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 반드시 필요한 구성 요소에는 샤시, 브레이크, 엔진, 기어박스, 스티어링 시스템, 휠 그리고, 타이어가 있다. 이들은 자동차의 필수 요소이기 때문에 이중 하나라도 빠지면 자동차는 그 본래적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들 필수 요소 사이에서 중요도의 선후를 가리는 것은 마치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신체 기관을 따지는 것만큼이나 넌센스다.



그렇다면 “자동차에 반드시 필요하진 않지만 자동차에 있으면 좋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이 질문은 구체적 조건 없이 굳이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좋은 불특정 요소 중 하나를 고르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정답이 있다고 하기가 딱히 뭐하다. 가령 음악적 흥이 넘쳐 음악 없이는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는 이에게 오디오 시스템이 고장난 자동차를 두어 시간 운전하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경험일 수 있다.



중요한 고객과의 약속에 늦지 않으려면 당장 서둘러 길을 나서야 하는데 하필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그제서야 내 차의 양쪽 와이퍼가 모두 고장난 것을 알게 되었다고 상상해보자. 깊숙한 곳에서 솟구치는 짜증은 둘째치고 빗물에 시야가 가려 자동차로 이동이 불가능하다. 자동차에 앞유리가 없다면 어떨까? 고작 시속 50-60 km로만 달려도 얼굴에 부딪히는 맞바람에 눈이 시려 눈을 뜨고 버티기 조차 어려울 것이다. 요컨데 꼭 필요하진 않지만 그래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각자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답이 열려있는 이 같은 질문은 결코 좋은 문제가 될 수 없다. 간혹 복수 정답 논란과 난이도 조정 실패 등의 이슈 때문에 전국의 대입 수험생들을 멘붕에 빠뜨리고 여론의 질타를 받는 수능평가원의 깊은 고민을 1g 이해하며, 필자도 복수 정답의 논란을 피하고자 질문을 이렇게 바꾸겠다. “자동차에 반드시 필요하진 않지만 자동차에 있으면 좋은 요소 중 레이스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 이제 문제의 난이도는 형편없이 낮아졌고 정답도 하나다. 이 문제의 정답은 의심의 여지 없이 서스펜션 (Suspension)이다. 레이스카의 성능을 지배하는 요소 중 서스펜션 보다 중요한 요소는 엔진과 공기 역학 뿐일 정도로 레이스카에서 서스펜션은 매우 중요하다. 자동차 서스펜션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주 약간의 예비 지식이 필요하다. 서스펜션의 메커니즘도 약간 복잡한 면이 있다. 따라서 F1카의 서스펜션이란 주제는 세 편의 글에 나누어 실을 예정이다. 쫄지 마시라. 어렵지 않다. 자동차 서스펜션의 기본을 이해하면 F1 카 서스펜션의 이해도 문제없다.


자동차의 여섯 가지 움직임



자동차 엔지니어들은 자동차를 분석할 때 타이어를 품은 휠 블록과 그 나머지 부분으로 분리해 생각한다. 휠 블록을 제외한 자동차를 편의상 차체라고 부른다면 (정확하게는 Sprung mass 가 옳은 표현이다), 자동차는 차체가 휠 블록 위에 얹혀진 형상의 구조물이고 서스펜션은 차체와 휠 블록 사이에 위치하는 완충 장치다. 일단은 스프링으로 이해하자.



자동차의 차체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정지 상태를 기준으로 전후 (Longitudinal), 좌우 (Lateral)로 움직일 수 있다. 차체의 머리도 수직축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방향 전환 (Yaw)이 가능하다. 자동차는 움직이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조잡한 플라스틱 바퀴가 달린 싸구려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며 우리가 구사했던 현란한 기술들은 모두 이 세가지 운동의 조합이다. 하지만 실제 자동차의 차체와 휠 블록은 유격과 탄성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기계적 링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울퉁불퉁한 노면 위를 달리는 경우 차체가 상하 (Heave) 방향으로 출렁이지 않을 수 없다. 차체는 또 정지 상태의 위치를 기준으로 앞뒤 (Pitch) 혹은 좌우 (Roll) 방향으로 기울어질 수 있다. 차체의 각도가 기운다는 것은 차체가 한 방향으로 쏠림을 의미한다.


