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원에는 다양한 놀이기구들이 마련되어 각각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포르쉐 월드 로드 쇼(이하 PWRS)도 그렇다. 하나의 서킷에서 진행되지만 각 제품이 갖는 특성이 명확하게 달라 차를 바꿔탈 때마다 변화를 극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포르쉐 마니아라면 놓칠 수 없는 이 행사에 초대받아 지난 12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스피드웨이로 방문했다.

이번 행사의 주인공은 당연히 가장 최근에 출시된 카이엔이다. 포르쉐의 사랑이자 자랑이고 스포츠카 브랜드의 구원자이자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카이엔은 첫 출시 당시 적잖은 우려와 혹평이 쏟아졌으나, 뚝심있게 밀어붙인 포르쉐의 결단 덕분에 지금은 브랜드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며 포르쉐 브랜드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핵심 모델이자 효자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카이엔이 대대적인 변경이 이루어진 신제품이 출시됐으면 당연히 주목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와 함께 타이칸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에도 출시되어 다양한 환경에서의 시승이 진행됐지만 트랙에서의 본격적인 시승은 오늘이 처음이다. 이번 PWRS를 위해 독일 본사에서 타이칸을 비롯한 총 26대의 시승차와 타이칸을 위한 충전 시스템까지 공수되어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포르쉐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이 중에는 국내 미출시 차량도 적지 않은데, 특히 911이나 718 시리즈 중에도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흥미로운 모델이 여럿 함께했다. 이걸 멀리 독일까지 가지 않고도 국내에서 경험해볼 수 있는 것만으로 이 PWRS에 참가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기자가 속한 조는 타이칸 시리즈의 시승으로 첫 번째 행사를 시작했다. 지난해 같은 장소에서도 타이칸을 만나긴 했지만 당시엔 직선에서의 가속 테스트 정도에 불과했던 터라 아쉬움이 남았었다. 이번 행사에는 GTS부터 터보, 터보 S, 투리스모 등 온갖 타이칸들이 한 자리에 모였으나 그동안 궁금했던 운동 성능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기대감이 커진다. 차에 올라 본격적으로 트랙을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타이칸에도 인공 사운드를 더해 탑승자들의 주행 즐거움을 더욱 배가시키지만, 그래도 내연기관보다는 훨씬 조용하니 귀는 편하지만 조금 아쉬움이 든다. 그래도 이런 아쉬움은 타이칸의 강력한 가속 성능덕에 어느 정도 위로가 된다. 내연기관에선 상당히 높은 400마력의 수치를 기본형 모델(타이칸 기본사양, 오버부스트 시)에서 낼 정도고, 최상위 모델인 터보 S는 최고출력 761마력(560kW), 최대토크 107.1kg·m의 경악스러운 성능을 보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타이칸의 또 다른 매력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움직임이다. 이미 예전 첫 출시 직후 진행된 일반도로 시승에서도 경험했던 부분인데, 훨씬 급한 커브가 많은 서킷 주행에서도 2톤이 넘는 무게를 단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다. 빠르지만 안정적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모습에서 역시 포르쉐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미 스포츠카 쪽에서 오랜 시간 쌓아온 섀시 기술이나 서스펜션 세팅에 대한 노하우가 충분히 쌓여있기에 타이칸에도 이런 것들이 충분히 녹아들어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기차’는 어느 브랜드든 쉽게 만들 수 있지만, ‘전기 스포츠카’는 전기차에 기대하는 것 이상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타이칸은 전기 스포츠카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는 파워와 운동성능을 두루 갖추고 있다.

타이칸 시리즈의 시승을 마치고 다음은 2도어 모델의 시승이다. 전기 스포츠카 다음이 내연기관 스포츠카의 시승이라니,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아쉬운 1%가 채워져 더욱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전기 스포츠카에 비해 토크는 좀 부족하지만, 엔진의 강력한 사운드가 더해지니 그 이상의 성능을 발휘하는 느낌이다. 자동차 마니아들이 전기차에 아쉬움을 느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여기에 이날 시승에선 예상외의 모델도 등장했다. 바로 718 카이맨 GT4 RS로, 국내에는 정식으로 출시되지 않은 모델이지만 PWRS를 위해 본사에서 공수됐다. RS, ‘Race Sport’라는 이름에 걸맞은 강력한 성능도 인상적이지만, 실제 운전하면서 가장 크게 다가오는 건 여과 없이 그대로 운전석으로 전해지는 4.0 박서 엔진의 날 것 그대로의 소리다. 보통 엔진 소리가 실내로 크게 들어오면 불편함이 느껴지기 마련인데, GT4 RS는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전율이 몰려온다. 물론 이 차를 선택하는 사람이라면 트랙에서의 주행을 염두에 두고 구입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주행에서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줄 수 있는 소리 역시 중요한 부분인데 이 부분을 포르쉐에서는 꽤나 자극적인 맛으로 준비해놓은 것이다. 가속 페달을 밟을때마다 포효하는 엔진과 흡기 사운드의 절묘한 조화는 강력한 쾌감으로 다가온다.

조금 더 탔으면 좋으련만,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 시승은 이번 PWRS의 주인공인 카이엔이다. 초기형에 비해 훨씬 스포티해진 외관에서 카이엔 역시 포르쉐의 DNA를 지니고 있음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여기에 넓은 실내공간과 적재공간으로 편의성과 실용성을 갖추고 있지만, 트랙은 물론이고 SUV답게 오프로드까지 주파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여기에 부분변경이 이뤄지며 성능도 소폭 상승했고, 인테리어 구성도 조금씩 변경됐다. 하지만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살펴보기엔 오늘은 너무 바쁜 날이다. 우선은 성능에만 집중하기로 하고 트랙에 들어선다.

