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 진행중인 현 상황에서 내연기관의 문제점과 전기차의 문제점을 동시에,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하이브리드 자동차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분명 내연기관보다 낮은 탄소 배출량으로 보다 친환경적이고, 전기차의 충전 문제에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적잖은 소비자들이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택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브랜드라면 토요타인데, 지금은 라인업에서 하이브리드가 아닌 모델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제품들의 하이브리드화가 진행 중인 가운데, 자사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모델 '크라운'에도 하이브리드가 적용되어 국내에 출시, 시승의 기회가 마련됐다. 하이브리드로 변신한 크라운은 어떤 모습일지 국내 출시된 두 라인업 모두를 타보며 살펴보았다.

일단 이번 신형 크라운은 16세대를 맞이했다. 1955년 생산되어 지금까지 이어지며 15번의 세대교체가 있었다는 뜻인데, 한창때는 세대마다 수명주기를 3~5년 정도로 짧게 가져갔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이번이 처음 선보인 것으로 다들 생각하겠지만, 먼 옛날 '신진자동차'에서 제휴를 맺고 부품을 들여와 '신진 크라운'으로 출시된 적도 있으니 어찌보면 구면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일본에 여행을 가봤다면 거리의 수많은 택시들을 본 적이 있을텐데, 오리지널 크라운과는 조금 다른, 크라운 컴포트 모델인데 이걸로 접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택시로 운행되던 크라운과 이번 신형 크라운을 함께 놓고 본다면 '같은 차가 맞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차이가 크다. 그럴 것이 택시 시장 등을 염두에 두고 출시된 크라운 컴포트의 경우 10세대 모델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니 벌써 6세대나 차이가 벌어졌기 때문. 재밌는 건 일반 고객 대상의 크라운은 수명주기가 꽤나 짧았지만, 크라운 컴포트의 경우 1995년 처음 출시되어 2018년까지 생산되며 장수 모델로 이름을 남겼다. 어쨌든, 이번 신형이 기존 크라운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세단이 아닌 크로스오버이기 때문이다. 다만 세단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고 올 하반기 선보일 예정으로, 보다 넓은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크로스오버를 먼저 출시하고 세단이 뒤를 잇는 것으로 보인다.

크로스오버라고 하지만 외관은 패스트백 느낌이 더 강하다. 곡선미를 살린 전반적인 디자인에 창문을 차체에 비해 꽤 슬림하게 구성해 시각적인 효과를 더했다. 차량의 크기는 전장 4,980mm, 전폭 1,840mm, 전고 1,540mm에 휠베이스 2,850mm로, 세단인 캠리에 비해 전고가 95mm 높지만 이런 방법으로 크기가 비슷해 보이도록 한 것이다. 전면부는 날카로운 눈매의 쿼드 빔 헤드램프를 그릴 상단의 주간주행등(DRL)으로 이어 차체가 넓어보이도록 하는 최근의 트렌드에 발맞췄다. 여기에 크라운 전용 로고를 보닛 중앙에 더해 플래그십다운 면모를 강조했다. 측면에선 범퍼부터 도어를 가로지르는 굴곡으로 근육질을 만드는 동시에 루프 라인과 도어 하단에서 치켜올라온 라인까지 더해져 마치 화살같은 이미지로 스포티함을 보여준다. 후면에선 트렁크 리드를 가로지르는 라이트바로 좌우 테일램프를 이어주며 전면과 마찬가지로 통일성을 부여했다.

실내는 보수적이던 토요타가 드디어 변화를 받아들였음을 느끼게 한다. 풀 디지털 클러스터에 대형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으로 편의성을 강화했으며, 공조장치는 중앙의 LCD창에 좌우로 물리 버튼을 더한 방식이다. 플래그십 모델에 걸맞게 스티어링 휠 중앙에 크라운 전용 로고를 담아놓은 점도 인상적. 여기에 전자식 변속기와 USB-C 타입 충전 포트, 스마트폰 무선 충전 슬롯 등 예전의 토요타를 떠올리기 어려울만큼 실내 구성이 크게 향상됐다. 한국 시장에 맞춰 한국형 내비게이션과 통풍 시트를 빼놓지 않은 점도 반가운 부분이다.

오늘의 시승은 강원도 정선을 출발해 강릉 카페를 찍고 돌아오는 왕복 150km의 코스에서 진행된다. 갈 때는 이번에 새로 선보인 2.4 듀얼 부스트 하이브리드를, 올 때는 다른 모델에도 적용되는 2.5 하이브리드를 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고성능을 먼저 타게 되면 나중에 타는 모델에서 상대적으로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시동을 걸고 도로로 나섰다.

첫 번째로 탄 2.4 듀얼 부스트 하이브리드는 전기모터의 파워에 토요타 최초로 4기통 터보 엔진을 더해 고성능을 낸다는 의미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터보엔진을 결합하는 것이 이제는 상당히 보편화되어 대중 브랜드는 물론이고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스포츠카 브랜드에서도 하이브리드 방식이 적용된 제품을 내놓고 있으니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다만 방향성에서 차이가 있는데, 슈퍼카 브랜드들은 연비 향상보다는 성능 향상 쪽에 좀 더 비중을 두는데, 그동안 토요타가 보여줬던 하이브리드들은 그와는 정반대의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 성능과 연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한 것일까?

