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브랜드는 물론이고 럭셔리 브랜드나 스포츠가 브랜드들이 너나 할 것 없이 SUV 개발에 뛰어드는 이유는 역시 돈이다. 기존 제품으로도 충분한 수익이 나면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기존 제품인 세단이나 스포츠카만으로는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포르쉐를 시작으로 발빠른 브랜드들이 SUV를 만들어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것을 보고 있으면 브랜드 경영진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고집을 부릴 수만은 없는 일. 

이런 분위기 전환에는 소비자들의 선택도 한몫했다. 국내 시장의 경우 세단 중심이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SUV쪽을 고민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지가 크게 늘어난 느낌이다. 이는 대중 브랜드와 프리미엄 브랜드를 가리지 않는데, 국내 유일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판매량을 봐도 이런 추세가 느껴진다. 지난 2023년 브랜드 내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한 차량은 단연 G80이지만, 개별 모델이 아닌, 장르로 분류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브랜드 내 SUV 라인업인 GV 시리즈가 세단 라인업 G 시리즈의 판매량을 넘어섰고, 개별 모델 판매량을 따져도 GV80과 GV70이 G80에 이어 2위와 3위를 차지하는 상황이다. 여러 이유로 소비자들이 SUV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데, SUV의 약점 중 하나였던 디자인을 보강한 신제품 제네시스 GV80 쿠페가 GV80 부분변경 모델과 함께 출시됐다. 어떤 매력을 가진 모델인지 시승차를 받아 직접 경험해봤다.

세단의 단점이라 할 수 있는 적재량을 보완한 해치백이나 스테이션 왜건이 나왔던 것처럼, 쿠페형 SUV는 SUV의 단점으로 꼽히는 디자인 요소를 강화하기 위해 나온 모델이다. 물론 이로 인해 SUV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적재량의 일부를 희생해야 하지만, 디자인을 중시하는 소비자에게는 훌륭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내공간 일부만 희생하면 SUV의 넓은 시야와 높은 지상고로 세단에 비해 갈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 여행을 다니다가 비포장길을 만났을 때 세단은 하체 손상이 부담스러워 발길을 되돌려야 하지만, SUV라면 도전해볼 수 있어 여행, 캠핑 등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은 단연 SUV이다. 프리미엄 SUV를 두고 많은 브랜드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국산에서도 선택지가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GV80이 높은 판매량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이번에 차량 후면을 다듬은 GV80 쿠페의 등장은 신선함을 준다.

외관은 제네시스 브랜드 전체를 관통하는 디자인 철학인 역동적 우아함(Athletic Elegance)을 바탕으로 한다. 즉 시각적으로도 유려한 곡선으로 아름다움을 보여주면서 차량이 갖고있는 파워나 스포티함을 함께 담아냈다. 이러한 디자인에 루프라인에서 뒤로 갈수록 낮아지는 쿠페 스타일이 더해지니 디자인 철학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주는 느낌이다.

디자인의 핵심인 두 줄 라인은 이번 GV80 쿠페에서도 헤드라이트부터 측면을 지나 테일라이트까지 이어진다. 헤드라이트는 둘 사이로 위치한 주간주행등이 2줄 디자인의 포인트를 강조하는 역할도 겸한다. 크레스트 그릴은 은색 메시 안쪽으로 검은색의 메시가 숨은 이중 구조를 적용한 점이 눈에 띈다. 측면에선 운전석 위부터 부드럽게 떨어지는 루프라인과 차체 상하를 관통하는 캐릭터 라인과 은색 가니시가 역동성을 보여준다. 뒷유리 위쪽으로 살짝 솟은 2개의 분할형 스포일러를 통해 1차로 걸러진 공기의 흐름은 테일게이트 끝단의 스포일러를 통해 차체에서 떨어져나가도록 설계됐는데, 시각적으로 차량의 스포티함을 더욱 강조한다. 시선을 아래로 살짝 내리면 크레스트 그릴을 연상케 하는 좌우 양쪽의 듀얼 팁 머플러까지, 이 차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혼동이 오기 시작한다.

