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열광하는 인기 많은 스포츠 종목에는 저마다 스타플레이어가 존재한다. 그런 스타플레이어의 스토리들은 많은 이들에게 높은 관심을 받는다. 스타플레이어를 무작정 좋아하는 단순한 팬부터 그를 동경하고 닮고 싶어 하는 사람, 그를 뛰어넘으려 하는 사람, 시기와 질투를 하는 사람, 그리고 그를 통해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사람까지. 스타플레이어가 탄생하면 그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한 때 미국의 사이클 황제, 사이클링 스포츠 계의 전설이라 불렸던 선수가 있다. 그의 이름은 랜스 암스트롱. 사이클링 스포츠 세계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지금은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해버린 추악한 스타플레이어다. 그가 가장 높은 곳에 있었을 때 그의 스토리를 동경하며 많은 사람들이 리브스트롱(Livestrong)이라는 재단에서 판매한 저지와 손목 밴드를 기꺼이 구입하고 자랑스럽게 착용하고 다녔다.
우리나라 자전거 라이더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전 세계의 라이더들도 모두 비슷했다. 자전거를 더 잘 타고 싶은 많은 라이더들이 노란색 고무 손목 밴드를 자랑스럽게 차고 그처럼 암을 이겨낸 강한 정신력을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기를 기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우러러보고 동경하던 스타플레이어의 명성은 어느 순간 끝이 난다.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코스 때문에 지옥의 레이스라 불리기도 하는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에서 7연속 우승이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내고, 고환암을 극복하고도 자전거 대회에서 당당히 우승했다는 그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도핑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도핑 사실이 밝혀진 이후 그는 그의 이름 뒤에 항상 따라붙던 투르 드 프랑스 7연속 우승자라는 타이틀은 공식적으로 박탈당했고 2012년 8월에는 미국 반도핑 기구(USADA)로부터 영구적으로 제명을 당하는 최악의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때를 한 종목에서 가장 높이 올라간 선수가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순간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던 많은 팬들은 영구제명 당했을 때가 가장 나락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도핑을 했던 시기에는 도핑이 만연했던 시기라 나만 도핑을 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혀 그나마 마음속으로 그를 응원하던 마지막 팬들까지 실망시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가 위대한 사이클링 스포츠의 정신을 훼손했고 만약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면 지금도 앞으로도 그리고 영원히 이와 관련된 일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선행사라는 이름으로 투르 드 프랑스 현장에 등장하거나 암환자들의 모금이라는 이유로 자전거와 관련된 자선활동을 하고 있다. 과거 그의 팬이었던 많은 라이더들이 이를 두고 원색적인 비난을 하고 있어 그와 관련된 논란은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 ‘챔피언 프로그램’은 이처럼 사이클링 스포츠의 가장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다가 가장 낮은 위치까지 추락해버린 랜스 암스트롱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사이클링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랜스 암스트롱과 관련된 이야기는 다들 언급하기 꺼려할 정도로 민감한 사건이다. 가장 위대하다 입을 모아 말하던 사이클 영웅이 대 사기극의 주인공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그의 팬이었던 사람들에게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스토리를 영화화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이클링 스포츠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스포츠 저널리스트 데이빗 월쉬(David Walsh)의 [일곱 가지 대죄: 랜스 암스트롱에 대한 나의 추적(Seven Deadly Sins: My Pursuit Of Lance Armstrong)]이란 책이 나오고 책을 시나리오 작가인 존 호지(John Hodge)가 각색하면서 실질적인 제작이 시작됐다.
이 책은 그 당시 고환암을 막 극복하고 나타난 랜스 암스트롱의 믿을 수 없는 활약을 유일하게 의심한 기자 월쉬가 수년간 그를 추적하며 기록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완성된 책이다. 사실 랜스 암스트롱이 투르 드 프랑스의 우승 기록을 계속 경신할 당시 사이클링 스포츠 세계에서 랜스 암스트롱은 거의 신적인 존재였다. 게다가 매번 진행되는 도핑테스트에서도 적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를 추종하는 추종자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그의 약물사용이 의심된다는 주장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을 시기였다.
하지만 데이빗 월쉬는 랜스 암스트롱에 대한 의심과 추적을 멈추지 않았고 다수의 정보원들이 주는 도움을 받은 끝에 사이클 황제의 추악한 사실을 밝혀내고야 만다. 영화에서는 사실을 밝히려는 자와 감추려는 자의 팽팽한 대결구도가 팽팽히 맞서며 긴장감을 보여준다. 물론 모든 관객들이 결말을 알고 있는 스토리이기는 하지만 [일곱 가지 대죄: 랜스 암스트롱에 대한 나의 추적]이란 책을 읽지 않았으면 모를 수 있는 여러 가지 숨겨진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사이클링 스포츠를 사랑하는 라이더라면 아마도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가 얼마나 사실적 고증을 위해 노력했는지에 대해 매우 궁금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런 부분에 대해 준비가 조금 소홀했다면 크게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은 랜스가 활약했던 당시의 ‘투르 드 프랑스’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특히 실제 랜스 암스트롱과 그 팀이 타던 자전거와 똑같은 모델을 찾는 데에는 무려 4개월의 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사실 고증에 얼마만큼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다.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은 그 상황을 100% 재현해내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고, 그 결과 15대의 자전거와 15벌의 유니폼을 모두 갖추고 영화를 촬영했다고 한다.
또한 세계 최고 권위의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의 거대한 스케일을 스크린에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실제 영국 최고의 라이더인 얀토 바커(Yanto Barker)를 비롯해 10여 명의 영국과 미국의 프로 선수들, 그리고 20여 명의 아마추어 선수들과 협업을 거치는 과정을 겪었다. 이들과 함께 최고의 속도감을 그대로 스크린에 담기 위해 작은 카메라를 자전거에 장착, 자전거를 따라오는 자동차 뒤에 크레인을 사용해 촬영을 하는 등 최대한의 리얼리티를 담기 위해 온갖 방법들이 다 동원됐다고 한다.
결국 제작진의 오랜 고민과 갖은 노력으로 ‘투르 드 프랑스’의 치열한 경기 현장을 완벽하게 스크린에 재현하는 데 성공하는데, 한 사이클링 스포츠 관계자는 “그들이 해낸 모든 것은 완벽한 플래시백이었다. 내 기억이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진 것 같았다”라고 극찬을 보내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감독과 스태프, 그리고 배우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실재에 가까운 재현을 성공하며 리얼리티에 많은 노력을 한 부분을 스크린에서 확인하는 것도 사이클링 스포츠를 사랑하는 라이더들에게는 영화를 즐기는 또 다른 재미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자전거가 소품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자전거가 영화의 메인 소재이거나 자전거를 타는 라이더가 주인공인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자전거 라이더라면 꼭 봐야할 영화라 말하는 명작들은 손에 꼽는 정도다. 영화 챔피언 프로그램은 비록 한 때 사이클 황제라 불리던 추락한 스타플레이어와 관련된 불편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이클링 스포츠를 사랑하는 라이더라면 꼭 한 번 봐두면 좋을 만한 자전거 관련 추천 영화다.
글
라이드매거진 sjlee@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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