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 덥다. 작년까지 이어졌던 3년간의 라니냐도 이상했지만, 올해 여름 더위는 유난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다. 엘니뇨와 라니냐가 일정 주기 동안 오가는 순환의 리듬도 예측을 벗어난 수준인데, 다가올 2024년에는 슈퍼 엘니뇨가 닥칠 수도 있다는 기후변화 보고들이 연일 쏟아진다. 그들의 우려처럼 슈퍼 엘니뇨가 내년에 당도하게 되면 올해보다 더한 강도의 불볕더위가 지속될 것이기에 많은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금도 리세션과 물가상승으로 연일 우울한 뉴스들이 터져 나오는 실정이라 냉방비 부담에 에어컨 작동을 주저하게 하는데, 지금 이상의 폭염 상황 예고는 무척이나 걱정스럽다.

스즈키 버그만 스트리트 125 EX는 지금처럼 소비가 위축된 환경에서 합리적인 가격을 들고 나왔기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125cc 시장은 연 15만 대 수준으로 추정되는 국내 이륜차 시장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사실상 이륜차 세계의 엔트리 층이자, 배달 산업에서 주로 선택받는 클래스이기에 가장 많은 판매량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기존 125cc 시장을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것이 혼다의 PCX, 야마하의 NMAX인데 스즈키가 야심 차게 출시한 버그만 스트리트 125 EX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만한 잠재력이 가득하다.

버그만 시리즈는 스즈키의 스카이웨이브 시절부터 이어져 온 빅스쿠터 개념을 계승하고 있다. 넉넉한 차체가 주는 안락함과 기존 스쿠터들보다 상대적으로 방대한 수납공간, 매뉴얼 바이크에 비해 간편한 조작감이라는 빅스쿠터의 장점에 고품격 디자인과 편의사양들을 융합한 것이 특징이다. 버그만이라는 모델명도 ‘도시 혹은 마을’이란 뜻의 독일어 버그와 사람을 뜻하는 만을 붙인 것이기에 스즈키가 이 시리즈의 타깃층을 어디로 잡았는지도 명확하다. 도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라이더들에게 럭셔리한 빅스쿠터로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번에 출시된 버그만 스트리트 125 EX는 그동안 버그만이 추구했던 빅스쿠터의 개념을 버리고 스트리트라는 명칭을 붙였다. 스즈키는 버그만 스트리트 125 EX의 전장 전고 전폭 모든 면에서 사이즈를 줄여 도심의 골목길에서 혹은 정체가 일상인 도심에서 라이더가 민첩하게 라이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한편 버그만 시리즈의 또 하나의 가치인 럭셔리한 싱글 모빌리티로서의 정체성은 지키고자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버그만 스트리트 125 뒤에 EX가 붙은 것이 그 증거다. 이그제큐티브(executive, 고급스러운)의 약자인 EX가 붙은 만큼 디자인 요소에서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시승차로 타본 버그만 스트리트 125 EX는 블랙 화이트 2종 컬러로 나온 모델 중 화이트 모델이었는데 메인 컬러인 화이트도 사실상 아이보리에 가까운 색상이며 서브 컬러인 브라운과 조화되어 그동안 도심에서 흔하게 보이던 상용 스쿠터들과는 확실한 차별점을 제공한다. 바이크의 외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트에도 블랙과 브라운 투톤을 사용하고 측면 페어링에 곡선 디자인을 넣어 독특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창조했다.

