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 유니콘을 만나다

나는 그저 상상의 동물이라고 믿었던 유니콘을 실제로 본 것 마냥 입을 쩍 벌리며 무의식 중에 짧은 비명을 토한 적이 있었다. 런던의 한 번화가에서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은빛 부가티 베이론 (Bugatti Veyron)을 목격한 것이다. 하지만 분주한 런던 시내를 비집고 다니는 유니콘의 모습은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유니콘은 차 폭이 넓어 좁기로 악명 높은 런던 도로의 차선을 맞추는 것도 아슬아슬해 보였고,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와 보행자를 피하기 위해 느릿느릿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런 부류의 자동차들이 과속 방지턱이라도 넘을 때면 차 바닥이 긁히는 것 쯤은 감수해야 한다. 차체와 바닥 사이의 공간이 일반 자동차에 비해 턱없이 좁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수퍼카를 타는 것은 사람들이 던지는 부러운 시선을 제외하면 어느 하나 즐길만 한 구석이 없어 보였다. 이것이 수퍼카를 즐기는 그들만의 방식이라면 인정하자. 다양성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는 소중한 가치이다. 그리고 초고가의 수퍼카로 런던 시내를 주름잡는 이들의 불편을 내가 걱정할 형편이 아니다.


부가티 베이론이 과연 편안할까?



부가티 베이론은 이탈리아의 몬자 (Monza) 트랙에선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일 수 있지만 런던 시내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미련하고 불편한 자동차로 전락한다. 이것은 베이론을 설계하고 제작한 부가티 엔지니어들의 잘못이 아니다. 애초에 베이론은 런던 시내를 잘 달리기 위해 설계된 모델이 아니기 때문이다. 속도계 눈금의 1/10 도 넘지 못하는 파워의 낭비는 런던의 느린 교통 흐름 때문에 어쩔 수 없다손 치고 “부가티 베이론의 승차감이 의외로 좋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런던 시내에서 부가티 베이론의 승차감은 절대로 VW Golf나 KIA Ceed의 승차감을 훨씬 능가할 수 없다. 만약 부가티 베이론의 서스펜션이 일상의 도로 주행 시나리오까지 무난히 소화하기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제작되었다 하더라도 이 서스펜션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이지 편안한 승차감이 아니다.

더 비싼 가격표를 달고 상위 혹은 퍼포먼스 모델로 판매됨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운전 중 서스펜션 반응과 라이드 품질에서 큰 차이를 느낄 수 없거나 오히려 하위 차종보다 못하다면 소비자들로부터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시중 자동차 가격의 수십 배에 팔리면서도 시내를 달릴 때 서스펜션 반응과 라이드 품질이 수십 배까지는 좋아 보이지 않는 부가티 베이론을 두고 불만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서스펜션의 호불호를 따지는 의견들은 유독 우리가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고심 끝에 구매하는 모델들에 집중된다. 서민 대중이 부자들 보다 더 ‘투덜이’여서 그런 것일까?



