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하면 스포츠카 브랜드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포르쉐가 어떤 행사를 진행한다고 연락이 오면 ‘기대 반 긴장 반’의 마음을 갖게 된다. 기대야 당연히 포르쉐의 여러 차량들, 대표모델인 911이나 718 같은 건 물론이고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과 같은 모델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지만, 반대로 긴장은 ‘스포츠카’로 불릴 수 있는 높은 성능에서 오는 것이다. 하지만 포르쉐가 준비한 이번 행사의 이름은 좀 의아했다. 바로 ‘포르쉐 겟어웨이 미디어 드라이브’로, ‘겟어웨이(getaway)’라는 단어에 내가 몰랐던 ‘스포츠’나 ‘고성능’과 관련된 의미가 있었던가 헷갈렸으니 말이다. 행사 장소는 국내 대표 휴양지인 제주도, 과연 포르쉐를 타고 어떤 휴가를 보내게 될지, 정말 휴가가 맞기는 한지 여러 궁금한 마음을 안고 제주도로 향했다.

물론 이번 행사가 밑도 끝도 없이 준비된 것은 아니다. 부제로 ‘포르쉐 스포츠카 75주년’이 붙어 있으니 말이다. 포르쉐 브랜드가 설립된 것은 1931년이지만, 포르쉐의 첫 번째 자동차 356이 생산된 1948년, 그로부터 벌써 75년이나 된 만큼 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의 일환인 셈이다. 이번 75주년의 캐치프레이즈는 ‘드리븐 바이 드림(Driven by Dreams)’, 즉 ‘꿈에 이끌리다’는 의미로, 창립자인 페리 포르쉐가 꿈을 356이라는 현실로 만들어낸 것처럼 포르쉐라는 브랜드가 꿈을 실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행사장 좌우로 포르쉐와 함께 꿈을 이룬 사람들의 사진들을 전시해놓았다. 페리 포르쉐는 물론이고 현재 포르쉐 AG 이사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올리버 블루메, 포르쉐 디자인을 만들어낸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 919 하이브리드로 르망에서 우승을 차지한 티모 베른하르트 등 포르쉐 내부는 물론이고 사회, 기술,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포르쉐와 함께 꿈을 실현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단지 차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공헌을 통해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브랜드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국내에서도 포르쉐코리아가 다양한 분야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한다.

이날 행사에 함께한 포르쉐 코리아 홀가 게어만 대표는 포르쉐 스포츠카 75주년을 축하하며 “페리 포르쉐는 75년 전 훌륭한 브랜드를 만들었는데, 본인이 꿈꾸던 차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만들었고, 지금까지 그 정신이 이어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포르쉐를 타고 제주도를 돌아보는 꿈이 있었는데, 몇 년 전 그 꿈을 이뤘다. 이번 행사로 여러분도 여러분의 꿈을 이룰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튿날,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됐다. 이 자리에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포르쉐 전 차종이 총출동했는데, 기자가 속한 조는 가장 먼저 친환경을 표방하는 제주도와 잘 어울리는 타이칸 시리즈 중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를 배정받았다. 이전 타이칸 출시 직후 강원도에서 시승을 했을 때 받았던 충격이 아직까지도 뇌리에 생생한데, 이번에는 성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적재공간을 확대해 실용성을 늘린 투리스모 버전을 타게 된 것이다. 시동을 걸고 인스트럭터의 안내에 따라 제주도 투어에 나섰다.

시승이라고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이번 행사의 테마가 ‘휴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 다른 차량들도 다니는 일반도로에서 성능을 모두 테스트하려다간 자칫 사고날 수 있고, 휴가인 만큼 느긋하게 달리면서 일상 주행에서 어떤지를 느껴보는 것이 또다른 시승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고성능으로 잘 알려진 포르쉐 브랜드의 제품이 일상에 적합할까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일단 첫 번째 차량인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는 데일리로 타기에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정숙성으로, 주행 중 인공 사운드가 들리긴 하지만 소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차분하게 일상에서 주행하기 좋다는 것.

그리고 전기차인 만큼 유류비를 신경쓰지 않고 맘편히 다닐 수 있는 경제성도 좋다. 예전 제주도에 관광차 방문해 전기차를 빌려 3일정도 사용해봤는데, 전기차 도입 초기에 비해 충전 인프라가 크게 확충된 덕분에 골치 썩는 일 없이 맘편히, 즐겁게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 행사에선 충전이 필요할 만큼 길게 달리진 않았지만 필요했다고 하더라도 이날 투어 중 방문했던 곳들 대부분에서 충전기를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주변 곳곳에도 차량 충전기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어 이 정도면 충전 걱정할 일이 없어보였다.

