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지극히 상업적인 물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로지 실용적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차량의 외관부터 실내까지 소비자의 마음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각 브랜드의 특색을 담은 디자인을 구상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실용적인 목적에 미학적인 목적이 더해져 하나의 자동차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고민의 결과물을 국내 최대의 디자인 행사인 광주 비엔날레 현장에 르노코리아자동차(이하 르노코리아)가 부스를 마련하고 전시를 진행한다고 밝혀 자동차와 디자인이 어떻게 조합을 이룰지 궁금했다. 물론 자동차와 디자인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예술의 영역에 자동차를 녹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아 보였다. 대체 어떤 전시로 자동차와 예술을 조화시켰을지 궁금해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6일 르노코리아의 주요 제품들과 함께 광주광역시로 향했다.

첫 번째 시승차는 XM3로, 첫 등장을 떠올려보면 정말 파격 그 자체였다. 쿠페형 SUV가 일부 수입 브랜드에서나 출시됐을 뿐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던 상황에 국산 브랜드에선 처음으로 XM3를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기존 박스 형태의 SUV 스타일에 아쉬움을 느끼던 소비자들에게 이만한 모델이 없었고, 덕분에 출시 이후 국내외에서 높은 인기를 얻으며 르노코리아의 주력 모델 중 하나로 급부상했고, 이에 힘입어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까지 함께 선보이며 열풍을 이어나가고 있다.

외관이야 긴말이 필요할까. 물론 실용성을 추구하는 사람에게야 쿠페형 SUV의 디자인이 그리 달갑진 않겠지만, XM3는 세단보다 높은 차체로 넓은 시야를 확보하는 동시에 세단에 가까운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어 디자인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확실히 직선과 각을 강조한 다른 SUV들과 달리 곡선과 곡면 위주로 디자인을 구성한 덕분에 부드러운, 여성적인 느낌이 강하다.

르노 차량의 특징을 고스란히 모아놓은 실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역시 센터 스크린이다. 대부분이 가로 형태의 센터 스크린을 채용하는 것과 달리, 르노를 비롯한 일부 브랜드들만이 세로형을 채택하는데, 각각의 장단점이 있으나 이쪽이 지도에서 더 많은 정보를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특히 처음 가보는 곳에선 주변에 어떤 정보들이 있는지 넓은 지도에서 확인해야 하는 상황들이 있는데, 가로로 긴 형태보다는 세로로 긴 형태가 주변을 더 많이 표시하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시승차는 1.6 GTe 인스파이어 모델로, XM3가 처음 출시됐을 때 TCe260 모델은 경험해봤지만, 1.6 GTe는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성능적으로야 TCe260이 30마력 가까이 더 높으니 당연히 더 이득이겠지만. 높은 성능을 포기하면 가격이 낮아져 구매 부담이 줄어든다. 그렇다고 실제 주행에서 ‘토끼와 거북이’처럼 크게 격차가 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1.6 GTe만의 매력도 있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바로 반응하는 자연흡기 방식이다. 1.3 가솔린 터보 엔진의 TCe260이 분명 성능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급가속 같은 상황에선 한 박자 느린 반응에 조금 아쉬움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런 면에서 페달 조작에 따른 즉각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점이 좋다.

첫 번째 목적지인 카페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음으로 시승한 모델은 SM6다. 그동안 르노코리아를 지금껏 견인해 오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한 모델이지만, 현행 모델이 나온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지라 인기가 예전만은 못하다. 그래도 꾸준한 판매를 보여주는 것을 보면 분명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 있을 터. 먼저 탄 XM3와 비슷한 느낌의 외관에서 같은 핏줄임을 느끼게 한다. 확실히 이러한 곡선미를 살린 디자인은 남성보다는 여성 쪽에 좀 더 어필하는지 주변 여성 지인들에게 물어도 각을 살린 디자인보다는 이런 곡선미를 살린 디자인 쪽에 손을 드는 경우가 더 많았다.

