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카의 서스펜션을 설명하기 위해 길고도 지루한 여정이 계속되고 있다. 자동차 일반에 대한 배경 지식이 풍부한 독자들에겐 지금까지 등장한 용어들과 설명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겐 기괴한 모더니즘 소설 스토리처럼 보일 것 같아 걱정이다. 안타깝게도 자동차의 서스펜션을 이보다 더 쉽게 설명하는 것은 무리일 듯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자동차를 이해하고 만드는 일은 종이 비행기 접기처럼 몇 시간 만에 뚝딱 배울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현재의 자동차는 긴 시간에 걸쳐 수많은 공학자와 엔지니어들의 고민과 문제 해결 과정이 축적된 결과물이기 때문에 이론이 방대하고 어렵다. 이 지식을 대충이라도 따라잡으려면 약간의 고생과 노력이 필요하다.

서스펜션 첫번째 이야기에서 우리는 서스펜션의 필요성과 역할을 살펴봤다. 자동차의 서스펜션은 한마디로 자동차의 핸들링에 악영향을 미치는 출렁임과 쏠림을 지탱하는 장치다. 서스펜션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서스펜션의 필수 요소인 스프링과 댐퍼의 역할, 라이드 성능과 직진 중 핸들링 성능을 높이기 위한 서스펜션 설정 방향이 간략하게 소개됐다. 이를 요약하면 서스펜션 스프링은 1. 가능한한 부드러워야 하고 2. 서스펜션이 무용지물이 되는 돌침대 상태를 피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단단해야 하며 3. 가속/감속으로 인해 앞뒤 바퀴축 사이를 오가는 하중 이동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더 단단해져야 한다.


서스펜션의 마지막 난제, 코너링

이제 비워 두었던 서스펜션의 마지막 퍼즐 블록을 맞춰 F1카 서스펜션의 전체 그림을 완성하자. 마지막 남은 블록은 코너링과 서스펜션의 관계다.



자동차가 방향을 바꾸거나 코너에 진입하면 하중은 좌우 방향으로 이동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스펜션 첫번째 이야기에서 설명했다). 이때 하중은 자동차가 그리는 원의 바깥쪽 바퀴에 쏠린다. 자동차의 방향 변경과 코너링이 과격해질 수록 좌우를 오가는 하중 이동의 크기와 차체가 바깥쪽으로 기우는 각도가 커진다. 차체가 좌우로 기우는 현상을 롤 모션 (Roll motion)이라고 부르며 이는 자동차의 핸들링을 위태롭게 하는 결정적 방해 요소다.

자동차 서스펜션은 네 바퀴의 독립적 움직임을 보장하기 위해 통상 코너마다 한 개씩, 네 개의 독립된 스프링을 사용한다. 하지만 변칙적인 서스펜션 메커니즘이 난무하는 F1 카에는 스프링이  두 개, 세 개, 심지어 여섯 개까지도 사용된다. 서스펜션의 코너 스프링은 좌우 하중 이동도 지탱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차체가 기울지 않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레이스카의 경우 방향 전환이 매우 과격하기 때문에 코너 스프링 만으로 차체의 롤 모션을 지탱하기 어렵다. 네 바퀴에 연결된 코너 스프링 만으로 차체의 롤 모션을 버틸 수 있으려면 스프링이 서스펜션 두 번째 이야기에서 소개된 요건을 모두 충족한 상태에서 좌우 하중 이동으로 늘어나는 무게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훨씬 더 단단해져야 한다. 가령 좌회전 코너가 일방적으로 많은 도로를 달리면 하중이 우측 휠에 쏠리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이를 온전히 지탱하여 차체가 쏠리는 것을 막으려면 이론상 우측의 코너 스프링을 보강해야 한다.

문제는 좌우 코너에 서로 다른 강도의 스프링을 사용하면 마치 굽 높이가 다른 구두를 양발에 신고 달리는 상태가 되어 직선 구간에서 자동차의 직진성을 크게 해친다. 따라서 같은 바퀴축의 좌우 서스펜션에는 동일한 스프링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주행 거리의 약 20 % 구간에서 우측 앞바퀴에 특별히 무게가 많이 쏠리고 이를 지탱하기 위해 이 위치에 매우 단단한 스프링이 필요하다면 별다른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좌측 앞바퀴에도 원칙적으로 동일한 강도의 스프링을 사용해야 한다.