각 자동차 모델의 서스펜션은 서스펜션으로서의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저마다의 고유 영역이 있다. 자동차 엔지니어들은 서스펜션을 이 고유 영역에서 가장 잘 동작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조정한다. 따라서 이 고유 영역을 벗어나면 원하는 서스펜션의 품질을 장담하기 어렵다. 액티브 서스펜션과 같은 첨단 서스펜션 시스템을 활용하면 거의 모든 영역에 일정한 성능을 낼 수도 있지만 우리는 기계적 서스펜션에 집중하자. “내가 지난달 당신들한테 부가티 베이론을 구입해서 런던에서 타고 있는데 서스펜션이 왜 이렇게 딱딱하고 불편해? 내가 차 값으로 얼마를 썼는지 알아!”라고 부가티에 어필할 수는 있겠지만 만약 부가티 엔지니어들이 이런 소리를 들으면 어이 없어할 것이다. 소비자들이 보통 서스펜션의 품질이라고 말하는 기준도 다분히 승차감에 치우친 면이 없지 않다. 서스펜션의 품질을 시내주행 시 편안한 승차감에 국한한다면 자동차의 가격과 겉보기 성능이 올라간다고 해서 서스펜션의 품질이 덩달아 올라간다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서스펜션 세팅은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서스펜션의 디자인, 셋업, 튜닝의 최종 결과물은 같은 자동차 모델을 베이스로 하더라도 자동차의 사용 목적, 주로 달리고자 하는 도로의 품질, 자동차의 운전 및 작동 조건 등에 따라 크게 달라져야 한다. 서스펜션 엔지니어링은 특급 요리사의 요리 과정 만큼이나 창조적이고 복합적인 엔지니어링 영역이다. 사용 목적에 가장 잘 부합하는 서스펜션 세팅을 찾는 과정도 결코 쉽지 않다. 때문에 서스펜션의 성능을 객관적으로 예측하고 분석하기 위해 여러 다양한 기술, 기법들이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주행 환경에서 서스펜션의 반응을 이해하고 이에 대응하며 운전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서스펜션의 성능은 궁극적으로 드라이버를 만족시켜야 때문에 서스펜션은 최적화 과정에서 프로페셔널 드라이버의 판단에 의지하는 주관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바꾸어 말하면 세상의 모든 도로, 모든 드라이버들의 운전 습관을 만족시키고 모든 목적에 부합하는 자동차 서스펜션 세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서스펜션 엔지니어링은 일종의 흑마술 (Black magic) 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동차 시승기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서스펜션 반응과 승차감에 대한 평가도 시승자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 시판되는 자동차의 서스펜션은 이 자동차가 사용될 주된 목적과 주행 환경에 최대한 적합하게 설계, 제작된 후 봉인된다. 자동차의 설계 사양을 벗어난 주행 환경과 운전 방식으로 마음대로 자동차를 테스트하고 서스펜션의 성능과 승차감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은 사용 목적에 맞지 않는 공구를 사용하면서 작업이 손쉽게 진행되지 않음을 불만스러워하는 것 만큼이나 부적절하다. 이는 자동차 전문가들 조차도 가끔 범하는 오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자동차들을 직접 체험하고 비교해 온 전문가들의 평가 만큼 신뢰할 만한 소스는 시중에 거의 없기 때문에 이들의 의견은 참고할 가치가 충분하다. 여기에 서스펜션 파트의 기능과 원리에 대한 대략적 이해를 더하면 여러모로 유용하지 않을까? 자동차 마니아들이 궁금해 할 F1 카의 서스펜션도 디자인과 작동 영역이 다를 뿐 그 원리는 일반의 서스펜션 이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스펜션의 존재 이유

만약 세상의 모든 도로가 실크처럼 매끄럽고 완벽하게 수평하다면 서스펜션이란 장치는 자동차에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방금 포장을 마친 따끈따끈한 아스팔트 도로에도 불연속적 이음부, 맨홀 뚜껑과 같은 크고 작은 굴곡이 있을 정도로 이상과 거리가 멀다. 달리는 자동차의 휠이 도로의 턱에 부딪히거나 굴곡을 타 넘게 되면 휠은 충격과 힘을 받고 그 결과 위아래로 움직인다. 휠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정도의 크기는 당연히 장애물의 크기에 비례한다.



휠의 상하 운동은 휠과 기계적으로 연결된 차체의 자세에도 영향을 미친다. 맨홀 뚜껑과 과속 방지턱을 아무리 느린 속도로 조심스럽게 통과한다 할지라도 이 두 자극에 대한 자동차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더 현실적인 고민거리는 ‘굴곡진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역학적 반응’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턱과의 충돌로 인해 휠이 받는 충격’이다. 예를 들어 과속방지턱을 보지 못하고 부딪히면 자동차도 사람도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과속방지턱은 포장 도로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장애물에 속한다. 하지만 장애물의 크기가 이 보다 훨씬 작다 하더라도 자동차가 고속으로 달리면 휠과 장애물의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충격의 크기는 꽤나 커질 수 있다.