파도 타기



자동차의 서스펜션은 앞서 언급한 자동차 차체의 여섯 가지 모션 중 핸들링에 악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모션을 지탱하는 장치다. 이 세가지 방해 요소 중 첫번째는 상하 방향의 출렁임 (Heave motion)이다. 자동차를 상하로 흔드는 외부의 인위적 힘이 없다면 차체의 상하 방향 출렁임은 오로지 도로 표면의 형상 때문에 발생한다.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를 물결 모양으로 생각해보자. 물결의 주기가 한 없이 길다면 도로는 굴곡이 전혀 없는 매끈한 직선이다. 당연히 이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는 위아래로 출렁일 이유가 전혀 없다. 



이제 도로의 양 끝을 수평으로 서서히 압축해 보자. 물결 모양이 점차 분명해지고 언덕과 골이 반복되는 횟수도 점차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도로 표면을 타고가는 바퀴의 상하 운동 빈도도 점차 늘어난다. 과학에서는 이 빈도를 주파수 (Frequency)라는 그럴듯한 용어로 바꾸어 부른다.

압축을 더 세게하면 물결의 간격이 더욱 좁아지고 급기야 물결의 크기가 타이어의 크기와 유사한 시점이 된다. 골치아픈 문제는 이 때부터 시작된다. 이 울퉁불퉁한 도로 위를 타이어가 계속 전진하려면 덜컹거림은 물론이고 수 많은 턱에 부딪히는 충격을 견텨야 한다. 뿐만 아니라 타이어와 도로 사이에 빈 공간이 생기기 때문에 타이어의 접지력이 떨어지고 그 결과 타이어가 더 쉽게 미끄러진다. 자동차로 비포장길을 달려본 경험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로를 극도로 압축하여 물결이 매우 촘촘해지면 타이어의 크기가 요철의 크기보다 훨씬 커지기 때문에 털컹거림도 한결 덜해진다. 완벽하게 부드럽진 않지만 그런데로 원활하게 달릴 수도 있다.



서스펜션의 첫번째 역할은 도로 형상으로 인한 상하 출렁임 때문에 차체에 가해지는 충격과 불편함을 줄이고 타이어가 노면과 최대한 잘 접촉하도록 돕는 것이다.


시소 놀이

두번째 악영향은 전후 방향 쏠림 (Pitch motion)이다. 전방에 장애물이 나타나 급 정거를 할 때 차체가 앞으로 심하게 기우는 현상, 추억의 TV 시리즈 ‘전격 Z 작전’에서 ‘나이트 라이더’의 부스트 버튼을 누르면 주인공과 차체가 뒤로 쏠리며 총알 처럼 가속하는 장면은 모두 이 전후 방향 쏠림에 해당한다.



세번째 악영향은 좌우 방향 쏠림 (Roll motion)이다. 자동차가 급 커브 구간을 지날 때 우리는 몸이 코너의 바깥 방향으로 쏠리는 느낌을 받는다. 시내 버스 좌석에 앉아 깊은 잠에 빠진채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버스가 급하게 방향을 꺽는 바람에 통로로 굴러 떨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정확한 진상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세월호의 직접적 침몰 원인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선체가 갈지자로 진행하다Roll motion이 과도해져 원래 위치로 복원되지 못해서였다.



