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기차의 단점들이 두드러지며 기세가 주춤하는 모양새다.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우려되던 충전 시간과 인프라 문제에 대한 보도들이 이어지며 판매량이 예전같지 않은 것. 이런 상황에 반대급부를 얻는 곳도 있는데, 바로 하이브리드 시장이다. 기존 내연기관만으로 구성된 모델에 비해 연비는 훨씬 우수하고, 전기차처럼 충전으로 인한 고민이 필요 없으며, 내연기관과 모터의 조합으로 아쉽지 않은 성능까지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장을 두고 많은 브랜드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혼다에서 세대 교체를 맞이한 CR-V 하이브리드의 공식 출시를 알렸다. 시승회 현장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특히 업그레이드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어느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승회 현장을 찾았다.

신형의 변화점 첫 번째는 외관에서 찾을 수 있다. 매끈한 느낌을 보여주던 이전 세대와 달리, 신형에서는 각 잡힌 모습의 전면부가 확 달라진 인상을 만드다. 특히 헤드라이트와 그릴의 조합이 이전에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됐던 것과 달리 각을 살린 디자인으로 변경됐고, 그릴 역시 육각형으로 구성된 블랙 그릴이 적용되어 훨씬 단단하고 강인한 표정을 만들었다. 하단 범퍼 역시 이런 표정 변화에 맞춰 좌우로 넓어 보이는 디자인을 적용했다. 후면은 테일라이트의 디자인을 날렵하게 다듬고 번호판 장착 위치를 창문 쪽으로 더 끌어 올렸다.

측면에서도 이전의 곡선미가 사라진 대신, 강인함을 살리기 위한 직선 라인들이 눈길을 끈다. 루프라인 역시 전에는 A필러부터 아래로 살짝 떨어지는 느낌을 주었던 반면, 이번 모델에서는 최대한 직선에 가깝게 변경됐으며, 측면을 가로지르는 캐릭터 라인도 헤드라이트 아래쪽에서 시작하던 것을 헤드라이트 위쪽에서 시작하도록 바꿔 차체가 더욱 길어보이도록 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시각적인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수치에도 변화가 있다. 차량 크기는 전장 4,705mm, 전폭 1,865mm, 전고 1,690mm로 이전 세대보다 전장은 75mm, 전폭은 10mm 늘어났고, 특히 실내 공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휠베이스도 40mm 늘어난 2,700mm여서 훨씬 여유있는 공간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특히 2열 레그룸도 이전보다 15mm 늘어났다고 하니 동승자의 편의성도 더욱 향상된 것이다.

실내는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먼저 버튼식이던 변속기가 다시 레버 방식으로 환원됐다.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조작하는 맛도 있고 확실하게 조작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재차 확인할 필요가 없어 더 좋다. 송풍구 아래에 위치하던 센터 스크린은 위치를 바꿔 대시보드 위쪽으로 올라갔고, 대시보드 중앙에 벌집 모양 그릴 장식을 더해 송풍구를 숨기는 깔끔한 디자인을 완성했다. 계기판도 중앙부와 좌우 보조 스크린 조합에서 좌우 스크린에 중앙 보조 스크린 조합으로 바뀌었는데, 이전 방식을 선호하는 사용자의 피드백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공조장치 조절부는 LCD창과 버튼, 다이얼의 조합인데, 주행 중 사용이 편리하다는 점에선 이런 구성을 유지한 점은 반갑긴 하지만, 하나 아쉬운 점은 이번 세대에서도 통풍 시트는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코드에도 적용되는 기능인데 CR-V에는 넣어주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평소엔 중형 SUV에서 뒷좌석에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다. 기자의 키가 196cm로 평균을 훌쩍 뛰어넘다 보니 앞 좌석 사람 키가 평균 이상만 돼도 뒷좌석에 타는 것이 몹시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좌석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선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운전을 하며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많은데, 신형 CR-V에서라면 그럴 필요가 없을 듯하다. 기자의 키에 맞춘 상태로 운전을 하고 내린 직후에 바로 뒷좌석으로 들어갔음에도 레그룸이 꽤나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차의 경우 이런 상황에선 뒷좌석에 타도 등받이에 무릎이 닿거나, 심한 경우 무릎이 꽉 끼어 탈 수 없는 상황도 있는데, 확실히 신형 CR-V 하이브리드는 실내 공간을 넓히기 위해 많은 노력이 이루어졌음이 느껴진다. 여기에 리클라이닝 기능까지 갖추고 있으니, 성인 4명이 타더라도 그 누구도 불편하지 않게 장거리를 다닐 수 있을 듯하다.

적재 공간도 문을 열자마자 넓다는 느낌이 확 든다. 이전 세대 모델이 기본 940L의 용량을 제공했는데, 이번 세대는 1,113L로 173L나 늘어나 25인치 소프트 캐리어 적재 시 최대 4개(이전 3개)까지 적재가 가능하다고. 내연기관 모델과 달리 바닥면 아래 공간에 파워 유닛을 배치해 여기까지 사용할 수 없는 점은 아쉽지만, 기본 공간이 워낙 크기 때문에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듯하다.

