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마다 주력 모델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고, 혼다 역시 마찬가지다. 자동차 부문에서는 두 모델 CR-V와 어코드를 꼽을 수 있는데, 지난 CR-V에 이어 드디어 어코드의 신형도 국내에 출시 소식을 알렸다. 이전 세대와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지난 16일 직접 시승회 현장을 찾아 실물을 살펴봤다.

브랜드마다 장수 모델이 한둘쯤 있는데, 어코드 역시 혼다 자동차 라인업에선 상당한 장수모델에 속한다. 어코드가 1976년 처음 발매됐으니 이제 곧 50주년을 맞이하는 상당히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번 신형은 11세대째로, 내외부는 물론이고 하이브리드 모델의 경우 CR-V 하이브리드에서 먼저 선보인 신형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새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더해지는 등 대대적인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

외관에선 먼저 차분해진 전면부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차량 크기는 전장 4,970mm, 전폭 1,860mm, 전고 1,450mm로 이전 세대보다 전장이 65mm 늘어났는데, 레전드가 단종되고 그 자리를 어코드가 담당하게 됐으니 그에 걸맞은 품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디자이너들의 생각이었을까? 평범해 보이기도 하지만 최근 몇몇 브랜드에서 너무 과한 디자인 채용으로 소비자들의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모습을 보면 어코드 쪽이 오히려 나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주간주행등이 더해진 헤드라이트는 육각형 형태의 그릴과 조합을 이루는데, 그릴은 멀리서 보면 가로형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좌우 사선이 더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강인함과 샤프함을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라고. 후면에선 패스트백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최근 디자인 추세에 발맞추는 모양세다. 테일라이트는 좌우에 배치하고 이를 이어주는 라이트바가 더해져 차체가 한결 넓어보이는 효과를 낸다.

실내에선 준대형에 걸맞은 넓은 실내공간이 매력적이다. 특히 뒷좌석 탑승자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모델인 만큼 2열 시트 레그룸이 1,000mm가 넘고 무릎 간격도 150mm에 가까울 정도로 넓게 구성했다. 키 196cm의 기자도 실제 촬영을 위해 뒷좌석에 탑승했을 때 공간이 좁다고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면 말이 더 필요할까. 다만 패스트백 스타일인 만큼 헤드룸에선 아쉬움이 있었지만, 일반적인 수준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대시보드 주변은 먼저 시승했던 신형 CR-V 하이브리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10.2인치 TFT 계기판과 12.3인치 센터 디스플레이를 조합했는데, 이 둘을 하나로 잇는 요즘 추세에서도 이런 분리형 구성을 유지하는 것은 최대한 운전자가 불편함 없이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하겠다는 혼다의 보수적인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6인치 크기로 탑재되어 도로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고도 주요 정보들을 파악할 수 있어 좋다. 아래 송풍구와 트림을 CR-V 하이브리드와 마찬가지로 전면 그릴과 같은 형태로 덮어 통일감을 부여했다. 변속기는 신형 CR-V와 마찬가지로 버튼식에서 변속 레버로 복귀했는데 아직은 예전 스타일이 더 반가운 부분이다.

차량을 살펴봤으니 이젠 본격적으로 시승에 나설 시간이다. 수시로 전기모터가 개입하며 연비를 끌어올리는 혼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하지만 신형에서 달라진 점은 고속도로에 접어들 때처럼 빠른 가속이 필요한 순간에 느끼게 된다. ‘하이브리드’하면 효율을 위해 성능을 희생했다고 느낄 때가 많지만, 혼다는 효율과 성능을 양립시키기 위해 노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탑재된 2.0 엔진은 성능보다는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앳킨슨 사이클 방식이 적용됐지만, 혼다는 여기서 퍼포먼스를 끌어내기 위해 직결 클러치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는 전기모터의 효율이 떨어지는 고속 구간에서는 엔진의 동력이 모터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바퀴로 전달되도록 설계한 것인데, 덕분에 기존에 경험했던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비해 훨씬 시원한 가속을 보여준다. 물론 이전 세대보다 강력해진 파워도 빼놓을 수 없다. 2.0 엔진의 성능은 최고출력 147마력에 최대토크 18.4kg‧m이고, 여기에 2개의 전기모터가 뿜어내는 184마력, 34kg‧m의 파워가 수시로 개입하며 효율성과 성능을 모두 끌어올린다. 정지상태에서 급가속하면 등받이를 몸이 꾹 누르는 것이 느껴질 만큼 예상보다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쭉쭉 뻗는 가속력은 100km/h를 넘기면서도 좀처럼 기세가 줄지 않고 계속해서 속도계를 밀어올린다.

