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손님의 방문은 단순히 안부를 묻기 위한 것일수도 있지만 대체로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10월 11일 한국을 방문한 르노 그룹 루카 데 메오 CEO 및 회장(이하 루카 회장)도 지나가는 길에 인사차 잠깐 들른 것이라기엔 그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단순히 한국 사업장을 둘러보기 위한 방문일까? 아니면 무언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모든 일은 일어난 이유가 있을 것이고, 3개의 중요한 사건들을 통해 루카 회장과 르노 그룹이 한국 시장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르놀루션 전략의 발표

지난해 초, 그룹 차원의 새로운 경영 전략인 ‘르놀루션(Renaulution, 르노+에볼루션)’을 발표했다. 전략의 핵심 내용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익성 중심으로 경영 전략을 전환하는 것으로, 기존에는 점유율과 판매량에 초점을 맞췄다면, 르놀루션을 통해 수익성, 현금 창출, 투자 효과 등 가치 창출에 보다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소생’과 ‘혁신’, ‘변혁’ 3단계의 과정을 거치는데, 우선 2023년까지 수익과 현급 창출 회복에 집중하는 ‘소생’ 단계를 거치고, 2025년까지 브랜드 수익성을 회복할 수 있는 신규 라인업을 구축하는 ‘혁신’의 과정을 갖는다. 그리고 2025년부터는 장기적으로 비즈니스 모델의 중심을 모빌리티, 테크, 에너지로 옮겨 새로운 모빌리티 산업 환경에서 르노 그룹이 리더를 맡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르놀루션의 실현을 위해 엔지니어링과 제조 부문의 효율성 추구로 고정비 절감, 변동비 개선 실현, 그룹 보유 자산 및 유럽 대표 전기차 회사 이미지를 활용, 제품, 비즈니스, 기술력 향상을 위한 얼라이언스 정립, 모빌리티, 친환경 에너지 중심의 데이터 연계 서비스 가속, 브랜드와 고객, 시장을 중심으로 그룹 조직을 개편, ‘르노’, ‘다치아-라다’, 알핀, 모빌라이즈로 정립해 수익성 추구 4개 방안을 제시했다.

 

루카 회장은 “르놀루션은 단순한 전환점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의 완전한 변화를 의미한다”며 “2030년까지 매출의 최소 20%를 서비스, 데이터, 에너지 트레이딩에서 만들어내고, 기술을 활용한 자동차 회사에서 자동차 적용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로 변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닛산과 공동 성명 발표

한국 방문 전 일본을 찾은 루카 회장, 스즈카 서킷에서 열린 포뮬러 1 경기를 참관하기도 했지만, 방문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한국행 전날인 10일, 르노와 닛산은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협력과 얼라이언스의 미래를 강화하기 위한 지속적 노력의 일환으로 여러 계획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논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논의의 내용으로는 우선 시장, 제품 및 기술 전반에 걸친 전략적 공통 계획에 대한 합의, 르노의 르놀루션 전략 지원 및 닛산 엠비션 2030의 전략적 단계 중 하나가 될 새로운 르노 EV 법인에 대한 닛산의 투자 고려, 그리고 지속가능한 얼라이언스 운영 및 관리를 보장하기 위한 구조적 개선 등이다.

 

여기에서 함께 염두에 둬야 하는 부분으로 르노는 새로운 전기차 사업 투자를 위해 닛신과 미쓰비시에 협조를 요청했다. 그동안은 르노가 다른 얼라이언스에 영향력을 미치는 관계였지만, 이번 협조, 즉 투자 요청으로 관계에 변화가 생길지도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다. 특히 닛산은 기존에 르노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의결권은 없는 상태였는데, 이번 투자 관계 조율을 통해 변화가 생긴다면 얼라이언스 내 발언권이 향상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투자는 보유한 현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다행이 닛산은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성장세로 다시 돌아서며 투자의 여력이 있음을 입증했다. 다만 닛산이 지난해 향후 5년 간 2조 엔을 투자해 2030년까지 50% 전동화에 도달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던 만큼 자체 계획에 영향이 생길수도 있고, 이러한 부분을 르노와 협의해 플랫폼 공유 등의 방식으로 진행될 수도 있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해보인다.