이 두 가지 쏠림 현상은 차체가 기우는 중심축의 방향 만 다를 뿐 사실 동일한 물리 현상이다. 자동차에 힘을 가하면 차체는 반드시 힘의 방향으로 쏠리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한편 자동차를 움직이는 힘은 최종적으로 타이어를 통해 생성 혹은 전달된다. 따라서 자동차 엔지니어링에서는 차체가 쏠리는 현상을 타이어 컨택트 패치에 가해지는 하중의 변화로 치환해 생각한다. 자동차가 이리저리 움직이면 타이어를 내리 누르는 힘이 앞뒤, 좌우로 이동한다고 해서 이를 ‘하중 이동(Load transfer)’이라고 부른다. 네 바퀴가 달린 자동차에서, 하중 이동은 자동차가 전후좌우 방향으로 가속 혹은 감속을 할 때 네 바퀴가 지탱하는 무게의 변화다. 하중 이동은 자동차 서스펜션의 역할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또 다른 기본 개념이다. 하중 이동을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핸들링 성능을 최적화하는데 필요한 서스펜션의 역할을 이해할 수 없다.

하중 이동은 어린 시절 친구와 했던 시소 놀이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시소는 널판의 한가운데를 괴어 그 양쪽 끝에 사람이 타고 서로 오르락내리락하게 만든 놀이 기구이다. 시소는 균형점이 가운데에 맞추어져 양쪽 균형을 이룬다. 서로 마주보며 양쪽 끝에 탄 사람은 한 번에 한 사람씩 발을 굴러 각각의 끝 편을 위로 솟아오르게 한다. 시소는 내리 누르는 힘이 큰 쪽이 기운다. 내가 위로 올라 있을 때 저쪽 아이가 갑자기 뛰어내려 갑자기 땅에 세게 부딪힌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공정한 시소 놀이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엄청난 무게추를 자기 쪽에 달고 있다. 보이지 않는 추가 항상 그들을 아래로 당기기 때문에 공정한 시소 놀이의 룰은 종종 무시된다. 필자가 말하는 시소 놀이는 자연계의 시소 놀이이고, 자연은 절대적으로 공정한 게임의 심판이다. 시소는 반드시 내리 누리는 힘이 큰 쪽으로 기운다.

자동차의 하중 이동은 시소 놀이다



자동차의 네 바퀴 아래에 가상의 저울이 있다고 가정하자. 서스펜션이니 뭐니 하는 장치는 아직 생각할 필요없다. 이 자동차는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싸구려 자동차 완구를 실제 자동차 크기로 확대 시킨 모형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이 네개의 저울 눈금을 읽으면 정지 상태에서 각각의 타이어에 가해지는 무게의 배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지 상태의 무게 배분은 자동차 내부의 부품등을 물리적으로 이동시킴으로써 변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배터리 위치를 바꾼다거나 좌석에 무거운 가방을 올리는 식으로 말이다. 각 코너의 높이를 바꾸어도 무게 배분이 바뀐다. 한 쪽 코너를 들면 무게 중심 위치가 바뀌고 결과적으로 반대편 코너의 무게를 늘려 준다.



정지 상태의 자동차는 자체의 무게로 인해 타이어를 짓누르는 기계적인 다운 포스를 가진다. 기계적 다운 포스는 타이어의 접지력에 영향을 미친다. 전후좌우 코너의 무게 배분을 바꾸면 네 바퀴에 걸리는 하중이 바뀌게 되어 결과적으로 타이어의 접지력을 바꿀 수 있다. 코너의 방향이 편중된 트랙에서는 하중이 어느 한 바퀴에 몰리도록 의도적으로 설정함으로써 자동차의 반응을 개선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곡선이 완만하여 빠른 속도로 통과가 가능한 좌회전 코너가 많은 트랙의 경우 코너를 빠져 나가는 구간에서 가속하면 좌측 뒷바퀴가 들리고 하중이 우측 뒷바퀴로 쏠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좌측 뒷바퀴의 기본 하중을 늘려 코너링 시 좌우 균형을 개선할 수 있다.