전면부의 헤드라이트 좌우에 솟아있는 윙커는 마치 송곳니처럼 기능해 버그만 스트리트의 인상을 더욱 독특하게 완성한다. 기능성보다 디자인적 이점을 노린 듯 짧은 윈드 스크린을 장착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두툼하게 볼륨감을 살린 머플러의 커버와 곡선미를 풍만하게 살린 리어 램프까지, 버그만 스트리트를 보면 기존 버그만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계승하기 위해 스즈키가 고민한 지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버그만 스트리트의 외관 중 가장 큰 변화는 역시 플로어 패널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기존 버그만에 존재하던 센터 터널을 없애고 양발을 편하게 놓을 수도 화물을 적재하기도 좋은 평평한 발판 방식을 채용해 소화물 운송의 편의성과 라이딩 포지션의 자유도를 높였다. 플로어 패널 방식을 선택했던 기존 스쿠터들이 상용 스쿠터의 이미지를 취하던 것을 생각해보면 럭셔리 스쿠터를 표방하는 버그만으로서는 파격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변화는 주행 중 라이더가 발의 위치를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어 무척 편리하게 느껴졌다. 센터 터널이 있는 스쿠터의 경우 발목 그립을 사용해 좀 더 스쿠터와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던 장점이 있었다면, 플로어 패널 형식을 취한 버그만은 포지션의 자유도와 기능적 활용성을 중시한 것이다. 글러브 박스 사이와 시트 하단에 별도의 봉지 걸이 2개를 장착한 것도 활용성 증가에 한몫했다.

버그만 스트리트에 장착된 엔진은 스즈키 에코 퍼포먼스의 앞자를 따서 SEP라고 하며 뒤에 알파를 붙였다. 124cc 단기통 4 스트로크 공랭식 SOHC 엔진인데, 기존 버그만 시리즈나 혼다 PCX와 야마하 NMAX가 수랭식 엔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스즈키의 의도가 더욱 뚜렷해진다. 일반적으로 수랭식 엔진의 장점으로는 높은 출력과 뛰어난 엔진 냉각 성능을 꼽는 반면 공랭식 엔진의 장점으로는 엔진을 식혀줄 냉각수 장치가 없는 만큼 구조가 단순하고, 필요 부품 개수가 적어 정비성도 높다는 것이다. 더욱이 SEP 알파 엔진은 32.5kg이라는 가벼운 엔진으로 완성되었기에 연비향상과 출력 향상 등 많은 이점을 갖게 됐다. 마지막으로 스즈키 개발진들은 마찰과 기계적인 손실을 줄이기 위해 최적화된 피스톤 스커트 및 피스톤 핀 설계, 저인장 피스톤 링, 스즈키 특허 실린더 내벽 도금 기술이 적용된 실린더 사용 등 SEP알파 엔진의 모든 부품에서 내구성을 극대화했다.

버그만 스트리트에 키를 넣고 돌린 후 핸들 오른쪽 스위치 뭉치의 EASS(엔진 오토 스타트 앤 스톱) 토글 키 겸 전원 스위치를 누르면 버그만 스트리트가 달릴 준비를 마친다. 계기반의 흑백 LCD에 간단한 세레머니가 표기된 후 시간, 속도, 마일리지가 노출되고 연비 주행을 할 때마다 녹색 ECO 등이 점멸한다. 계기반에서 속도 표기는 시인성 좋게 큰 폰트로 표기되며 그 외의 부차적인 내용들은 과감히 생략해 미니멀하게 구성됐다. 앞서 언급한 EASS는 아이들링 스탑 기능을 수행하며 SEP 알파 엔진이 추구하는 정숙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조금 과장하면 진동감과 소음이 극단적으로 적어 전기 스쿠터의 전원을 켰을 때의 감각을 환기할 정도다.

버그만 스트리트의 플로어 패널에 스텝을 자유롭게 두고 스로틀 레버를 당기면 그제야 잠들어 있던 엔진의 동력이 연결되며 출발하는데 토크감이 느껴질 정도의 출발이 아니라 출력이 완만한 선형을 그리며 증폭되는 것이 특징이다. 스로틀의 반응성은 사실 아주아주 미세하게나마 시간차가 느껴졌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20km/h를 돌파하면 굉장히 시원스럽게 55km/h까지 출력이 증가하는데 이 순간에 버그만 스트리트의 민첩성이 발휘된다. 최고출력 8.6ps/6,500rpm에 최대토크 1.0kgf.m/5,500rpm가 이 부근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높이 780mm의 시트는 앞부분이 뭉툭한 편이라 양발이 벌어지기 쉽지만, 플로어 패널인 만큼 불편하지 않았다. 시트의 가죽은 엉덩이를 잡아주는 그립력이 높아서 급가속과 급제동 시에도 라이더를 단단하게 붙잡아줬다.

