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과학잡지에서나 보던 먼 미래는 어느새 현실이 되어 있다. 물론 당시에 예측했던 미래 기술 중에는 일찌감치 구현된 것들도 있고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도달한 것도, 아직 갈 길이 먼 것들도 있다. 특히 자동차 영역에서는 ‘자율주행’의 영역에서 일정 수준 운전자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단계에 도달했지만, 아직 완전한 자율주행에 도달하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다. 브랜드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자율주행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혼다의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살펴볼 기회가 생겨 지난 10월 28일 일본 도치기현에 있는 혼다 R&D 센터에 방문했다.

혼다 R&D 센터 내 수소 충전소

R&D 센터의 드넓은 부지에 들어서니 높은 나무들이 빙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무래도 신기술뿐만 아니라 신제품에 대한 연구개발이 함께 진행되는 곳인 만큼 보안 역시 신경 써야 하는데, 지역 주민들에게 위화감을 덜기 위해 담장을 설치하는 대신 나무를 심어 이를 해결해 독특한 풍경이 만들어졌다. 마치 수목원에 온 듯한 느낌을 받으며 안쪽으로 들어서니 다양한 시설들이 눈에 들어온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위장막을 쓴 차량들이 눈에 띄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주말이라 출근한 직원들이 없어 행사 참가자들의 차량 외에는 보이지 않아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그래도 몇 가지 힌트들은 얻을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수소연료전지차에 대한 연구로, 시설 내부에 수소 충전소가 설치된 점에서 꽤나 적극적인 연구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혼다의 다양한 안전 기술을 체험하기 위한 곳이었다. 여기선 다양한 방법을 통해 탑승자는 물론이고 보행자의 안전까지 연구하고 있었다. 재밌는 점은 혼다라는 회사의 주력 제품 중 하나가 모터사이클인 만큼 이에 관한 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는데, 혼다의 대표적인 모터사이클 안전 기술 중 하나가 에어백이다. 모터사이클 에어백은 혼다 골드윙에 장착한 것이 유일한데, 이는 에어백 모듈을 장착할 공간을 일정 이상 확보할 수 있는 차체가 있어야 하기 때문.

하지만 R&D 센터에 방문해서 보니 개발 중인 제품은 소형 스쿠터인 PCX에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소형화된 에어백 모듈이었다. 핸들바 중앙에 장착해 사고 시 전개되어 탑승자가 차량에서 이탈되거나 핸들바나 계기판 등에 부딪혀 상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로, 크기는 승용차 클랙슨 정도의 크기여서 핸들바가 노출된 형태의 제품이라면 대부분 장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단순히 모듈만 장착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관련한 센서나 배선 등이 추가되어야 하고 가격 문제 등도 고려해야 해 상용화에 도달하기까진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일단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세계 1위 모터사이클 브랜드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CCTV 등 공공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험 상황을 미리 감지해 운전자에게 경고한다

시뮬레이터 화면(왼쪽)과 실제 시스템이 정보를 처리하는 화면. 많은 차량 및 보행자 등의 데이터를 종합해 안전 운전에 도움을 준다

다음으로 살펴본 것은 네트워크를 활용한 안전운전 시스템이다. 공공에 개방된 교통 데이터를 인터넷으로 전송받아 이를 안전운전에 활용하는 것이다. 혼다-e를 타고 시험 구간으로 나서자 차량에서 전방에 위험 차량이 오고 있다는 안내가 나오며 부드럽게 속도를 줄인다. 좌회전을 위해 정차해있는 대향 차량 뒤편에서 모터사이클이 교차로로 접근하고 있었던 것. 그렇게 모터사이클이 통과한 이후에도 다시 교차로를 건너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잠시 멈춰섰다 출발점으로 복귀하는 것으로 체험이 끝이 났다. 별 것 아닌 듯한 체험이었지만, 제공되는 공공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서 이를 토대로 차량이 스스로 판단해 멈춰 설지 등을 판단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성능의 시스템이 요구되는 것으로 보인다. 체험 후 시뮬레이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도심지에선 수십~수백 m 반경의 차량과 보행자의 데이터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닐뿐더러, 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위험 요소의 여부를 판단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혼다에서는 이를 위해 시뮬레이터와 실제 주행 테스트를 병행하며 시스템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보행자와의 거리에 따라 다른 크기로 램프가 점등되어 보행자가 감지됐음을 알린다. 보행자의 숫자가 많으면 작은 점으로 표시된다.

