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은 서자의 설움을 겪던 홍길동이 집을 뛰쳐나와 모험을 겪다가 결국 율도국을 세우고 왕이 된다는 이야기다.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자동차 브랜드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브랜드가 있다. 이탈리아의 럭셔리카 브랜드 마세라티다. 페라리 산하로 편입된 이후, 상대적으로 신제품 출시나 엔진 개발에 있어 페라리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된 신차를 내놓지 못하고 설움을 겪어야 했던 마세라티가 드디어 페라리와도 견줄만한 신제품 MC20을 곧 국내에도 선보이며 대전환기를 맞는다.

MC20은 이미 개발단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온 모델이다. 페라리에 사용됐던 엔진이 아닌, 독자적으로 개발한 엔진을 비롯해 미드십 방식의 차체, 각종 시상식을 휩쓸만큼 빼어난 디자인 등으로 마세라티라는 브랜드의 정체성과 전통을 재정립하는 모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브랜드의 로고인 삼지창의 상장을 이어받은 신형 ‘네튜노(Nettuno)’ 엔진은 V6 3.0L 트윈터보 방식에 8단 DCT를 더해 최고출력 630마력/7600rpm, 최대토크 74.4kg‧m/3000~6500rpm의 강력한 성능을 낸다. 제로백(0-100km/h)은 2.9초, 제로이백(0-200km/h)은 8.8초만에 주파할 정도이며, 최고시속은 325km/h에 달한다.

강력한 성능의 기반은 F1에 사용되는 첨단 기술에 있다. 기존 연소실과 플러그 사이에 위치한 프리챔버, 프리챔버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경우 원활한 연소를 보장하는 사이드 점화 플러그, 낮은 rpm에서 소음과 배기가스를 줄이며 연비를 높이는 간접 방식과 직접 방식을 혼합한 듀얼 연료 분사 시스템 등의 기술이 적용된 엔진은 특허까지 출원했을 정도로 마세라티 기술력의 정수를 보여준다. 엔진은 100% 이탈리아 모데나 본사에서 만들어지며, 현재 생산되는 V6 엔진 중 가장 강력한 성능을 보여준다.

강력한 성능을 더욱 짜릿하게 즐길 수 있도록 고품질의 카본 소재를 사용한 섀시를 적용, 차량무게가 1500kg에 불과해 동급 최고수준인 2.33kg/ps의 마력당 무게비를 달성했다. 또한 달라라(Dallara)사의 풍동 실험실에서 2000시간 이상의 테스트와 1000회 이상의 유체 역학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0.38의 우수한 공기저항계수를 갖췄다. 이러한 공기역학 설계가 적용됐지만 디자인을 해치지 않기 위한 개발진들의 노력이 더해졌다. 차체 라인은 심미적 우선순위를 디자인에 우선적으로 고려해 매끄럽고 우아한 차체 디자인을 유지했으며, 보닛의 통풍구와 측면의 흡기구는 특정 각도에선 거의 보이지 않도록 디자인했다.

디자인에서 자유로운 차량 하부는 공기역학을 최대한 반영한 설계가 이뤄졌다. 전면 통풍구는 라디에이터와 차량 바닥면, 상부 등으로 공기흐름이 효율적으로 분배되도록 최적화해 열 관리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했다. 또한 하부를 커버로 덮어 공기역학 효율을 극대화했으며, 앞쪽으로 정교한 와류발생 시스템을 더하는 등 복잡한 설계 분석이 더해졌다. 이밖에도 스포일러, 디퓨저, 통풍구의 위치, 공기흐름을 제어하는 부품, 공기역학에 최적화된 구조 등으로 325km/h의 최고 속도에서도 안정적인 주행을 보여주는 탁월한 접지력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고성능 엔진과 차체에는 이에 걸맞은 섀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레이스용 스포츠카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달라라사와의 제휴를 바탕으로 제작된 섀시는 모노코크 섀시지만, 차량의 특성에 따라 소재가 조금씩 바뀐다. MC20은 기본형인 쿠페 외에도 컨버터블, 전기차 등 총 3개 버전으로 생산될 계획인 만큼 이에 맞춰 섀시 역시 각 차종별로 특성을 달리한 섀시를 적용했다. 예를 들어 쿠페는 가벼운 무게와 차량의 퍼포먼스에 집중했고, 컨버터블은 루프가 없는 만큼 보다 향상된 비틀림 강성에 초점을 맞췄으며, 전기차 버전은 전반적인 내구성과 함께 배터리가 탑재되는 부분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식으로 차별화했다. 이를 위해 카본 소재의 유형, 양, 배치 등을 달리해 3개 버전에 모두 대응하도록 했다.

