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에서 필자는 자동차의 주행 성능을 결정짓는 VIP 요소로 주저 없이 타이어를 꼽았다. 겉보기엔 그저 매캐한 합성 고무 냄새를 풍기는 시커먼 고무 도넛에 불과하지만 타이어는 그 배경 이론만 써 내려가도 두꺼운 책 한 권이 될 정도로 복잡한 과학의 산물이다. 결국 자동차의 핸들링 성능은 본질적으로 타이어의 성능이다. 자동차의 가속, 제동, 방향 전환을 가능케 하는 힘의 원천이 다름아닌 타이어가 도로 표면을 움켜 잡고 당기는 힘, 즉 타이어의 접지력이기 때문이다.

어떤 물질이 자동차 타이어로 사용될 수 있으려면 1) 노면과의 접촉에 의해 비교적 쉽게 변형될 정도로 재질이 무르고 2) 변형 후 원래 형상으로 복원하려는 탄성이 있어야 하며 3) 바퀴로 사용하기에 너무 무겁지 않아야 한다.



자동차 타이어로 쓸만한 물질이 있는지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주방의 냄비가 눈에 띈다. 대부분의 금속은 고유한 탄성이 극도로 높지만 마찰 정도의 스트레스로는 마이크로 단위의 변형도 유발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단단하다. 마찰 시 변형이 없다는 건 노면 위에서 문질렀을 때 쉽게 미끄러짐을 의미한다. 무겁기로 따지자면 금속만한 재료도 없다. 만약 강철이 지금보다 조금 더 가볍고 무른 물질이었다면 열차는 레일 가이드 없이도 그럭저럭 스스로 방향을 바꾸며 이동하는 교통수단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진흙은 쉽게 변형되지만 복원력이 전혀 없다. 콘크리트는 워낙 무거워 유모차 바퀴 크기로 만들어도 들기 조차 힘들 거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현존하는 물질 중 자동차 타이어로 사용할 수 있는 물질은 합성 고무가 유일하다.



타이어 합성 고무의 재질, 즉 컴파운드 (Compound)는 본질적으로 스프링 (Spring)이다. 자동차 타이어는 변형된 타이어 조직이 원래 형태로 회귀하려는 탄성 복원력을 이용하여 원하는 방향으로 힘을 유도하는 일종의 스프링 장치다. 냉정하게 말하면 자동차의 엔진, 브레이크, 스티어링 시스템의 역할은 타이어 컨택트 패치의 형태를 강제로 변형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 타이어의 복원력은 타이어 조직의 변형 정도가 동일하다 할 지라도 타이어 컴파운드가 얼마나 탱탱한 성질을 띠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타이어의 변형은 미끄러짐(Slip)의 크기로 표시한다. ‘미끄러짐’은 현 상태의 타이어 컨택트 패치에 얼마나 큰 스트레스 혹은 변형이 가해질 것인지를 수치화한 지표다. 가속/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타이어 컨택트 패치는 전후 방향으로 변형된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타이어 컨택트 패치는 꽈배기처럼 뒤틀린다. 타이어 컨택트 패치에 발생하는 변형의 크기는 전후 방향의 경우 미끄러짐의 비율(Slip ratio), 뒤틀림의 경우 미끄러짐의 각도(Slip angle)로 정량화되며, 타이어 컴파운드에서 발생되는 힘은 이 ‘미끄러짐’의 함수로 정의된다.



타이어의 힘은 컨택트 패치의 슬립이 클 수록, 즉 가속/브레이크 페달을 더 깊게 밟고 스티어링 휠을 더 꺾을 수록 커진다. 하지만 타이어가 버틸 수 있는 스트레스에는 한계가 있다. 타이어 컨택트 패치가 어느 한계 이상으로 과도하게 미끄러지면 타이어의 힘은 급격하게 추락한다. 자동차를 급발진 혹은 급정거하는 경우 타이어가 연기와 찢기는 듯한 마찰음을 내며 미끄러지는 현상이나, 코너를 너무 빠른 속도로 무리하게 진입하다 도로를 이탈하는 사고는 타이어의 접지력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접지력 한계가 높은 타이어를 사용하면 보통의 타이어로는 불가능하던 가혹한 운전도 미끄러짐 없이 지탱할 수 있기 때문에 자동차의 핸들링 성능과 안전성이 향상되는 건 자명한 이치다.


