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문득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나’하고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오늘도 딱 그런 느낌이었다. 얼마 전 출시를 알린 현대차의 신형 싼타페 시승을 위해 행사가 진행되는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 도착하니 다양한 차량들이 전시되는 1층 공간의 한쪽을 싼타페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물론 신제품이 나왔으니 신차를 전시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신차 외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손님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바로 1세대부터 지금까지 출시된 싼타페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것. 싼타페의 첫 출시가 2000년이었으니 벌써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에 무려 4번의 세대교체라니. 이럴때야 말로 “세월 참 빠르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 뉴멕시코주의 주도에서 이름을 따온 싼타페는 출시 전 콘셉트카 단계에서 호평을 받았고, 이것이 그대로 양산차로도 이어져 높은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세대를 거치며 꾸준한 판매를 보이며 팰리세이드 이전까지 현대차 SUV 라인업의 큰형님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런 싼타페가 이번 세대교체를 맞이하며 디자인 이슈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는데, 실물은 어떤지 시승회에 참가해 직접 살펴보고 시승도 함께 진행했다.

시승회에 앞서 시간이 남아 모터스튜디오 전시장에 마련된 신차를 둘러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니 오늘따라 유독 전시장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단체 관람객도 적지 않은 데다 여기에 신형 싼타페를 보기 위해 현장을 찾은 경우도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주차장에서부터 아이와 함께 온 부부들이 많이 보인다 했더니 바로 이들이 실제 계약자들이었던 것. 재밌는 건 인터넷에서의 여론과 다르게 현장을 찾은 계약자들은 실물을 보며 좋은 평가를 내렸는데, 의외로 각을 세운 신형 싼타페의 디자인에 대해 여성들도 호평하는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확실히 최근 현대차의 디자인은 ‘파격’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타이거 페이스’라는 큰 틀을 잡아놓고 여기에서 변형을 가하는 기아와 달리, 현대는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디자인도 제품에 반영한다는 느낌이다. 이번 신형에서는 H를 강조한 헤드라이트와 테일라이트, 범퍼가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아닐까. 물론 브랜드만의 특징적인 형상이나 라이트 등으로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것도 좋긴 한데 이렇게 곳곳에 과감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H를 박아넣었을 줄이야. 그런데 사진으로 보던 것과 달리 실물에서는 의외로 진중하고 무게감있는 스타일을 연출한다. 그렇다고 너무 H만을 강조하고 싶지는 않아서인지 좌우 H 라이트를 중앙의 라이트바로 연결해 차체가 넓어보이는 느낌을 주었다. 여기에 상하단 그릴에 파라메트릭 주얼 디자인을 새겨넣어 다른 제품들과의 공통점을 남겨놓았다.

이번 디자인 변화로 가장 말이 많이 나오는 건 후미 때문일 것이다. 헤드라이트와 비슷한, 혹은 좀 더 높은 곳에 배치하던 테일라이트를 헤드라이트보다 낮은 곳에 배치한 데서 느껴지는 이질감인 듯 하다. 덕분에 차체 디자인이 후미까지 이어져 통일감을 부여하지만, 이런 디자인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질 때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 낮게 배치된 테일라이트는 헤드라이트와 달리 좌우를 이어놓지 않았는데 중앙에 도어 핸들이 배치됐기 때문이다.

차량의 크기는 전장 4,830mm, 전폭 1,900mm, 전고 1,720mm(루프랙 선택시 1,770mm, 캘리그래피 트림은 1,780mm)에 휠베이스 2,815mm다. 전반적인 차체는 각을 바짝 세운 2박스 형태의 디자인이어서 높은 공기저항으로 연비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했지만 의외로 액티브 에어 플랩이나 하부 언더커버, 리어 스포일러 등 여러 요소들을 통해 0.294Cd로 생각보다 낮은 공기저항계수를 달성했다고. 21인치 대형 휠에 각잡힌 펜더 역시 강인함을 보여주는 요소다. C필러에는 루프탑 박스나 루프탑 텐트 등 차량 상부의 설치물을 이용할 때 편리하게 쓸 수 있는 핸들이 숨어있다.