물론 이러한 네트워크가 구축된 곳에서야 걱정을 덜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라면 보다 능동적으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혼다에서는 전면 그릴 디스플레이와 헤드라이트를 통해 이를 해결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먼저 보행자가 도로를 건널 때 운전자와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 예를 들어 운전자는 출발하려 하는데 보행자는 계속 정차해있으리라 판단하고 도로를 건너다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그릴 디스플레이를 통해 운전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보행자가 도로를 건너면 디스플레이에 보행자가 표시되는 방식을 통해 차량과 운전자가 보행자를 감지했음을 알려주는 방식이다.

보도 쪽으로 그물 무늬의 빛을 조사해 부주의한 보행자에게 차량이 오고 있음을 알린다

여기에 스마트폰에 눈을 둔 채 도로로 접근하는 보행자에게 경고를 주는 방식도 독특한데, 단순히 하이빔을 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보행자 쪽으로 그물무늬의 빛을 비춰 보행자의 시야가 순간적으로 밝아졌다 어두워지는 것이 반복되며 차량이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밝은 스마트폰에 눈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는 하이빔과 같이 일정한 빛만으로는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기 어렵고 자칫 앞 차량에 불편을 주게 될 수 있는데, 혼다는 이런 색다른 아이디어를 연구하고 있다는 점이 기발하면서도 참신했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R&D 센터 내 시험 주행장으로, 이번에 체험할 프로그램은 혼다 e:NY1의 시승이다. 그동안 국내에 출시된 혼다의 제품은 내연기관이나 하이브리드가 전부여서 혼다의 전기차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그리고 조금 전 기술 체험에서 잠깐 경험했던 혼다-e의 경우 중장거리보다는 도심형에 가까운 모델인데, 이러한 모델들의 성적표가 그리 좋지 않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일정 이상의 주행거리와 넉넉한 실내 공간을 갖춘 e:NY1을 통해 전기차 시장 확보에 나설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시승은 좌우 커브가 이어지는 테스트 코스에서 진행됐다. 먼저 주행모드를 연비(ECON) 모드에 놓고 달리기 시작하니 가속이 한없이 부드럽기만 하다. 전기차를 타는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 중 하나가 가속할 때의 울컥거림인데 혼다는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음이 느껴졌다. 또 하나 재밌는 점은 회생제동 모드로, 대부분 브랜드들이 그런 것처럼 e:NY1 역시 스티어링 휠 뒤 패들을 통해 이를 조절하는데 조절 단계가 딱 두 단계 뿐이다. 그것도 확 달라졌다는 체감이 크게 다가올 정도만큼은 아니기도 하고, 원 페달 드라이빙이 가능할 만큼의 강한 회생제동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원 페달 드라이빙 기능이 편의성에서는 우수하겠으나 자칫 급제동이 필요한 순간에 페달을 잘못 밟아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원 페달 드라이빙 기능을 배제한 점은 안전을 중시하는 혼다다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좌우로 이어지는 핸들링은 부드러우면서도 민첩했는데, 일부러 조금 급한 코너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로 진입했을 때도 높은 안정감으로 거동이 흐트러지지 않은 채 코너를 돌아나갔다. 일명 ‘무스 테스트’로 불리는 순간적으로 좌우 연속 조향이 필요한 구간에서도 통과 순간이나 통과 후에도 움직임에 불안함이 없어 혼다의 기본기는 어디 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긋하게 달리다 두 번째 바퀴부터는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바꿔주니 가속 페달에 대한 반응이 꽤나 빠릿빠릿하다. 차량 앞쪽에 탑재된 엔진은 최고출력 150kW에 최대토크 310Nm로 일반적인 중형 SUV 정도의 성능을 갖추고 있어 스포츠 성향을 강조한 전기차들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볍게 와인딩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갖추고 있었다. 배터리는 68.8kWh 리튬이온 방식을 탑재해 WLTP 기준 412km를 주행할 수 있어 국내에 출시된다고 하더라도 최소 300km 초중반대의 주행거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조금 여유가 생겨 차량을 살펴볼 시간을 얻었는데, 우선 외관에선 혼다 특유의 디자인을 전기차 특성에 맞춰 잘 버무려냈음이 느껴졌다. 특히 전면부의 경우 그릴이 필요 없어 이 부분이 막혀있는데, 대신 굴곡으로 혼다 패밀리룩 스타일을 남겨놓았다. 측면은 부드러운 굴곡으로 볼륨감을 살려놓았고, 후면은 혼다의 H 로고를 빼고 혼다 글자를 완성한 점도 기존과는 다른 느낌을 보여준다.

