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이란 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도 하지만 꾸준한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자동차 시장에선 대표적으로 차량이 더 넓어 보이게 하는 후미의 라이트바도 있고, 세단의 경우 기존 3박스 스타일 대신 지붕에서 후미까지의 루프라인을 곡선으로 매끄럽게 다듬어내는 쿠페형 스타일이 있다. 이 중 쿠페형 스타일은 세단을 넘어 SUV까지 이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실용성보다는 디자인이 중시되는 분위기로 바뀐 것이 영향이 큰 듯하다.

이 쿠페형 스타일을 꾸준히 이어온 모델로 메르세데스-벤츠의 CL과 CLS가 있다. 유려하게 떨어지는 루프라인이 만들어내는 곡선미는 시장에 점차 자리잡기 시작했고, 이후 경쟁사에서도 이러한 쿠페형 스타일을 자사 제품의 디자인에 적극 도입하기 시작해 현재는 오히려 3박스 디자인의 세단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워졌을 정도다. 이런 쿠페형 스타일의 흐름을 이끌어갈 메르세데스-벤츠의 신제품 CLE가 지난 2월 19일 국내 출시를 알렸다. 제품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2월 28일 서울 강남의 레스파스 에트나를 찾았다.

첫인상은 같은 2도어 쿠페인 메르세데스-AMG GT와 닮았다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GT쪽은 주행 성능에 포커스를 맞춘 덕에 전장이나 휠베이스가 짧지만, 이쪽은 약간의 실용성을 고려해 뒷좌석까지 마련해놓아 차체가 더 길다. 개인적으로는 AMG GT보다 CLE 쪽의 비율이 더 적당하다는 느낌이다. 외관은 벤츠 특유의 샤크노즈 후드와 삼각별을 촘촘하게 배치한 그릴, 측면 상하를 관통하는 캐릭터 라인 등 가장 최신의 메르세데스-벤츠 디자인 스타일을 고스란히 담아낸 모습이다. 차량 크기는 CLE 450이 전장 4,850mm, 전폭 1,860mm, 전고 1,420mm에 휠베이스 2,865mm다.

실내는 스포티한 느낌을 살리기 위한 구성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먼저 대시보드 트림을 블랙 컬러의 우드 소재로 덮고 여기에 은색 세로선을 더해 강렬함을 부각시켰고, 센터 콘솔의 수납합 주번은 카본 룩 소재로 덮었으며, 전투기 노즐을 형상화한 송풍구는 이번 CLE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시트는 CLE 쿠페 전용으로 개발된 헤드레스트 일체형 스포츠 시트를 적용해 마치 레이스카에 적용되는 버킷 시트의 느낌을 살렸다. 시트는 2+2 구성인데, 생각보다 뒷좌석의 공간이 꽤 넉넉하다. 촬영을 위해 뒷좌석에 앉았을 때도 예상보다 무릎에 여유가 있어 깜짝 놀랐다. 물론 다른 4도어 세단들만큼의 편안함은 어렵겠지만, 어린이+카시트 조합이나 성인 4명의 근거리 이동이라면 문제되지 않겠다.

계기판은 12.3인치 디스플레이가 적용됐으며, 인포테인먼트용의 경우 11.9인치 세로형 디스플레이로 다양한 정보들을 큼직한 화면으로 제공한다. 계기판은 클래식과 스포츠, 앰비언트 3종류의 디스플레이 테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며, 센터 디스플레이에는 신형 E-클래스부터 도입된 새로운 메인 아이콘으로 기능 파악이 한결 수월하다.

파워트레인은 CLE 450이 3.0L 직렬 6기통 가솔린 트윈 터보엔진으로 최고출력 381마력/5,800-6,100rpm, 최대토크 51kg‧m/1,800-5,000rpm의 성능을 낸다. 여기에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더해 가속 상황에서 통합 스타터 제너레이터가 17kW의 출력을 보태며, 아이들링 스톱 기능 작동 시 엔진이 멈추고 재시동하는 과정이 부드럽게 이뤄진다. 이 밖에도 타력 주행의 효율을 높이는 글라이딩이나 부스팅 등의 기능들도 함께 제공되며,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필요한 전력은 주행 과정에서의 회생 제동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충전된다.

