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드매거진을 통해 F1 스토리를 연재 중인 김남호 박사는 현재 영국에 거주 중이며, 명문 F1 팀인 Lotus F1 Team에서 성능 분석 엔지니어로 활동 중인 한국인 F1 엔지니어이다. 혹시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지난 연재 기사 링크를 안내한다.

필자가 유소년기를 보냈던 1980년대에는 일반 자전거나 화물 자전거의 크랭크에 2 행정 소형 페트롤 엔진을 연결하여 페달을 구르지 않고도 주행할 수 있도록 개조한 정체불명의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이런 형태의 자전거 개조가 불법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모터사이클 구동계를 모방할 기술을 가진 한 자전거 정비사의 손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 Werner 230cc (1904)

이는 “지치지 않는 기계 동력을 사용함으로써 사이클리스트가 힘들게 페달을 밟는 수고를 덜 수 있다”는 단순한 아이디어를 일상에서 구현한 좋은 예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하이브리드 자전거 콘셉트는 이 무명 자전거 정비사의 순수 창작물이 아닙니다. 이 아이디어의 지적 재산권자는 유럽인들의 몇 세대 위 조상들이고, 이들은 1900년이 되기도 전인 먼 과거에 ‘모터바이크’란 이름으로 이 아이디어를 현실화 하였으며, 이를 상품화한 모터바이크는 단순히 자전거를 모터로 구동하는 수준을 넘어 고속 주행이 가능했던 교통수단 이었습니다.


: 포드 쿼드사이클 (1896)

자동차 동역학에서 사용하는 자동차 모델은 실제로 '자전거 모델 (Bicycle Model)'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모터바이크 두 대가 나란하게 연결된 형태인 4륜 자동차 역시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호기심 많던 유럽인의 조상들이 인류에게 선사한 문명입니다. “사람이나 동물의 힘을 이용하는 것 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의문은 유럽인들이 자전거와 마차바퀴를 엔진 동력으로 구르기 시작하던 그 때에 이미 해결되었습니다. 이 혁명적인 발상은 꾸준히 진화를 거듭하였고 현재 양산차의 대부분은 일상생활을 영유하기에 충분히 빠르고도 남을 만한 수준에 도달해 있습니다.


: 르노 에뚜알 (1956)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터스포츠는 여전히 “자동차로 얼마나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집니다. 지난 몇 편의 글을 통해 필자가 소개한 바와 같이 '속도'는 모터스포츠 산업의 생존 기반이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그 속에서 일하는 필자와 같은 사람들은 “더 빠르게”를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일깨워주는 이는 많지 않았던 '자동차를 더 빠르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누구나 아는 상식, 차는 가벼울수록 빠르다



자동차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잘 달리게 만드는 학문을 우리는 '자동차 동역학(Vehicle Dynamics)' 이라고 부릅니다. 학문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동안 축적한 지식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어느 학문이나 깊게 파고들수록 복잡해지기 마련입니다. 자동차 동역학이란 학문도 이 점에 있어 예외일 수는 없지만, 그 시작은 어려울 것 없는 상식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이 상식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며, 책으로 근사하게 정리된 이론을 보아도 너무나 당연한 자연 현상을 그저 깔끔하게 요약하여 글로 옮긴 듯 보여 이내 시큰둥해 집니다. 다름 아닌 '뉴턴의 운동 법칙'입니다.

일찍이 근대 물리학을 집대성한 뉴턴은 인류에게 힘과 운동에 관한 자연 법칙 세 가지를 선사하고 떠났습니다. 뉴턴의 운동 법칙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등장할 정도이니 이것이 얼마나 기초적이고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초 상식은 F1 카를 비롯한 모든 자동차의 운동과 빠르기를 예측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과학 이론입니다. “이렇게 하면 더 빠른 자동차가 될 것이다”를 예측하는 현대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과거의 손 계산보다 더 정확하고 빨라졌을 뿐, F1 을 비롯한 모든 자동차 역학은 여전히 뉴턴이 제시했던 문제 해결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이로스코픽 효과와 수학적으로 완벽한 예측이 어려운 공기의 난류(Turbulence) 흐름 등을 제외하면 F1 카의 움직임은 뉴턴 역학으로 대부분 예측과 해석이 가능합니다. 뉴턴이 인류에게 선사한 이 상식을 통해 어떻게 하면 자동차를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는지 매우 쉽고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단, 주차장에 고이 모셔진 멀쩡한 당신의 차로 직접 시험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뉴턴의 첫 번째 운동 법칙은 ‘관성의 법칙’ 입니다. 자연계의 물체는 외부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현재 상태를 유지한다는 원리입니다. 물체가 지닌 ‘게으름의 크기’인 관성은 직선 운동의 경우 질량으로 표시되고, 질량은 보통 무게라고 생각하여도 무관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물체가 무거워질수록 이를 움직이거나 멈추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반대로 물체가 작고 가벼울수록 민첩하게 움직인다는 이 지극히 당연한 원리는 뉴턴 선생이 없었다 하더라도 누구나 체득하고 있을 상식이지만, 자동차를 빠르게 만드는 가장 손쉽고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자동차는 가벼울수록 움직임에 있어 덜 게으르기 때문에, 더 경쾌하고 신속한 가속을 위해 차량의 무게는 가벼울수록 좋습니다. 로드카라면 운전석을 제외한 시트와 패딩을 모조리 제거합니다. 트렁크에서 OVM공구와 스페어타이어를 뺍니다. 아기 시트도 떼버리고, 마누라도 절대 태우지 않습니다. 캐빈 안의 쓰레기도 다 버리고, 글러브박스 안 주유소 화장지까지 모조리 치우면 차의 가속이 한결 수월해 질 것입니다.