 

 

지리자동차, 르노 내연기관차 사업 지분 인수

중국 지리자동차는 몇달 전부터 르노의 지분 인수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볼보와 폴스타 등을 소유하고 있는 만큼 이번 인수가 놀라운 것은 아니지만, 재밌는 점은 급성장하고 있는 전기차 분야가 아닌 내연기관 분야의 지분을 인수하겠다는 것. 이미 르노에서는 회사를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로 사업 부문을 분할하는 계획을 밝힌 바 있어 인수 역시 미래 사업으로 불리는 전기차 쪽이 아닐까 예측했지만, 놀랍게도 내연기관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10일, 지리는 르노코리아자동차의 지분 34.02%를 보유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물론 최대주주는 여전히 르노 그룹이다. 갑작스런 협력 관계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이미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관련해 협력할 것을 이미 올해 초 발표한 바 있다. 지리에서는 볼보의 CMA 플랫폼과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르노는 디자인을 맡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으로, 이렇게 생산된 모델은 국내에서의 연구, 개발 및 생산을 거쳐 2024년부터 선보이고 글로벌 시장 진출까지도 함께 노린다는 계획이다.

 

 

한국, 중대형 차량의 핵심 기지로

루카 회장은 11일 저녁 진행된 미디어 간담회 자리에서 신차 계획에 대해 언급하며, 2024년 출시 예정인 D 세그먼트 하이브리드 차량에 대한 소개와 함께 한국에 중‧대형급 차량의 핵심 수출 기지 구축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히고, 이를 위해 르노코리아자동차의 수행 능력과 한국에 적절한 환경이 확보되면 6년간 수억 유로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25년 공개 예정인 쿠페형 SUV의 실루엣

이와 함께 2025년 출시를 앞둔 하이브리드 신차에 대한 티저 이미지도 공개됐다. 새로운 플랫폼 기반의 쿠페형 SUV로, 기존에 선보였던 쿠페형 SUV인 XM3보다 루프 라인이 트렁크 리드 끝까지 이어지는 형태로 구성되어 SUV의 느낌을 훨씬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질의응답 시간에서 루카 회장은 한국 내 배터리 기업 3사와 만남을 가졌음을 밝히며, 이들을 통해 자사 제품에 탑재할 배터리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생산하는 브랜드도 있는 반면, 효율성을 위해 외부 업체의 배터리 도입을 유지해나가겠다는 의미인데, 한국 시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기는 하나, 과거 일부 배터리 업체들의 리콜 사태 등으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를 보완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르노 그룹 루카 데 메오 회장(왼쪽)과 르노코리아자동차 스테판 드블레즈 대표

3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부산 공장의 가동률이 낮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30만 대는 이론적인 수치”라며 “너무 물량에만 치중하기 보다는 수익성을 높이는 쪽으로 집중해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물량을 늘려가는 방식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덧붙여 “부산에서의 생산 물량 중 상당수는 수출이 이뤄지는데, 부산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찾아 실적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루카 회장이 발표한 내용 대부분은 기존에 발표된 내용들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들이었고, 그나마 2025년 출시를 예고한 쿠페형 SUV 정도가 새로운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번 루카 회장의 방문을 폄하할 수는 없는 것은 한국 시장의 미래에 대해 한국에서 다시 한 번 발표함으로써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이러한 진정성에 맞춰 르노코리아자동차 역시 발걸음의 속도를 맞춰주길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조금 더 파격적인 행보가 이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한국 시장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보여주고자 방문한 루카 회장에게 감사를 전하며, 앞으로도 한국 시장과 르노코리아자동차에 많은 기대와 사랑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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