자동차 핸들링 성능의 경계선 찾기



타이어와 자동차의 핸들링 성능 사이의 상관 관계를 독자들의 자동차 상식에 비춰 다각도로 살펴보기 위해 ‘GG 다이어그램 (GG Diagram)’이라 불리는 도표를 사용할 거다. GG 다이어그램은 첫 등장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자동차 성능 분석에 광범위하게 사용돼온 유용한 방법이다. GG 다이어그램은 타이어가 자동차 무게 중심에 미치는 힘의 변화 추이를 2차원 공간에 표시한다. 이 도표는 어떤 자동차의 핸들링 성능 한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혹시라도 추가적인 성능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찾는데 도움을 준다. 또 자동차의 반응을 운전의 필수 요소인 스로틀, 브레이크, 스티어링 작동과 연계하여 직관적으로 이해하는데 유용한 자료가 된다. 복잡하고 지루한 이론의 등장을 예견하고 이쯤에서 읽기를 포기하는 독자가 있을 수 있겠으나, 앞으로의 내용도 중학교 2 학년 수준의 독해 능력과 자동차 운전 상식 만 있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니 안심해도 좋다.

GG 다이어그램은 수학 교과서에 흔히 볼 수 있는 X-Y 축의 2 차원 공간에 그려 놓은 선이다. 이 공간의 가로축 (X축)과 세로축 (Y축)은 자동차가 경험하는 가속도다. 서로 다른 자동차의 핸들링 성능을 비교할 때 자동차가 경험하는 힘의 크기는 공정한 성능 지표가 될 수 없다. 동일한 힘을 가해도 자동차의 질량이 다르면 자동차의 반응, 즉 발생하는 가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GG 다이어그램에는 비교의 기준으로 힘이 아닌 가속도가 사용된다. 가속도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주어진 시간 동안 물체의 속도가 얼마나 많이 변화하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다. GG 다이어그램의 가속도는 통상 G 포스로 표시된다. G 포스는 물체에 작용하는 힘의 크기를 중력의 배수로 표시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자동차의 성능을 비교함에 있어 경우 중량의 차이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GG 다이어그램이란 이름도 가로축과 세로축, 이렇게 두 개의 G 포스가 붙는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위 그림은 극히 단순화해 그렸지만 전형적인 GG 다이어그램의 형태를 보여준다. GG 다이어그램의 세로축은 자동차의 무게 중심이 전후 방향으로 경험하는 가속도의 크기를 표시한다. 가속 페달을 많이 밟을 수록 X-Y 공간 상의 상태 표시점은 수평축 (X축) 위로 더 많이 이동한다. 브레이크 페달에 대한 반응은 가속 페달과 반대다. 브레이크 페달을 더 세게 밟을 수록 점은 수평축 아래로 더 멀리 이동한다. 스티어링에 대한 반응은 좌우 방향의 힘으로 나타난다. 자동차의 속도가 일정하다면 스티어링 휠을 좌우로 더 많이 돌릴수록, 스티어링 휠이 같은 각도를 유지한다면 자동차의 속도가 빠를 수록 자동차는 좌우로 더 급격하게 휘청거린다. 즉, 횡방향으로 작용하는 가속도가 더 크다. 횡방향 가속도가 크면 클수록 점은 수직축 (Y축)에서 좌우로 더 멀리 이동한다.

타이어 재질이 모든 방향으로 균일하고 타이어와 도로가 접촉하는 컨택트 패치의 형태가 사방으로 대칭에 가깝다면 순수하게 제동만 하는 경우 (점이 Y 축 위에서만 이동)와 정속으로  코너링만 하는 경우 (점이 X축 위에서만 이동)의 최대 접지력은 유사할 거다. 브레이크와 스티어링 조작이 복합된 조건에서도 타이어가 낼 수 있는 최대 접지력 크기는 X, Y 축 위의 최대 접지력과 크게 다를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 모든 점들을 이으면 대략 원형이 될 것이고, 이 원은 다양한 가속도 조합에서 타이어가 버틸 수 있는 접지력의 한계를 표시한다.



GG 다이어그램이 모든 방향에서 이렇게 완벽한 원의 형태라면 깔끔하고 좋겠지만 아쉽게도GG 다이어그램의 윗 부분은 자동차의 가속이 갖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납작하게 눌린 모양이 된다. 예를 들어, 저단 기어 상태에서 급하게 출발하면 타이어가 제자리에서 미끄러지기만 할 뿐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또 자동차를 아무리 세게 가속하고 싶다 하더라도 엔진이 낼 수 있는 최대 파워 이상으로 가속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예컨대 자동차를 가속하는 일은 감속이나 방향을 바꾸는 일보다 어렵다. 예를 들어, F1 카는 제동 시 최대 약 3.8 G, 코너링 시 약 3.7 G에 도달하지만 최대 가속도는 그 절반 정도인 약 1.8 G 정도에 불과하다.