차량을 살펴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달릴 차례다. 행사장을 출발해 가평 인근을 다녀오는 코스를 선택해 도로로 나섰다. 시내를 빠져나가면서는 잘 갖춰진 주행보조 기능이 가장 반갑다. 올림픽대로에 오르자마자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작동시키니 차선 중앙 보조 기능까지 함께 활성화되며 운전이 한결 수월해진다. ACC 작동 시 차량이 인식하는 주변 상황을 계기판을 통해 볼 수 있는데, 게임에 사용되는 최신의 언리얼 엔진을 적용한 덕분에 화면에 표시되는 내용이 훨씬 매끄럽게 표시되어 보기가 한결 좋아졌다. 센서의 인식도 빨라 적당한 간격만 설정해놓으면 앞차의 급제동에서도 최대한 부드럽게 속도를 줄여 주는 센스도 갖추고 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 차량 흐름에 여유가 생겨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 제로백(0-100km/h) 4.4초를 달성한 강력한 파워가 상체를 등받이로 푹 파묻어버리는 느낌이다. 이렇다할 터보랙도 없이 즉각적으로 파워가 쏟아지는 데다 9단 자동변속기도 빠르게 적정 단수를 찾아가는 모습이 마치 약간의 지체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한 느낌이다. 규정 속도를 순식간에 넘기고도 가속의 기세가 줄지 않아 안전을 위해 급히 브레이크 레버를 밟아 속도를 줄여야 했지만 뒤통수가 얼얼해질만큼 짜릿한 가속에 첫인상에서 느꼈던 ‘리틀 GT’라는 느낌이 더욱 확고해진다.

재밌는 점은 이렇게 강력한 파워에도 공인연비가 10.9km/L에 달한다는 것이다. 3.0L의 배기량에 터보가 2개나 달려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대하기 쉽지 않은 수치인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역할이 꽤나 상당하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우수한 연비까지 확보한 덕분에 CLE 450은 저공해차량 2종으로 선정되어 각종 혜택까지 함께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혜택이 구매의 결정적인 이유가 되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막상 적용받으면 꽤나 기분 좋아지는 부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차의 진짜 매력은 앞서 말한 강력한 파워에 더해진 뛰어난 운동성에 있다. 경유지를 거쳐 다음 코스로 잡은 곳이 인근에 위치한 유명산 와인딩 코스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강력한 파워로 오르막에서도 거침없이 쭉쭉 내달리겠지만 재빠르게 방향을 전환하지 못하면 반쪽짜리에 불과한 만큼 이 부분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본격적인 와인딩 구간에 들어서자 아직 채 녹지 못한 눈이 남아 도로 곳곳이 젖어있다. 너무 무리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하나 둘 코너를 돌아나가기 시작했다.

CLE와 와인딩 코스를 달려보니 짧은 코너들이 이어지는 구간임에도 빠르게 방향을 전환해주는 덕분에 다음 코너를 준비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오랫동안 자동차를 만들어온 메르세데스-벤츠의 노하우에 CLE를 위해 더해진 특별한 기능 덕분이다. 바로 리어 액슬 스티어링이 그것. 속도에 따라 뒷바퀴를 앞바퀴와 같은 방향 혹은 다른 방향으로 최대 2.5° 조향해 유턴 등에서는 회전반경을 줄이기도 하고, 고속에서는 안정적으로 방향을 전환하도록 도와준다. 차량 가격을 생각하면 놀라운 기능이다. 여기에 타이어 그립을 더욱 끌어올리는 다이내믹 바디 컨트롤 서스펜션은 노면 상황이나 속도에 맞춰 감쇠력을 자동으로 변경해주는데, 이 둘이 조합을 이루니 노면에 착 달라붙어 코너를 빠져나가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쉽게 느낄 수 있다.

달리는 것에 집중하다보니 운전하면서 써본 편의기능이라고는 안드로이드 오토가 전부다. 그래도 도입 초청기에 비해 많은 개선이 이루어진 덕분에 세로형 스크린임에도 남는 공간 없이 화면을 가득 채워 내비게이션 사용 시 주변 정보를 파악하기가 수월하다. 물론 하반기부터 3세대 MBUX 차량에 도입되는 티맵 오토가 적용되면 익숙한 안내를 받을 수 있으니 굳이 연결할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새로운 MBUX가 적용되면서 다양한 앱을 사용할 수 있는데, 코로나 시기 급증한 비대면 문화를 감안해 줌이나 웹엑스 등의 화상회의 앱을 지원한다. 이 외에도 유튜브나 애플 뮤직, 틱톡, 앵그리버드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앱을 지원하기 때문에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다양한 용도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메르세데스-벤츠에도 나름의 전략이 있겠지만, CLE에 이 정도의 퍼포먼스를 갖춰 내놓을 예정이었다면 차라리 AMG GT의 앞에 배치해 시너지를 더욱 극대화하는 쪽이 낫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CLE의 퍼포먼스는 기대 이상의 수준을 보여준다. AMG GT가 드림카지만 현실과의 타협이 필요하다면 CLE가 만족스러운 대안이 되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1억 원이 되지 않는 가격임에도 강력한 파워와 고성능 서스펜션, 리어 액슬 스티어링 등 차급 이상의 사양들이 두루 갖춰져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보너스로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놀라운 연비와 저공해 2종의 혜택까지, 다양한 즐거움을 CLE 한 대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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