실내는 차에 처음 올랐을 때부터 가장 놀랐던 것이 바로 센터 스크린이다. 세로형으로 거치된 크기는 15.1인치로, 그동안 봐왔던 센터 스크린 중 가장 큰 사이즈다. 화면은 3분할로 나뉘어 내비게이션, 차량 상태, 공조장치 등을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해놨는데, 이렇게 큰 스크린을 탑재한 이유에 대해 혼다 관계자는 “운전자가 보다 많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기판은 10.26인치로 작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지만 센터스크린이 워낙 크다보니 상대적으로 많이 작아보이는 느낌이다. 변속기는 이전 세대에 사용하던 버튼식이 적용됐는데, 향후 제품 업데이트 과정에서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렁크는 B 세그먼트 SUV라는 점을 감안해도 꽤 공간이 넉넉하다. 여기에 예상외의 아이디어가 더해진 것이 바로 트렁크 커버로, 대부분 차량 내부에 장착하고 테일게이트와 끈으로 연결해 들어 올리는 방식을 택하는데, e:Ny1은 트렁크 커버를 아예 테일게이트에 고정하는 아이디어를 더해 많은 짐을 싣을때도 불편하지 않아 보였다. 다만 보닛 아래에는 별도의 적재 공간(프렁크)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시승을 함께 진행한 국내 미디어들의 전반적인 평가는 “국내에서도 성공할만한 모델”이라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이 모델이 중국과 유럽 시장을 대상으로 만들어졌고, 국내에 들여온다고 하더라도 가격이 어떻게 책정되느냐가 관건인데, 다른 브랜드들의 엔트리 전기차와 비슷한 가격, 혹은 그보다 낮은 가격으로 책정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될 만큼 완성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다음으로는 혼다 센싱 기술의 테스트다. 물론 기존 출시된 제품들에도 혼다 센싱 기술이 투입되어 있지만, 오늘 테스트할 기능은 진화한 추돌 경감 긴급 제동 시스템(CMBS)이다. 평소 시승에선 테스트하기 어려운 기능인 만큼 어느 정도일지 확인해보기 위해 준비된 N박스 차량에 올랐다. 첫 번째는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다. 운전자가 인식하지 못한 이륜차가 반대 차선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상황을 가정한 긴급 제동 시스템의 작동이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긴급 제동 시스템이 보여주는 강력한 제동력은 훨씬 강력했다. 단 1.3초만에 발휘되는 100%의 제동력에 엉덩이가 들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곧이어 진행된 두 번째 상황은 앞 차로 가린 장애물에 대한 긴급 제동이다. 앞 차를 따라 달리다 갑자기 앞차가 차로를 바꾸며 회피하자 그 자리에 멈춰서있는 모터사이클이 나타났다. 자동차에 비해 크기가 작은 모터사이클이지만 조금 전과 동일하게 강력한 제동력으로 차체를 멈춰세운다. 긴급한 상황에서 장애물을 감지해 멈춰 세우는 것은 어렵지 않겠으나, 모터사이클처럼 작은 물체를 감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확실히 차와 모터사이클 양쪽을 모두 생산하는 6휠 브랜드답게 이러한 부분까지 연구해 모두의 안전을 고려한 기술을 적용한다는 점은 박수를 보낼만한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진행한 프로그램은 혼다 자율주행 기술의 체험이다. 국내에는 2.5단계 정도인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정도의 기술이 적용된 제품들만이 선보였지만, 일본 현지에서는 3단계 기술이 적용된 레전드가 출시된 상황이다. 과연 혼다는 어느 정도 수준으로 자율주행 3단계를 완성시켰는지 확인하기 위해 차량에 탑승했다. 오벌트랙에서 진행된 시승에는 혼다 관계자들이 운전하는 차량들이 합류했다. 실제 도로에서 테스트를 진행하는 건 안전 상 문제될 수 있으니 트랙 내에서 상황을 재현해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 동승한 인스트럭터의 설명에 따라 속도를 높이자 손을 떼도 좋다는 신호음이 들려온다. 스티어링 휠의 버튼을 눌러 자율주행 기능을 작동시키니 트랙 위 차선을 따라 부드럽게 달리기 시작했다. 곧 함께 달리던 차량들이 속도를 늦춰 탑승한 차량을 감싸는 형태를 취한다. 이에 맞춰 차량도 속도를 늦춤과 동시에 다시 운전대를 잡으라는 경고음과 램프가 작동한다. 스티어링 휠을 잡고 양 옆의 차량이 사라지자 다시 자율주행이 가능하다는 신호음이 들려온다. 즉 주변 차량이 없을때는 자율주행 시스템이 전담해주지만, 돌발상황이 생길 수 있는 상황에서는 운전자의 개입을 요청하는 식이다.

