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컴매거진이 한국을 방문한 푸조의 신용욱 디자이너를 만났다. 푸조 측에 별도의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다른 매체들에 비해 그리 늦지 않았으나 스케줄을 조율하다보니 공교롭게도 카컴매거진이 신용욱 디자이너를 별도로 인터뷰한 마지막 매체가 되어버렸다. 빡빡한 일정 속에 많은 매체들과 진행된 인터뷰 일정으로 다소 지쳐있을 신용욱 디자이너를 생각해 간단한 간식거리를 준비해 성동구 성수동 푸조비즈타워에 위치한 한불모터스를 찾았다.

신용욱 : 오 이게 뭔가요? 츄러스?

카컴매거진 : 전해 듣기로 저희 카컴매거진이 마지막 인터뷰 매체라고 하더군요. 마지막이라 다소 피곤해 하실 수 있을 것도 같아서 오는 길에 간식거리를 좀 준비해 봤습니다. 장시간 말하는 것이 체력을 많이 요하거든요. 츄러스인데요 정확하게는 미니츄러스입니다.

신용욱 : 츄러스는 원래 국적이 스페인입니다. 언젠가 여름에 스페인에 갔었을 때 츄러스를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기름이 많았던 맛이었어요. 간식 감사합니다. 힘을 내서 마지막 인터뷰를 시작해봐야겠군요.

카컴매거진 : 간식거리를 준비한 보람이 있네요. 다른 인터뷰 진행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지요? 아마도 연속된 인터뷰들에서 비슷한 질문들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신용욱 : 네. 비슷한 질문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비슷한 답변들을 하느라 한 얘기를 반복해서 한 경우가 많았죠.

카컴매거진 : 그래서 저희는 가급적 다른 매체와 나눈 이야기와는 좀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스케줄 상 마지막 매체의 단점을 장점으로 극복해보려고요.

신용욱 : 그런 것은 저도 환영입니다. 비슷한 질문을 계속 듣는 것도 비슷한 답변을 계속 말하는 것도 즐거운 일은 아니거든요. 
 

카컴매거진 : 얼마 전 208 런칭 행사에서 직접 진행하신 프리젠테이션 잘 봤습니다. 쌀과 보리에 비유해서 푸조의 디자인 정체성을 설명하신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을 떠나신지 30년이 넘으셨다고 들었는데 쌀과 보리를 예로 드신 것 보고 역시나 한국인이 맞구나 싶었습니다.

신용욱 : 감사합니다. 저는 상당히 오랜 시간 한국을 떠나있었지만 항상 디자인 할 때 한국의 속담 같은 것들을 많이 생각하곤 합니다. 해외에서 오래 살긴 했지만 분명 한국인 맞습니다.

카컴매거진 : 이번에 한국에 오신 것은 얼마만이죠?

신용욱 : 저는 4년 전에 한국을 방문 했었습니다. 그 전에는 10년 만에 방문했었구요. 이번에는 4년 만에 와서 그런지 충격이 덜 했지만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충격이 엄청났었습니다. 자동차 경적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거든요. 그런데 10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무척 조용해져 있었어요. 그만큼 사람들의 운전 문화가 발전한 것이었겠지요. 보세요 인터뷰 하는 지금도 밖에 조용하잖아요. 이번에는 4년 만에 온 거라 그런지 그렇게 많은 것들이 바뀌어 보이지는 않네요.  

카컴매거진 : 아무래도 디자이너다 보니 도로에 있는 차들이 가장 먼저 들어오실텐데요 한국 도로의 차들을 보시고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신용욱 : 4년 전에 한국에 왔을 때 가장 놀라왔던 것은 강남에서 마주친 마이바흐였습니다. 하루 사이에 모두 다른 마이바흐를 3대나 봤거든요. 그 때 저는 일본 요코하마에서 이동했었는데 오히려 일본보다 고급차가 더 많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좀 충격이었어요. 사실 마이바흐는 제가 살고 있는 유럽에서도 보기 힘든 고가의 차량이거든요. 그런데 강남에서 짧은 시간에 3대나 마주쳤으니 놀랄 만도 하죠.

카컴매거진 : 프랑스 브랜드 푸조의 디자이너 눈에 비친 한국의 자동차 문화는 어떻습니까? 

신용욱 : 한국의 자동차 문화에서 실속이 좀 빠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럭셔리한 것도 좋고 타인에 눈에 보이는 이미지도 많이 중요하지만 도시의 크기에 비해 차들이 너무 큽니다. 이제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작은 차도 편하게 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차를 선호하는 문화가 좀 아쉽습니다. 물론 옛날에는 안전이라는 문제 때문에 큰 차를 선호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요즘은 작은 차들도 많이 안전합니다. 아 제가 이번에 발표한 208 모델을 팔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카컴매거진 : 푸조의 디자이너로서 푸조 디자인의 매력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질문이 너무 포괄적인가요?