여기에 세단이 주는 안정감은 말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나라는 이상하리만치 세단의 선택 비중이 높은데, 국산 브랜드 중 세단을 내놓는 곳이 단 세 브랜드뿐인 상황에서 남들과는 다른 중형 세단을 선택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에게도 어필할만 하다. 원가를 낮추기 위해 토션빔 방식이 적용되어 논란의 여지가 되기도 했지만, Z링크 방식을 적용하면서 멀티링크 방식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승차감으로 세단다운 차분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시승차는 TCe300으로 1.8 가솔린 터보 엔진이 탑재되어 최고출력은 225마력/5,600rpm, 최대토크 30.6kg·m/2,000~4,800rpm의 성능을 낸다. 그냥 적당한 수준(?)의 엔진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확실히 TCe260 1.3 터보엔진과는 차원이 다른 파워를 보여준다. 고속도로에서 한적한 구간을 사용해 가속해봤는데, 차분함만을 보여줄 듯한 외관과 달리 제법 시원하게 차체가 쭉쭉 뻗어 나간다. 안전을 위해 얼른 규정속도에 맞췄지만 가속이 필요한 상황, 추월이나 정체 구간을 벗어난 직후 등에서 힘이 부족함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시승을 마치고 드디어 목적지인 광주광역시에 도착했다. 하룻밤을 묵은 후 다음날 광주 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향하니 입구부터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했다. 바로 르노코리아의 QM6와 XM3가 넓은 마당에 전시된 것. 먼길 달려온 기자들을 위한 것은 아니고 고객들이 제품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도록 마련된 ‘르노 시티 로드쇼’다. 서울에서 출발해 두 번째 일정이 이 곳 광주에서 진행중이고, 이후 대전, 경기도 기흥, 경남 김해 등의 지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이쪽이 아니다. 자리를 옮겨 비엔날레 전시장 내부로 들어서니 저 안쪽 별도의 공간에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디자인 스케치로 가득한 벽이 둘러싼 부스로 가까이 다가서니 내가 아는 그 차가 맞는 듯한데, 느낌이 많이 다르다. 바로 르노코리아자동차의 XM3 이테크 하이브리드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무광 색상에 차체에 선으로 표현되는 곳들에 모두 테이프가 붙어있다. 실제 차량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선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기 위해 목업 차량에 테이프를 붙이는데, 이를 실제 차량에 적용시켜 과정을 상상할 수 있도록 표현한 것이라고. 개성을 드러내는 걸 선호하는 젊은 층의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을 듯한데, 이 디자인으로 당장 출시할 계획은 없다고 한다.

차량 위쪽은 독특한 조형물이 매달려 있다. 분명 정면에서 바라보면 르노코리아의 ‘태풍의 눈’ 로고인데, 살짝 방향을 바꿔 차량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바라보면 로고가 점차 르노의 ‘로장주(마름모)’ 로고로 바뀌게 된다. 분명히 하나의 조형물인데 입체적인 배치를 통해 2개의 다른 모습으로 보이게 한 아이디어가 인상적이었다.

전시도 둘러봤으니 이젠 서울로 복귀할 차례. 올라갈 때 함께할 차는 QM6다. 다른 차는 이 정도로 자주 만나지 않는데 묘하게 QM6와는 인연이 있는 건지 여러 차량을 함께 시승하는 상황에서도 매번 시승할 기회를 얻고 있다. 물론 새로운 차를 만나는 것도 반가운 일이지만, 이렇게 장거리를 달려야 하는 상황에서라면 익숙한 차가 더 낫다.

르노 특유의 곡선 위주의 디자인을 살린 전체 외관은 달라지지 않았으나, 지난 3월 더 뉴 QM6가 새로 출시되면서 전면부 디자인이 변경되며 달라진 인상을 보여준다. 특히 라디에이터 그릴의 폭을 좌우 헤드라이트까지 크게 넓혀 훨씬 넓어보이며, 하단 범퍼도 이에 맞춰 디자인을 변경했다.

