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드매거진을 통해 F1 스토리를 연재 중인 김남호 박사는 현재 영국에 거주 중이며, 명문 F1 팀인 Lotus F1 Team에서 성능 분석 엔지니어로 활동 중인 한국인 F1 엔지니어이다. 혹시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지난 연재 기사 링크를 안내한다.
 

* 김남호의 F1 STORY PART 1 - 더 이상 남의 잔치가 아닌 F1
http://auto.naver.com/magazine/magazineThemeRead.nhn?seq=535
 

* 김남호의 F1 STORY PART 2 – interview
http://auto.naver.com/magazine/magazineThemeRead.nhn?seq=1149
 

* 김남호의 F1 STORY PART 3 – 누가 F1 카를 머신이라 부르라 했던가
http://auto.naver.com/magazine/magazineThemeRead.nhn?seq=2673
 

* 김남호의 F1 STORY PART 4 – F1 과 메이드 인 코리아
http://auto.naver.com/magazine/magazineThemeRead.nhn?seq=3243
 

* 김남호의 F1 STORY PART 5 - 코리안 F1팀의 꿈과 현대 기아차를 위한 변명
http://auto.naver.com/magazine/magazineThemeRead.nhn?seq=3419

 

F1 스토리 이전 편에서 필자는 한국 자동차 기업들이 스폰서십 형태로라도 조속히 F1에 진출해야 하며, 톱 클라스 모터 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점진적으로 늘려 궁극적으로 모터 스포츠를 R&D의 한 축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엔진 등 자동차 핵심 기술 검증의 경연장인 F1 페디그리에 국내 자동차 기업들이 자체 기술로 당당하게 출사표를 던질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세계 자동차 소비자들에게 ‘메이드 인 코리아’의 기술 위상을 각인시키고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의 만년 ‘저가 서브 클라스’ 이미지 탈피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내수용 국산 자동차에 대한 실망감과 해외 시장 우대로 비춰지는 해외 시장 공략 방식에서 비롯된 역차별 정서는 국내 자동차 업계가 진정한 로열티 고객인 국내 소비자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에만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로써 지난 두 편의 글을 통해 머지 않은 미래에 현실적으로 가능하면서도 F1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제한적이나마 높일 수 있는 한국의 F1 진출 방향을 살펴 보았습니다. 국내에서 F1을 논할 때 자주 논란이 되는 영암 서킷의 접근성 문제는 코리안 그랑프리 이벤트 자체의 흥행 성적과는 직접적인 상관 관계가 있을 수 있으나, “만약 서킷의 입지가 수도권에 인접하였다면 한국 대중의 F1에 대한 관심이 지금보다 월등히 높았을 것인가?” 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고, 더군다나 2014 코리안 그랑프리의 개최 자체가 무산되었기 때문에 다른 기회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이제 한국 F1 팬들이 듣기에 조금은 불편할 수 있을 또 다른 F1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의 초점도 여전히 한국 대중의 F1에 대한 이해를 돕고 관심도를 높이는 데에 있음을 밝힙니다. 이전 편에서 필자는 ‘F1의 박지성’ 등장 없이 F1을 한국 대중의 관심사 안으로 아주 단시간에 끌어 들이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유럽 주니어 포뮬러에서 고군분투 중인 한국인 드라이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향후 10년 내에 ‘F1의 박지성’ 탄생은 어려울 것 같다고 예측했습니다. 한국인 F1 드라이버의 탄생을 원치 않는 한국 국민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필자의 이러한 비관적 예측은 불편함을 넘어 배신감을 유발하기에도 충분합니다. 한국인 F1 드라이버의 탄생은 분명 F1에 대한 관심 증폭뿐만 아니라 한국 모터 스포츠 저변 확대에 매우 강력하고 획기적인 자극이 될 것입니다. ‘트리플 악셀’ 이란 피겨 스케이팅 기술을 거의 전 국민이 이해하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이 경이적인 사회 현상은 김연아의 성공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수영이란 스포츠는 박태환의 등장 이전까지 그저 인근 수영장에서 출근 전 한 시간을 할애하여 뱃살을 관리하는 운동의 한 방편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이번 이야기의 주제는 조금은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본 한국 F1 드라이버의 탄생 가능성입니다.
 