이번 CR-V 하이브리드에서 가장 큰 변화는 파워트레인에 있다. 우선 2.0L 앳킨슨 사이클 엔진과 결합한 새로운 E-CVT의 변화가 크다. 기존에는 구동용 모터와 발전용 모터를 동일축에 배치해놓았는데, 신형에서는 이를 분리해 평행축에 나란히 배치해놓았다. 이로써 얻게 된 이점은 엔진의 좌우 길이가 상당히 길었던 이전 세대와 달리 신형은 다운사이징이라도 한 것마냥 길이가 확 짧아졌다는 점이다. 덕분에 엔진룸 배치가 훨씬 수월하고 유연해진 부분도 있고 이보다 더 큰 장점은 엔진 토크를 향상시키기가 더 수월해졌다는 것이다. 동일축에 배치할 땐 토크를 올리기 위해 엔진의 좌우 길이를 늘려야 하는데, 차체의 크기나 부품 배치를 고려하면 마냥 늘릴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길이를 늘리지 않아도 되는 모터의 평행축 배치 덕분에 어려움 없이 토크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는 것.

여기에 저속과 고속으로 나뉜 직결 클러치의 채용도 주목할만한 점이다. 보통 풀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엔진의 출력이 모터를 거쳐 구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내연기관의 출력을 기대하기 힘든데, 혼다에 탑재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모터를 거치지 않고 바로 타이어로 구동력을 보낼 수 있도록 직결 클러치가 적용된다. 여기에 이번 신형에는 특히 트레일러 견인처럼 많은 힘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저속 클러치와 고속 클러치가 각각 탑재되어 상황에 맞게 적용되기 때문에 견인력도 향상됐다고 한다.

실제 주행에서는 이러한 변화점들이 크게 와닿는데, 시승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느낀 건 주행성능이 크게 향상됐다는 점이다. 하이브리드 모델은 성능보다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앳킨슨 사이클 방식의 엔진을 적용하고, 동력이 모터를 통해 구동축으로 전달되니 급가속과 같은 상황에서도 내연기관만큼 시원스런 가속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저속과 고속으로 나뉜 직결 클러치가 채용된 덕분에 엔진의 동력이 손실을 최소화한 채 구동축으로 전달되어 상황에 맞는 최적의 성능을 제공하기 때문에 훨씬 시원하게 가속한다. 이전 세대를 시승할 때 ‘강력한 파워를 원한다면 CR-V 터보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설명했지만, 신형에선 그럴 필요가 없겠다. 하이브리드 역시 내연기관 못지 않은 우수한 파워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힘이 부족하면 가장 아쉬움을 느끼는 순간이 추월 가속이나 고속도로 합류를 위해 가속하는 상황인데, 기대 이상의 준수한 가속력이 매끄럽게 뻗어나오기 때문에 아쉬움을 느낄 일이 없을 듯하다. 재밌는 점은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능으로 실내가 시종일관 조용한 편이지만, 스포츠 모드에서 가속을 할 때 주행의 즐거움을 높이기 위해 인공 사운드를 더하는 ‘액티브 사운드 컨트롤’ 기능을 갖춰놓았다는 점이다. 시승을 하게 된다면 꼭 스포츠 모드로 바꿔 하이브리드답지 않은 재미를 느껴보길 권한다. 그리고 주행모드 변환 시 계기판의 변화도 주목할 것.

14.5km/L(복합)였던 공인 연비는 신형에선 14.0km/L(복합)로 감소했다. 이유는 커진 차체로 인해 차량 무게 역시 증가했기 때문. 물론 연비야 높으면 높을수록 더 좋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이 정도의 연비 감소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0.5km/L 정도의 연비라면 주행 습관을 개선하는 것, 급가속과 급제동을 자제하고 규정 속도, 일정한 속도에 맞춰 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회할 수 있으니 말이다.

혼다의 주행 보조 및 안전 기능인 혼다 센싱에도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어 안전성을 강화했다. 최근에 빠질 수 없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이나 차선 유지 보조(LKAS), 추돌 경감 제동 시스템(CMBS) 등은 그대로 이어지고, 여기에 정체구간에서 차량 간격과 차선 중앙 유지를 돕는 트래픽 잼 어시스트, 그리고 저속에서 근거리 외벽과의 충돌을 방지하는 저속 브레이킹 컨트롤이 CR-V에 처음으로 적용됐다. 더불어 피할 수 없는 사고라면 최대한 탑승자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하는데, US-NCAP에서 5 스타를, IIHS의 충돌 테스트에서도 전영역 Good 등급과 함께 새로 추가된 측면 충격 테스트에 맞춰 새로운 구조를 적용해 이 또한 Good 등급을 받아 최고 등급인 탑 세이프티 픽 플러스(TSP+)를 획득하며 충격으로부터의 탑승자 보호 성능 역시 세대 변화에 맞춰 함께 진화했음을 보여주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이전 세대와 전반적인 구성은 비슷하지만 하단에 단축 메뉴를 더해 사용 편의성을 높였으며, 화면 해상도를 높여 차량의 정보를 더욱 선명하게 표시해 알아보기 쉽다. 또한 유/무선 애플 카플레이와 유선 안드로이드 오토를 지원하는데, 고객 사용 빈도를 고려한 것인지 내장 내비게이션을 탑재하지 않았다. 오디오는 보스 프리미엄 시스템으로, 총 12개 스피커를 배치하고 대용량 서브 우퍼 박스를 더해 우수한 공간감과 함께 깊이있는 중저음을 제공한다.

그동안 경쟁 브랜드들에 비해 혼다의 변화 속도는 느린 편이었지만, 이번 신형 CR-V 하이브리드를 통해 예전보다는 변화의 속도가 상당히 빨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고객 피드백을 바탕으로 이전으로 되돌리거나 이전 상태를 유지한 채 개선점을 보탠 부분들에서는 유연성까지 확보하며 조금씩 속도를 높혀갈 준비까지 하고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긍정적인 변화들은 반가운 것들이고, 이러한 변화의 첫 번째 결실인 CR-V 하이브리드를 만나고 나니 이후 등장할 다음 하이브리드 모델 역시도 호평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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