주행모드를 노멀 정도로 세팅하면 스포츠카의 이미지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주행으로 시내에서도 부담없이 운전할 수 있다. 물론 쭉 뻗은 도로에서는 기대하는 만큼의 강력한 파워도 경험할 수 있다. 기본 360kW(490마력), 오버부스트 시 420kW(517마력)의 강력한 파워는 제로백(0-100km/h) 4.1초의 놀랄만한 실력을 보여준다. 대부분 와인딩 위주여서 딱 한 번 나타난 편도 2차로 직선 구간에서 경험해본 타이칸 4S 크로스 투리스모의 파워는 시트에 몸이 푹 눌릴 만큼 강력해 기자와 동승자 모두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러면서도 저속이든 고속이든 와인딩에서도 전기차 특유의 무거운 중량이 느껴지지 않는 움직임에서 ‘역시 많이 만들어본 브랜드는 다르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외관에서야 날렵하게 잘 빠진 디자인의 타이칸이 낫지만, 여기에 실용성까지 고려한다면 크로스 투리스모가 훨씬 낫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첫 번째 경유지를 지나 점심식사 장소에 도착했다. 출발때부터 흐리던 하늘에선 적잖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다음 차량으로 받은 것이 911 카레라라니, 조금은 슬퍼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오늘은 스포티한 주행이 아닌,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며 달리는 ‘투어’가 아니었던가. 느긋한 마음으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자 타이칸에선 들을 수 없었던 배기음이 울려퍼진다. 다시 한 번 탄성과 함께 앞 차를 따라 제주도의 절경 속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타이칸이 뛰어난 성능과 실력의 전기 스포츠카임은 부정하지 않겠지만, 내연기관 마니아인 기자 입장에선 분명 아쉬움이 있다. 바꿔 탄 911은 분명 그런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는 모델임은 틀림 없지만, 아쉽게도 내연기관의 종말이 머지 않은 상황. 다행인 점은 전동화를 선도하고 있는 EU에서 내연기관 판매 종료의 시점을 앞당기면서 합성연료인 e-퓨얼을 사용하는 내연기관은 포함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직까지 내연기관에는 기회가 남았다는 이야기. 이 분야에 포르쉐가 적극 투자를 통해 대량 생산을 위한 개발에 나서고 있는 만큼 스포츠카의 아이콘 911을 좀 더 오래 만날 수도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주행모드를 스포츠에서 스포츠 플러스로 바꾸자 배기음부터가 달라진다. 진정한 911의 매력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가속페달에 힘을 가하면 911이 하나의 악기가 된다. 한라산의 와인딩 코스에 맞춰 가속과 감속이 이어짐에 따라 배기음의 높낮이가 바뀌는 것이 마치 음악을 듣는 듯하다. 스포티한 주행이었다면 록 음악이 됐겠지만, 오늘은 그보다 느리기도 하고, 마침 날씨도 자욱한 안개에 비까지 흩뿌리는 상황이니 느긋한 재즈는 어떨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앞 차의 후미등을 따라 좌로 우로 부드럽게 스티어링 휠을 돌려주니 만만치 않은 한라산 와인딩 코스가 가벼운 마음으로 걷는 산책로가 된 느낌이다.

스포츠 플러스에선 서스펜션이 상당히 하드해 일반도로에서의 승차감이 좋다고 말하긴 어려워지지만, 스포츠나 노멀로 낮추면 ‘데일리 스포츠카’라는 별명에 걸맞은 승차감을 보여준다. 물론 2+2의 구성인지라 키가 큰 사람은 뒷좌석에 사람을 태우긴 어렵겠지만, 뭐 어떤가. 정 불만이라면 파나메라를 선택하면 되는데. 그리고 911을 선택한 사람이 뒷좌석에 연연할 일도 없지 않을까. 있으면 있는 대로 짐을 놔두는 공간으로 쓰면 되니 말이다.

모든 코스를 돌고 돌아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으로 포르쉐와의 짧은 제주도 투어가 끝났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꿨을 법한 스포츠카를 타고 제주도를 둘러보는 것, 그것을 포르쉐와 함께 즐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한 포르쉐 코리아 임직원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물론 갔다 온 상황에서 이렇게 기사라는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경험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꿈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느낀 건 포르쉐는 꼭 그렇게 멀기만한 브랜드는 아니라는 점이고, 특히 평범한 일상의 주행부터 서킷 주행이라는 극한 상황까지 두루 소화할 수 있는 제품들을 만날 수 있는 브랜드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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