휠과 차체 사이에 완충 장치가 전혀 없다면, 휠에 가해지는 수직 방향의 운동 에너지가 고스란히 차체에 충격이나 진동의 형태로 전달되고, 그 결과 차체도 휠과 함께 요동친다 (위 그림의 왼쪽). 휠과 차체가 한 몸처럼 도로 위를 통통 튀면 타이어가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도로와의 접촉이 부실해져 타이어의 접지력이 크게 나빠진다. 이 원시적인 자동차에 타고 있는 사람이 받을 고통도 상상해 보라. 예컨대 매끄럽기가 일정치 않은 도로를 자동차가 큰 불편 없이 달릴 수 있으려면 휠과 차체 사이에 어떤 식으로든 완충 장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림의 오른쪽).


서스펜션의 구조, 어렵지 않다



자동차 서스펜션에는 다양한 기계적 링크 방식이 사용된다. 맥피어슨 (McPherson) 서스펜션처럼 디자인과 명칭이 널리 알려진 서스펜션 방식도 있지만 설계 사양에 따라 부분적으로 변형되고 필요에 따라 새롭게 탄생하는 모든 서스펜션에 이름을 붙이고 이를 기억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뿐더러 노력의 낭비이다. 굳이 서스펜션 디자인의 형태를 분류하고 명칭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메모리를 아끼자. 서스펜션의 디자인은 치수 등의 설계 제한 요건을 충족하고 목표하는 역할만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으면 좋고 나쁨이 없다. 아무리 복잡한 메커니즘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결국 서스펜션이 하는 일은 똑같다.



서스펜션의 형태가 정해지면 서스펜션의 성능을 결정하는 필수 요소인 스프링과 댐퍼를 선택해야 한다. 스프링과 댐퍼는 드라이버의 컨트롤과 승차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서스펜션 요소다. 스프링과 댐퍼는 바늘과 실처럼 항상 같이 다니며 이 둘을 일체형으로 만든 컴포넌트를 Shock Absorber 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스펜션 스프링은 휠이 도로의 턱이나 굴곡과 부딪힐 때 휠이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어 충격이나 진동이 차체로 직접 전달되는 것을 막아준다. 이때 휠이 받은 충격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변형된 스프링에 잠시 저장될 뿐이다. 만약 스프링이 없다면 휠에 가해진 충격은 고스란히 차체와 탑승자로 전달된다. 스프링에 잠시 저장되었던 에너지는 스프링을 원래의 위치로 복원시키려는 성질이 있다. 이 에너지가 어떤 형태로든 소모되지 않으면 이상적 스프링은 영원히 상하 왕복 운동을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스프링은 그저 출렁이게 내버려 두면 언젠가는 원래 위치에서 정지한다. 자연적 마찰에 의해 에너지가 소진되기 때문이다.



서스펜션 스프링과 함께 부착돼 스프링에 저장되었던 에너지를 인위적으로 소모함으로써 스프링의 출렁임을 진정시키는 장치가 바로 댐퍼 (Damper)다. 댐퍼는 축축하게 적시다라는 영어 단어 Damp에서 유래한 말이다. 댐퍼는 보통 오일로 채워진 밀봉된 실린더를 피스톤이 왕복하는 구조로 제작된다. 한쪽 챔버의 오일이 반대편의 챔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소모되는 작용을 활용하여 변형되었던 스프링이 원래 위치로 복원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출렁임을 줄여준다. 서스펜션 스프링이 부드러울 수록 댐퍼의 역할이 중요해 진다. 부드러운  스프링일 수록 원래의 위치로 복원되는 과정에서더 많이 출렁이기 때문에 출렁임을 줄이기 위해 더 끈적한 댐퍼를 사용해야 한다. 댐퍼의 끈적한 정도는 항상 스프링의 출렁임 정도를 고려하여 적절하게 조정되어야 한다.