재밌는 점은 별도의 수동 모드를 제공하지 않는 대신 엔진 브레이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능을 스티어링 휠 뒤편의 패들로 제공한다. 보통 하이브리드 모델이나 전기차에선 회생 제동의 형태로 제공하는데, 4단계 정도가 일반적인 것과 달리 어코드 하이브리드에선 총 6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최고 단계인 6단계에선 브레이크 조작 없이도 상당히 강력한 감속을 보여주는데, 원페달 드라이빙을 선호한다면 스포츠 모드에서 6단계를 선택하고 왼쪽 패들을 길게 당겨 고정시키는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더 강력해진 하이브리드 시스템도 주목할 점인데, 여기에 또 하나의 놀라운 변화점이 있으니 바로 모션 매니지먼트 시스템이다. 스티어링 휠을 조작함에 따라 파워트레인이나 브레이크를 조절해 타이어의 그립력을 높이는 것인데, 쉽게 말하자면 서킷 등에서 코너 진입 전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속도를 낮추는 단계도 이렇게 그립력을 높이는 단계인 것이다. 물론 운전자가 이를 수행해야겠지만, 모든 운전자가 숙련자는 아닌 만큼 차량이 최적의 그립력으로 코너를 돌아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물론 이 기능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고 기존에도 AHA(Agile Handling Assist)라는 이름의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지만, 이번 기능은 기존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작동하게 한 것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예를 들어 눈길이나 젖은 노면, 짧은 코너가 이어지는 와인딩 구간, 회전 반경이 갑자기 좁아지는 복합 코너 등 다양한 노면에 대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대관령 와인딩 구간에서 이 기능을 직접 테스트해보니, 부드러우면서도 민첩한 움직임으로 와인딩을 공략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비가 뿌렸는지 노면이 살짝 젖어있는 상황에서도 움직임은 매끄럽고 자연스러우면서도 빠르게 머리를 돌려 나가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시승 전 혼다 관계자가 “핸들링이 정말 뛰어나다”고 말했던 것이 충분한 이유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다른 차량들로 인해 속도를 그리 높일 수 없었지만 이렇게 놀라운 운동성능을 보여주는 모습에서 기회가 된다면 강원도 곳곳의 유명 와인딩 코스들을 신형 어코드와 함께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신형에선 각종 주행보조 및 안전 기능들이 집약된 혼다 센싱에 시내에서의 정체 상황에까지 대응하는 트래픽 잼 어시스트가 새로 추가되어 운전자의 피로도를 크게 줄여준다. 이번 시승이 강원도 일대에서 진행되어 이 부분까지 확인하진 못했지만, 기본적인 ACC나 LKAS 같이 자주 쓰는 기능들의 경우 이전보다 더 업그레이드됐는데, ACC의 경우 가속 및 감속감을 향상시켰고, LKAS의 경우 직진과 커브에서의 선회 성능을 보다 향상시켰다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별도의 기본 내비게이션을 장착하진 않았지만, 유무선으로 커넥티비티 기능을 지원하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다. 터치에 대한 반응 속도도 빠르고 해상도도 우수해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차량과 관련된 정보도 3D 애니메이션으로 표시해 세련된 느낌을 살렸다. 여기에 화면 일부를 나눠 원하는 정보를 추가로 표시할 수 있어 취향에 따라 편리하게 쓸 수 있었다.

시승을 마치고 연비를 확인하니 17.2km/L로, 여러차례의 가속 테스트와 와인딩 구간 주행 등 연비에 악영향을 줄만한 요소들이 여럿 있었음에도 공인 연비보다 훨씬 우수한 결과를 보여줬다. 여기에 저공해자동차 2종(터보 모델은 저공해 3종)도 획득했으니 공영주차장이나 공항주차장에서도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점도 반갑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가격은 5,340만 원인데, 내연기관 모델과의 가격 차를 절약되는 연료비로 금방 만회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젠 잘 알려진 부분이고, 여기에 충전으로 인한 스트레스 없이 효율적인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은 많은 소비자들이 하이브리드 모델을 구입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고 있다.

전기차가 늘어나는 만큼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하며 기세가 주춤하는 상황에, 대안으로 하이브리드를 고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물론 운전의 재미보다는 높은 효율을 이유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둘 모두 포기하기 힘들다면 혼다 어코드 하이브리드가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혼다 하이브리드 특유의 높은 효율성에 대해선 긴 말이 필요 없을뿐더러, 특히 민첩한 핸들링과 모션 매니지먼트 시스템의 조합은 가끔씩 고속도로를 벗어나 와인딩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할 만큼 매력적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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