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가 친환경적이면서 유지비도 적게 드는 등 여러 장점이 있지만, 주행거리의 부족, 충전의 불편함, 그리고 내연기관보다 높은 가격 등의 단점으로 예전보다 판매량이 주춤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브랜드에서 손을 놓고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단점으로 지적된 부분들을 개선한 제품으로 전동화의 속도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아는 EV6과 EV9를 차례로 선보이며 전기차 라인업을 더 확대할 것임을 밝힌 바 있고, 추가로 EV3, EV4, EV5 등의 모델을 선보이는 계획을 공개했다. 라인업 확대의 첫 번째 모델로 예고된 EV3가 드디어 전 세계에 공개됐다. 공식 출시를 앞두고 실물을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지난 22일 서울 성수의 기아 EV 언플러그드 그라운드를 찾았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EV9을 축소해놓은 듯한 모습의 EV3를 만날 수 있었다. ‘ㄱ’자 형태로 꺾인 포지션 램프와 헤드라이트의 조합에서도 EV9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오퍼짓 유나이티드(Opposite United)’, 즉 상이한 것의 융합이라는 기아의 디자인 철학이 반영되어 실용적이면서도 역동성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전면부에는 매끄러우면서도 볼륨감이 돋보이게 디자인됐고, 헤드램프로 절묘하게 타이거 페이스를 형상화한 것도 눈길을 끄는 점이다. 박스카 타입의 외관이지만 옆에서 가만히 보면 루프라인은 뒤로 갈수록 조금씩 낮아지는 형태로 스포티함을 살짝 드러내며, 후면에서는 부드럽게 이어지는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을 배치해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실내는 지난 EV9에서 보았던 구성과 흡사한 모습으로, 전체적으로 수평 기조의 디자인을 적용해 차분한 느낌을 보여준다.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이 나란히 배치된 형태이며, 둘 사이로 공조장치를 컨트롤하는 스크린이 배치됐다. 계기판 뒤쪽으로는 12인치 윈드실드 타입의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장착해 시선 이동을 최소화한다. 인포테인먼트 스크린 바로 아래로는 주요 메뉴의 단축 버튼이 대시보드에 내장됐고, 송풍구 아래로는 공조장치의 주요 기능을 제어할 수 있는 물리 버튼도 마련해놓았다.

EV3 GT라인 스티어링 휠

 

테이블을 확장해서 쓸 수 있다

스티어링 휠은 2스포크 방식으로 익숙한 구성으로 버튼이 배치됐는데, GT라인은 3스포크 방식으로 형상이 다르다. 변속레버는 스티어링 휠 칼럼에 레버 방식으로 적용해 센터 콘솔을 넓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암레스트 하단의 슬라이딩 콘솔 테이블을 세계 최초로 적용해 필요에 따라 앞으로 길이를 늘려 사용할 수 있게 설계했다. 그 아래로는 스마트폰 충전 패드와 컵홀더를 비롯한 수납공간들이 배치되어 소지품을 놔둘 수 있다. 보통 센터 콘솔쪽에 배치하던 시트 관련 편의 기능 버튼은 시트 메모리 버튼과 함께 도어 중간의 가니시 내부에 배치해 한결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시트는 1열에 릴랙션 시트, 2열에 리클라이닝 시트로 성인 탑승시에도 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2열 시트를 접어내리면 트렁크부터 이어지는 평평한 공간이 만들어지지만 조절 레버가 트렁크 좌우 벽면이나 시트 등받이 상단이 아닌, 시트 바깥쪽 하단부에만 위치해있는 점은 조금 아쉬운 부분. 트렁크는 기본 460L의 용량을 제공하고, 보닛 아래에도 25L 크기의 수납함이 있어 자주 쓰지 않는 물품을 보관하기에 적당하겠다.

EV3는 배터리 용량 58.3kWh의 스탠다드 모델과 81.4kWh의 롱레인지 모델 2종으로 선보인다. 이 중 롱레인지 모델은 국내 인증 기준 501km(17인치 휠)의 주행거리를 달성, 국산 전기차 중 최장 주행거리를 자랑한다. 충전의 경우 기존 EV6의 후륜 기반의 800V 시스템이 아닌, 전기차 대중화를 위한 전륜 기반의 400V 시스템이 적용되어 350kW급 초고속 충전기를 이용해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데 약 31분이 소요된다. 실내외 모두 V2L 기능이 적용되어 차박은 물론이고 외부 활동에서의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