몇 해 전 MBC에서 방영된 ‘무한도전 F1 특집’을 아직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 입니다. 말레이시아 세팡 서킷에서 F1 카와 유사한(1인의 드라이버 만 탑승이 가능한) 싱글 시터 레이싱 카를 출연진들이 체험해보는 것이 프로그램의 내용이었습니다. 일부 연예 매체는 이 테스트에서 가장 우수한 실력을 선보인 출연자를 그 해의 코리안 그랑프리에 출전시킬 계획이었으나 아쉽게도 일정이 여의치 않아 포기해야만 했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사상 첫 코리안 그랑프리가 임박하자 최초의 한국인 F1 드라이버 탄생 가능성을 예견하는 뉴스 기사도 심심치 않게 떠돌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장밋빛 예측들이 무색하게도 아직까지 한국인 F1 드라이버는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F1 드라이버에 대한 사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은 이 같은 흥미 유발성 기사들은 페이지 뷰를 늘리는 데에는 유용하겠지만, 그들이 공언하던 ‘곧 다가올 희망’이 실현되지 않음에서 초래될 한국 모터스포츠 팬들의 허탈감에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자동차 매체들이 입을 모아 ‘마이클 슈마허의 전설’을 찬양하고 ‘현 챔피언 세바스찬 베텔의 위대함’을 말합니다. F1의 역사는 F1 자동차 기술 발전의 기록이라기 보다 사실상 F1 드라이버에 대한 기록입니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자동차 매체들이 과거 그리고 현재의 F1 드라이버들에게 존경을 표시하라고 강요합니다. F1 드라이버는 의심의 여지없이 전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고 민첩한 드라이버로 훈련된 ‘Perfect Driver’입니다. 실제로 이들의 텔레메트리 데이터 (F1 카에 부착된 센서를 이용하여 트랙 위 자동차의 여러 상태를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장치의 기록) 와 컴퓨터 랩 시뮬레이션(트랙 한 바퀴를 가장 빠르게 주파할 수 있는 수학적 계산 값)으로 예측한 가장 이상적 드라이브 컨트롤 결과를 비교하면 큰 차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랩을 여러 번 반복해도 기록된 텔레메트리 데이터가 마치 F5 리프레시 버튼 만 누른 것처럼 일정하게 유지될 정도로 이들의 드라이빙은 정밀합니다. 하지만 필자는 이들이 60억 세계 인구 중 운전을 가장 잘하는 DNA를 타고난 22인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 글을 통해 F1 드라이버 마켓의 생리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면 독자들도 필자의 이 미지근한 냉소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년이었던 당신은 일본 TV 만화 시리즈 ‘사이버 포뮬러(한국 명칭: 신세기 사이버 포뮬러)’의 ‘카자미 하야토’를 보며 한번쯤 포뮬러 카 드라이버의 꿈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혹자는 F1 ‘머신’ 이라는 근사한 명칭이 이 만화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합니다. 만약 당신의 나이가 이미 20 대를 넘은 상태라면 이제 그 꿈이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0 에 수렴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F1 드라이버의 탄생 과정에 비추어 당신이 F1 드라이버가 될 수 있었을 가능성을 따져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유럽 태생의 유럽인이라면 다음 이어질 이야기는 당신에게 매우 유효합니다. 당신이 한국인이라도 이 이야기는 좋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당신이 한국인으로서 F1 드라이버가 될 수 있었을 가능성은 이 글 말미에서 결론지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이제 제법 먼 거리도 잽싸게 달릴 수 있는 튼튼한 7살 소년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세상 물정에도 조금씩 눈을 떠 아비가 제법 부자인 것도 눈치 챕니다. 이 부자 아버지는 특이하게도 모터 스포츠를 무척 좋아합니다. 이 두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면 당신이 F1 드라이버가 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집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취미로든 경쟁이든 주말 마다 이렇게 생긴 자동차를 타게 됩니다.
 

지금부터 목소리가 어색해질 사춘기 무렵까지 카팅 챔피언쉽에서 경력을 쌓아야 합니다. 비용은 온전히 부모의 경제적 지원에 의지합니다. 유럽의 카팅 챔피언십에 참가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통상 자동차 가격을 포함하여 연간 약 3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5–6천 만원 정도입니다. 앞으로 수 년간 지역, 국내, 국제 카팅 경기를 두루 섭렵해야 합니다. 자동차의 다이나믹스와 반응, 피드백을 몸이 기억하게 하는 것이 이 단계의 주 목적입니다. 프로페셔널 드라이버로서의 포텐셜을 계발하는 시기이며 카팅 챔피언십이 성적이 충분히 뛰어나다면 당신의 아버지도 기꺼이 당신의 주니어 포뮬러 시리즈 진출을 지원할 것입니다.



