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개발’하면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한 엔진이나 자율주행으로 대표되는 안전 및 주행보조 기능, 탑승자들의 편의를 위한 여러 장치가 떠오르겠지만, 이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걸쳐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에는 ‘이런 것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사소해보이는 것들도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러한 것들을 통해 탑승자의 안전은 물론이고 편의성, 심지어 현재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인 탄소 배출 저감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한다. 과연 어떤 기술이 어떻게 개발되어 양산차에 적용될 준비를 하고 있는지 지난 20일 개최된 현대차그룹의 ‘나노 테크 데이’ 현장을 찾아 내용을 살펴보았다.

현대차그룹 선행기술원 이종수 부사장은 “미래 모빌리티를 위한 첨단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이 기술들이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소재가 필수적이다. 모빌리티 산업에 닥쳐온 많은 변화를 해결할 해법 중 하나가 소재 기술이라 생각하고 연구개발을 지속해오고 있다”며 “현대차그룹의 연구개발조직에는 1970년대부터 소재 연구를 담당하는 조직이 있었고, 1990년대 후반부턴 첨단 소재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조직도 구성했다. 어떤 모빌리티든 소재부터 출발하고, 소재 기술은 선행기술인 만큼 최근의 전동화나 탄소중립에서 에너지 소재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기반기술이자 선행기술인 소재 기술의 연구개발에 현대차그룹은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특히 소재 기술 관점에서의 나노기술은 어려운 만큼 차별적인 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소개된 기술은 총 6종으로, 셀프 힐링 고분자 코팅 및 오일 캡슐을 이용한 고분자 코팅, 페로브스카이트 투명 태양전지와 모빌리티 일체형 탠덤 태양 전지,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압력 감응형 소재, 투명 복사 냉각 필름 등이다.

셀프힐링 코팅이 적용된 필름 표면에 상처를 내는 모습

먼저 셀프 힐링 고분자 코팅은 차량 외관이나 부품에 손상을 입었을 경우, 스스로 손상 부위를 치유하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 셀프 힐링을 위한 소재를 나노 캡슐로 코팅 후 외관이나 부품에 코팅하면 손상 발생 시 분열된 고분자가 화학적 반응을 통해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이에 대해 선행기술원 여인웅 책임연구원은 “타 브랜드에서도 셀프힐링 기술이 적용되어 있는데, 복원에 시간이 오래 소요되고 열을 가하는 등 많은 에너지가 작용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개발한 기술은 적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반응을 통해 상온에서 자가복원이 가능하도록 설계됐으며, 화학반응을 빠르게, 많이 할 수 있도록 가교제를 이용해 낮은 온도에서도 자가 복원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25℃ 정도의 상온에서 2시간 내에 셀프힐링이 되는 고분자 필름을 개발한 상태이며, 실제 이 필름에 바늘로 상처를 낸 후 현미경을 통해 관찰했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이 일어나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복원이 일어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늘로 가해진 흠집(왼쪽)이 1분 여의 시간이 지나자 원래 상태로 복원됐다

현대차그룹은 이 기술을 먼저 카메라 및 자율주행 센서 렌즈, 외장 그릴, 전기차 구동모터 베어링 등이 고전압에 의해 침식되는 전식(전기 침식)으로부터 부품을 보호하는 등에 먼저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블랙박스 용도에서 자율주행의 핵심 부품으로 역할이 바뀐 카메라의 경우 렌즈 표면에 흠집이 날 경우 주변 상황이나 차량을 인식하지 못해 위험한 상황에 생길 수 있는데, 현재까지는 렌즈만 교체할 수 없어 모듈 전체를 교환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셀프힐링 기술이 적용된다면 렌즈의 흠집이 복원되어 기능 유지가 가능해 부품의 수명을 더 길게 가져갈 수 있어 사용자 입장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오일 캡슐을 고체화한 것. 캡슐 내부에 윤활유가 들어있다

문지르는 방식으로 윤활유가 캡슐에서 흘러나온다

오일 캡슐 고분자 코팅 기술은 앞서 소개한 셀프힐링 기술 개발 과정에서 함께 개발하게 된 기술로, 나노 캡슐 내부에 셀프힐링 소재 대신 엔진오일을 적용한 것이다. 기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차량 내부에 무윤활, 건조조건으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품의 내구성과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특히 고속으로 회전하는 부품이나 고온, 고압을 견뎌야 하는 베어링 같은 부품에 적합한 기술이라는 것. 이를 각 부품에 코팅 처리해 시험을 진행한 결과 부품 수명이 다할 때까지도 오일 캡슐 코팅이 유지돼 윤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나노 캡슐을 평평한 판에 놓고 손으로 문지르니 캡슐 내부에 있던 윤활유가 흘러나와 기름종이를 적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런 방식으로 부품에서도 윤활 작용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 코팅 기술은 가장 먼저 엔진의 구동력을 전달하는 드라이브 샤프트에 적용해 양산을 목표로 제품을 개발중이며, 향후에는 향기 분자를 포함한 나노 캡슐을 실내 내장재에 적용해 손이 닿을 때마다 다채로운 향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한다.

