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드매거진을 통해 F1 스토리를 연재하고 있는 김남호 박사는 현재 영국에 거주 중이며, 명문 F1 팀인 Lotus F1 Team에서 성능 분석 엔지니어로 활동 중인 한국인 F1 엔지니어이다. 지난 라이드매거진의 연재를 통해 필자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기사화 되었으나 혹시나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다시 한 번 기사 링크를 안내한다.

김남호의 F1 STORY PART 1 - 더 이상 남의 잔치가 아닌 F1  
(http://auto.naver.com/special/specialThemeRead.nhn?seq=535)


김남호의 F1 STORY PART 2 – interview
(http://auto.naver.com/special/specialThemeRead.nhn?seq=1149)


김남호의 F1 STORY PART 3 – 누가 F1 카를 머신이라 부르라 했던가
(http://auto.naver.com/magazine/magazineThemeRead.nhn?seq=2673)



F1코리안 그랑프리가 열리는 영암 서킷이 애초에는 싱가포르나 모나코와 같은 스트릿 서킷으로 설계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애당초 서킷이 일반 도로로 사용되지 않는데 무슨 얼토당토한 말이냐 하겠지만 당초에 기대했던대로 F1 코리안 그랑프리가 큰 성공을 거두고 그 모멘텀으로 서킷 주변으로 신도시가 순조롭게 들어섰다면 도시 계획의 앞뒤 순서가 어찌되었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스트리트 서킷을 가질뻔 했습니다. 아쉽게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은 무척 낮아 보입니다.



하지만 황금알을 낳아줄 것만 같았던 F1 코리안 그랑프리는 첫 해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고, 이로 인해 이 프로젝트에 책임이 있던 사람들이 줄줄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현재 코리안 그랑프리는 FOM (F1 의 상업 권리 소유사) 과의 이벤트 계약이 끝나기 만을 기다리는 듯한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린 우스운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한방으로 상대를 때려 눕히려 무게 중심이 실린 큰 주먹을 날렸지만 아무 위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빗나가 중심만 흐트러 졌다면 역공은 피할 수만 있어도 다행입니다.  



그 한방을 노리고 천문학적인 투자비와 지방 정부의 보조금을 들여 치른 사업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쳤으니 비판의 칼날이 들이 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가장 위력적이고 쓰린 상처를 남기는 칼날은 “보기에만 좋은 남의 잔치”라는 비판입니다. 아무리 그럴싸한 변명을 찾으려 해도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코리안 그랑프리 프로젝트가 처음 그 모습을 드러 냈을 때 필자가 가장 우려했던 것이 바로 이 비판입니다. 거두 절미하고 현 상태에서 치르는 코리안 그랑프리는 남의 잔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답은 간단합니다. 한국인의 눈 높이에서 “즐길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는 아득히 먼 자오선이 지나는 이국에 벌어지는 남의 잔치지만 우리는 그 잔칫상에 열광합니다. 한국 남성들의 신앙과도 같은 미국 메이저 리그는 어디 우리 잔치이던가요? EPL과 MLB에는 있고 F1에는 없는 것. 그렇습니다. F1 그랑프리에는 박지성과 박찬호가 없습니다. F1 을 한국인의 관심사 안으로 아주 단시간에 끌어 들이는 일은 사실 한국인 F1 드라이버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앞으로도, 그것도 꽤 오랫동안 F1의 박지성과 박찬호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근래에 유럽의 주니어 포뮬러 시리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 드라이버들의 소식이 간간이 전해지고는 있습니다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아무리 빨라도 10년 내에는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 불편한 진실에 대한 내용은 아무래도 별도로 다루어야 할 것 같네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로서는 한국 대중들이 F1을 즐겨야 할 만한 동기가 딱히 보이지 않습니다. 근사한 밑그림으로 시작된 F1 코리안 그랑프리 프로젝트는 이렇게 미완으로 그칠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든 한국의 F1 진출이 절실하게 아쉬운 시점입니다. “F1 의 박지성” 등장 만큼은 매력적이지 않지만 현재로서 가장 현실성있는 F1 진입 방식은Technical Supplier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기술력으로 F1 진출은 가능할까요? 현재 F1 진출에 가장 근접한 Made in Korea 기술은 타이어입니다. 일례로 한국 타이어는 독일 투어링 카 챔피언십 DTM을 비롯한 여러 모터 레이스 시리즈의 공식 타이어로서 고성능 타이어를 제작할 충분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미 수 년간의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한 상태입니다. 금호 타이어 역시 주니어 포뮬러 시리즈인 F3  와 Auto GP 의 공식 타이어 공급사로서 마일리지를 차곡차곡 쌓아오고 있습니다.