자동차 엔지니어들은 자동차의 움직임을 두 가지 관점으로 바라본다. 하나는 라이드 (Ride) 성능이다. 라이드 성능은 자동차가 울퉁불퉁한 도로를 얼마나 잘 극복하며 달리는 지를 나타내는 성능 지표다. 다른 하나는 핸들링 (Handling) 성능이다. 핸들링은 자동차가 안전하게 가속, 감속, 코너링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서스펜션 관점에서 보면 이 두 성능 영역은 충격 차단, 타이어 접지력, 하중 이동에 대한 반응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이 지난 편에서 자세하게 설명되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핸들링 성능 지표 중 코너링을 제외한 나머지를 서스펜션 관점에서 다룰 것이다.


서스펜션의 대원칙, 서스펜션은 ‘가능한’ 부드러울 수록 좋다

허니문 여행의 첫날 밤 아름다운 신부를 로맨틱하게 들쳐 안고 침실로 들어선 신랑이 신부를 터프하게 침대 위로 던졌다. 침대 속에는 당연히 충격을 흡수하는 스프링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신부는 안심하고 침대 위로 몸을 맡길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이 침대가 돌침대였다면 던져진 이후의 결과는 상상만 해도 미간이 찌푸려 질 정도로 끔직하다. 물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사실 돌침대도 스프링 침대다. 단지 스프링의 단단함이 무한대일 뿐이다. 이 간단한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스프링이 충격을 잘 흡수하려면 부드러워야 한다. 스프링이 부드러울 수록 스프링과 부딪힐 때 받는 고통이나 충격의 크기는 줄어든다.



서스펜션 스프링도 가능한 한 부드러울 수록 좋다. 부드러운 스프링은 휠의 진동에 대한 반응이 둔하기 때문에 차체를 외부의 진동으로부터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차체로 전달되는 외부의 방해가 줄어들면 승차감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또 서스펜션 스프링이 부드러우면 도로의 굴곡을 따라 휠이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타이어의 컨택트 패치가 도로와 더 잘 밀착된다. 예컨대 서스펜션 스프링이 부드러울 수록 굴곡이 심하고 표면이 균일하지 않은 도로도 무리 없이 달릴 수 있다.

비겁해 보이지만 ‘가능한 한’이란 조건을 붙인 이유는 서스펜션에 무턱대고 소프트한 스프링을 사용하면 골치 아픈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제 ‘불가능’에 속하는 고려 사항을 살펴보자.

첫째, 서스펜션 스프링은 실제 주행 환경에서 휠이 상하 이동 한계까지 변형될 정도로 소프트하면 안된다. 굳이 고등학교 물리 과정에서 배웠던 ‘훅의 법칙 (Hook’s law)’에 신세지지 않더라도 “스프링이 부드러울수록 같은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더 많이 변형된다”는 사실은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상식이다.



자동차의 휠은 상하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이동 범위가 정해져 있고, 그 끝은 대게 고무 등의 재질로 덧대에 혹시라도 부딪혔을 때 파손을 방지한다. 도로 위의 턱에 부딪혀 휠이 상승하고 서스펜션 스프링이 압축되는 상태를 범프 (Bump), 도로 위의 움푹 패인 구멍 때문에 휠이 아래로 쳐지고 스프링이 늘어나는 상태를 드룹 (Droop) 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양극단에 덧댄 단단한 보호 재질을 각각 범프 스톱 (Bump stop)과 드룹 스톱 (Droop stop) 이라고 부른다. 스프링이 범프 스톱에 닿으면 스프링은 더 이상 변형하지 못하고, 마치 스프링이 없는 상태가 되어 서스펜션은 완충 능력을 상실한다. 이 때부터 자동차의 서스펜션은 돌침대가 된다. 자동차 엔지니어링에서는 이 돌침대 상태를 “휠이 바닥을 친다”해서 보터밍 (Bottoming) 이라고 부른다. Bottoming이 발생하면 도로의 충격과 진동이 완충되지 않아 타이어의 접지력이 하락하고 자동차의 균형이 흔들려 핸들링의 불확실성이 커진다. 소프트한 스프링은 범프 상황에서 쉽게 압축되기 때문에 특히나 Bottoming에 취약하다.



