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선 자동차를 부숴야 한다.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싶겠지만, 원하는 디자인에 원하는 성능과 기능을 갖춘 제품을 잘 만들어냈어도 탑승자나 보행자가 사고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면 제품으로써의 가치가 사라진다. 따라서 자동차 회사들은 안전을 위한 다양한 장치와 기능을 마련하고 이것들이 잘 작동하는지를 시험해본다. 실제와 같은 상황, 바로 충돌안전평가를 통해서 말이다.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지난 1월 12일 충돌안전평가 미디어데이를 개최해 직접 현장을 방문했다.

2015년 진행했던 쏘나타 내수형-수출형 간 차 대 차 충돌 테스트 현장(현대차 유튜브 캡처)

사실 이번 행사가 처음부터 놀라웠던 것은 아니었다. 과거 현대자동차의 쏘나타가 내수용과 수출용을 차별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자 미디어와 동호회 등 다양한 사람들을 초청해 사람들의 눈앞에서 참석자들이 직접 고른 2대의 차량을 정면충돌시키는 파격적인 테스트를 보여준 바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행사도 그런 연장선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충돌 실험의 대상이 되는 모델인데, 현대차의 주력 전기차 중 하나인 아이오닉 5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하는 것이다. 최근 전기차 사고로 인한 화재나 안전성 등 여러 문제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상황에서 충돌 실험 현장을 공개해 이러한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물론 의도는 이해하지만, 이러한 실험은 변수도 있을 수 있고, 문제점들이 현장에서 드러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이런 행사를 기획한 현대차그룹의 자신감이 궁금해졌다.

오늘의 행사 장소는 현대차그룹 연구개발의 거점인 남양 기술연구소 내 안전시험동에서 이뤄진다. 2005년 처음 완공된 이곳은 1만 2000평의 거대한 규모로, 오늘 충돌안전평가가 이뤄지는 시험장만도 900여 평에 달한다고. 흔히 충돌 테스트 영상에서 보듯 자동차가 고정물에 부딪히는 시험은 물론이고 고정물을 이동시킨 후 차 대 차 충돌 등 다양한 조건에서의 실험도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연간 650회의 시험이 이뤄지고 있으니, 최소 하루에 한두 대 이상의 자동차가 시험을 위해 희생(?)당하는 곳이다. 자동차는 최대 5톤까지 견인할 수 있는 케이블에 묶여 충돌이 이뤄지며, 충돌 시 최고속도는 100km/h까지 가능하다. 오늘의 테스트는 고정물에 64km/h의 속도로 40% 옵셋(부분) 충돌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연구시험동에 들어서며 화들짝 놀랐다. 복도를 지나 넓은 공간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수많은 사람들(?)은 바로 충돌 시험의 핵심 장비인 더미들로, 담당자들의 센스 넘치는 환영인사인 셈. 매번 영상을 보며 마네킹과 비슷한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이 더미가 의외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뿐 아니라 몸값도 엄청나다. 더미 내부에는 수많은 센서들이 배치되어 사고 시 어떤 부위에 얼마만큼의 충격이 가해지는지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각국의 인증 규정이나 연령, 성별 등 다양한 조건에 따라 충격량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하도록 현대차그룹에선 27종 170여 세트의 더미를 마련해 운용하고 있는데, 최고가인 월드 SID 더미의 경우 세트당 가격이 약 15억 원에 달한다고.

3개 모델이 더 추가되어 총 26개 차종이 TSP+/TSP 등급에 올랐다

이런 노력의 결과 현대차그룹의 충돌 안전 수준은 전 세계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수준이다. 2022년 미국보험개발원(IIHS) 평가에서 탑 세이프티 픽 플러스(TSP+)와 탑 세이프티 픽(TSP)에 선정된 차종은 26개로, 1위인 폭스바겐 그룹의 27개와 단 1개 차이인데, 여기에서 동일차종 다른 연식의 모델이 중복집계되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차그룹 25개, 폭스바겐 20개로 순위가 바뀌게 된다. 1위의 자리에 오른 건 단지 올해만이 아닌, 2018년부터 5년째 유지하고 있는 결과라는 점에서 최근 현대차그룹이 전 세계에서 이름을 알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앞서 설명한대로 오늘의 메인 이벤트인 아이오닉 5의 충돌 시험이 시작됐다. 1회 실험에 차량 한 대가 박살나는 만큼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닌, 실제 실험을 위한 준비들이 갖춰졌다. 더미들은 운전석과 뒷좌석에 앉혀 다양한 센서들을 트렁크 컴퓨터에 연결해놓은 상태이고, 충돌 순간을 기록하는 고속 카메라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찰나의 순간을 포착할 준비를 마쳤다. 잠시 후 시험 시작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빠르게 달려온 아이오닉 5가 실험장 중앙의 거대한 구조물에 부딪히는 데까지는 채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실험장 전체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전면부는 완전히 일그러졌고 부서진 부품의 파편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걱정했던 배터리 화재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고, 단지 에어백 전개로 인한 화약 연기가 발생하는 정도만이 있었다. 사이렌이 울리는 순간부터 충돌에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0초 정도로, 이 장면을 보기 위해 걸린 시간에 비하면 너무나 순식간에 끝나버려 조금은 허탈한 느낌도 들 정도였다.