선풍기와 투명 태양전지를 이어주는 전선이 전지 뒤쪽으로 그대로 보인다

페로브스카이트를 투명 태양전지는 투명한 성질을 이용해 창문 등에도 전지를 적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인 기술이다. 기존 실리콘 기반의 태양 전지보다 30% 이상 높은 발전 효율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1㎠ 단위를 넘어 200㎠의 넓은 면적을 개발해 실제 활용성에 한 발 더 다가선 상황이다. 이를 통해 건물 유리창에 부착해 창문의 역할은 그대로 이어가면서도 태양광 발전을 진행해 소모되는 전력을 일부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이를 자동차에 적용하면 루프에만 적용되던 전지를 차량에 장착되는 모든 유리에 적용함으로써 전기차의 경우 보다 많은 발전량으로 효율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탠덤 태양전지의 구조도. 이를 통해 기존 태양전지의 효율을 더욱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이 투명 태양전지를 기존 태양 전지 위에 덧붙인 ‘탠덤 태양전지’도 투명 태양전지 개발 과정에서 파생된 개발품이다. 기존 실리콘 기반의 태양전지는 발전 효율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보고 있는데, 이 탠덤 태양전지는 투명 태양전지와 기존 실리콘 기반 태양 전지가 각기 다른 파장의 빛을 흡수, 효율을 35% 이상 끌어올릴 수 있어 태양광 발전에 또 한번의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차에서는 후드, 루프, 도어 등 태양광을 많이 받는 부위에 이 탠덤 태양전지를 부착하면 약 4시간 정도의 일조량으로 20km 이상의 추가 발전거리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여기에 투명 태양 전지까지 창문이나 앞뒤 유리에 적용하면 더욱 효율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압력이 가해지는 부분(왼쪽)에서만 발열이 이뤄지는 걸 열화상카메라(오른쪽)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탄소 나노튜브를 사용한 압력 감응형 소재는 별도의 센서 없이도 소재에 가해지는 압력을 전기 신호 형태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 탄소 나노튜브 소재를 특수 용액에 균일하게 분산시켜 스펀지 등의 시트 폼에 코팅하는 기술을 개발, 일정 수준 이상의 압력이 가해지면 해당 부위에만 열이 발생하는 발열 시트 형태를 소개했다. 기존 발열 시트는 시트 전체를 가열하기 때문에 닿지 않는 부위에서 에너지가 낭비됐는데, 이 압력 감응형 소재를 이용하면 몸이 닿아 압력이 가해지는 부위만 가열하기 때문에 기존 대비 에너지 소비를 40% 정도 절감할 수 있다고. 특히 전기차는 구동 뿐 아니라 공조 장치 등 모든 것들이 전기로 작동해 이러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 만큼 전기차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현대차그룹에서는 이 외에도 센서의 역할을 대신해 자세를 감지, 올바른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제시했으며, 호흡, 심박수 등의 생체신호를 감지해 건강 상태를 진단하는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동일해 보이지만 오른쪽 모형 유리에만 복사 냉각 필름이 적용되어 내부 온도가 더 낮다

마지막으로 소개된 것은 차량 내부 온도 상승을 줄이는 투명 복사 냉각 필름으로,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자외선, 가시광선, 근적외선 등 열을 차단하고, 원적외선대의 열을 내보내 차량의 온도 상승을 억제하는 것이다. 실제 실험에 따르면 기존 틴팅 필름 대비 약 7℃의 온도 저감 효과가 있었으며, 이를 통해 에어컨 사용량을 줄여 차량 운행주기 동안 약 0.3~0.8%의 탄소배출량 저감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최근 신제품 뿐 아니라 콘셉트카 등을 통해 소개되는 미래 모빌리티들이 높은 개방감을 위해 유리의 면적을 넓게 가져가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이 투명 복사 냉각 필름을 통해 효율적인 열 관리 및 탄소 저감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기차 시대에선 기술 개발이 의미가 있겠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내연기관과 달리 마치 프라모델을 만드는 것처럼 부품을 여기저기서 사와 조립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실제 이런 방식으로 전기차 생산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기업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 개발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차별화되지 못하고, 차별화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인력과 시간, 비용이 투입되더라도 끊임없이 기술 개발에 매친하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수많은 노력들이 모두가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지만, 그래도 이러한 기술 개발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우리 생활이 더욱 편리하고 안전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전 지구적인 위협인 환경 문제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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