 

실내는 최근 현대차의 신제품들과 유사해보이지만 싼타페만의 차별점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우선 대시보드에 자리한 계기판과 센터스크린은 하나로 이었는데, 완만하게 곡선을 그리는 커브드 디스플레이로 시인성을 크게 향상시켰으며, 관련 단축 버튼을 아래에 배치해 깔끔한 디자인과 편의성을 두루 확보했다. 변속기는 칼럼형이 적용되어 센터 콘솔 공간이 넓어졌는데, 여기에 처음으로 스마트폰 무선 충전패드를 2개를 적용해 동승자와 함께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공조장치 조절부는 터치식으로, 관련 기능들은 음성 명령으로도 조작할 수 있다. 현대차에선 보기 드문 디지털 센터 미러가 적용된 점도 눈에 띄는데, 아래 레버를 조작해 물리 미러와 디지털 미러를 전환할 수 있다.

이번 싼타페는 수납공간에 꽤나 공들인 모습이다. 우선 대시보드에는 총 3개의 공간이 있는데, 가장 상단에는 스마트폰이나 마스크 등 자주 사용하는 물품을 소독할 수 있도록 UV-C 살균 기능을 갖추고 있고, 송풍구 아래로 일시적으로 물건을 놔둘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글러브 박스가 차례로 갖춰져 있다. 콘솔박스의 경우 기존에는 앞쪽에서만 열 수 있어 1열 탑승자만 사용할 수 있었0는데, 이번 신형에는 앞과 뒤 양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양방향 멀티 콘솔이 적용되어 편의성을 높였고, 그 아래로도 서랍 형태의 수납함이 더해져 다양한 짐을 보관하기 좋다. 3열 탑승자를 위한 송풍구와 공조장치 컨트롤러, USB-C타입 포트 등이 마련되어 있는 건 반가운 일인데, 2열 탑승자가 조작하기엔 위치가 애매하다. 운전자에게 부탁하거나 목소리를 높여 음성 명령을 이용하는 수밖에.

시트는 2-2-2 혹은 2-3-2 배열인데, 시승차는 6인승 2-2-2 구성이다. 1열은 에르고 모션시트가 적용되어 주행모드 중 스포츠를 선택하거나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면 자동으로 볼스터가 솟아올라 상체를 단단히 잡아준다. 여기에 장거리 운전 시 피로를 풀어주는 스트레칭 기능은 기존에는 시트 옆면에 버튼이 배치되어 익숙해지기 전까지 사용이 불편했는데, 이번 신형은 도어에 버튼을 배치해 쉽게 사용할 수 있어 좋다. 2열은 독립형으로 구성되어 뒷좌석 탑승자가 편하게 탈 수 있고, 시트 전후 조절은 전동식이 아닌 하단 레버를 이용하는 수동식을 사용해 3열 탑승자가 빠르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했다. 3열은 차 크기를 생각하면 그리 넓게 구성할 수 없어 2열 시트를 적당히 당겼는데도 3열에 성인이 앉기엔 꽤나 버겁고 불편하다. 대신 아이들을 앉힐 수 있도록 3열 시트에도 카시트를 단단히 장착할 수 있는 ISOFIX 고정장치를 추가해 활용도를 높였다.

트렁크는 테일램프가 테일게이트에 배치된 덕분에 뒷면 전체가 열리도록 설계되어 기존 방식보다 짐을 넣고 빼기도 수월하고 레저용으로 활용하기에도 좋다. 3열 시트를 세우면 골프백 한두 개 정도만 들어가는 수준이지만, 3열을 접어내리면 골프가방 4개, 보스턴 가방 4개를 거뜬히 넣을 수 있을 정도인 725L의 공간이 확보되며, 2열까지 접어내리면 차박도 가능할 만큼 넓은 공간이 완성된다. 여기에 트렁크에서 2열까지 손쉽게 접을 수 있도록 폴딩 버튼을 배치해 편의성을 높였다.