실내는 프리미엄 브랜드다운 고급스러움과 차분함을 잘 버무려낸 모습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를 위한 27인치 대형 스크린으로, 기존에는 스크린이 길게 이어져있어도 표시되는 것은 계기판 쪽 따로, 인포테인먼트 쪽 따로 구성된 2개의 스크린이 하나로 이어져 보이게만 했지만, 이건 정말로 27인치 스크린 하나가 탑재되어 있다.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계기판 따로, 인포테인먼트 따로 표시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원한다면 좌우 스크린을 하나로 사용해 보다 많은 정보를 표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부분에서 가장 와닿았던 건 내비게이션 모드로, 일반적으로 표시되는 경로 주변 정보보다 더 넓은 지역의 정보를 볼 수 있어 잘 모르는 곳을 여행할 때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공조장치는 터치 방식과 물리 조작계가 혼합된 방식이고, 그 아래로 덮개를 열면 수납함 안으로 무선충전 패드와 USB 포트를 마련해놓았고, 자외선 살균기능도 갖추고 있다. 센터 콘솔에는 앞쪽으로 인포테인먼트 조작계와 지문 센서, 뒤로 다이얼 방식의 변속기가 배치됐는데, 같은 다이얼 방식이라 시승 초기엔 주차장에서 인포테인먼트 다이얼을 돌리는 상황도 종종 발생했다. 컵홀더 아래로는 주행모드와 터레인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버튼과 다이얼이 있는데, 본격적인 오프로더가 아니어도 산이 많은 지형과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 시장에서는 있는 쪽이 더 도움되는 기능이다.

프리미엄 모델답게 뒷좌석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음이 느껴진다. 뒤쪽 공조장치 조작계 역시 콘솔박스 뒤편에 터치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트는 전동식 조절은 물론이고 열선과 통풍 기능까지 제공한다. 여기에 더욱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뒷좌석 시트 조절이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에서도 가능하다는 점으로, 뒷좌석 탑승자 편의를 위해 시트 각도, 전후 조절 등의 다양한 세팅이 가능한데 의전용까지 염두에 둔 부분으로 보인다.

물론 이 차의 메인은 앞좌석이다. 앞좌석 시트에는 에르고 모션 시트가 적용되어 다양한 방향으로의 시트 조절은 물론이고, 속도 감응형 볼스터가 내장되어 주행모드나 속도에 맞춰 볼스터가 자동으로 부풀어 상체가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히 잡아 운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여기에 장거리 주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마사지 기능이 있어 허리나 허벅지에 걸리는 부담을 덜어준다. 

이렇게 내외부 모두 잘 갖춰져 있지만 가장 중요한 달리기 실력이 부족하면 반쪽짜리 차에 불과하다. 실력도 모습만큼 제대로인지 확인하기 위해 도로로 나섰다. 3.5 가솔린 트윈 터보엔진은 380마력/5,800rpm의 최고출력과 54.0kg‧m/1,300-4,500rpm의 최대토크를 낸다. 강력한 엔진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는 건 급가속으로, 주행 중 60km/h에서 급가속을 했음에도 등받이에 몸이 푹 묻힐 만큼 인상적인 파워를 보여준다. 가속 페달을 깊이 밟으면 100km/h를 넘어도 지치지 않고 속도계 숫자가 계속 치고 올라가는 모습에 안전을 위해 속도를 낮춘다. 이정도도 놀라운데 지난 G90 신형부터 탑재되기 시작한 48V 일렉트릭 슈퍼차저가 더해지면 출력은 35마력, 토크도 2.0kg‧m 상승한다고 하는데 경험해볼 기회가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이렇게 SUV가 경쾌하게 달릴 수 있으려면 엔진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특히 고속 주행에서의 안정감은 서스펜션이 큰 역할을 하는데, GV80 시리즈에는 노면 상황을 미리 파악해 이에 맞춰 감쇠력을 변경하는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과 2세대 엔진 마운팅 컨트롤 유닛이 더해졌다. 앞쪽의 경우는 이미 현대차그룹 내에서 두루 사용되고 있던 기술인 만큼 적용이 놀랍진 않으나, 엔진 마운트까지도 이러한 전자제어가 이루어진다는 점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이러한 노력들이 더해진 덕분에 좌우 커브길을 고속으로 내달리는 상황에서도 차체는 시종일관 차분한 모습이다. 욕심같아선 강원도 산속 와인딩으로 가득한 산길을 내달려보고 싶지만 날씨는 영하 10도 주변에 머물러 있어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한 번씩 가속을 해보게 되는 건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으로 파워풀한 배기음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실제 배기음이 아닌 건 알지만, 가속 타이밍에 맞춰 들려오는 배기음이 오래간만에 내연기관 엔진의 매력을 상기시킨다. 그렇다고 N 시리즈 같은 팝콘 배기음이 아닌, 차분하면서도 낮고 강한 배기음, 마치 거대한 육식동물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느낌이 브랜드 이미지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살짝 자극적인 맛을 보여주는 부분이 좋다.