이처럼 코너 스프링만을 사용해 롤 모션을 지탱하려면 가장 심한 코너링에 맞추어 좌우 스프링의 강도를 동시에 늘릴 수 밖에 없고, 결국 좌우 스프링 모두 지나치게 탱탱해질 위험성이 있다. 이는 “직선에서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는 가능한한 소프트한 스프링을 사용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다. 코너 스프링이 너무 단단하면 타이어와 도로 사이의 접촉 성능이 떨어져 핸들링 성능 저하로 이어진다. 이는 마치 잘 다듬어진 구레나룻이 포인트인 최신 남성 헤어 스타일을 처음 시도하던 미용실 아주머니가 양쪽 구레나룻의 길이와 모양을 맞추기 위해 양쪽 을 오가며 가위질하다 결국 양쪽 모두를 날려버리고 “총각~ 미안해~”를 연발하듯 안타까운 결말이다.


똑똑한 발명품, 안티롤바 (Anti-roll Bar)

이쯤되면 “코너 스프링은 직선 주행에 적합하게 둔 상태에서 롤 모션이 심해질 때만 이를 지탱하는 방법이 있다면 좋을텐데…”라는 고민이 생긴다. 다행스럽게도 이 고민은 과거에 같은 문제를 고민했던 자동차 엔지니어들에 의해 이미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이들은 ‘ㄷ’ 자 형태의 긴 쇠막대로 좌우 휠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고, 이 쇠막대가 오늘날 자동차 서스펜션의 세번째 필수 요소인 안티롤바 (Anti-roll bar)이다.



안티롤바(Anti-roll bar) 는 이름 그대로 차체의 롤 모션을 방해하는 막대이고, 스태빌라이저(Stabiliser) 혹은 스웨이바(Sway bar)라고도 불린다. 혹자는 안티롤바를 마법의 장치라고 부른다. 메커니즘과 구조가 간단한데다, 핸들링 성능 기여도를 생각하면 비용도 저렴하다. 무엇보다 이 단순한 아이디어 덕분에 라이드 성능과 접지력을 크게 희생하지 않고도 차체의 롤 모션을 진정시키고 코너링 시 앞뒤 타이어의 접지력 배분까지 쉽게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안티롤바는 아래 그림처럼 좌우 휠을 물리적으로 연결한다. 좌우 휠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티롤바는 휠에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 처럼 좌우 휠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 양쪽 두 링크의 각도는 변하지만 안티롤바는 여전히 휠에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좌우 휠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 두 휠의 중간에 낀 스틸바가 꽈배기처럼 뒤틀려 휠을 원래의 위치로 되돌리려는 스프링 반발력이 발생한다. 즉, 안티롤바는 좌우 휠이 수직 방향으로 서로 어긋날 때만 힘을 쓴다.



직선 구간에서 달리다 속도를 높이거나 줄이면 차체는 앞 혹은 뒤로 수평하게 기울기 때문에 같은 바퀴축의 좌우 휠은 항상 짝지어 상하로 움직인다. 이 경우 안티롤바의 메커니즘 덕분에 안티롤바가 있고 없고는 큰 차이가 없다. 반면 코너에 진입하여 차체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좌우 휠의 수직 위치가 어긋나고 안티롤바가 힘을 쓰기 시작하기 때문에 마치 차체가 기우는 쪽 휠의 서스펜션 스프링이 더 단단해 지는 효과가 생긴다. 이처럼 안티롤바를 사용하면 굳이 사방의 코너 스프링을 보강하여 서스펜션을 돌처럼 단단하게 만들지 않고서도 롤 모션을 지탱할 수 있다. 코너 스프링을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직선 구간에서 서스펜션의 라이드 성능과 타이어 접지력을 크게 희생시키지 않지만 롤 모션이 생기면 이에 대응할 수 있으니 안티롤바의 발명은 신의 한수인 셈이다.