서스펜션 스프링은 정지 상태에서 최대 허용 하중을 실었을 때 범프 스톱까지 압축될 정도로 소프트하면 안 된다. 신랑과 신부가 침대에 가만히 누웠을 때 둘의 몸이 침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스프링이 무르다면 이 둘은 사실상 돌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기에 주로 달리게 될 도로의 품질을 고려해야 한다. 세상 모든 도로가 새로 깔린 아스팔트 타맥이라면 좋겠지만 자동차는 때로 도로위의 주름, 맨홀 뚜껑, 과속 방지턱, 포트홀(Pot hole)과 같은 장애물 위를 달려야 한다. 휠이 이 장애물을 타고 넘으면서도Bottoming을 피하려면 서스펜션 스프링은 정지 상태의 최대 하중을 지탱하는데 필요했던 스프링보다는 더 단단해야 한다. 신랑 신부가 침대 위에서 멍하니 누워 있을 수 많은 없지 않은가? 약간의 덜컹거림에도 침대 스프링이 바닥을 친다면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좀 더 격렬한 상하 움직임에도 편안함을 유지하려면 스프링의 강도는 출렁이는 하중을 충분히 떠 받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야 한다.

대다수의 준법 운전자들에게 이 이상의 서스펜션 이론은 사실상 불필요하다. 일반 로드카를 타고 공도에서 중력 가속도의 몇 배가 되는 가속과 코너링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일반 로드카 서스펜션의 가장 중요한 미덕은 라이드 성능, 즉 일반 도로에서 경험할 수 있을 광범위한 충격과 진동을 잘 차단하고 타이어가 1 초라도 더 오래 도로 표면과 맞닿아 있게 하는 것이다. 서울 시내에서 딱딱한 스포츠 서스펜션으로 무장한 스포츠카를 타면서 라이드 (Ride) 성능이 좋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식이거나 욕심이다.



둘째, 서스펜션은 하중 이동으로 인해 증가하는 하중을 지탱할 만큼 충분히 단단해야 한다. 자동차는 직선 도로를 일정한 속도로 달릴 뿐 아니라 가속과 감속, 방향 전환을 한다. 가속/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네 바퀴가 지탱하는 하중에 변화가 생긴다. 이전 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네 바퀴 사이의 하중 이동은 자동차 무게 중심에 작용하는 가속도가 더 클수록, 즉 더 과격하게 운전할 수록 심해진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로 달리다 전방의 돌발 상황을 피하기 위해 풀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 시나리오는 앞 바퀴로의 하중 이동이 이례적으로 심한 상황이고 앞 바퀴가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동차 용어로 이를 Dive 라고 한다). 이때 앞 바퀴를 지탱하는 스프링의 강도가 낮다면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먼저 스프링이 부드러우면 같은 스프링 힘을 내기 위해 더 많이 변형되어야 하기 때문에 어떤 하중을 지탱하는데 필요한 스프링 힘을 모으는데 더 오래 걸린다. 그 결과 힘의 평형에 이르기까지 시간 지연이 길어져 자동차의 반응이 굼뜰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앞 축의 두 바퀴 모두 최대한 상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스프링이 여전히 하중을 지탱할 만큼의 스프링 힘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결국 범프 스톱과 충돌하여 “돌침대” 상태가 된다. 차체가 앞쪽으로 지나치게 기우는 문제도 발생한다. 후속 편에서 다룰 기회가 있겠지만 차체가 많이 기울어서 좋은 점은 거의 없다. 이 모두는 앞 바퀴 서스펜션 스프링이 좀 더 단단했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들이다.