실내는 큰 디자인 변화는 없으나, 이전의 8.7인치 세로형 디스플레이가 9.3인치로 더 커졌고, 하단의 단축 버튼도 숫자를 늘려 직관적인 조작이 더욱 편리해졌다. 여기에 탑재된 편의기능도 크게 늘어났는데, 티맵 내비게이션이나 음성인식 프로그램인 누구, 각종 음악 앱이나 팟캐스트 등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도 새로 추가됐다.

시승차는 LPe 모델로, 2.0 LPG 엔진이 탑재되어 최고출력 140마력/6,000rpm, 최대토크 19.7kg·m/3,700rpm의 성능을 낸다. 성능 면에서는 가솔린 모델에 비해 약간 낮은 정도지만, QM6 LPe 모델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저렴한 유류비가 아닐까. 요즘처럼 고유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가솔린의 절반 수준에 가까운 저렴한 유지비는 유지비 부담을 크게 줄여준다. 여기에 가솔린과 엇비슷한 성능을 갖추고 있어 추월 등 가속이 필요한 상황에서 적당한 성능을 보여주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LPe여서 좋은 점은 진동이 적고 실내가 훨씬 정숙하다는 점이다. 디젤엔진을 탑재한 모델들은 이 두 가지가 항상 부담일 수밖에 없는데, LPe에서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 특히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선 진동이나 소음이 은근히 피로를 유발하는데, 그런 점에서 LPe는 오히려 장거리를 달리기가 훨씬 좋다.

물론 구매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LPG 충전소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인데, 의외로 LPG 충전소는 서울 시내 곳곳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다만 종로구, 중구 등 사대문 안쪽은 충전소가 없어 조금 아쉬운 부분이긴 하지만, 사대문 안쪽에만 생활환경이 구축된 사람이 아니라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가격 비싸기로 소문난 사대문 안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는 개인차량이 과연 얼마나 될까. 만약 정말 충전소가 없다면 서울 시내에서 택시들이 그렇게 많이 움직일 수 있을까. 관심을 조금만 갖고 살펴보면 곳곳에서 충전소를 찾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0년째 LPG차를 보유해온 입장에서 이런 오해는 답답하기도 하다.

이번 신형에는 초창기 아쉬운 부분이었던 주행보조 기능에서도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탑재되어 장거리 운행의 부담을 크게 덜었다. 르노코리아 차량의 장점 중 하나는 이런 크루즈 컨트롤 기능과 함께 속도 제한 기능이 함께 있어 취향대로 골라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차로 유지 보조 기능이 탑재되지 않은 건 조금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리고 르노코리아 차량 공통으로 탑재된 차간거리 경보 시스템의 경우 앞차와의 거리를 부딪칠 때까지 걸리는 시간으로 보여주는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위험하게 운전했는지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다른 브랜드에도 널리 보급되면 좋을 것 같다.

XM3부터 SM6에 QM6까지, 르노코리아의 다양한 제품들을 타고 광주에서 특별한 XM3를 만나고 오니 앞으로 출시될 오로라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과물이 더욱 궁금해진다. 지리와의 첫 번째 협업의 결과물을 통해 그동안과는 어떤 점에서 달라질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은 얼마나 뛰어난 효율을 보여줄지 같은 것들 말이다. 여기에 광주비엔날레에서 만난 XM3처럼 많은 노력과 고민을 통해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디자인도 더해질 것이다. 물론 르노 특유의 유려한 디자인은 그대로 이어지겠지만, 그동안과는 다른 약간의 특별함을 더한 모습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여기에 XM3와 SM6, QM6 역시 업그레이드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역할을 잘 해낸다면 르노코리아가 ‘태풍의 눈’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시장에 큰 돌풍을 일으키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라이드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