생경한 이야기가 이어지다 보니 여기까지 설명에서 길을 잃은 독자들이 있을 거다. 좀 더 실생활에 가까운 예를 들어 GG 다이어그램 정복에 다시 도전해보자.


원을 채우는 방법

긴 직선 도로 위에서 정지해 있던 자동차가 전력으로 출발했다가 다시 급정거한다. 직선 상을 달리기 때문에 스티어링 휠은 중립 상태이고 좌우로 발생하는 힘은 0 이다. 따라서 점은 GG 다이어그램의 수직축 상에서만 이동한다. 점의 이동 순서는 0 번 지점 (정지, 가속도 = 0 )  1번 지점 (전진, 가속도 > 0)  2번 지점 (전진, 가속도 < 0)   3번 지점 (정지, 가속도 = 0) 이다. 아래 그림의 네모 박스 안에 표시된 브레이크, 스로틀, 스티어링 신호를 참고하면 이 시나리오의 대강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거다.



이제 난이도를 조금 높여 180 도로 꺾이는 U 자형 도로, 일명 ‘헤어핀 (Hairpin)’ 구간을 예로 들어보자. 전속력으로 직선을 달려오던 자동차가 이 고난도 구간을 통과하기 위해선 반드시 1) 코너 진입 전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충분히 줄인 다음 2) 곡선 구간을 진입헤 미끄러지지 않고 안전하게 통과한 후 3) 직선 구간에 접근하면서 스로틀 페달을 밟아 다시 가속해야 한다. 하지만 이 헤어핀 구간을 통과하는 운전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다소 과장된 다음의 두 가지 예를 들어 GG 다이어그램의 맥락을 이해하자.



직선을 전력으로 달려오던 자동차는 (0번 지점) 코너 입구에 접근하기 훨씬 전에 브레이크를 밟아 (1 번 지점) 코너링 시 타이어의 접지력 한계를 절대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속도를 충분히 줄인다 (2번 지점). 코너에 진입하면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3번 지점) 이 속도 그대로 방향을 180 도 변경하며 코너를 통과한 후 (4, 5번 지점) 곡선 구간의 끝에 다다르면 스로틀 페달을 밟아 가속하며 직선 구간으로 진입한다 (6 번 지점). 이 일련의 과정은 위 그림에 표시된 바와 같이 GG 다이어그램에 연속적으로 표시될 수 있다. 이 코너링 방식은 하늘색으로 표시된 안전 마진 (Safety margin)이 있어 의도치 않게 경로를 이탈하더라도 자동차의 안정성이 계속 유지되어 쉽게 원래의 경로로 복원이 가능하다. 이 방법은 안전 운전의 좋은 예다.

하지만 레이스 드라이버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이같이 안전 마진을 남겨두는 운전은 사생 결단의 전투 중 “탄약이 아까워 쏠 수 없다”는 군인의 궤변처럼 보일 뿐이다. 모터 레이스에서 이 같은 코너링 방법은 타이어의 접지력 성능을 일부러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안전 마진이라 불리는 우측 하단의 여백을 그대로 방치하는 건 성능을 최대로 활용하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랩 타임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안전 마진을 크게 두는 레이스 드라이버는 유능한 레이스 드라이버라 할 수 없다.