주행 보조기능에 대해선 말이 필요할까. 꽉 막히는 시내에서든, 몇 시간씩 달려야 하는 장거리 주행에서든 현대차그룹 주행보조 기능이면 피곤할 일이 없을 듯하다. 우선 ACC 기능의 경우 국도나 고속도로 상에선 내비게이션 정보를 기반으로 위험구간이나 과속단속 구간에 맞춰 속도를 조절해주고 편도 2차선 이상이라면 방향지시등만 켜도 차량 주변 상황을 파악해 스스로 차선을 변경해준다. 여기에 차로 유지 보조 기능으로 큰 차체가 차선 중앙을 유지하며 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차선 이탈 방지는 경고음 뿐 아니라 핸들 진동으로 경고를 받을 수 있어 항상 안전하게 달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안전 기능도 충실하다. 각종 충돌방지나 주차 보조 등의 기능은 물론이고, 차체가 크고 쿠페형이라는 디자인 특성 상 후방 시야가 좁아지는 점을 고려한 디지털 센터 미러, 스티어링 휠 터치로 ADAS 경고 해제가 쉬운 직접식 그립감지 시스템 등이 새로 적용됐다. 또하나 눈에 띄는 건 계기판 앞쪽 스티어링 휠 칼럼에 부착된 돌출물인데, 맨눈으로 볼 때는 모르지만 카메라로 보면 이 돌출물의 용도를 금방 알 수 있다. 바로 운전자의 시선을 파악하는 센서로,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 센서를 통해 운전자의 눈동자가 어디를 향하는지를 파악해 운전자가 전방 도로 상황이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을 오래 보낼 경우 경고를 보내는 기능이다. 안전을 강화할 수 있는 기능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편의기능은 전면 카메라를 이용한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이 인상적이었다. 계기판 화면을 이용해 차량 앞 상황을 띄우고 여기에 증강현실을 더해 경로를 안내하는 방식. 그리고 경로에 과속 카메라 등이 있을 경우 안내선의 색상을 주황색이나 빨강색으로 변경해 시각적으로 감속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내해줘서 편리하다. 이 외에도 차내에서 결제 가능한 G-카페이, IoT 기능이 갖춰진 집의 가전기기를 제어하는 카투홈, 실물 카드 없이 결제 가능한 e 하이패스 등 다양하다. 오디오 시스템은 뱅앤올룹슨으로, 선택 시 액티브 로드 노이즈 캔슬링이 함께 적용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선택하는 것이 실내 정숙성을 높여 주행 중 스트레스를 줄여줄 것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선택사양들을 추가할 수 있는데, 시트가 은근히 높은 편이라 키가 작거나 어린이, 노약자가 자주 탑승한다면 고정식 사이드 스텝으로 탑승 편의를 높여주는 것이 좋겠고, 필요에 따라 뒷좌석 탑승자를 위한 스마트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선택할 수도 있는데, 좌우가 개별로 제어되기 때문에 각자의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어 좋다. 

이번 GV80 쿠페를 시승해보니 잘 차려진 한정식을 받아든 느낌이다. 디자인은 물론이고 엔진이나 각종 첨단 기능, 편의사양 등 무엇 하나 부족함 없고 각각 또한 경쟁자들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 여기에 일반형과 쿠페형 2개의 선택지를 동시에 제공함으로써 입맛에 따라 고를 수도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시승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반찬들을 맛보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맛보고 나니 감칠맛 넘치는 영양 가득한 밥상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키가 크고 적재공간에 대한 욕심이 많아 이런 쿠페형 SUV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GV80 쿠페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간만에 마음에 드는 차를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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