부작용 없는 약이 없듯이 안티롤바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이득에는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다. 좌우 휠이 상하 방향으로 서로 어긋나게 하는 원인은 방향 변경과 코너링으로 인한 차체의 롤 모션만이 아니다. 한 쪽 휠만 돌부리에 걸리는 경우에도 좌우 휠은 상하로 어긋난다. 안티롤바가 없다면 서스펜션의 좌우 휠은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 덕분에 한쪽 휠이 돌뿌리를 타 넘거나 포트홀에 빠지더라도 반대편 휠이 영향을 받지 않아 라이드 성능이 대체로 균일할 수 있다.

하지만 안티롤바를 설치하면 스틸바가 좌우의 휠을 물리적으로 구속하기 때문에 한쪽 휠의 움직임은 반대편 휠에도 영향을 미친다. 안티롤바가 단단해지다 보면 마치 그 옛날 소달구지의 통짜 바퀴 축처럼 되어 한쪽 휠이 돌부리에 걸리면 차체 전체가 들리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쉽게 말해 울퉁불퉁한 길에서 승차감과 라이드 성능이 극도로 나빠진다.



코너링 시 안티롤바를 사용해 차체가 좌우로 기우는 것을 막으면 핸들링 성능이 좋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스펜션의 기하학적 목표는 휠과 도로 표면이 타이어의 접지력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는 각도를 가능한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특히 휠이 수직 축에서 얼마나 기울었는지가 타이어의 접지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데 이를 자동차 용어로 캠버(Camber)라고 부른다. 정지 상태에서 자동차의 서스펜션과 휠은 도로면과 일정한 기하학적 각도를 유지한다. 차체가 기울면 당연히 이 각도가 변하고 따라서 타이어와 도로 표면 사이의 최적 상태가 깨진다. 

가령 타이어와 도로가 수직을 이뤄야 최상의 접지 성능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코너링으로 인해 차체가 기울면 타이어는 더 이상 도로와 수직으로 만나지 않고, 서스펜션의 위치도 비 대칭 상태로 변한다. 타이어와 도로가 접촉하는 각도가 커지면 타이어의 한쪽 모서리가 들려 컨택트 패치의 크기가 줄어든다. 만약 적절한 강도의 안티롤바를 사용하면 코너링 시 차체가 기우는 현상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타이어와 도로 표면의 접촉이 개선되고 접지력도 향상된다.



안티롤바를 사용하면 차체가 덜 휘청이기 때문에 안정성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여기 까지가 로드카에 적용되는 안티롤바 이론이다. 지금부터 이어질 내용은 대부분 레이스카를 위한 안티롤바 이론이다).

무엇보다 안티롤바는 코너링 시 바깥 쪽 타이어의 기계적 다운포스를 신속하게 증가시켜 타이어가 코너링에 필요한 접지력이 빨리 생성될 수 있도록 돕는다. 안티롤바가 단단해지면 바깥 쪽 휠로 하중 이동이 더 빨라지기 때문이다. 안티롤바가 없거나 너무 부드러우면 같은 롤 스트레스를 지탱하기 위해 차체가 더 많이 기울어야 하기 때문에 필요한 스프링 반발력을 모으는데 더 오래 걸린다. 그 결과 힘의 평형에 이르기까지 시간 지연이 길어져 자동차의 반응이 굼뜰 수 밖에 없다.

단단한 안티롤바를 설치하면 작은 스티어링에도 하중 이동이 빨라져 자동차의 반응이 민감해진다. 로드카의 경우 스티어링 반응이 민감하면 드라이버가 다음 액션을 취할 여유가 줄어들어 위험할 수 있고, 이는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마이너스 요소다. 반면 레이스카에서 민첩한 스티어링 반응은 큰 장점이다. 이만하면 레이스카의 서스펜션에 단단한 안티롤바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과하면 탈이 난다. 좋은 약도 적당히 써야 명약이고 얼굴 성형도 그 전보다 그럭저럭 나아 졌다면 욕심을 버리고 멈춰야 한다. 안티롤바가 코너링 성능 향상에 특효약이라고 더 강한 것만을 찾다 보면 어느 순간 코너링 성능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