버그만 스트리트는 전후 연동식 브레이크인 CBS를 채용했는데 12인치 앞바퀴에 장착된 디스크 브레이크와 12인치 뒷바퀴에 장작된 드럼브레이크는 기대 이상의 제동력을 선보였다. 경쟁작인 혼다의 PCX와 야마하의 NMAX에 비해 20kg 이상 경량화를 이뤄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드럼브레이크의 제동력은 125cc 배기량에서 언제나 신뢰할 수 있는 제동 수단이기 때문이다. 뒷바퀴는 차체와 모노 서스펜션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너무 단단하지도 과하게 물렁거리지도 않는 적당한 지지력을 보여줬다. 뒷바퀴가 엔진 모듈에 모노 스윙 암처럼 연결되어 있기에 버그만 스트리트는 뒷바퀴 휠 교체나 타이어 교체 시 정비사의 피로도를 크게 낮춰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55km/h를 돌파하고 70km/h에 접어들어도 버그만 스트리트는 소음과 진동의 변화가 크게 체감되지 않을 만큼 정숙했다. 무게 중심은 종아리 중간쯤의 높이에 잡혀있어서 뱅킹각이 잘 나왔고 주행 중 정지신호에 걸려서 차를 정차하면 EASS 기능이 2~3초 내로 작동해 동력을 차단해줬다. 경쟁 차종들의 아이들링 스탑기능의 반응성이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었던 것을 감안하면 꽤 상식적이다. 오픈형과 개패형 2개의 글러브 박스가 포함되어 있는데, 오픈형 글러브 박스에는 500ml 생수병이 깊게 들어갈 만큼의 크기였고, 개패형의 경우 내부에 LED로 표기되는 USB 충전 포트가 있어 스마트기기를 충전하기 좋았다.

시트 하단의 수납공간은 21리터이며, 오픈 페이스 헬멧이 들어가는 크기다. 또한 시트 하단에는 5.5리터짜리 단출한 연료탱크가 있으나 WMTC기준 55.6km/L 연비가 있기에 걱정할 필욘 없다. 그 연비 좋다는 혼다 PCX가 WMTC 기준 55.0km/L인 것을 고려하면 충분히 어필할만한 장점이다. 시트 뒷부분에 연결된 캐리어에는 탑박스를 달거나 탠덤 라이더가 잡게 될 핸들로 기능한다. 사이즈가 작아진 만큼 혼잡한 도로에서나 좁은 골목에서도 버그만 스트리트는 작은 크기와 경량화의 이점을 크게 활용할 수 있는 스쿠터였다. 다만 핸들이 오픈 핸들이 아니라서 별도의 스마트폰 거치대나 장치들을 장착하려면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핸들 부분에서 아쉬운 점은 하나 더 있는데, 비상등 스위치가 없다는 것이다. 전면부에 설치된 미니 윈드스크린은 헬멧 상단에 부딪치는 주행풍까지 막아내지는 못했다.

버그만 스트리트의 시승 평을 종합하면 거품을 제거하고 실용성을 강조한 럭셔리 커뮤터라고 할 수 있겠다. 주요 외관에서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면서도 활용성이 있는 부분들을 잘 융합했고, 타 브랜드의 대표 스쿠터들의 기능 중에서도 필수적인 부분만 적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높은 연비와 가벼운 무게, 실제 사용영역에 집중된 엔진 출력들을 참작하면 도심을 출퇴근 하는 직장인들에게 어울릴만한 커뮤터로서 완성된 모델이다. 더욱이 309만 원의 소비자가격은 경쟁차종들과 약 140만 원 정도의 차이를 갖고 있기에 지금처럼 소비심리가 위축된 환경에서는 엄청나게 합리적인 어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오랜 시간 PCX와 NMAX가 양립해왔던 125cc 스쿠터 계에 버그만 스트리트 125 EX가 불러일으킬 열기가 얼마나 뜨거울지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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