턱 수염이 제법 빳빳해질 중학 졸업반 나이가 되면 조금 그럴싸한 포뮬러 레이스 카를 타고 마일리지를 쌓아야 합니다. 대표적인 주니어 입문 포뮬러 시리즈는 포뮬러 포드입니다. 날개에서 발생하는 공기 역학적 효과는 거의 없지만 훌륭한 레이스 카입니다. 챔피언십에 참가하기 위한 차량은 대부분의 경우 개인적으로 구매하고 차량 정비와 투어에 들어가 가는 비용도 거의 개인적으로 부담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당신의 아버지는 아직까지 경제적, 시간적으로 당신을 지원할 만큼 여유가 있습니다. 유럽의 포뮬러 포드 시리즈에서 꾸준하고 주목 할만한 성적을 거둔다면 F1 드라이버의 꿈을 가슴에 품을 만 합니다. 혹시라도 당신이 기록한 챔피언십 성적 곡선이 들쑥날쑥 하거나 해를 거듭할 수록 하향 곡선을 보인다면 프로페셔널 드라이버보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F1 엔지니어에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남성미가 자리잡는 10대 후반이 되면 제법 날개가 큰 싱글 시터 레이스카에 몸을 적응시켜야 합니다. 하위 주니어 시리즈에서 포뮬러 드라이버로서의 재능은 확인하였지만 이제부터는 비용이 제법 많이 드는 것이 걱정입니다. 다행히도 당신 아버지의 경제력은 아직 건재합니다. 하지만 그 동안 같은 꿈을 향해 달리던 절친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모터 레이스를 떠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반면 그 동안의 레이스에서 압도적인 실력과 재능을 선보이며 당신의 질투심을 자극했던 라이벌들이 가족의 경제력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성공적으로 상위 주니어 시리즈에 안착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이 시점이 되면 당신 앞에 F1 드라이버의 꿈에 도달하는 두 갈래의 길이 열립니다. 하나는 ‘빠른 길’, 다른 하나는 조금 ‘험한 길’입니다. 주니어 시리즈에서 당신을 압도했던 빼어난 실력의 경쟁자들은 다음 세대 F1 스타를 찾아 헤매는 톱 드라이버 매니지먼트 사의 레이더에 쉽게 포착됩니다.



이 매니지먼트 회사들은 톱 F1 팀들과 밀접한 사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까다롭게 선택된 이 소년 드라이버들은 로터스, 페라리, 맥클라렌 등 톱 F1 팀들의 영 드라이버 프로그램에 흡수되고 드라이버 매니지먼트 회사와 연계된 ‘엔젤’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앞으로 수년 간 상위 주니어 시리즈에서 F1 드라이버를 목표로 전략적으로 양성됩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데이비드 베컴과 웨인 루니 같은 선수를 유소년 팀에서부터 길러내는 프리미어 리그의 시스템을 생각하면 영 드라이버 프로그램의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4년 연속 챔피언인 레드불의 세바스찬 베텔은 코 흘리게 어린 시절 레드불의 영 드라이버 프로그램에 발탁되어 유러피안F3 를 거쳐 19 세의 어린 나이에 F1 시트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F1 최초의 흑인 드라이버인 메르세데스 팀의 루이스 해밀턴도 맥클라렌 F1 팀의 영 드라이버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된 스타입니다. 이 ‘빠른 길’은 당신의 성공 가능성을 아마도 서너 배쯤은 높여줍니다.



하지만 당신의 실력은 아직 이 경쟁자들을 압도하기에 조금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험한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가족의 경제적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프로페셔널 레이스 드라이버로서 당신의 가능성을 발견한 한 사업가로부터 일부 후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유재석이 세팡에서 체험했던 포뮬러 BMW 카를 타게 됩니다. 포뮬러 Renault 2.0 시리즈도 썩 괜찮은 선택입니다. 포뮬러 BMW카와 포뮬러 Renault 2.0 카는 F1 카의 거의 모든 요소를 체험할 수 있는 자동차입니다. 따라서 이들 시리즈를 통해 F1 드라이버로서의 가능성을 냉정하게 시험 받게 됩니다. 성적에 따라 F1 의 꿈을 과감히 접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챔피언쉽에서 적어도 최소 3 위 안에 들어야 합니다. 여기서 F1 드라이버로서의 충분한 가능성을 발견했다면 상위 레벨인 포뮬러 3 나 GP3에 도전할 만 합니다.