네 저울의 눈금 숫자를 합하면 자동차 전체의 무게다. 자동차의 전체 질량은 소모되는 연료의 양을 제외하면 아무리 빨리 달려도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달리는 자동차 아래의 저울 눈금은 계속 변한다. 이는 굳이 과학적 이론에 기대지 않더라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자동차가 전후좌우로 가속하면 타이어를 내리 누르는 힘의 배분이 변하기 때문이다. 하중 이동은 전후좌우 가속 상황에서 타이어를 짓누르는 기계적 다운 포스를 변화시킨다. 그 결과 네 바퀴의 접지력도 변한다. 자동차의 하중 이동은 마치 네 명의 아이가 위 그림의 시소를 타고 노는 것과 같다.


하중 이동의 영향

총 중량이 1500 kg 인 자동차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자동차는 앞뒤 축에 50 % 씩 무게가 배분되도록 설계되었다. 무게의 좌우 배분도 동일하다. 정지 상태에서 이 자동차의 각 바퀴에 걸리는 하중은 1500/4 kg, 즉 375 kg 이다.



자동차가 전후좌우로 가속하면 네개의 타이어는 어김없이 기계적인 다운포스가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타이어는 내리 누르는 하중이 클수록 더 큰 접지력을 발휘한다. 불행하게도 하중을 빼앗기는 측의 타이어가 잃는 접지력은 하중이 늘어나는 측의 타이어가 얻는 접지력으로 100 % 변환되지 않는다. 하중 이동이 심할 수록 모든 타이어의 접지력 총합은 줄어든다. 급 코너 시 하중 이동으로 인해 한쪽 바퀴가 살짝 들리고 반대쪽 바퀴에만 하중이 걸리는 상태에 도달하면, 자동차는 사실 상 앞뒤 2륜으로 굴러가는 상태가 된다. 여기서 쏠림이 더 과도해지면 자동차가 굴러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는데, 이를 롤-오버 (Roll-over)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F1 레이스카와 고가의 수퍼카들은 하중 이동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하중 이동은 드라이버의 입장에서 큰 방해요소지만, 때로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도 한다. 자동차가 가속을 하게되면 하중이 뒷 바퀴로 이동한다. 전륜 구동 자동차의 경우 뒷 바퀴로의 하중 이동은 전륜의 접지력 감소를 의미한다. 하지만 후륜 구동 자동차의 경우 후륜의 하중 증가는 접지력 증가로 이어저 가속에 유용하다. 가속 성능이 중요한 고성능 자동차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후륜 구동을 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륜 구동의 경우도 보통 후륜에 구동력이 더 많이 배분되도록 설정된다.

한가지 명심할 것은 “하중 이동은 천하에 어떤 수를 쓰더라도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단지 줄일 수 있을 뿐이다.


하중 이동을 줄이는 방법



F1카의 디자인은 꼭 지금과 같은 납짝 엎드린 모습이어야 할까? 그렇다. 승합차의 디자인을 사용한다 해도 엔진의 마력을 높이고 서스펜션을 튜닝하면 포르쉐 GT에 못지 않은 레이스카로 쓸 수 있지 않을까? 말도 안되는 소리다.



자동차 튜너들 사이에서 잘못 알려진 미신 중의 하나가 서스펜션을 딱딱하게 하고 이래저래 잘 조정하면 하중 이동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핸들링이 좋아 진다는 생각이다. 서스펜션 튜닝으로 핸들링이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중 이동이 줄기 때문은 아니다. 아무리 최첨단의 서스펜션 파트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하중 이동을 제거하거나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없다. 하중 이동은 차체의 관성과 모멘텀의 결과물이다. 자동차의 질량과 디자인에 따라 결정되는 고유한 특성이라는 뜻이다. 하중 이동의 크기는 자동차의 질량과 디자인을 바꾸지 않고서는 천하 제일의 튜닝 전문가라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후속 편에서 자세하게 설명되겠지만 서스펜션 부품이 바꿀 수 있는 것은 단지 하중 이동으로 인한 바퀴 축의 움직임과 하중이 한쪽 타이어에서 다른 쪽으로 얼마나 빨리 이동하느냐다. 어떤이가 “서스펜션으로 하중 이동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서스펜션을 조절하여 승합차의 질량과 무게 중심의 위치를 포르쉐 GT 수준에 맞추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또래의 두 아이가 시소 양끝에 앉아 있고 한 거인이 중간에서 시소를 좌우로 밀어주며 논다고 가정하자. 거인이 막대를 미는 높이가 항상 같다면 막대를 더 세게 밀수록 시소는 한쪽으로 더 세게 쏠린다. 자동차와 연관짓자면 거인의 손이 막대기를 누르는 위치는 자동차 무게 중심의 위치이고 거인이 막대를 미는 힘은 무게 중심에 작용하는 힘의 크기이다. 무게 중심에 작용하는 힘의 크기는 자동차의 무게와 운전의 과격함 비례한다. 자동차의 무게를 줄이거나 자동차를 덜 과격하게 운전하면 당연히 하중 이동도 줄어든다.