신용욱 : 제가 생각하는 푸조의 매력은 상당히 감정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이건 독일 메이커와는 상당히 다른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죠. 제가 생각하는 독일차의 특징은 메카니즘적으로 훌륭하고 상당히 논리적이라는 겁니다. 그런 특징을 느낌으로 표현하자면 전 다소 차갑게 느껴집니다. 푸조는 그런 독일브랜드의 느낌과는 분명 다릅니다. 전 자동차 시장에 각각의 매력을 가진 브랜드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차들이 전해주는 디자인적인 철학이 모두 같은 수는 없잖아요. 한국 소비자들에게 푸조의 감정적인 디자인 철학에 대한 매력을 말로 표현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그건 우리가 해야 할 숙제라고 봐야겠죠. 기자분들도 푸조의 이런 매력을 전달하는데 도움을 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카컴매거진 : 한국에서 푸조는 유럽에 비해 시장 점유율이 낮은 편인데요,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신용욱 : 푸조의 디자인이나 성능 때문에 한국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낮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푸조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고 수익 또한 잘 내고 있는 브랜드거든요. 제 생각에는 판매율이 높지 않은 나라에서 각 나라에 대한 현지화에 대해 좀 더 공격적으로 마케팅 해야 할 듯 싶습니다. 각 나라 시장에 맞춰 좀 더 노력해야죠. 
 

카컴매거진 : 이번에는 208 런칭 때문에 오셨으니까 208 얘기를 좀 해보도록 하죠. 직접 만드신 208의 헤드업클러스터(Head Up Cluster)는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과거 2008년 모터쇼에서 봐왔던 푸조의 콘셉트카에서 헤드업클러스터의 흔적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맞나요?

신용욱 : 제가 헤드업클러스터 아이디어를 처음 생각해냈는데 본사에서 이 아이디어를 매우 좋게 생각했었나봅니다. 그래서 콘셉트카에 적용을 해보라는 지시가 내려왔죠. 아이디어가 나온 이후 수석디자이너로 임명된 장 피에르 플로에도 제가 생각해낸 헤드업클러스터 개념에 대한 이해를 못했었어요. 제가 만들어놓은 목업 모형을 보고서 이해를 했었습니다. 사실 헤드업클러스터를 처음 적용하려고 했던 모델은 208이 아니라 508이었어요. 그런데 508은 차체의 크기가 크잖아요. 그래서 헤드업클러스터가 너무 작아 보여 비율 문제 때문에 적용하기가 좀 애매했습니다. 실제로 적용시켜 사용까지 해봤는데 문제는 없었습니다. 아쉽게도 비율이 좀 안 맞아서 디자인적인 문제로 208에 처음으로 적용이 된 겁니다.

카컴매거진 : 저희 예상대로 과거 콘셉트 모델인 SR-1의 실내에서 보였던 것이 헤드업클러스터가 맞았군요. 그럼 내친김에 예상도 한 번 해보겠습니다. 이번 제네바 모터쇼에 나온다고 얘기가 나오고 있는 3008 후속에도 헤드업클러스터가 적용되는 건가요?

신용욱 : 내부의 전략적인 이야기라 매체의 인터뷰에서 확답은 드릴 수 없지만 208에 적용 되었으니 기술적으로 문제가 될 것은 없고, 아무래도 208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결정되지 않을까 싶네요. 스텝바이스텝이라고 208부터 적용이 되기 시작했으니 이제 점차 다른 차종에 적용이 될 것으로 예상해 봅니다. 
 

카컴매거진 : 디자이너 개인에 대한 질문을 좀 드리겠습니다. 신용욱의 디자인 세계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요소는 뭔가요?

신용욱 : 사실 제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비행기입니다. 어렸을 때 저는 차보다 비행기를 참 좋아했어요. 학교에서도 비행기를 항상 그리고 만들고 했죠. 생각해보면 앞으로 비행기가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 너무도 궁금한 학생이었습니다. 비행기를 만들면서 비행기의 메카니즘을 많이 배우고 연구했죠. 특이하게도 저한테는 독특한 능력이 하나 있었는데요 아무리 이상한 모양의 비행기를 만들더라도 그걸 날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었어요. 좀 제 자랑 같지만 그 때부터 밸런스에 대한 감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카컴매거진 : 자동차 디자이너 인터뷰인데 질문이 좀 이상합니다만 가장 좋아하는 자동차 대신에 가장 좋아하는 비행기를 여쭤봐야 하겠는데요?