포뮬러3의 종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고 도전하려는 포뮬러 3의 클래스에 따라 조금 달라지겠지만, 포뮬러 BMW와 포뮬러 Renault 2.0 시절 1-2억에 머물던 시리즈 참가 비용은 이제 수 억을 훌쩍 넘어 섭니다. 사실 여기까지 도달한 것만으로도 유럽의 중산층 경제 수준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당신 아버지의 월등한 경제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더군다나 앞으로의 챔피언십 참가 비용은 개인적으로 충당하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기 때문에, 한 명의 성공적인 유러피언 F1 드라이버를 탄생시키는 데에는 마치 유전 탐사나 신약 개발에 투자하는 것과 같은 조금은 무모한 스폰서의 후원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현역 스물 두 명의 F1 드라이버가 60 억 중 최고의 재능을 가진 드라이버라는 명제가 성립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드라이버로서 F1 은 경제적 진입 장벽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스포츠입니다. 대부분의 유럽 출신 F1 드라이버들은 어린 시절 앞서 언급한 주니어 포뮬러 시리즈에 자비로 참가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배경을 타고난 행운아들 입니다. 만약 이 경제적 진입 장벽을 배제한 상태에서 100 % 오픈 트라이 아웃을 통해 어린 탈렌트를 선발한다면 당신이 세바스찬 베텔을 능가하지 못하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유러피언 포뮬러3나 브리티시 포뮬러 3와 같은 상위 클라스 챔피언십에서 3 위권의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면 이제 GP2 나 포뮬러 Renault 3.5 시리즈에 도전할 만 합니다. GP2시리즈는  F1 팀들이 차세대 드라이버를 발굴하기 위해 투자하는 F1 의2 부 리그쯤 되는 챔피언십입니다. 영 드라이버 프로그램에 소속되지 못한 당신은 그동안의 성적을 바탕으로 기존 스폰서가 GP2 나 포뮬러 Renault 3.5까지 당신을 계속 후원할 수 있도록 설득합니다. 당신의 커리어를 이끌어 줄 능력 있는 매니저를 찾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F1 드라이버 마켓은 정치와 협상이 혼재하는 그레이 마켓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한가지 반가운 소식은 최근 들어 GP2의 무용론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 F1 에 진입한 GP2 출신 드라이버라고 해봐야 3년 전 GP2 챔피언이었던 로터스 팀의 로만 그로죤입니다.   