출발 직후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국도. 급하진 않아도 좌로 우로 커브가 계속 이어지는데도 쏠림은 덜하다. 크로스오버라 기존의 세단보다 분명 차체가 높아졌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자세를 바로잡아주는 이유는 가변제어 서스펜션(AVS) 덕분이다. 도로 상황에 맞춰 감쇠력을 알아서 조절한다는데, 중간중간 나타나는 과속방지턱이나 노면의 요철도 매끄럽게 통과하며 플래그십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고속도로에 올라 속도를 꽤나 높여봤음에도 불안한 움직임 없이 달려주는 모습 역시 가변제어 서스펜션이 큰 몫을 한다.

2.4 듀얼 부스트 하이브리드의 시스템 총 출력은 348마력으로, 상당한 수준의 파워를 지니고 있지만 가속에서의 반응은 생각보다 폭발적인 느낌은 덜하다. 비슷한 성능의 모델을 생각할 때 등이 파묻히는 느낌의 강력함을 기대했지만 초반 가속은 부드러움만이 강조되어 조금 아쉬운 편. 하지만 진면모는 따로 있었다. 중속을 지나 고속 영역에 이를 때까지 일정한 힘이 속도계의 바늘을 계속해서 밀어 올린다. 초반 가속만 놓고 보면 이미 한계를 보여야 하는 속도에 도달했음에도 꾸준하게 이어지는 파워가 당황하게 만든다. 이런 독특한 특성은 브랜드의 차이, 그리고 크라운이 플래그십 모델이라는 점 때문으로 보인다. 상당수 브랜드들은 풀 파워를 내뿜을 땐 최대한의 출력을 운전자가 고스란히 느끼도록 세팅하는 편이지만, 크라운의 경우 동승자나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고 본 것이리라. 따라서 급격한 가속은 자제하면서도, 고속에서도 꾸준하게 속도를 올려붙여 필요에 따라 빠르게 달릴 수 있지만 탑승자가 최대한 편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다만 하이브리드치고는 낮은 11.0km/L의 연비가 살짝 아쉬운데, 이는 2.4 가솔린 터보엔진의 적용 때문이지, 휠 때문은 아니라고 한다. 신형 크라운의 휠은 21인치인데, 다른 제품에서라면 이렇게 큰 휠은 필연적으로 연비 감소로 이어지는데, 공기역학 설계를 최대한 적용한 덕분에 19인치에 버금가는 연비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2.5 하이브리드의 경우 17.2km/L로 여전히 우수한 연비를 보여준다.

목적지에 도착해 이번엔 2.5 하이브리드로 갈아탔다. 돌아갈 때는 고속도로를 피해 국도로 달려 대관령 고갯길을 넘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연비에는 악영향을 끼치겠지만, 앞선 2.4 듀얼 부스트 시승에선 고속도로 위주로만 달려 운동성능을 체감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이 부분을 중점에 두고 시승했다.

강원도의 여러 고개들은 각각 특성이 다른데, 대관령의 경우 상당수 커브들이 U자형의 헤어핀으로 구성되어 좌우 커브가 계속 이어져 차량의 거동을 파악하기가 수월하다. 앞선 2.4 듀얼 부스트는 가변제어 서스펜션이 있어 더 나은 움직임을 보여줬겠지만, 2.5 하이브리드도 앞 맥퍼슨 스트럿, 뒤 멀티링크의 일반적인 구성임을 감안해도 자세에 불안함이나 흐트러짐 없이 안정적인 모습으로 커브를 돌아나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높아진 차체만큼 커브를 돌아나가며 좌우로 흔들리는 롤(roll)이 상당하지 않을까 우려됐는데, 크로스오버임에도 세단 못지않게 빠르게 자세를 바로잡으며 다음 코너로 달려준 덕분에 굽이굽이 대관령 고갯길을 즐겁게 올라갈 수 있었다.

물론 커브가 이어지는 고갯길을 열심히 올라온 덕분에 이전 시승차가 달성했던 18km/L 넘는 평균 연비가 대관령 정상에선 14km/L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평균적으로 내리막이 이어지는 데다 시내를 통과하며 무리하게 속도를 내지 않고 흐름에 맞춰 달렸더니 17km/L 언저리까지 회복할 수 있었다. 딱히 연비를 열심히 올려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달린 것이 이 정도인데, 맘먹고 연비 운전을 한다면 20km/L도 거뜬할 만큼 토요타 하이브리드의 효율성은 기대 이상을 보여줬다.

국내에 처음 등장한 토요타의 대표 모델 크라운이 쉽게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쟁자들이 워낙 쟁쟁한 시장인 데다, 그 경쟁자들 중에는 국산 브랜드의 제품까지 포함되는 만큼 목표치를 달성하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토요타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시 효율성이다. 이를 소비자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늘어난다면 이 피 튀기는 시장에서도 만족할만한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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