신용욱 : 스텔스기 F117를 처음 보고 저는 쇼크를 받았습니다. 놀란 정도가 아니라 완전 충격을 받았어요. 제가 생각해오던 비행기의 정의에서 벗어난 디자인이었기 때문이었죠. 어떻게 저런 각진 디자인이 나올 수가 있는지 제 상상을 넘어선 파격의 수준이라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F117에 대한 책을 구해서 읽었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비행기는 기체의 역학에 중점을 두고 진화했지만 그 비행기는 전파를 중심으로 연구한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 사실이 디자이너인 저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즉 기능적인 문제를 해결하다보면 새로운 디자인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지요. 그래서 제 디자인 모토가 Form Follows Function(형태는 기능에 따른다, 기능 우선주의)이고 그래서 제 디자인은 기능적인 문제를 극복하다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208의 디자인 역시 기존의 자동차에서 고정관념처럼 정해진 많은 것들을 넘어서려는 시도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카컴매거진 :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사의 한국인 디자이너라는 타이틀 때문에 디자인을 전공하는 한국의 학생들과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의 롤모델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신용욱 디자이너를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신용욱 : 디자인할 때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너무 생각 없이 무조건 멋있고 화려하게만 디자인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디자인을 할 때 느낌도 중요하지만 디자인에 내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러보면 속이 비어있는 디자인들이 너무 많아요. 제가 디자인 학교에 들어갔을 때 선생님이 산업디자이너는 사람의 삶에 도움을 주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멋진 디자인도 필요는 하지만 저는 디자인이 실용적이지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애플의 제품들도 디자인과 실용성을 모두 만족시켰기에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카컴매거진 : 그렇다면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는 많은 분들께 책을 추천한다면 어떤 책을 권하시겠습니까? 궁금하네요.

신용욱 : 꼭 추천해 드릴만한 책이 있긴 한데 그 책이 지금 나오고 있는 책이 아니라서요 추천해드려도 될지 모르겠네요. 미국에 사는 영국인이 쓴 책인데요 제목은 Driving of Passion: The Psychology of the Car입니다. 참고로 이건 디자인 책이 아닙니다.

카컴매거진 : 디자이너가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권해주는 책이라 당연히 디자인 관련 서적일거라고 예상했는데 역시나 빗나가는군요. Driving of Passion: The Psychology of the Car는 어떤 책인가요?

신용욱 : 이 책을 쓴 사람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심리학자에요. 책 제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운전자의 심리에 대해 자세히 풀어서 쓴 글이죠. 저는 자동차 디자인을 하려면 우선 그 디자인을 사용하게 될 사람들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디자인을 시작하기 이전에 운전자들의 심리를 아는 것이 먼저죠. 그래서 저도 얼마 전에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책을 구해봤는데 이미 절판된 책이라 구하기가 어렵더군요.

카컴매거진 : 이런 조언들이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용욱 : 국내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해외 메이커들의 디자인 스튜디오들은 학벌과 배경보다 결과물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학벌보다 아이디어와 포트폴리오를 더 높게 평가하는거죠. 초등학교만 나왔어도 포트폴리오가 확실하고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채용을 안 할 이유가 없어요. 제가 봤을 때 디자인 쪽은 이런 특징이 가장 좋은 장점인 것 같습니다. 학벌과 배경이 없어도 자기만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위로 올라갈 수 있거든요.  

카컴매거진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카컴매거진이 마지막 차례라 다른 매체 인터뷰에서 물어보지 않았던 것들을 여쭤보고 싶었는데 차별화가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신용욱 : 마지막 인터뷰였는데 나름 말하고 싶었던 부분도 많이 전달한 것 같아 기분 좋고 다른 매체와는 약간 다른 것 같아서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얘길 또 한 느낌은 들지 않네요. 그럼 츄러스 잘 먹고 힘내서 한국에서의 마지막 일정 잘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시간가량 진행된 카컴매거진의 인터뷰는 이렇게 해서 마무리가 되었다. 인터뷰 내용 도중 오프더레코드라고 밝힌 부분과 카컴매거진이 별도의 콘텐츠로 기획하고 싶은 부분의 대화가 살짝 생략된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최대한 가감 없이 신용욱 디자이너와의 대화를 그대로 전하고자 노력해봤다. 푸조는 분명 프랑스 메이커지만 도로에서 208을 보면 한국인 디자이너가 전면에 나서 디자인에 참여한 모델이니 충분히 뿌듯해 해도 될 것 같다. 전 세계 자동차 메이커에 한국인 디자이너들이 더 많아져 자동차 디자인 업계에 한국인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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