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과 함께 즐기는 여행은 특별한 추억을 남기지만, 모터사이클을 대여하는 것부터 어떤 코스로 어떻게 다녀야 하는지 일일이 챙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아쉽게도 이런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국내에선 그동안 관광지로 유명한 곳들 위주로만 둘러보는 정도거나, 운이 좋아 길을 잘 아는 지인이 있다면 뒤를 따라다니는 정도여야 즐길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브랜드 차원에서 모터사이클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있다. 바로 BMW모토라드로, 이미 올해 초 국내외 모터사이클 투어로 유명한 박경수 대표와 함께 제주도에 투어의 거점인 ‘얼리 블랙’을 마련해 제주도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R 18 시리즈를 타고 제주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국내 라이더는 물론이고 전 세계 라이더를 대상으로도 운영하고 있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모터사이클과 함께 즐길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이 좋은 반응을 얻은데 힘입어 이번에 새로운 투어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바로 그동안 모터사이클로 다닐 수 없었던 비무장지대를 투어하는 'DMZ 평화 투어'다. 본격 시행에 앞서 모터사이클 전문 미디어와 일부 고객을 대상으로 먼저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강원도 철원으로 향했다.

투어의 시작은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카페 바잘트 38.1에서 시작된다. ‘바잘트’는 불어로 현무암을 뜻하는데, 철원 지역은 과거 화산 폭발로 인해 제주도 못지않은 화산암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38.1은 이 카페가 위치한 위도 38.1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곳이 꽤나 북쪽에 위치해있음을 의미한다. 이미 모터사이클이 전시된 라이더 카페나 현무암빵이 맛있는 카페로 잘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인 이곳에 도착하니 오늘 타고 투어를 즐길 신형 R 나인티와 R 18 시리즈들이 입구에 줄지어 서 있었다.

DMZ에 모터사이클 진입이 불가하다는 건 얼마전 강원도 고성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철원 지역의 민통선 역시 원칙적으로는 통과가 불가능하지만, 이번 투어를 위해 바잘트 38.1에서 지역을 관할하는 6사단과의 협의를 진행해 이번 투어 프로그램이 마련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은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것이고, 정식 투어는 홈페이지 공지 이후 10월부터 월 1회 진행될 예정이라고 하니 관심 있다면 홈페이지를 잘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투어는 약 3시간 가량 진행된다. 당연히 모터사이클 투어인 만큼 헬멧이나 글러브, 재킷 등 라이딩 장비를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고, 또 하나 갖춰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블루투스 헤드셋이나 무선 이어폰이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많은 곳들을 지나치는데, 많은 곳들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어 함께 동행하는 지역 관계자의 설명을 그룹통화를 통해 다같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6·25 때 격전지는 물론이고 드넓은 철원평야 곳곳에 담긴 이야기들을 듣노라면 투어의 즐거움이 더욱 배가된다. 여기에 안전한 라이딩을 위해 BMW모토라드에서 라이딩 스쿨을 진행하고 있는 국내 모터사이클 레이스의 전설 조항대 선수가 투어 대열을 이끌기 때문에 안전 문제도 걱정할 필요 없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드디어 DMZ 입구에 도착했다. 필요한 서류들을 제출한 후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동행할 군 관계자의 차량이 도착하자 드디어 닫힌 문이 열리고 모터사이클에게만 제한되어있던 그곳 DMZ로 모터사이클이 줄지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무언가 특별한 광경이 보이길 기대했지만 여기 역시 사람 사는 곳 아닌가.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도 잠깐이고, 곧 능선에 늘어선 철책선이 현재의 위치를 깨닫게 한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제 2 땅굴이다. 다들 수학여행이나 현장학습 등으로 한 번쯤 방문해본 기억이 있는 곳이다. 북한이 기습 남침을 위해 뚫었지만 땅속에서 들리는 폭발음으로 존재가 드러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는 곳인데, 바로 옆으로 철책과 아군 초소가 보이는 이 곳에 도착하니 여기가 휴전선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임이 실감난다. 어려서 방문했을 땐 이곳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이를 먹은 후 다시 찾으니 분단의 현실을 보다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월정리역으로, 남방한계선에 가장 가까이 위치한 우리나라의 마지막 기차역이다. 과거 전쟁으로 인해 소실된 역사를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 복원해놓은 것이라고. 역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6.25 전쟁 당시 탈선한 열차의 잔해가 눈에 들어온다. 녹슨 잔해 곳곳에 남아있는 총알의 흔적들이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옆으로는 전쟁 당시의 탄피와 유해 발굴 과정에서 발견한 철모 등 철제품들을 함께 녹여 만든 평화의 종을 볼 수 있는데,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이 종으로 전 세계에 평화의 소리를 퍼뜨리게 되길 기원한다.

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펼쳐진 곳으로 잘 알려진 백마고지로 발걸음을 옴겼다. 접전 끝에 결국 우리의 영토가 됐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조금 떨어진 위치에 당시 승리를 기념하는 전적비와 전사자를 추모하기 위한 위령비, 기념관 등을 마련해 놓았다. 오르막길을 계속 올라 정상에 다다르면 왜 남북이 백마고지를 놓고 치열한 전투를 펼쳤는지를 금방 깨달을 수 있다. 넓은 철원평야 가운데에 완만한 뒷동산 같아보이는 곳이지만, 이곳을 빼앗기게 될 경우 아군의 보급선에 큰 위협이 되는 상황인 만큼 이를 두고 치열한 전투가 펼쳐져 10일의 전투 동안 12번이나 주인이 바뀔 정도였다. 결국 적군 14,000여 명, 아군 3,4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며 아군이 이 곳을 탈환해 인근 연천군과 철원군을 우리의 영토로 가져오게 된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철원의 특산품 중 하나인 고추냉이 농장이다. 전국에서도 여기 철원에서만 고추냉이 재배가 가능한 이유는 가장 청정한 1급수가 현무암층을 뚫고 나와 대량으로 용출되기 때문. 여기에 지하수의 용존산소량이 다른 지역의 지하수보다 훨씬 높아 우수한 품질의 고추냉이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맛이 궁금하다면 생 고추냉이를 직접 구매하는 방법도 있지만, 출발지인 바잘트 38.1의 고추냉이 아이스크림이나 바로 옆 식당의 고추냉이를 이용한 메뉴들을 즐겨보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3시간 여 진행된 DMZ 투어가 마무리되어 출발지로 복귀했다. 시간적으는 짧지만 어쩔수는 없는 게 투어 코스가 비무장지대이기 때문에 지정된 시간만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경험해본 적 없는 색다른 투어여서 재밌게 달릴 수 있었고, 한국을 찾은 외국인 중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상위에 이름이 오르는 DMZ를 모터사이클과 함께 달릴 수 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충분한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이런 DMZ 평화 투어를 비롯한 많은 활동들이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통일을, 평화를 이끌어내는 거대한 태풍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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