자율주행 모드에선 운전자가 두 손을 떼도 주행을 이어나간다

우측 상단 초록 스티커 버튼이 자율주행 기능, 아래 파란 스티커 버튼이 자동 차선 변경 버튼이다

이후 양 옆의 차량이 사라지자 자동 차선 변경 기능을 사용해보기로 했다. 스티어링 휠에 오토 레인 체인지 버튼을 누르자 우측 차선(좌측 통행인 일본은 우측으로 추월해야 한다)으로 넘어가 앞차를 추월하곤 원래 차선으로 복귀해 달린다. 이 과정에서 운전자가 한 것은 오로지 버튼을 누른 것일 뿐, 가속 페달이나 스티어링 휠의 조작은 하나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짧은 자율주행 체험을 마쳤다. 자율주행에 필요한 상당 부분들은 모두 구현했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일단 실행 가능한 조건이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 정도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일반적인 판매 방식이 아닌 리스 방식으로만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물론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점차 완성형에 가까워질테니 이러한 상황을 비판하기만은 어렵지 않을까.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R&D 센터에서의 다양한 기술 체험들이 해가 저물 무렵이 돼서야 끝이 났다. 좀처럼 외부로 공개하지 않았던 R&D 센터를 공개하는 동시에 다양한 기술들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까지 소개하는 모습에서 혼다의 미래에 대한 대비가 결코 소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동화의 속도면에서는 다른 경쟁사들에 비해 조금 늦고 있지만 그 또한 차근차근히 준비해나가고 있었고, 관련한 기술들, 특히 자율주행이나 안전 기술면에 있어서는 경쟁사들보다 앞서나갈만큼 준비가 갖춰진 점에서 혼다라는 브랜드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전동화의 상황에서 이러한 준비들을 얼마나 상품에 잘 담아내느냐에 따라 미래 자동차 시장의 구도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으리라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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