거인의 손이 막대를 미는 힘이 항상 같다면 거인의 손이 받침점에서 높아질 수록 시소는 한쪽으로 더 세게 쏠린다. 손의 위치가 높으면 지렛대의 길이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동차는 무게 중심의 위치가 높을 수록 하중 이동이 심해진다. 타이어의 컨택트 패치와 무게 중심 사이의 거리가 멀어질 수록 타이어에 전달되는 힘이 증폭되기 때문이다. 하중 이동을 줄이려면 무게 중심이 낮아져야 한다.



거인이 막대를 미는 높이와 힘의 크기가 같다면 시소의 양 팔이 짧을 수록 시소는 한쪽으로 더 세게 쏠린다. 무게 중심의 높이가 같은 자동차에 동일한 힘을 가하면 좌우 바퀴 사이의 거리 (트랙; Track)와 앞뒤 바퀴축 사이의 거리 (휠베이스; Wheelbase)가 멀 수록 하중 이동이 적다는 의미이다.



자동차로는 모터 바이크의 스토피 (Stoppie) 기술을 부릴 수 없고 대형 트럭에 유난히 전복 사고 많은 이유도 이 시소 놀이에서 찾을 수 있다.



요컨데, 핸들링을 저해하는 하중 이동을 줄이려면 1. 자동차의 무게를 줄이고, 2. 과격한 운전을 삼가고, 3. 무게 중심을 낮추고, 4. 바퀴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게 해야 한다. 이중에 우리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1번과 2번 정도다. 레이스카의 경우 2번도 제외된다. 3번과 4 번의 경우 부품의 위치를 낮추고 폭이 넓은 타이어를 장착해 유효 트랙 거리를 늘리는 등의 방식으로 약간의 개선 효과를 낼 수 있을 뿐 자동차의 디자인과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비약적인 변경이 불가능하다. 쉽게 말해 일단 자동차 모델을 선택하면 하중 이동의 특성은 유전자처럼 정해지는 것이고 자동차 튜닝의 신에게 맡긴다 하더라도 타고난 유전 형질을 극복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민첩한 레이스카가 필요하다면 가급적 무게가 가볍고, 무게 중심의 위치가 낮으며, 휠베이스와 트랙 거리가 가급적 긴 자동차 모델을 선택해야 하고 그마저도 부족하다면 아예 백지부터 설계를 다시 하는 편이 낫다.



이제 승합차와 F1 카의 디자인을 다시보자. 오로지 짐을 알차게 싣는데 설계의 초점이 맞춰진 승합차를 아무리 튜닝해도 좋은 레이스카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눈에 보이고, F1카 디자인이 왜 그러한지 고개가 끄덕여 진다면 당신은 A+를 받기에 충분하다. 자동차와 F1카의 서스펜션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지식도 갖춰진 셈이다.

"All views expressed here are the author's own and not those of his employer and do not reflect the views of the employer."

글 : 로터스 F1팀 퍼포먼스 엔지니어 김남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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