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술을 원하지 않는 회사는 없겠지만, 그 중에서도 현대차그룹은 신기술에 꽤나 진심이다. 최근에는 자사 제품의 빠른 발전을 위해 특정 분야에서 앞서나가는 기업과 협력하거나 회사를 인수하는 등의 형태로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자율주행 전문기업 모셔널과 협력을 하거나, 아니면 생산이나 배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로봇 전문 기업인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것 등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차그룹이 이런 속도전만 진행하는 건 아니다. 특히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 회사는 물론이고 사내 직원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집,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에 중장기적 관점에서 적극 투자하고 있다. 이런 현대차그룹의 움직임을 실물로 확인할 수 있는 ‘오픈이노베이션 테크데이’가 지난 15일 진행되어 현장을 방문했다.

행사장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계단을 오르는 로봇이었다. 물론 로봇개로 잘 알려진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스팟’ 같은 경우 계단은 물론이고 험지에서도 우수한 주파 실력을 갖췄지만, 현장에 있던 로봇은 동그란 바퀴를 가진 것으로, 독특한 구조의 에어리스 타이어를 통해 각진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로봇 몸체의 문이 열리면 안에 음료나 샌드위치 같은 물건이 담겨있는 걸 볼수 있다. 이 로봇을 개발한 곳은 ‘모빈’이라는 스타트업으로, 현대차그룹 사내 스타트업으로 분사해 라스트마일 배송 로봇을 전문으로 개발하고 있다. 기존 배송 로봇은 계단이나 인도 경계석 등 높이차가 있는 장애물을 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모빈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특수 고무 소재 타이어를 개발 계단을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는 것. 여기에 이동 과정에서 장애물을 회피하기 위해 라이다(Lidar)와 카메라를 장착, 사람이나 장애물을 피해 목적지까지 물건을 배송한다. 이미 현대차그룹 내에서 시범 운영이 이뤄졌으며, 앞으로 현대건설이나 현대글로비스 등과 함께 시범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옆으로는 촬영 현장에서 흔히 보던 일반적인 드론보다 훨씬 큰 드론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 곳은 드론이 주가 아니라, 드론이 촬영한 영상을 분석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뷰매진’이라는 업체다. 드론이 촬영한 영상을 바탕으로 콘크리트 외벽 등의 미세 결험을 탐지하고, 이러한 데이터를 분석, 시각화하는 ‘보다’라는 솔루션을 제공하는데, 현대건설을 비롯한 국내외 건설사들과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행사장 내에 재생되는 음악은 행사를 준비한 현대차그룹 측에서 틀어놓은 것이 아니라, 이날 테크데이에 참석한 그룹 사내 스타트업 분사 업체 ‘어플레이즈’의 ‘어플레이즈’ 앱에서 에서 공간에 맞춰 AI 기술을 기반으로 최적의 음악을 검색, 재생하는 것이라고 한다. 매장이든 사무실이든 특정 공간에 방문자의 연령이나 성별, 날씨, 이용 시간 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 최적화된 음악을 재생하는 서비스로, 현대차그룹 본사와 함께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등 주요 전시장과 영업점에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밖에도 가상현실 플랫폼 개발 및 버추얼 아이돌 매니지먼트 등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과 서비스를 전개하는 ‘메타버스 엔터테인먼트’, 융복합센서 데이터 분석 및 디지털 트윈 기반 시공간 지도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모빌테크 등 다양한 업체들이 이번 테크 데이 행사에 참석해 자사의 기술을 뽐냈다.

현대차그룹이 이러한 스타트업 투자를 강화하기 시작한 건 2017년으로, 5년 넘는 시간동안 200여 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이 1조 3,00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는 앞서 소개했던 모셔널이나 보스턴 다이내믹스 등의 대규모 투자는 빠진 것이라고 하니, 현대차그룹이 기술 개발을 위해 투자한 전체 금액은 수십조 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가 채 짐작되지 않는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모빌리티 서비스 분야고, 전동화, 커넥티비티, 인공지능, 자율주행, 수소를 포함한 신에너지 등에도 적잖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여기에 앞으로는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로 지속 진화하는 자동차)를 비롯해 자원순환, 저탄소,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기술 등 새로운 분야에서 미래를 대전환시킬 스타트업을 발굴해 과감한 협업 정책을 펼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오픈이노베이션추진실의 황윤성 상무는 “금까지 투자금을 보면 현대차그룹의 규모로 봐서는 크진 않다. 앞으로도 예산을 정해놓고 투자하기 보다는, 꼭 투자가 필요한 기업이거나 센싱해야할 분야가 있다에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혀 앞으로도 이러한 투자는 최소 현행 수준 이상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투자가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황윤성 상무는 “우리 그룹이 찾는 기업은 혁신적인 기술이나 서비스를 통해 인류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스타트업이다”라며 “새로운 고객 가치를 창출하고 협력 과정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력을 주는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 육성함으로써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 투자 유형을 4가지로 구체화했는데, 그룹 자체적으로 필요한 기술 및 사업 영역에서 직접 스타트업을 창업하기 위한 컴퍼니 빌딩, 변화가 빠른 신성장 사업 영역의 트렌드를 신속하게 파악하기 위한 센싱 투자, 즉시 혹은 단기간 내 사업역량 확보를 위한 전략투자, 예상되는 시너지 효과에 따라 실제 협업을 추진하기 위한 연계 투자 등이다.

이러한 투자는 국내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 독일, 이스라엘, 중국, 싱가포르 등 5개국에 ‘크래들(CRADLE)’이라는 혁신 거점을 마련해 숨은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제로원(ZER01NE)’이 오픈 이노베이션의 허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세계 주요 국가에서 총 19개의 투자 펀드를 운영하며 글로벌 투자 역량을 높이고 있다. 국내에선 제로원이 매년 개최하는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의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고, 이러한 영역을 예술의 범주까지 확대해 크리에이터간 협업을 촉진하는 ‘제로원 플레이그라운드’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현대차그룹 사내에서도 스타트업 제도를 운영, 지금까지 30개의 스타트업이 분사해 누적 매출액 2,800억 원, 신규 인력 채용 800명 이상을 달성하며 시장 가치와 사업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황윤성 상무는 “현대차그룹은 모빌리티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 스타트업 파트너들과 개방적이면서도 창의적 혁신활동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경쟁력을 창출해 나갈 예정”이라며, “전세계의 유망 스타트업과 혁신 파트너들을 적극 지원하며 그들의 성장 단계에 맞춰 전문적이고 다양한 육성 및 협업 프로그램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물론 현대차그룹의 투자가 100% 성공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고, 결과물이 예상보다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를 이어가는 건 마치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것과도 같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싹이 나지 않고, 작물을 수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작물을 시장에서 사오는 건 시간을 단축시키는데는 큰 도움이 되지만 그 작물을 기르는데 필요한 경험이나 노하우를 쌓을 수 없다.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투자를 통해 쌓인 경험과 노하우는 기술을 더욱 더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열쇠가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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