의 미 인증 수입품들은 대부분은 이런 부분을 생략해 GPS, WIFI를 함께 사용할 경우 서로 간섭을 일으키거나 다른 전파기기에 오류를 만든다.

또한 자동차에서 나오는 전자파 뿐만 아니라, 자동차 자체에 강한 전자파를 쐬어 차량에 이상이 없는지 하는 테스트를 전자파 내성 시험, EMS도 이곳에서 진행한다. 국내의 경우 30V/m의 기준으로 되어있지만, 르노 그룹 내부 기준으로는 훨씬 더 강력한 기준을 적용해 양산 수준을 고려하여 200V/m까지 실험한다. 고압전선이나 변전소, 통신장비 주변 등 강한 전자기장 주변에서 차량이 이상동작 하지 않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르노 내부 기준으로 테스트를 통과할 경우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전자파 인증을 통과할 수 있다고 한다.

르노삼성의 전자기 테스트 방(챔버, chamber)는 정차시 뿐만 아니라, 차량을 실제로 주행하면서 문제가 없는 지 확인할 수 있는 다이나모 실험장비다. 안테나까지 10미터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10m 챔버이다. 옆방은 컨트롤 룸으로 불리며, 카메라를 이용해 차량 이상여부를 파학하며 고장코드를 분석해 차량의 전자파 신뢰성을 개선시킨다.

방 안에는 차량의 방향을 돌려가며 테스트 할 수 있도록 턴테이블 형태의 섀시 다이나모가 있으며, 배기가스를 흡입하는 관이 배기구에 연결되어 있다. 벽 전체는 전자파를 흡수하기 위한 흡수재로 둘러져 있어, 불필요한 전자파의 반사를 막는다.

EMC, EMI 테스트에서는 잡음을 만들지 않기 위해 무인 상태에서 실험한다. 또한 실험장비들 역시 일반 전선이 아닌 광케이블로 연결되어 모니터할 수 있도록 했다. 실험 설비를 설명해준 전장 시스템 개발과 신뢰성 색션의 이동재 섹션장은 르노삼성 연구소 초기에 100억원을 투자해 만든 장비라면서, 르노 그룹에서도 파리와 용인 두 군데만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권상순 연구소장은 디젤 파워트레인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새로운 엔진을 개발해야 하지만,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경제성과 효율성에 민감한 소형 차량에서 디젤 엔진은 더 이상 어렵다는 이야기다. 권 연구소장은 당분간 중형과 준대형에 속하는 D, E세그먼트에서만 디젤엔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르노테크놀로지코리아는 내년 출시 예정인 XM3 인스파이어와 하반기 출시 예정인 QM6 부분변경 개발, 그리고 인도와 중국의 차량들 개발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르노삼성차 도미닉 시뇨라 사장은 르노테크놀로지코리아가 ‘전략적 핵심 연구기지로 주목받고 있다’면서 앞으로 르노삼성차의 움직임에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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