SUV는 구조적 한계 상 세단형 차량에 비해 운동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높은 차체로 인한 좌우 쏠림은 왜 레이스용 차량들이 지상고를 낮추는지 이해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카이엔은 분명 SUV임에도 좌우 쏠림이 예상보다 크게 억제된 덕분에 빠른 방향 전환이 필요한 서킷에서의 주행도 어렵지 않게 소화한다. 이럴 수 있는 건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과 전자식 댐핑 조절 시스템인 PASM, 좌우 흔들림인 ‘롤’을 억제해 자세를 빠르게 바로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PDCC 등 다양한 장비와 기능들이 더해졌기 때문. 평소에는 출퇴근과 같은 일상에서 사용하다가 주말에는 서킷에서의 스포츠 주행이나 오프로드까지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모델이다.

오전 세션의 마지막은 카이엔의 일반도로 주행으로, 행사장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주변을 달리면서 일반도로에서의 승차감은 어떤지를 경험해보기 위한 것이다. 준비된 차량의 숫자가 많지 않아 절반의 인원이 먼저 일반도로 시승을 진행했고, 기자를 포함한 나머지 절반은 스피드웨이의 메인 스트레이트 구간으로 향했다. 이곳에 놓여진 단 한 대의 카이엔은 가장 강력한 터보 GT로, 4.0 V8 바이터보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673마력/6,000rpm, 최대토크 86.7kg·m/2,300~4,500rpm의 강력한 성능으로 제로백(0-100km/h) 3.3초라는 압도적인 가속력을 보여주는데, 이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먼저 인스트럭터의 시범 이후 자리를 바꿔 두 번의 론치 컨트롤로 가속 성능을 시험하게 된다.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고 머리를 헤드레스트에 붙인 후 발과 팔로 몸을 단단히 고정하면 강력한 파워를 체험할 모든 준비 끝. 인스트럭터의 신호와 함께 거대한 카이엔의 덩치가 무섭도록 빠르게 앞으로 발사된다. 머리를 헤드레스트에 미리 대고 있지 않았다면 출발과 동시에 부딪혀 꽤나 정신이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압도적인 파워가 순식간에 뿜어진다. 매번 놀라는 부분이지만 이런 론치 컨트롤이 인당 3회니까 하루 최소 40~60회, 열흘 남짓 진행되는 행사니 400~600번을 멈춤 없이 진행하는 것인데 계속해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내구성에 엄지를 치켜들게 된다.

가속 성능을 경험하고 잠시 기다리니 일반도로로 시승을 나갔던 팀들이 복귀해 자리를 바꿨다. 운전에 필요한 세팅을 마치고 인스트럭터의 차량을 따라 도로로 나섰다. 다른 차량도 있으니 빠르게 달리는 건 위험하고, 규정속도와 흐름에 맞춰 달리며 승차감을 살펴보기 위한 시승이다. 보통 이런 스포츠 성향이 강한 차들은 높은 접지력 확보와 함께 차량의 흔들림을 억제하기 위해 서스펜션 등 하체 세팅이 단단하게 이뤄지는 편이지만, 문제는 이 카이엔이 서킷 등 스포츠 주행만을 목표로 하는 차는 아니라는 점이다. 일상은 물론이고 서킷과도 같은 스포츠 주행도 소화해야 하지만, SUV인 만큼 오프로드도 소화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앞서 소개했던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과 이를 조절하는 PASM이 탑재된 것이다. 세팅한 주행모드나 도로 상황에 따라 감쇠력을 스스로 바꿔 불필요한 차량의 움직임을 억제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스포츠나 스포츠 플러스 모드라면 당연히 커브를 더욱 빠르고 민첩하게 돌아나갈 수 있도록 서스펜션 세팅을 단단하게 변경하겠지만, 노멀이나 오프로드 모드라면 운전자의 승차감을 높이고, 특히 오프로드에선 세팅이 너무 단단해 차체가 통통 튀게 되면 운전자가 제대로 조작하기 어려워지는 만큼 서스펜션을 부드럽게 세팅해 차체와 탑승자 모두 안정된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돕는다.

이런 특성들은 실제 주행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조금 전까지 폭발적인 가속력과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주던 카이엔이 일반도로 위에선 그저 나긋나긋하게 움직이는 SUV로 모습을 바꾼다. 과속방지턱이나 배수용 홈 등 각종 진동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몸으로 불편한 진동이 전혀 올라오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 격한 주행을 하다가 갑자기 너무 주행이 편안하고 느긋해지니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주행을 간신히 마쳤다.

마지막 인스트럭터의 택시 드라이빙 체험과 함께 2023 PWRS의 모든 행사가 마무리됐다. 매년 개최되는 행사지만 매년 설레는 마음으로 방문할 수 있는 건 이름만 같을 뿐 행사에 마련되는 차량이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국내에선 만나볼 수 없는 차량들까지도 함께 마련되는 점으로 미디어든, 고객이든 놓칠 수 없는 행사로 자리매김한 것. 혹시 아직까지 이 행사를 잘 몰랐던 포르쉐 고객이라면 내년에는 꼭 놓치지 말고 참석해보길 바란다. 포르쉐라는 브랜드가 주는 즐거움을 마치 뷔페처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이런 행사가 그리 흔하지 않으니 말이다. 여기에 인스트럭터의 안내에만 잘 따르면 포르쉐의 진면모를 서킷에서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만큼 평소 트랙 주행이 엄두에 나지 않았던 사람도 포르쉐를 타고 서킷을 달리는 경험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짜릿함과 흥분으로 가득한 PWRS, 2024년엔 어떤 새로운 차량들과 함께 서킷을 달릴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되는 건 나뿐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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