이러한 개발은 첨단 시스템에 의해 이뤄진다. MC20 개발 과정의 90% 이상은 버추얼 차량 동역학 개발(Virtual Vehicle Dynamic Development) 시스템을 사용해 진행됐다. 여기에 복잡한 수학적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마세라티의 자체 개발 시뮬레이터를 더해 예측할 수 있는 모든 매개 변수를 입력, 설계에 반영할 수 있다. 이러한 첨단 시스템을 통해 개발시간을 단축하는 동시에 최적의 기술 솔루션을 빠르고 낮은 비용으로 결정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개발 과정을 거친 후 최종 조율은 실제 레이스 트랙과 모데나 인근의 아펜니네 산악도로에 위치한 마세라티 주행 시험장에서 이뤄졌다.

공개 이전에도 MC20이 주목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위장막으로 채 가리지 못한 유려한 디자인 때문일 것이다. 이탈리아 토리노의 센트로 스틸레 마세라티(Centro Stile Maserati)에사 디자인한 MC20에는 특유의 우아함과 레이싱 DNA와 개성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전면부에서 디자인이 시작되는 다른 차들과 달리, 마세라티의 디자인은 항상 측면에서 디자인이 시작되고 이는 MC20도 마찬가지다. 여러 세대를 거쳐 이어지며 완성된 특유의 디자인이 이번 MC20에도 적용됐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역시 ‘스포티함’이다. 그동안 마세라티에서 선보여온 모델 중 가장 빠른 모델인 MC20인 만큼 이러한 특성을 담아낸 디자인이야말로 MC20의 특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요소일 것이다.

차량 상단은 강인함과 조화로움을 보여주는 디자인으로 심미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 반면, 카본 소재를 드러낸 하단은 공기역학 플로어를 비롯해 날카로운 모서리, 가장자리의 공격적인 디자인 등으로 기능성을 우선시했다. 이렇게 성격이 다른 두 요소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디자인으로 전체가 마무리됐으며, 프런트 그릴은 둘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담당한다.

실내는 우아함과 스포티함을 조화시킨 모습이 인상적이다. 인테리어 전반을 무광 카본 소재로 마무리해 마치 맞춤 제작한 소재의 느낌을 살렸다. 10.25인치 스크린 2개는 운전석과 센터페시아에 위치해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며, 센터 터널에는 주행모드 셀렉터와 2개의 기어 버튼, 윈도우 컨트롤러, 인포테인먼트 볼륨 컨트롤,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만을 배치하고 불필요한 장식을 완전히 배제하며 최대한 심플하게 구성했다.

스티어링 휠은 마세라티 레이싱 테스트 드라이버이자 전 MC12 월드 챔피언이기도 한 안드레아 베르톨리니의 의견을 개발과 설계에 반영했다. 인체공학과 스포티함을 높이기 위해 림 두께를 높였고, 스포크 주변에는 엔진 시동 및 런치 컨트롤 등 최소한의 필수 버튼과 스위치만을 배열했는데, 스티어링 휠에 시동버튼을 배치한 마세라티 차량은 MC20이 처음이다. 커버는 카본 소재를 적용하고 검은색 가죽으로 감쌌는데, 더욱 레이시한 느낌을 원한다면 알칸타라 소재를 선택할 수도 있다.

주행 모드 버튼으로는 총 5개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기본인 GT를 비롯해 스포츠, 웨트(WET)는 셀렉터를 0.5초간 짧게 돌려 선택할 수 있으며, 코르사 모드의 경우 2초, 모든 제어 기능이 비활성화되는 ESC OFF는 5초동안 셀렉터를 누르고 있어야 해 오동작으로 인한 주행모드 변경으로 차량 특성이 크게 변하는 것을 막는다.

차량 운행에 필수인 운영체제로는 마세라티 인텔리전트 어시스트(Maserati Intelligent Assist, 이하 MIA)를 탑재했다.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한 이 시스템은 운전자 기호에 따른 개인화를 통해 새롭고 혁신적이며 높은 수준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다. 센터 스크린의 경우 높은 해상도의 터치스크린 방식이며, 운전 중 직사광선에서도 우수한 가시성을 제공하기 위해 반사방지 코팅을 더했다.

MC20의 생산라인은 마세라티 차량이 80년 간 제작된 모데나의 비알레 치로 메노티에 마련됐다. 이곳은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가 생산되기도 했던 곳으로, 새로운 도장공장이 함께 완성되어 제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MC20은 현재 사전예약을 받고 있으며, 고객 인도는 11월 경에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전동화를 바라보는 시점에 미드십 V6 스포츠카를 선보인다는 게 좀 늦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MC20은 단순히 늦은 신제품 출시 정도로 봐선 안된다. 브랜드의 전통은 그대로 이어가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마세라티의 제품들을 선보이는 전환점의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마세라티의 첫 번째 모델 MC20을 국내 도로에서 만나게 되는 그 날이 기다려진다.

<저작권자 © 라이드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