그동안의 싼타페는 대부분 디젤 엔진을 중심으로 라인업이 꾸려졌지만, 이번 신형은 디젤 엔진이 사라지고 2.5 가솔린 터보엔진과 1.6 가솔린 터보 하이브리드 2개의 라인업만으로 구성됐다. 최근 유가 상승으로 경유와 휘발유 가격 격차가 크게 줄어들어 장점도 사라진 데다 연비 면에서도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이 디젤 엔진을 능가하는 수준이기 때문. 그렇다면 두 라인업이 디젤 엔진의 빈자리를 메꿀 수 있는 능력이 되어야 할텐데, 일단 오늘의 시승차는 2.5 가솔린 터보만 마련된 상황이라 이 쪽을 먼저 확인해봤다.

시동을 걸고 도로로 나서자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정숙성이다. 아무리 방음 성능을 강화했다고 해도 디젤은 진동이나 엔진 소음이 제법 들려오는 편인데, 그에 비해 2.5 가솔린 터보 엔진은 거의 전기차 수준으로 느껴질 만큼 조용하다. 여기에 내공이 쌓인 현대차의 NVH 차단 능력도 한몫했다. 기본적으로도 방음, 방진 처리도 잘 되어 있는 데다 기본 사양인 익스클루시브부터 윈드실드와 1열 도어에 이중접합 차음유리를 적용해 소음을 억제했다. 그리고 각진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100km/h까진 풍절음이 들리지 않는 것도 실내 정숙성을 높이는 또다른 비결. 실내 곳곳에 위치한 스피커에 익숙한 보스 로고가 보여 노이즈 캔슬링이 더해진 건가 싶었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이렇게 우수한 정숙성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스마트스트림 G2.5T-GDi 엔진은 최고출력 281마력/5,800rpm, 최대토크 43.0kg·m/1,700~4,000rpm의 성능을 내는데, 조금 한적한 도로로 들어서 가속 페달을 깊이 밟자 생각보다 차체가 힘있게 치고 나가며 경쾌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특히 이런 패밀리 SUV를 지향하는 차에서 운전의 즐거움은 좀 무리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신형 싼타페라면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호쾌한 가속감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속도를 빠르게 올려붙이는 상황에서 변속기가 굼뜨면 흥이 떨어지는데, 8단 DCT는 흐름을 이어갈 수 있도록 빠른 변속을 제공해 계속 속도를 올려붙이고 싶은 욕심이 들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안전인 만큼 속도를 줄이고 달리기로 했다. 조금 전 가속 테스트로 계기판에 표시되는 연비가 바닥을 쳤지만,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기능을 켜고 흐름에 맞춰 달리기 시작하자 서서히 연비가 오르기 시작해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에는 10km/L까지 회복되는 걸 볼 수 있었다. 물론 디젤과 비교하면 연비가 좋다 할 수 없지만, 오는 동안 가속 테스트를 진행했고 2.5 가솔린 터보엔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좋은 점수를 줄 만하다.

핸들링은 과한 정도는 아니나 살짝 무게감이 느껴지는 수준이다. 높은 차체 특성을 고려할 때 급커브 등에서의 좌우 쏠림, 롤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커브를 빠져나온 직후에 금방 자세를 바로잡기 때문에 너무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와인딩 코스도 즐겁게 달릴 수 있겠다. 제동력이 부족하다 느껴지는 수준은 아니지만, 조금 더 우수한 제동성능을 원한다면 20인치 혹은 21인치 휠과 알콘 모노블록 브레이크 패키지를 옵션으로 변경할 수 있으니 이쪽을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주행보조기능은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과 고속도로 주행 보조 2를 비롯해 차로 유지 보조 2 등 다양해 장거리 운전에서 피로를 느낄 일이 있을까 싶다. 특히 크루즈 컨트롤 기능은 과속 단속 구간에선 알아서 속도를 줄여주니 단속에 대한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어 맘이 한결 편해진다. 차로 유지 보조 기능은 과하게 개입하지 않는 편이며, 고속도로 주행 보조 2의 자동 차로 변경 기능은 여러 번 사용하면서도 매끄럽게 작동하지만 성격이 급한 기자는 변경하는 속도가 느리다고 느껴져 자꾸 먼저 스티어링 휠을 움직이게 된다. 충돌방지 보조 기능은 전방, 후측방, 후방 주차, 교차 차량, 정면 대향차, 추월 시 대향차, 측방 접근차 등 다양하며 충돌 방지를 위한 회피 조향 보조도 갖추고 있어 안심하고 운전할 수 있다.