위의 GG 다이어그램은 안전 마진을 포기하고 오로지 자동차의 속도를 가능한 빠르게 유지하기 위해 자동차의 핸들링 성능을 100% 활용하는 레이스 드라이버들의 코너링 방법을 보여준다. 즉, 경계선에 가능한 가깝게 운전하며 타이어의 접지력 성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예다. 코너 진입 이전에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인다는 원칙은 앞서 살펴본 안전 운전의 예와 같다. 레이스 드라이브에서 관찰되는 가장 분명한 차이점은 최종 감속 시점을 코너 입구와 최대한 인접하게 둠으로써 더 빠른 속도로 코너 입구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2번 지점). 이후 코너에 진입하면 스티어링 휠 각도를 키움과 동시에 꾹 밟고 있던 브레이크 페달을 서서히 푼다. 브레이크 페달은 레이스카가 타이어의 접지력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만 밟는다 (3 번 지점). 코너 구간을 벗어나 가속을 시작할 때에도 이와 유사한 원리가 적용된다. 레이스카가 코너의 최대 곡률 지점을 통과하면 (4번 지점) 타이어의 접지력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스로틀 페달을 가능한 많이 밟아 속도를 높여야 한다 (5번 지점). 이렇게 하면 타이어의 접지력을 최대한 사용하게 되어 곡률이 큰 헤어핀 경로를 더 빠르게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레이스카가 안정과 불안정 영역의 경계를 타고 움직이기 때문에 작은 실수에도 차체가 균형을 잃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곡률이 큰 커브 구간을 고속으로 달리던 중 브레이크 페달을 너무 세게 밟으면 타이어가 갑작스레 미끄러지고 레이스카가 균형을 잃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균형을 잃은 레이스카를 다시 원래의 주행 경로로 복구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GG 다이어그램을 사용하면 어떤 자동차의 핸들링 성능 한계를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자동차의 상태 표시점이 위 도형의 안 쪽에만 머문다면 자동차는 쉽사리 안정성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자동차를 위 도형의 밖에 해당하는 영역으로 내몰 정도로 과격하게 운전하면 핸들링이 급격하게 불안정해지고 반응의 불확실성도 높아진다. 고도로 훈련된 랠리 (Rally) 드라이버들은 불안정 영역에서도 운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구상 가장 뛰어난 드라이브 컨트롤러인 이들 조차도 이 불안정 영역에서 오래 버티진 못한다. 하물며 에브리데이 드라이버들이 자신의 운전 실력을 뽐내거나 자동차 성능을 과신하다 이 절대 안전선을 떠나기라도 하는 날에는 대형 사고만 면해도 다행이다.

도로에서 일명 ‘칼치기’를 일삼으며 타인의 생명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이기적이고 미련한 운전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첫째, 무슨 짓을 해도 자동차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도형의 중심 구간에서만 놀다가 자신의 운전 실력이 남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나다고 믿게 되어버린 유아적 나르시스트일 가능성이 크고, 둘째, 경계선을 넘어서면 어떤 무서운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고 까부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며, 셋째, 이 안전선의 개념을 이해할 만큼 충분한 지능이 있을 리 없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GG 다이어그램은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핸들링 성능 분석에 사용된다. 우선 GG 다이어그램으로 확인된 핸들링 성능 한계는 다른 자동차와의 성능 비교 기준으로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위 그림의 GG 다이어그램 1, 2, 3 은 전혀 다른 세 종류의 자동차 핸들링 특성을 나타내며, 만약 차종이 같다면 모양의 차이는 100 % 타이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타이어 1 의 접지력은 타이어 2 보다 모든 방향에서 우월하다. 따라서 우리는 “타이어 1 이 타이어 2 보다 우수한 타이어다”라고 말할 수 있다. 타이어 1과 타이어 3 의 성능은 방향에 따라서 우위가 바뀐다. 타이어 1 은 좌우 방향 전환 시, 타이어 3 은 직선 운동 시 더 큰 성능을 발휘한다. 만약 직선에서 속도를 겨루는 드래그 레이스 (Drag Race) 용 타이어를 골라야 한다면 이 세 타이어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하는지 답이 한눈에 들어온다.



GG 다이어그램은 또한 서로 다른 드라이버의 핸들링 능력 비교의 기준이 되거나 성능 향상의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위와 같은 GG 다이어그램이 기록됐고, 우측 하단에 녹색으로 표시된 여백이 보인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우측 하단의 가속도 영역은 자동차가 우향 코너를 통과하면서 드라이버가 브레이크를 밟는 영역이다. 이 녹색 여백은 드라이버가 해당 감속 구간에서 속도를 높여 더 공격적인 코너링을 시도해도 안정성에 아직 여유가 있음을 의미한다. 엔지니어는 드라이버에게 이 그림을 보이며 “쫄지 말고 더 달려라”고 요구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 F1 타이어



2015 년 현재, F1은 이탈리안 타이어 브랜드 피렐리 (Pirelli)로부터 타이어를 독점 공급받고 있다. 타이어 컴파운드와 제작 방식의 선택에 있어서 타이어 공급사는 배타적인 지위를 갖는다. 하지만 안전성 향상, 레이스 흥미 유발 등 공공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경우 타이어 공급사는 타이어의 재료와 제작법을 바꾸기도 한다. 타이어 제조사 입장에서는 사소한 스케일의 변경일 수 있지만 F1 팀들은 아주 작은 변경에도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타이어 변화는 즉각적인 자동차 핸들링 성능 변화를 의미한다. GG 다이어그램으로 설명하자면 핸들링의 경계선 형태가 달라지는 거다. F1 레이스는 GG 다이어그램의 경계선을 타고 벌이는 경쟁이기 때문에 만약 경계선이 바뀌면 모든 팀들은 지금까지 파악한 타이어의 성능을 다시 학습해야 한다. 예컨대 새로운 타이어 컴파운드가 도입된 후 레이스카에 아무 짓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새 타이어와의 궁합이 우연하게 잘 맞아 전체적인 핸들링 성능이 갑자기 좋아지는 레이스카가 있는가 하면, 기존 타이어로 달릴 때에는 뛰어난 핸들링 성능을 보이던 레이스카가 새로 도입된 타이어를 사용하고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연출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F1 팀들은 타이어 변경 소식에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다.