GP2 시리즈에 한 명의 드라이버를 출전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 우리 돈으로 수 십억인데 반해, 비슷한 최고 속도와 자동차 성능을 경험할 수 있는 GP3와 포뮬러 Renault 3.5는 십분의 일 정도의 비용으로 선수를 출전시킬 수 있습니다. 포뮬러 Renault 3.5 와 GP3 같은 하위 포뮬러 시리즈에서 압도적인 실력과 스타성을 지닌 스무 살 무렵의 어린 드라이버를 직접 선발하면 스폰서나 매니지먼트 사 입장에서도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모든 단계를 착실하게 밟아 F1에 진입하는 드라이버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16세의 카팅 선수에서 F1 드라이버까지 채 4년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F1 데뷔 나이는 이 십대 초반으로 거의 굳어지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객관적으로 우수한 성적으로 무사히 안착하였다면 당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셈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F1 진입을 위한 마지막 관문인 F1 영 드라이버 테스트 기회를 얻는 것 입니다. F1 영 드라이버 테스트는 F1 엔지니어들과 팀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 시키고 F1 Call-up 가능성을 높이는 매우 중요한 기회입니다. 때문에 다른 주니어 포뮬러 시리즈의 상위권 드라이버들과 그들의 매니저들 간의 피나는 물 밑 전쟁이 불가피합니다. F1 영 드라이버 테스트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면 당신은 이제 F1으로 Call-up 을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기존 22인의 F1 드라이버 중 은퇴하거나 방출되는 드라이버가 생기는 운이 따라야 합니다. 당신의 F1을 향한 꿈은 응답 없는 기다림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비 유럽인인 경우 F1 드라이버가 될 가능성은 전혀 다르게 계산됩니다. 기본적으로 당신은 가급적 유럽으로 건너가 앞서 언급한 유러피언 주니어 포뮬러 시리즈에서 유럽인 드라이버들과 경쟁해야 합니다. 우선 비 유럽인이라는 유전자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언어의 장벽과 상품성의 저 평가가 그 이유입니다. 하지만 드라이빙 능력의 평가 기준이 인종에 따라 다를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당신의 실력을 레이스 성적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인종을 초월하여 다른 경쟁자들이 도발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증명한다면 당신이 F1 드라이버로 발탁 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집니다. 안타깝지만 비슷한 실력과 조건이라면 유럽인 드라이버들을 제치고 당신이 F1 드라이버로 선택될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이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F1에 영향력이 있고 자본력이 탄탄한 스폰서를 등에 엎는 것입니다. 한국인 F1 드라이버 배출 레시피는 F1 역사 상 유일하게 F1 드라이버를 배출한 극동 국가인 일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2013시즌은 지난 15년 만에 처음으로 F1 그리드에서 일본인 드라이버가 실종된 해 입니다. 그 마지막 일본인 F1 드라이버였던 카무이 고바야시는 토요타의 마지막 F1 드라이버 육성 장학생이었습니다. 토요타가 F1 에서 철수하던 해인 2009년, 토요타의 일본인 F1 드라이버 장학생이자 팀의 예비 드라이버였던 카무이는 마지막 두 레이스에서 대타로 출전하여 신인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공격적인 드라이브로 주목을 받았고, 이를 발판으로 2012 년까지 스위스 사우버 팀에서 활동하였습니다. 토요타의 일본인 F1 드라이버 육성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F1 드라이버 카무이 고바야시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장 오랫동안 F1 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F1 드라이버 타쿠마 사토도 거대 기업 혼다와 일본 F1팀이었던 수퍼 아구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F1에서 드라이버 경력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요컨데 한국인 F1 드라이버의 탄생은 한국 기업의 적극적인 F1 참여나 코리안 F1팀의 탄생 없이 사실상 어렵습니다. 현재 유러피언 주니어 포뮬러 시리즈에 20세 미만의 한국인 선수가 전무한 상태이고, 이들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후원하는 한국 기업이나 코리안 F1 팀도 없습니다. 한편 최근 F1 데뷔 연령은 아무리 늦어도 25세를 넘지 않습니다. 4-5년 후쯤 코리안 F1 팀이 탄생한다 가정하고 이와 동시에 한국인 F1 드라이버 배출을 위한 영 드라이버 프로그램을 시작해 5년 정도의 드라이버 양성 기간을 거친다면 한국인 F1 드라이버 탄생까지는 최소 10 년 정도가 필요합니다. 향후 10년 간 한국인 F1 드라이버의 탄생이 어렵다고 본 필자의 어림셈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 입니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 달리하면 코리안 F1 팀 탄생을 통해 한국인 F1 드라이버 탄생이라는 매우 긍정적 파생 효과도 낼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유러피언 F3 오픈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드라이버 ‘임채원’ 선수가 유러피언 F3 오픈 코파 클라스 경기에서 우승을 했다는 기분 좋은 뉴스가 들렸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던 무렵 오전에도 필자는 TV를 통해 임채원 선수가 출전한 유러피언 F3 오픈을 챙겨 봤습니다. 간간이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임채원 선수의 활약을 보며 F1의 맨살을 상대적으로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필자는 그가 F1이라는 거대한 꿈을 향해 얼마나 사력을 다하고 있을지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국제적 모터 스포츠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에서 임채원 선수의 도전이 얼마나 어렵고 피나는 희생을 요구하는지 제대로 평가될 리 없습니다. 어렵고 힘든 여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의 도전이 그가 바라는 최선의 결과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완성차 업계뿐만 아니라 한국의 범 자동차 업계가 세계적인 위상에 걸맞은 수준으로 모터 스포츠와 드라이버 육성에 투자하기를 희망합니다. 온갖 역경을 뚫고 이미 성공한 스포츠 스타 뒤에서 자신들의 상품과 함께 서고자 하는 광고주는 한국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의 가능성에 기꺼이 투자할 ‘엔젤’은 부재합니다. 가능성을 현실로 이끌어줄 ‘엔젤’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한국인 F1 드라이버의 탄생을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막장 드라마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요소인 출생의 비밀처럼, 한국 스포츠 스타의 성공 스토리에 빠지지 않는 ‘경제적 역경’과 ‘무관심’의 시나리오를 한국인 F1 드라이버의 탄생에도 기대한다면 우리 자동차 산업의 수준을 우리 스스로 낮추는 격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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