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계속 변화한다. 변화하는 흐름에 맞추지 못하면 도태될 뿐이다. 브랜드 역시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탑승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메리칸 크루저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할리데이비슨 역시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의 속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가장 최신의 제품인 팬 아메리카로, 어드벤처 장르가 높은 인기를 보임에 따라 할리데이비슨에서도 이쪽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 그동안 도전하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의 신제품을 출시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잘해오던 장르들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도로에서 가장 편안하게 탈 수 있는 크루저 장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일부 크루저 중에선 스포츠 모델 못지 않은 운동성능을 갖추고 있는 제품들도 있어 다양한 영역에서 할리데이비슨의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 이를 한 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DRT 익스피리언스 행사가 열려 지난 22일 태국 카오야이로 향했다.

‘DRT’는 ‘Dirt, Road, Track’의 약자로, 오프로드와 일반도로, 트랙이라는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곳에서 할리데이비슨의 다양한 매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이번 행사가 준비된 것이다. 로드야 할리데이비슨의 주 무대인 만큼 어떤 모델을 타더라도 즐겁게, 재밌게 달릴 수 있고, 오프로드는 빼놓으면 서운한 팬 아메리카가 주인공일 것이다. 트랙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하겠지만, 의외로 할리데이비슨의 크루저들이 트랙에서도 잘 달리는데, 모토 아메리카의 경기 중 로드 글라이드 같은 배거 모터사이클을 이용한 ‘킹 오브 배거’ 클래스를 보면 트랙에서 크루저를 타는 것이 그렇게 말도 안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5시간, 방콕에 도착한 순간부터 이번 시승의 가장 큰 장애물은 날씨가 되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가뜩이나 한국보다 위도가 낮은 태국인데 여기에 한참 더워지기 시작한 6월, 거기에 트랙에서의 시승이라니, 트랙용 가죽슈트까지 챙기지 않아도 되는 점은 다행이지만 그게 아니어도 충분히 덥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씨였다. 본 행사장은 방콕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카오야이 지역에 위치한 8-스피드 서킷으로,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일렬로 늘어선 할리데이비슨의 모터사이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잇스터부터 로드글라이드 등 다양한 크루저들과 팬 아메리카까지, 오늘 다양한 코스에서 경험할 할리데이비슨 제품들이 준비를 마치고 대기중이다. 여기에 한 쪽에는 국내엔 없어서 못파는 CVO 로드 글라이드 리미티드 120주년 기념 모델과 로드 글라이드 패스트 조니 인수지에스트 컬렉션도 전시되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늘의 행사는 8-스피드 서킷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우선 트랙은 이 곳의 1.1km의 짧은 코스를 도는 것이고, 더트는 서킷 외곽쪽의 1.1km 코스를 왕복하며, 로드는 여기서 약 23km가량 떨어진 카오야이 국립공원 입구를 다녀오는 구간이다. 한 세션씩 시승을 진행하며 각기 다른 코스에서 만나는 할리데이비슨의 매력을 차례차례 알아보기로 했다.

기자가 속한 조는 가장 먼저 트랙 세션에 참가했다. 이 곳에선 나잇스터와 스포스터 S가 준비되어 운동성능을 경험하기로 했다. 코스는 약 400m 가량의 직선 코스와 좌우 커브가 이어지는 낮은 난이도여서 부담을 내려놓고 본격적인 시승에 나섰다. 다른 크루저 모델도 그렇지만, 스포스터 S나 나잇스터 모두 시트고가 낮을 뿐 아니라 무게도 200kg 초반대로 부담이 적어 다루기 한결 수월해 스포티한 주행을 선호하는 라이더에게 적합한 모델이다.

스포스터 S는 레볼루션 맥스 1250T 엔진의 파워로 직선 주행에서 탁월한 가속력을 보여준다. 1,252cc 수랭 2기통 엔진은 최고출력 121마력/7,500rpm, 최대토크 127Nm/6,000rpm의 성능을 내는데, 물론 크루저하면 낮은 회전수에서 고동감을 즐기며 느긋하게 달리는게 가장 재밌지만, 엔진을 한계까지 회전시키며 가속하면 스포츠 모터사이클 못지않은 짜릿한 가속감을 경험할 수 있다.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직선 구간이지만 순식간에 100km/h를 넘길 정도로 파워풀한 성능은 스포스터 S의 무게를 잊게 만들 정도다.

나잇스터는 레볼루션 맥스 975T 엔진이 적용되어 배기량이 975cc로 낮아 가속면에서는 스포스터 S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잇스터의 진면모는 코너 구간에서 발휘되는데, 앞 160/70TR17, 뒤 180/70R17의 전형적인 크루저용 타이어를 사용하는 스포스터 S와 달리, 나잇스터는 앞 100/90-19, 뒤 150/80B16 사이즈를 채택해 예상보다 훨씬 움직임이 날렵하다. 어지간한 스포츠 네이키드 수준으로 빠르게 방향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코너에서는 스포스터 S보다 빠른 스피드로 돌아나갈 수 있다. 예상치 못한 나잇스터의 매력이 반갑다.