F1 카에서 타이어는 차의 구성 요소 중 유일하게 F1 팀들이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F1 팀과 드라이버들은 그저 주어진 타이어의 성능과 특성을 학습하고 그 한계 내에서 타이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드라이빙과 차의 셋업을 맞출 뿐이죠. 따라서 F1 이 요구하는 안전성과 내구성만 보장할 수 있다면 타이어 공급 업체는 매우 독립적이고 배타적인 지위를 갖습니다. 하지만 타이어 공급사는 F1 팀들이 타이어의 성능을 예측하고 각 팀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사용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데이터나 타이어 모델을 제공할 의무가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적 타이어 모델을 구성하는 백 가지가 넘는 모든 변수, 주행 조건에 따른 타이어 반지름, 타이어의 저항, 기후 변화에 따른 성능 변화 등 F1 팀들의 모든 요구를 충족 시킬 수 있는 기술 지원 인력과 기반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 기술 지원 능력만 있다면 F1 진입을 가로막는 기술적인 저해 요소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울러 이 방식은 한국인 엔지니어의 F1 진출 통로도 될 수 있습니다. 현재 F1에는 상당수의 일본인 타이어 전문가들이 활동 중이며 이들은 대부분 BRIDGESTONE 엔지니어 출신입니다.



무엇보다 F1 타이어를 통한 광고 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대단합니다. 바퀴 없이 달릴 수 없는 차가 없으니 출전 차량 스물 두 대 모두에 차별 없이 장착되고, 오픈 휠 카이기 때문에 두 시간의 레이스 동안 쉬지 않고 방송에 노출됩니다. 타이어는 레이스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그것이 찬사이건 논란이건 간에 계속 언론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단언컨데 전 세계 타이어 시장의 후발 주자로서 이보다 효과적인 광고 매체를 찾기는 아마 어려울 듯 합니다.



물론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HANKOOK이나 KUMHO 라는 타이어 브랜드의 품질, 경쟁력이 다른 세계 유명 브랜드 타이어 보다 설령 월등하다 하더라도 이들이 F1 진출 없이 GOODYEAR, MICHELIN, BRIDGESTONE, CONTINENTAL, PIRELLI의 아성을 단시간에 무너뜨리기에 시장은 너무나도 보수적인 소비자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즉 기술력이 되더라도 쉽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한국의 타이어 메이커들은 F1 을 통한 일본 BRIDGESTONE의 성공 사례를 놓쳐서는 안 될 벤치 마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타이어 업체가 번쩍 손들고 나서면 “그래 한 번 잘 해 봅시다”하고 F1 이 반겨 맞아줄 것으로 기대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세계 유수의 프리미엄 타이어들은 F1타이어 공급권을 얻기 위해 늘 경쟁해 왔고 F1 도 이 경쟁을 통해 여러 이익을 얻어냅니다. 기존의 공식 타이어 공급 업체가 이유 없이 자리를 비워줄리도 만무하죠. 하지만 기회는 언제 올 줄 모릅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투자 비용에 비해 광고 효과가 약해질 때 쯤이면 기존 타이어 공급 업체는 F1에서 발을 빼고 새로운 타이어가 그 자리를 채워 왔기 때문입니다. 시쳇말로 물 들어 올 때 노를 저으라는 말이 있지요. 물 때가 언제 닥칠 줄 모르니 한국 타이어 브랜드들은 잘 준비하고 있기를 기대합니다.



아쉽게도 타이어가 아닌 다른 기술은 진입이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F1 에 쓰이는 재료와 부품들은 수 십년간 모터 레이스에서 잔뼈가 굵은 영국 및 유럽 업체들이 도맡다 시피 하고 있습니다. F1 팀이나 FIA는 안전성과 신뢰성에 있어서 이들을 거의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타이어 공급자로서 한국의 F1진입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뭔가 아쉬움은 남습니다. 실제로 한국 대중이 원하는 것은 F1 과 한국의 연결 고리를 체감할 수 있는, 마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첼시 팀 가슴에 떡 하니 새겨진 SAMSUNG 로고 정도의 임팩트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한발 더 나아가 Korean F1 Team 의 등장 정도가 아니면 꿈쩍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비난의 화살은 자연스럽게 국내 자동차 회사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국내 자동차 기업들이 가뜩이나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따가운 비판과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F1 그랑프리가 열리는 현실에서도 F1 에 참가할 수준도 못 되는 2류 자동차 회사” 라는 비난을 덤으로 받기 쉽상입니다. 사실 현대 자동차 그룹은 기술력이 모자라서 F1 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한국 기업의 F1  진출을 논하자면 마뜩하지 않지만 이웃 나라 일본을 훔쳐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한국 기업, 특히 자동차 기업의 F1 진출 가능성을 살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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