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2021년형 뉴 오딧세이

사람은 환경이 바뀌면 생각도 바뀌기 마련이다. 기자도 첫 차를 구입할 때 솔로여서 굳이 큰 차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해 경차를 선택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니 더 큰 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아이를 태우기 위해 카시트를 장착하면 덩치 큰 성인만큼 자리를 차지하게 되니 5인승으로 표기되는 차도 4명밖에 탈 수 없다. 여기에 아이가 한 번 움직이려면 유모차나 기저귀, 각종 유아용품 등 수많은 짐이 따라붙게 되고, 그러면 아무리 짐을 간소화해도 경차로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보통 선택지가 둘로 나뉜다. 4인 가족이라면 SUV로, 그 이상이라면 패밀리밴으로 가는 것이다. 한국 시장은 카니발의 독주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전 세계 시장, 특히 패밀리밴에 대한 수요가 높은 북미 시장에서는 양상이 바뀐다. 이런 구조가 나타나는 것은 국내 법규 상 고속도로 버스전용차선 이용 여부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수입 브랜드에서도 법규에 맞춰 9인승 모델을 출시하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 있지만, 전용 모델을 제작할 만큼 한국 시장의 수요가 그리 높은 편도 아니고, 과거 혼다는 9인승으로의 변경이 자칫 탑승자의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점도 이유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 법규 문제를 제외한다면 오딧세이가 국내 시장에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까?

납작해보이는 모습이지만, 전고는 오히려 카니발보다 높다.

이런 패밀리밴에 외모가 필요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번 신형을 포함한 5세대 오딧세이는 많은 부분을 신경썼음을 느낄 수 있다. 스포티함과 거리가 먼 모델이지만 슬림한 보닛, 살짝 경사진 루프 라인과 윈도우 라인으로 역동성을 부여했다. 헤드라이트와 그릴이 만드는 표정은 언뜻 CR-V와도 닮은 모습이다. 측면에서 보면 차체가 납작해 보여 전고가 낮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경쟁모델인 카니발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20mm 더 높고, 루프랙을 포함해 비교해도 10mm 낮은 정도에 불과하다.

키 196cm인 기자가 누워도 발이 차 밖으로 삐져나오지 않을 만큼 공간은 충분히 넓다. 여기에 2열 좌석은 탈착 가능하고 3열은 바닥면 아래로 숨길 수 있어 차박을 생각한다면 최고의 차량이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실내는 넓다. 카니발의 4열 구성 실내와 달리 단 3열뿐인 만큼 각 좌석마다 공간이 훨씬 여유 있다. 2열과 3열은 벤치 타입의 시트가 장착됐지만, 2열의 경우 가운데 등받이를 내려 독립형(일명 캡틴 체어)으로 구성할 수 있어 상당히 편안하다. 2열을 조절해주면 3열 시트도 성인이 불편하지 않게 탑승할 수 있을 정도다. 2열 시트는 손쉽게 탈착 가능하고, 3열 시트는 사용하지 않을 땐 간단한 조작만으로 바닥면 아래로 숨길 수 있어 별도의 평탄화 작업 없이도 완전히 평평한 공간이 나와 차박용으로 제격이다. 혼다코리아에서 시승행사와 함께 캠핑카 콘셉트로 마련해놓은 전시차에 양해를 구하고 누워봤는데, 키가 196cm임에도 발이 트렁크 밖으로 삐져나오거나 하는 일 없이 편하게 쭉 뻗고 누울 수 있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정도로 넓은 공간을 2열과 3열 단 2줄의 시트만이 차지하고 있으니 그만큼 여유있는 탑승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얼마전 시승했던 어코드나 CR-V와 닮은 모습이다. 고급감을 높인 부분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시보드 주변은 낯익은 모습들이 보인다. 버튼식 변속기나 센터스크린, 3분할 방식의 디지털 계기판 등 전반적인 요소들이 배치 순서나 내용 구성이 조금씩 다를 뿐, CR-V와 어코드에서 본 것들이 조금씩 형태를 바꿔 이식됐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춰 큰 고민 없이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도어 레버나 도어빈, 1열 레그룸 주변에 앰비언트 라이트를 배치해 실내 분위기 향상과 함께 실용적인 효과까지 함께 거뒀다.

뒷좌석용 스크린이 기본 탑재되고, 무선 헤드폰 2개도 구성에 포함된다.

아이가 생기면 ‘조용한 이동’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끼게 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이 때 부모의 최종 선택지는 뽀로로와 같은 아동용 애니메이션 동영상이다. 이것 하나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울음을 그치고 초집중하게 만들었는지는 긴 말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은 아이들이 사용 중 떨어뜨려 망가지는 건 물론이고, 자세로 인해 눈이나 목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제로 스크린을 장착하기도 하지만, 오딧세이에는 10.2인치 천장 모니터와 DVD 플레이어, 외부 입력단자 등으로 구성된 리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기본 탑재된다. 아이가 칭얼거리거나 울면 큰 고민 없이 영상 하나 틀어주는 것으로 울음은 멈추고 차내엔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스크린은 높이와 각도가 카시트에 앉은 아이에게 적합하게 맞춰져 있어 아이의 눈과 척추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 무선 헤드셋 2개가 기본 제공되니 장시간 이동 중 지루해진 어른들을 위한 미니 영화관으로도 적합하다.