F1의 경우 안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꼭 필요한 구성품 만으로 차를 조립하고, 가장 튼튼하고 가벼운 소재를 최대한 많은 부분에 사용함으로써 차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철판보다 가볍고 단단하다는 탄소섬유를 차체 제작에 사용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기술이 진보하여 F1 카의 무게를 단 100 kg 정도로 줄일 수 있다면 그야말로 민첩한 차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가 현재 활용할 수 있는 기술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F1 카 자체의 무게를 줄이는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차의 무게에는 조작하는 드라이버의 몸무게가 더해집니다. 드라이버들의 중량은 저마다 다릅니다. 차량의 무게가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드라이버의 몸무게가 1kg 늘어날 때 마다 약 0.03초 정도 랩 타임에서 손해를 봅니다. 드라이버 간의 무게 차이로 인한 불균형을 어느 정도 막고자 F1 기술규정은 연료통이 빈 상태에서 드라이버를 실은 차의 최소 중량을 제한합니다.



현재 규정상 F1 카의 최소중량은 691kg입니다. 이를 초과한 중량은 단 1g이라도 레이스에 손해를 끼치기 때문에 F1 팀들은 차의 무게를 어떻게든 규정된 최소중량에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차량의 무게도, 드라이버의 무게도 줄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드라이버에게 다이어트를 요구하는 것이 적은 비용으로 큰 무게 감소 효과를 낼 수 있는 보다 손쉬운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드라이버는 그리드에 서기 전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아서라도 몸무게를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관성의 법칙은 감속 시에도 단지 힘의 방향만 가속과 반대일 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날씬한 육상선수와 육중한 스모선수가 술래잡기를 한다면 육상선수는 낮은 ‘관성’을 이용하여 빠르게 달음질치거나 요리조리 빠져나감으로써 스모선수를 쉽게 농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빠르게 달리고 빠르게 서기 위해서 자동차가 지닌 ‘게으름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 바로 레이스카 제작의 제 1 원리입니다.



'F=ma', 강력한 엔진과 브레이크를 탑재하는 이유



F1 카의 무게를 기술규정이 정한 최소 무게로 여차저차 해서 맞추었다면 이제 차를 빠르게 만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뉴턴의 두 번째 법칙은 F=ma, 즉 “시간에 따른 물체의 운동량 변화는 그 물체에 작용하는 알짜힘과 같다”입니다. 자동차에 작용하는 힘이 커지면 그 힘의 방향으로 가속의 크기가 커진다는 아주 당연한 진리입니다.


 : 르노 F1 V6 터보엔진

이 법칙을 직관적으로 적용하자면 차의 가속력을 키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더 큰 출력의 엔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더 튼튼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이치와 같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지하 주차장 한 켠에서 아반떼의 엔진 블록을 들어내고 BMW M3 의 4리터 터보 엔진을 달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자동차 관련법이 이를 허용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 법이 허용하는 여러 가능한 방법을 동원하여 기존 엔진의 출력을 높이는 방법을 선택하며 우리는 이를 “엔진을 튜닝한다”고 말합니다(하지만 레이스카가 아닌 이상 엔진 튜닝이 꼭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입니다).