트랙 세션을 마치고 다음으로 진행한 건 더트 세션. 이 곳에서 타게 될 팬 아메리카는 이미 국내 출시때도 경험한 적이 있는데, 첫 어드벤처 모델임에도 예상보다 완성도가 우수해 몹시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그 때와 지금의 모델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승 이후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팬 아메리카를 다시 탈 생각에 마음이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드벤처에 맞춰 장비를 교체하고 본격적인 시승에 나섰다. 1.1km면 그리 긴 구간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코스 역시 가벼운 임도 수준일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노면도 평범한 흙길부터 모래밭에 파쇄석이 잔뜩 깔린 길까지, 1.1km 안에 다양한 코스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해놓은 것. 인스트럭터를 따라 달린 첫 번째 주행에서는 처음 경험하는 코스다보니 바짝 긴장하면서 달렸지만, 다행히 팬 아메리카의 주행 실력을 몸이 기억하고 있는지 뒤를 따르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여기에 도움을 주는 강력한 엔진과 주행모드, 그리고 서스펜션이 있어 주행이 한결 수월하다. 우선 엔진은 앞서 소개한 스포스터 S와 거의 비슷한 레볼루션 맥스 1250 엔진으로, 1,252cc에 수랭 2기통 엔진은 동일하지만, 최대토크 127Nm가 발휘되는 구간이 6,750rpm으로 좀 더 고회전형으로 세팅됐다. 최고출력 역시 150마력/8,750rpm으로 성능 수치나 발생구간 모두 좀 더 높아졌다. 오프로드 주행에서는 성능이 균일하게, 일정하게 뿜어질수록 주행이 수월하다. 출력이 구동축에 강하게 전달되어 바퀴가 땅을 점점 파고들어가는 자동차의 사례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최대한 부드럽게,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달릴 수 있어야 하고, 더불어 저속에서는 엔진 반응이 민감하지 않을수록 좋은데, 이런 특성을 반영한 오프로드 전용 주행모드와 고회전형으로 세팅된 엔진 덕분에 저회전에서 너무 강한 토크가 발생하지 않아 스로틀 조작의 피로가 덜하다.

더불어 서스펜션도 빼놓을 수 없다. 팬 아메리카에 적용된 세미 액티브 서스펜션 시스템은 온로드에서야 멈춰서면 높이가 낮아지고, 주행하면 다시 높아지는 어댑티브 라이드 하이트(ARH) 기능으로 환영받지만, 이런 오프로드에서는 노면 특성에 맞춰 스스로 감쇠력을 변경해주는 점이 좋다. 가뜩이나 노면이나 전방의 장애물, 적당한 속도와 변속 등 여러 가지를 신경써야 하는 오프로드 주행에서 하나라도 신경써야 할 것이 줄어드는 건 정말 반가운 일이다. 감쇠력이 자동으로 바뀌면 몸으로 전달되는 충격을 줄여주는 건 물론이고, 이보다 더 중요한 타이어의 접지력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다. 노면에 따라 감쇠력을 강하게, 혹은 부드럽게 조절함으로써 타이어가 노면과 접촉하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면 그만큼 더 원활하게 주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인스트럭터를 따라 달렸으니 이번엔 위치를 바꿔 내가 앞에 서고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인스트럭터가 뒤를 따라 달릴 차례다. 뻥 트인 길을 따라 실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마음껏 신나게 달리니 몸은 더워도 마음은 시원해진다. 한 번 달려봤다고 자신감이 고개를 내밀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안전임을 머릿속에 되뇌이며 스스로를 자제한다. 덕분에 아무 사고 없이 더트 세션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로드 세션이다. 로드 글라이드 스페셜을 비롯해 팻밥, 브레이크 아웃 등 준비된 라인업이 화려하다. 그렇지만 기왕이면 처음 탔던 나잇스터를 다시 즐겨보고 싶었다. 고작 5랩의 시승에서 많은 부분을 경험하긴 어려웠고, 시내 주행에서 덩치 큰 모델보다는 가볍게 탈 수 있는 모델이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여기에 태국의 더운 날씨에서 우수한 방풍 성능의 로드 글라이드 같은 건 오히려 쥐약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말이다.

인스트럭터의 안내를 따라 태국의 도로를 달려가기 시작했다. 좌측통행이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언제 그랬냐는 듯 도로를 열심히 내달린다. 차량이 많은 구간에선 일부러 나잇스터의 엔진 회전수를 끌어내려 고동감을 느껴보기도 하고, 앞 차들이 속도를 높이면 엔진 회전수를 바짝 끌어올려 경쾌하게 달려나간다. 욕심이 많아 상반된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점이 마음에 쏙 든다.

트랙 세션에서 경험했던 경쾌한 주행은 시내에서도 여전하다. 생각보다 이동 속도가 빠른 상황에서 꽤 급한 커브를 만나기도 했는데, 처음 경험했다면 미리 겁을 먹고 속도를 바짝 낮췄겠지만 이미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는지 파악했으니 최소한으로만 제동을 걸어주고 빠르게 커브를 돌아나간다. 사뿐사뿐한 발놀림이 주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짧지 않은 구간이지만 신나게 달리고 있자니 어느새 더위도 사라지고 재미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어느샌가 다가온 행사장 입구에 속도를 줄이자 다시 숨막히는 더위가 엄습한다. 그래, 여긴 태국이었다.

꽤나 빡빡하게 진행된 행사였지만, 각기 다른 환경과 노면에서 할리데이비슨의 즐거움을 단 하루만에 경험할 수 있는 이런 행사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지라 색다른 묘미가 있었다. 물론 ‘할리데이비슨’이라는 브랜드에 기대하는 바가 있겠지만, 생각을 한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생각을 넓혀야만, 열린 마음으로 다양하게 받아들여야만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즐거움이 있으니 말이다. 국내에도 타 브랜드 고객은 물론이고 기존 할리데이비슨 고객을 대상으로도 새로운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이런 이벤트가 펼쳐져 할리데이비슨의 다양한 매력을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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