주행보조기능은 버튼에 표준화된 아이콘이 적용되어 어려움없이 사용할 수 있다.

가족들이 탑승하는 만큼 모두의 안전을 위한 기능들이 갖춰져있다. 우선 모두의 안전을 위한 혼다 센싱이다. 차선 유지 보조나 추돌 경감 제동, 후측방 경보, 크로스 트래픽 모니터 등사고 방지를 위한 다양한 기능들에 저속 추종 시스템, 오토 하이빔 등이 더해진다. 저속 추종 기능은 정체 구간에서 운전자의 피로를 덜어주고, 오토 하이빔은 어두운 시골길 같은 도로에서 타인에게 폐 끼치지 않고도 안전하게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리어 스크린 앞 카메라를 통해 뒷좌석 상황을 뒤돌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다.

탑승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선 뒷좌석 상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캐빈 와치 기능이 있다. 영아가 탑승하는 경우 잠들었다고 안심하지 말고 상태를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만큼 유용한 기능이다. 적외선 LED가 설치되어 야간에 실내 조명을 켜지 않고도 볼 수 있다. 운전자나 조수석 탑승자의 목소리를 2, 3열의 스피커로 정확하게 들려주는 캐빈 토크 기능은 기능이 개선되어 탑승자들과 보다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

가솔린엔진이라 유지비는 좀 더 들지만, 소음이나 진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확실히 줄여준다.

파워트레인은 V6 3.5L 직분사 I-VTEC 엔진이 10단 자동변속기와 결합해 최고출력 284마력/6,000rpm, 최대토크 36.2kg·m/4,700rpm의 성능을 낸다. 매우 뛰어난 수준은 아니지만, 가족을 태우고 제로백 측정을 할 일은 없으니 과하지 않은, 적당한 수준이다. 추월을 위해 규정속도를 넘기는 정도의 가속은 가뿐하고, 자연흡기 방식답게 페달 밟는 정도에 따라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차분한 움직임을 보여주지만, 힘이 필요할 땐 충분할 만큼 뽑아낼 수 있다. 연비는 9km/L(복합)로 차 크기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편이고, 저속에서는 연비를 향상시키기 위해 작동중인 실린더 일부를 비활성화하는 가변 실린더 제어시스템(VCM)이 작동한다. 신형 오딧세이는 단일 트림 모델로 출시되어 다른 선택지가 없지만, 소음과 진동을 줄이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은 가능하지만 무선 연결은 안되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서스펜션은 앞 맥퍼슨 스트럿, 뒤 트레일링 암으로 구성됐으며, 승차감 위주로 세팅되어 시종일관 차분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주행 보조 기능 중 차선 유지 보조의 경우 개입도가 중간 정도 수준이어서 차가 조향에 너무 개입하지도, 너무 방치하지도 않는 중간 정도 수준이라 이질감 없이 편하게 주행하는데 도움을 준다. 센터 스크린은 내비게이션과 안드로이드 오토 등 커넥티비티 시스템이 갖춰졌는데, 무선 연결을 지원하지 않는건 아쉬운 부분이다. 유선 연결도 괜찮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를 넣었다면 당연히 함께 갖춰야 하지 않을까.

넓은 공간은 여유있게 차박을 즐기는 것도 충분하다.

정리해 보자. 버스 전용 차선? 아직 전국의 모든 고속도로에 버스 전용 차선이 갖춰진 것은 아니다. 낮은 연비? 디젤엔진 특유의 거친 진동과 소음을 생각하면 가솔린엔진이 주행 스트레스를 줄여줄 수 있고, 하이브리드는 추가적으로 탑재되는 것들로 인해 가격이 크게 상승할 뿐 아니라 고속도로 주행에서는 내연기관에 비해 효율이 낮다. 실내 공간? 1열 뒤쪽으로 모두 풀플랫이 가능한 패밀리밴이면 차박도 거뜬하다. 가족들과 편안하게 이동하고 싶다면, 최대한 넓은 공간으로 다양한 즐거움을 경험하고 싶다면, 가족들 모두 즐겁고 안전한 이동을 원한다면 신형 오딧세이가 좋은 선택지다.

식구들이 늘어나면 카니발로 시선을 돌리는게 일반적이지만, 혼다 오딧세이도 스타일과 기능, 편의장비로 무장해 패밀리밴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려나가고자 한다. 물론 가장 큰 경쟁자인 기아 카니발이 얻고 있는 인기가 워낙 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조금만 바꿔 생각해보면 카니발을 뺀 패밀리밴 시장에서는 하나의 경쟁자만 잡으면 된다. 물론 경쟁자인 토요타 시에나가 하이브리드 출시로 한 발 더 앞서나가는 듯했으나, 예상보다 훨씬 높아진 가격에 소비자들이 주춤하는 모습이다. 기회는 잡아야 한다. 혼다가 새롭게 내놓은 2021년형 오딧세이가 국내 패밀리밴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킨다면 패밀리밴 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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