: 메르세데스 AMG F1 V6 터보엔진

F1 카에는 F1 기술규정이 요구하는 요건을 충족시키는 엔진이 장착되어야 하기 때문에 더 큰 출력의 엔진을 마구 사용할 수 없습니다. 또한 서로 다른 F1 엔진 메이커들에 의해 엔진이 제작되었다 하더라도 그 사양이 F1 기술규정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큰 틀에서는 엔진 출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1 은 백분의 일초를 다투는 경쟁이다 보니 1-2마력의 차이로도 승부가 갈릴 수 있기 때문에 똘똘한 엔진 메이커를 선택하고, 선택된 엔진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F1 카의 동력 계통은 살펴볼 구석이 많은 주제이기 때문에 별도의 지면을 통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F=ma는 감속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신속한 가속에 높은 엔진 출력이 필요하다면, 민첩한 감속에는 높은 브레이크의 제동력이 요구됩니다. 브레이크의 제동력은 곧 브레이크 패드의 마찰 성능에 좌우됩니다. 마찰력이 높고, 온도변화에도 고른 마찰력 분포를 보이는 재질의 브레이크 패드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양산차의 경우에도 고성능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습니다. 엔진 튜닝으로 차를 안전하게 만들 수는 없지만, 브레이크 튜닝은 제동의 민첩성을 높여, 궁극적으로 안전성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당신의 차를 더 믿음직한 차로 변신시킬 수 있는 아마도 가장 손쉬운 방법일 것입니다.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타이어의 역설’



차 중량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고 엔진 출력도 빵빵하게 높였고 믿음직한 브레이크도 달았으니 이제 트랙 위를 질주하는 데에 문제가 없을까요? 하지만 세상 이치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습니다. 가벼운 차에 큰 출력의 엔진과 고성능 브레이크를 달면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이어가 감당 못할 정도로 강력한 엔진과 브레이크의 힘이 가해지면, 타이어가 미끄러지기 쉬워 레이스카에 꼭 필요한 민첩한 가속이나 방향 전환이 어려워지게 됩니다. 차의 무게를 줄이고 엔진의 출력을 키우면, 타이어의 단점이 커져 전체적인 성능이 전혀 나아지지 않는 이 '타이어의 역설'이 레이스카 제작에 있어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몇 해 전 영국 국영 방송 BBC의 유명 모터링 쇼 ‘톱 기어’의 진행자 중 한 사람인 리차드 해먼드가 F1 카 운전에 도전하였습니다. 수많은 슈퍼카와 퍼포먼스 카를 체험하였고 일반인들에 비해 월등한 운전 실력을 자랑하는 리차드의 F1 카 체험은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았는데, 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이 바로 이 타이어의 역설이었습니다. 리차드의 이야기는 글 말미에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무시 못 할 레이스카의 한계가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담겨 있습니다. 모든 작용에는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반작용이 존재합니다. 자동차는 엔진과 브레이크 힘으로 유도된 타이어 고무의 변형과 지면 사이의 작용-반작용에 의해 가고 섭니다. 때문에 타이어는 자동차의 운동 역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엔진의 출력이 제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타이어가 지면과 닿아 있지 않으면 자동차는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또한 타이어가 지면과 닿아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빙판이라면 고출력의 자동차 엔진이 할 수 있는 일은 헛바퀴질과 우왕좌왕 미끄러짐을 제외하곤 거의 없습니다. 배기구를 통해 아무리 힘차게 배기가스를 뿜어낸다 하더라도 제트엔진처럼 추진력을 얻어 앞으로 전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동차는 외부의 힘, 예를 들면 제트 엔진의 추력, 중력, 바람의 힘, 또는 강력한 자기력을 이용하지 않는 이상 현존하는 어떤 동력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타이어를 굴러 이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타이어가 뽀송뽀송한 지면위에 있고, 있는 힘껏 엔진 동력을 끌어 모아 타이어를 구른다 하더라도, 타이어는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한계까지 만 힘을 낼 수 있고 한계를 넘어서면 미끄러지기 시작합니다. 자동차의 운동 능력은 전적으로 이 타이어 한계에 종속됩니다.



타이어의 접지력을 높이는 방법

결국 자동차의 가고서는 능력은 자동차의 엔진이나 브레이크가 생성하는 파워를 타이어가 지면으로 얼마나 많이 전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으며, 이 타이어와 지면 사이의 힘을 우리는 접지력 (Grip)이라고 부릅니다. 엔진과 브레이크의 파워를 자동차의 운동으로 최대한 많이 전달하기 위해서는 타이어의 접지력 한계가 높아야 합니다. 타이어의 접지력을 월등하게 키울 수 있다면 레이스카 문제의 8할은 해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타이어의 접지력을 높이는 방법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마르고 미끄럽지 않은 매끈한 표면 위를 달리는 것입니다. 눈 온 후 블랙 아이스가 지저분하게 덮인 국도 위를 달리는 것 보다 따스한 봄날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것이 당연히 빠릅니다. 모터 레이스의 경우 모든 참가 차량이 동일한 트랙을 공유하기 때문에 차량들 간의 접지력 차이가 크지 않지만, 가급적 노면 위의 마르고 매끄러운 부분을 따라 주행함으로써 제한적으로 접지력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승패를 결정하는 큰 변수가 되지는 못합니다.