결국 하중 이동이 예상되는 쪽의 서스펜션 반응 속도를 높이고 Bottoming 등의 문제를 피하려면 늘어난 하중의 크기에 맞게 스프링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 예를 들어, 풀 브레이크를 더 빈번하게 밟아야 한다면 앞 바퀴의 서스펜션 스프링을 보강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감속의 크기가 가속의 크기보다 크고, 레이스카의 경우 그 차이가 최소 2배 이상이다. 이는 앞 바퀴 축으로의 하중 이동이 훨씬 큼을 의미하고 이를 지탱하기 위해 앞 바퀴 서스펜션 스프링이 뒷바퀴 스프링보다 단단해야 한다. 후륜 구동을 사용하는 레이스카의 경우 상대적으로 소프트한 뒷바퀴 서스펜션 스프링은 구동축의 타이어가 가급적 도로와 잘 접촉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가속에 유리하다.

만약 스프링 업그레이드가 여의치 않다면 운전을 덜 과격하게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레이스카 드라이버에게 이 방법은 총을 든 적을 칼로 무찌르라는 말과 같기 때문에 올바른 솔루션이 될 수 없다. 서스펜션 업그레이드에 있어서도 배척해야 할 미신이 있다. 퍼포먼스 카의 서스펜션은 무조건 단단해야 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다. 서스펜션 스프링의 강도는 자동차가 노출될 가속과 브레이킹의 한계에 맞추되 결코 과하지 않아야 한다. 무턱대고 단단한 스프링을 장착하는 것은 무조건 돌침대가 더 좋다고 믿고 돌침대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서스펜션의 골든룰을 잊지 말자. 서스펜션 스프링은 가능한 한 소프트한 것이 좋다.


F1 카의 서스펜션



F1카의 서스펜션 역시 구조만 다른 뿐 보통의 자동차 서스펜션과 근본적으로 같은 시스템이다.  F1카는 단지 패키징 시 서스펜션 컴포넌트들이 차지하는 공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더블 위시본 (Double wishbone) 서스펜션을 사용한다. 아래 그림은 일반적인 F1 카의 서스펜션 구조를 단순화한 모델이다. 위아래 두 쌍의 위시본은 하중을 지탱하지 않고 그저 휠이 상하로 움직일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만 한다. 휠의 모든 하중은 휠 업라이트에 연결된 푸시로드를 통해 로커로 전달된다. 로커에 걸린 하중은 차체 안에 숨어 있는 스프링과 댐퍼에 의해 최종적으로 지탱된다. 모던 F1카의 서스펜션 스프링으로는 전통적인 코일 스프링보다 토션바 (Torsion bar)가 많이 사용된다. 부피가 작고 가볍기 때문이다.



F1 카의 스프링 강도는 F1카의 무게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F1 규정 상 F1카의 최소 중량은 701kg 에 불과하지만 고속으로 주행 시 발생하는 다운포스로 인해 서스펜션이 지탱해야 할 전체 하중은 두 배를 훨씬 넘는다. 게다가 중력 가속도의 몇 배가 넘는 엄청난 크기의 다이브(Dive)와 스쿼트(Squat) 상황에 노출되기 때문에 급변하는 하중 이동을 지탱하기 위해 모든 코너의 스프링이 매우 단단해야 한다. 서스펜션 스프링의 강도를 낮추어야 할 필요성도 굳이 찾기 힘들다. 우선 F1 경주 트랙은 일반 도로에 비해 훨씬 매끄럽다. 이는 균일하지 않은 도로 표면으로 인한 충격과 진동 발생이 적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F1 타이어는 재질이 연해서 타이어 자체가 소프트한 스프링 효과를 낸다. 타맥의 미세한 요철은 타이어의 스프링 효과로 때우는 편이다. 드라이버의 승차감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드라이버는 단지 65kg의 물렁한 무게 추에 불과하다.

다음편에서 살펴볼 자동차 서스펜션의 마지막 퍼즐은 코너링을 잘하기 위한 서스펜션 세팅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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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호의 F1 스토리 모아보기 링크]
http://ridemag.co.kr/section.php?thread=15r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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