하지만 충돌 순간만큼이나 충돌 후의 상태 역시 중요하다. 담당자들의 데이터 수집 및 간단한 파편 정리가 끝나고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최근 테슬라에서 이슈가 됐던 충돌 후 문이 열리지 않는 문제의 경우 특히 부분 충돌이 이뤄진 차량 왼쪽 도어 쪽은 손상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손으로 문제없이 열렸다. 국내는 충돌 시 도어 잠금이 해제되는 기술이 의무적으로 적용돼야 하지만 미국은 그런 법규가 없다는 차이가 있다.

충돌이 이뤄진 전면은 멀쩡해 보이는 부품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만큼 상당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특히 충격이 집중된 차량 왼쪽은 바퀴까지 뒤로 밀려나 실제 사용하던 차였다면 폐차가 답일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진 상태였다. 파편들은 대강 정리가 됐으나 흘러나오는 냉각수들이 바닥에 고여 실험을 위해 준비한 차가 아닌, 실제 사용조건에서 사고가 발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실내에는 스티어링 휠 중앙을 비롯해 창문 등 곳곳의 에어백이 전개되어 탑승한 더미들을 보호해낸 모습이 보였는데, 강한 전면부 충격에도 스티어링 휠이나 대시보드 등이 밀려들어와 운전자의 무릎을 충격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에어백도 정상 작동됐으며, 실내 구조물이 밀려들어와 탑승한 더미에 충격을 준 흔적도 없었다.

실험 결과에 대해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더미가 앉은 쪽의 에어백들 모두 정상 작동했으며, 안전벨트의 프리텐서너와 로드리미터도 정상 작동했고, 시트도 이상 현상 없었으며, 문 열림에도 문제가 없었다. 충돌 속도나 타격 위치는 오차범위 및 규정 범위 이내였으며, 고전압 절연저항 측정 결과도 정상, 고전압 배터리 파손으로 인한 전해액 누유나 화재, 연기 등도 없었다”며 “차체 변형량 GOOD 등급, 전후석 더미 상해 수준 전 영역 GOOD 등급으로 옵셋 평가 전반의 결과는 최우수 등급인 ‘GOOD’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후 진행된 질의응답에서 최근 언론에서 보도된 전기차 화재와 관련한 질문들이 많았는데,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측은 “현재 실시하는 실험들이 실사고의 99%는 방지할 수 있으나 나머지도 보완이 필요하다”며 “배터리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적용중이고, 차체 측면에서도 배터리 화재를 막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정차 중 화재에 대해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불이 밖으로 퍼지지 않는 기술을 개발해 안전성을 확보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기술 개발 중이다. 또한 진단 측면에서 화재 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기술, 열 폭주 방지 기술, 차량 부문과 협업 해 충돌 시 화재를 방지하는 기술 등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범퍼 하단에 설치되어 보행자의 부상을 막는 로워 스티프너의 경우 국내는 법규상 설치되어 있으나 북미 사양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테슬라 제품에서 문제로 지적된 충돌 후 문이 열리지 않는 점에 대해선 “국내는 충돌 시 신호를 받아 도어 캐치의 잠금이 해제되어 열 수 있게 하는 기능이 기본 적용되어 있다. 그리고 도어 핸들이 튀어나오지 않아도 구조적으로 열 수 있게 설계됐다”고 밝혔다. 이러한 충돌 시험 공개의 발단이 된 내수와 수출 간 차별에 대해서는 “아직도 인터넷 등에선 차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있는데, 그렇게 사양에 차이를 두기엔 차량 관리 비용 면에서 손해가 크기 때문에 일괄 대응하고 있다. 최근에는 오히려 국내 사양에 부품이 더 장착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로워 스티프너로, 북미 사양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하나의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사라지는 자동차는 수십, 수백 대의 자동차들, 이러한 노력이 있기에 탑승자는 물론이고 보행자들까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도로 환경이 조성되는 것임을 이번 충돌안전평가 현장을 보며 새삼 깨달았다. 여기에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실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번 평가를 자신 있게 보여준 현대차그룹의 자신감 역시 이해하게 됐다. 과거에는 부족한 부분도,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었겠지만, 그런 점들을 모두 극복하고 이제는 손꼽히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올라선 현대차그룹 산하의 브랜드들이 전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는 날을 이젠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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