둘째, 타이어 온도를 적당하게 유지시키는 것입니다. 각 타이어는 접지력을 최대한으로 높일 수 있는 고유한 온도 영역대가 있기 때문에 타이어를 이 최적 온도에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F1 카가 피트에서 트랙으로 진입하기 전 타이어를 검은 전기담요로 꽁꽁 싸매어 온도를 높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레이스 출발 전 트랙 한 바퀴를 서서히 도는 과정 (포메이션 랩) 에서 F1 카들이 일부러 좌우로 심하게 움직이는 것도 타이어에 마찰을 일으켜 열을 발생시키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우리 몸의 체온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듯 타이어의 온도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 타이어의 형태와 재질이 바뀌면 접지력 특성도 달라집니다. 사계절용 타이어로 달릴 수 없는 눈길을 스노우타이어로 달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넓고 큰 F1 타이어의 형상도 접지력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형태가 같다 하더라도 사용하는 합성 고무의 성분과 조성(컴파운드)이 다르면 타이어의 성격도 달라집니다. 현재 F1 경기에는 단일 타이어 브랜드만이 사용되며, 2014 시즌 타이어 독점 공급권을 얻은 피렐리 사가 동일한 타이어를 모든 F1 팀들에게 제공합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F1 팀은 타이어 공급사가 제공하는 타이어를 그대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타이어 접지력 향상을 위해 F1 팀이 타이어 형태와 재질에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타이어를 통해 성능을 차별화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여기에도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접지력을 높일 수 있는 마지막이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타이어에 가해지는 수직 하중을 높이는 것입니다. 타이어는 내려 누르는 힘이 클수록 트랙을 움켜잡는 힘이 커집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무거워질수록 지면과 접촉하는 면의 마찰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F1 카는 ‘관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극강의 다이어트를 합니다. 하지만 차의 무게가 줄면 타이어를 내리 누르는 힘이 떨어져 접지력의 한계가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타이어가 미끄러지기 쉬워집니다. 결국 타이어의 접지력을 키우려면 타이어를 내리 누르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차를 다시 무겁게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피나는 다이어트로 애써 줄인 몸무게를 다시 찌우는 매우 미련한 방법입니다.


: 로터스 49B (1968)

요컨대 자동차가 빨리 달리려면 무게가 가벼워야 하지만, 엔진의 힘을 온전히 타이어로 전달하거나 코너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타이어를 누르는 무게가 커야 하는 골치 아픈 문제가 바로 레이스카의 역설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설적인 로터스의 설계자 콜린 채프먼은 레이스카의 앞뒤에 날개를 답니다. 차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공기가 날개에 더 많이 부딪히게 되어 차를 아래로 누르는 힘이 커지는 원리를 이용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차의 전체 중량을 크게 늘리지 않고서도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차가 무거워지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공기가 날개에 부딪혀 차를 내리 누르는 힘을 ‘다운포스 (Downforce)’라고 부릅니다.



앞서 언급한 리차드 해먼드는 타이어의 역설을 극복하기 위해 한참 동안 F1 카와 씨름해야 했습니다. 일반 로드카의 경우 곡선 구간에서 속도를 줄여야 커브를 미끄러지지 않고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관성으로 인한 하중 이동이 어느 정도 있지만 전체 하중의 변화가 거의 없어 타이어가 버틸 수 있는 접지력의 한계가 크게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차의 속도를 줄임으로써 타이어의 미끄러짐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도 이 방법을 사용하였지만 그가 운전하던 F1 카는 곡선 구간에서 번번이 미끄러져 트랙을 이탈하였습니다. 로드카와는 달리 F1 카는 워낙 가볍기 때문에 속도를 과도하게 낮추면 다운 포스가 줄고, 그 결과 타이어 마찰력이 낮아져 코너를 빠져나갈 만큼의 충분한 타이어 접지력을 생성할 수 없게 됩니다. 급한 곡선 구간을 연속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레이스카는 타이어의 접지력이 떨어지면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F1 카는 일정 속도 이상을 계속 유지해야만 충분한 다운포스가 생성되어 타이어의 접지력을 충분한 수준으로 유지시킬 수 있고, 결과적으로 안정된 코너링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경험 없이 F1 카를 아무나 운전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일반 로드카의 경우 날개를 달아 거둘 수 있는 효과는 거의 없습니다. 일반 도로에서는 차량의 에어로다이내믹 파트가 현저한 다운포스를 생성할 만큼 빠르게 달릴 만한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로드카에 달린 날개는 사실상 장식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차의 무게를 줄이고 접지력이 높은 타이어와 믿을만한 브레이크를 선택하는 것이 당신의 차를 민첩하게 만드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F1 카는 이 기본 레시피에 날개의 힘을 빌어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만든 자동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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