관건은 가격이 될 듯한데, 당장 한집안 식구인 팰리세이드가 3,896~5,106만 원이고 신형 싼타페가 3,546~4,373만 원으로, 두 차의 가격 차이가 350~633만 원으로 그리 크지 않아 소비자 입장에선 어떤 걸 선택할지 상당히 고민될 것이다. 3열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면 당연히 팰리세이드가 정답이겠고, 3열을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빈도가 정말 적다면 싼타페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성능적인 수치도 295마력, 36.2kg·m의 팰리세이드와 비교할 때 결코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고, 아직까지 배기량을 기준으로 매겨지는 자동차세나 연비 등을 고려하면 당연히 싼타페 쪽이 우세다.

밀레니엄과 함께 시작되어 23년째 현대차 SUV 라인업의 한 축을 담당해온 싼타페의 이번 변화는 조금 당황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한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혁신을 거듭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랜저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 싼타페 역시 시간이 조금 지나면 소비자들에게 서서히 받아들여지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사라진 디젤 엔진의 자리를 충분히 메울 두 파워트레인의 채용은 앞으로 다른 모델에도 적용을 넓혀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싼타페의 역사

1세대(SM)

1999년 북미 국제 오토쇼에 HCD-4 콘셉트카로 처음 출품되었는데, 크게 호평받은 디자인을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양산차로 2000년 출시해 높은 인기를 얻었다. 국산 SUV 중 처음으로 모노코크 차체를 적용해 승차감과 연비를 향상시켰다. 처음엔 V6 2.7L LPG 엔진만이 선보였으나, 이후 2.0L 디젤, V6 2.7L 가솔린 엔진이 추가됐다. ‘라라랄라~’로 시작되는 경쾌한 CM송도 많은 사랑을 받아 음원을 별도로 공개하기도 했다.

 

2세대(CM)

2005년 드디어 싼타페의 첫 번째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전장과 전폭을 늘리며 1세대보다 차체가 커졌으며, 후방을 향해있던 3열 시트를 전방을 향하게 바꿔 편의성을 높였다. 라인업에 2.2L 디젤을 추가해 선택지를 넓혔고, 2009년에는 국산 SUV 중 처음으로 50만 대 판매 달성의 대기록을 세우며 인기를 입증했다.

 

3세대(DM)

2012년 뉴욕 국제 오토쇼에서 처음 공개됐는데, 기본형에서 전장과 휠베이스를 늘려 맥스크루즈라는 별도의 모델로 출시했다. 당시 신형이었던 YF 쏘나타의 전륜구동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됐으며, 현대차 디자인 철학 ‘플루이딕 스컬프처’가 적용되어 지금 봐도 세련된 느낌을 주는 외관을 갖췄다. 현대차 제품 중 최초로 내비게이션과 IT 시스템을 연계한 블루링크가 적용되어 언제 어디서든 원격 시동, 공조제어, 도어 개폐 등 차량 제어가 가능했다.

4세대(TM)

2018년 출시됐으며, 싼타페에선 처음으로 환경규제 충족을 위해 요소수 방식을 적용했다. 디자인에선 캐스케이딩 그릴을 확대하고 현대차의 새로운 SUV 디자인인 상하 분리형 헤드램프를 적용했다. 그동안 적용됐던 6단 자동변속기를 8단 자동변속기로 바꿔 연비를 향상시켰고, 랙 구동형 전동식 파워스티어링을 새로 탑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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