전륜에 탑재된 모터는 최고출력 150kW, 최대토크 283Nm의 성능을 내며, 높은 주행거리를 위해 차체 곳곳에 공기역학적 설계를 적용하고 엑티브 에어플랩, 각종 언더 커버 등 8종의 하부 부품으로 공기 흐름을 최적화했다. 그리고 승차감 향상을 위해 주파수 감응형 쇼크 업소버를 전륜과 후륜 모두에 적용했고, 전륜에는 하이드로 부싱으로 충격 흡수와 진동 완화 성능을 강화했다. 스티어링 진동 완화와 차량 응답성 향상을 위해 차체와 스티어링을 연결하는 카울크로스바의 강성을 높였고, 실내 정숙성을 위해 흡음재 사용 면적 확대 및 윈드실드 및 1열에 이중접합 차음유리를 적용하고 1, 2열 글라스 두께를 높이고 접합부 강성을 높였다.

일반적인 제동 상황에서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게 EV3의 차량 제어를 최적화해 회생 제동의 작동 범위를 넓혀 제동 한계 영역까지 회생제동이 이뤄지도록 했다. 덕분에 에너지 효율성을 더 높였으며 유압 제동의 개입을 최소화해 브레이크의 열부하를 낮췄다. 또한 현대차그룹 최초로 i-페달 3.0을 적용해 가속 페달 조작만으로 가속과 감속, 정차까지 모두 가능해 운전 편의성 및 승차감 향상에 도움을 준다.

안전 및 주행 보조 기능으로는 동급 최초로 적용되는 스티어링 휠 그립 감지를 비롯해 전방/후측방/후방 교차/후방 주차 충돌방지 보조, 차로 이탈 방지 보조, 지능형 속도 제한 보조, 내비게이션 기반 크루즈 컨트롤, 차로 유지 보조 2, 고속도로 주행 보조 2,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등 첨단 기능들이 대거 투입된다.

최근 AI 기술의 발달에 맞춰 이번 EV3에서 오픈AI의 챗GPT 기반의 생성형 AI 기술을 접목한 기아 AI 어시스턴트가 기아 전기차 최초로 탑재된다. 자연어를 기반으로 여행이나 차량 이용, 엔터테인먼트, 모빌리티, 지식 검색 등이 가능해 차량과 고객과의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다. 이 기능은 전용 전기차 중심으로 확대 적용하고 향후 OTA를 통해 지속적으로 기능을 강화해나갈 예정이다. 엔터테인먼트는 기아 커넥트 스토어에서 ‘스트리밍 프리미엄’ 서비스 가입 시 유튜브 등 OTT 서비스와 게임 등 차량 내에서 다양한 인포테인먼트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미국 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NBA 구단 별 디스플레이 테마도 커넥트 스토어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테마를 지속 개발해 취향에 맞는 맞춤형 차량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기아는 6월 초부터 국내 고객을 대상으로 계약을 시작하고, 인증이 마무리되는 7월부터 판매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시장의 경우 올 4분기 유럽을 시작으로 2025년에는 나머지 지역에도 출시하며 전기차 대중화의 흐름을 리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EV3의 글로벌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기아 송호성 사장은 “EV3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전기차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게 만드는 문제들을 해결해 전기차 대중화에 앞장설 것이다”라고 밝혀 이번 EV3를 시작으로 향후 이어질 EV4와 EV5로 한국은 물론이고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제품 공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향후 질의응답에서는 EV3의 고성능 모델에 대해 “내년 하반기 정도에 고성능 전후륜 모터가 적용된 모델을 준비중에 있다”고 밝혔으며, 최근 전기차 인기 하락에 따른 EV 전략에 대해선 “전기차 시장은 당연히 미래에 가야 할 방향이고 조만간 다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계획대로 제품 출시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하이브리드의 경우 “전기차의 수요가 아닌, 내연기관차의 수요가 옮겨오는 것으로 본다. 이 부분에 대한 신규 차종을 토입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격대에 대해서는 “EV3가 목표로 하는 가격대는 주요 구매층이 기대하는 3만 5000~5만 달러 사이로, 국내 시장에서는 인센티브를 감안해 3천만 원대 중반에서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중형급 이상의 전기차들을 선보여온 기아가 소형 전기 SUV인 EV3를 출시함으로써 국내 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가라앉은 전기차 시장의 분위기를 다시 한 번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관건은 가격인데, 아직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으나 3천만 원대 중반이라는 대략적인 가격이 공개된 만큼 그동안 전기차 구입을 고민하던 소비자들에게도 크게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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