2015 년 현재, 피렐리는 위 그림에 표시된 바와 같이 마른 트랙에서 사용하는 드라이 타이어 (Dry Tyre) 4 종 (Super Soft, Soft, Medium, Hard), 젖은 트랙에서 사용하는 웻 타이어 (Wet Tyre) 2 종 (Intermediate, Full Wet), 총 여섯 종류의 타이어를 F1에 공급하고 있다.

타이어 종류는 테두리의 색깔로 쉽게 식별이 가능하다. 드라이 타이어의 명칭은 그 자체로 컴파운드의 물렁한 정도를 나타낸다. 앞서 장황하게 설명했던 GG 다이어그램으로 표시하면 수퍼 소프트로 갈 수록 타이어의 핸들링 영역이 더 크고 넓다. 더 물렁하고 끈적한 타이어를 사용할 수록 접지력이 좋아져 가속, 감속, 코너링 시 더 큰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퍼 소프트 타이어를 만져보면 일반 타이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끈적함을 느낄 수 있다. 수퍼 소프트에서 소프트, 미디엄, 하드 타이어로 옮겨 갈 수록 타이어의 컴파운드는 더 딱딱해 지고 감당할 수 있는 G 포스의 한계는 줄어든다. 하지만 이렇게 희생된 타이어의 접지력은 타이어의 수명 연장으로 보상된다. 부드러운 지우개는 한 두 번만 문질러도 연필 글씨를 잘 지우지만 쉽게 닳아 없어지고, 딱딱한 지우개는 같은 글씨를 지우기 위해 더 세차게 문질러야 해서 종이를 찢기도 하지만 오래 쓸 수 있는 이치와 유사하다. 컴파운드의 물렁함에 따라 성능이 결정되는 드라이 타이어와는 달리 젖은 트랙에서 사용하는 웻 타이어의 성능은 적절한 배수 성능이 접지력을 좌우한다.



F1 타이어 공급사는 그랑프리 이벤트마다 네 종류의 드라이 타이어 중 2 종의 컴파운드를 선택해 트랙으로 가져온다. 비는 예고 없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웻 타이어는 항상 두 종류 모두를 가져온다. 모든 팀들은 규정 상 정해진 수량의 타이어 만을 사용하며 예선 경기와 레이스를 치러야 한다. 예선에서 타이어를 한 세트도 쓰지 않고 아꼈다가 레이스 당일 모조리 다 써버리든, 단 두 세트 만을 사용하든 선택은 각 팀의 자유다. F1 팀의 피트 스톱 전략 (Pit Stop Strategy)은 기본적으로 레이스 당일 트랙에서 확인되는 타이어 컴파운드 간의 성능 차이, 사용에 따른 성능 하락, 사용 가능한 수명을 고려하려 레이스 시간이 최소가 되는 타이어 사용 순서와 타이어 교체 시기를 정하는 것이다.



딱딱한 지우개를 사용하면 한 페이지를 지우는 데 드는 시간은 더 걸리지만 오래 사용할 수 있어 새 지우개를 사러 가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다. 부드러운 지우개를 사용하면 한 페이지를 지우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짧지만 금새 닳아 없어져 새 지우개를 사러 가야 한다. 수백 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모두 지우는데 이 두 지우개 중 어떤 지우개를 사용하는 편이 나은지는 사실 직접 해보기 전까진 알기 어렵다. 하지만 둘 중 유리한 쪽은 반드시 있을 거다. F1 규정은 유리한 타이어 컴파운드만을 사용하는 폐단을 막기 위해 공급된 두 종류 컴파운드 모두를 최소 한번씩은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F1 팀들은 이 모든 변수들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타이어 운용 방법을 찾고 주어진 타이어와 궁합이 가장 잘 맞는 레이스카 셋업 (Setup)을 찾기 위해 그랑프리 주간 내내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힘들다.

"All views expressed here are the author's own and not those of his employer and do not reflect the views of the employer."

<저작권자 © 라이드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