코너링 시 차체가 바깥쪽으로 기울면 안티롤바가 바깥쪽 휠을 바닥으로 누르기 때문에 타이어가 더 큰 접지력을 내기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쪽 휠은 위로 들리는 힘을 받는다. 안티롤바의 강도가 지나치게 강한 상태에서 코너링이 격해지면 안쪽 휠이 공중으로 뜨는 현상이 발생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면 자동차를 붙잡아 주던 타이어의 총 접지력이 급락해 코너링 성능이 좋아지기는커녕 자동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하고, 이 때부터는 큰 사고만 면해도 다행이다.

코너링 성능 향상을 꾀한다면 앞뒤 안티롤바가 단단할 수록 좋지만 네 바퀴 모두가 도로에 붙어 있을 정도의 유연함이 아직 남았을 때 그쳐야 한다. 레이스카의 코너링 성능에 가장 적합한  안티롤바 셋업을 찾는 첫 단계는 앞뒤 안티롤바의 강도와 코너링 속도를 동시에 늘려가며 코너링 반응을 테스트하다가  안쪽 타이어가 공중에 들리고 전체적으로 타이어 접지력이 줄기 시작하면 거기서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부터 또 다른 서스펜션의 흑마술이 시작된다.

이미 앞뒤 안티롤바는 단단해질대로 단단해진 상태다. 레이스카가 코너에 진입하면 하중이 바깥 쪽 휠에 집중되어 앞뒤 축 모두 바깥 쪽 타이어의 접지력이 상승하지만 안쪽 타이어는 간신히 도로와 붙어있는 형편이다. 만약 앞 바퀴 축 바깥쪽 타이어의 접지력이 뒤 바퀴 축 바깥쪽 타이어의 접지력에 미치지 못하면 언더스티어(Understeer; 앞 바퀴가 코너의 바깥으로 밀리는 현상)가, 그 반대이면 오버스티어(Oversteer; 뒤 바퀴가 코너의 바깥으로 밀리는 현상)가 발생한다.



운이 좋아 앞뒤의 타이어 접지력이 정확하게 균형을 이루면 언더스티어나 오버스티어는 발생하지 않지만(Neutral steer) 그런 행운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언더스티어와 오버스티어는 모두 앞뒤 타이어에서 발생하는 접지력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현상이며 레이스카의 핸들링을 방해한다. 따라서 접지력이 부족한 바퀴축의 접지력을 늘려 주거나 접지력이 상대적으로 큰 바퀴축의 접지력을 줄여줌으로써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안티롤바는 코너링 시 전후 타이어의 기계적 접지력 배분을 조절하는 매우 유용한 조절 수단이기도 하다. 왜일까? 단순히 안티롤바의 강도를 조절한다고 좌우 하중 이동의 크기가 커지거나 작아지지는 않는다. 자동차에 발생하는 전체 좌우 하중 이동의 크기는 코너링의 강도와 자동차의 디자인에 의해 정해지는 값이기 때문에 안티롤바가 있고 없고 별 차이가 없다. 안티롤바 자체는 하중 이동의 속도만을 조절한다. 하지만 앞뒤 축에 두 개의 안티롤바를 사용하면 전체 하중 이동을 앞 바퀴 축과 뒷바퀴 축이 각각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를 조절할 수 있다. 한쪽 바퀴 축 입장에서 보면 이 분담 비율이 변함에 따라 부담해야 할 하중 이동의 절대 크기가 늘거나 줄어드는 셈이다.  이를 활용해 앞뒤 타이어에 발생하는 기계적 접지력 배분을 조절할 수 있다. 안티롤바가 레이스카의 핸들링 발란스를 조절하는 가장 쉽고도 파워풀한 튜닝 수단인 이유다. 레이스카 핸들링 발란스에 미치는 안티롤바의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 롤 커플 (Roll Couple)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롤 커플 (Roll Couple), 고통 분담의 크기



롤 모션은 단순히 어떤 힘이 차체의 옆구리를 밀어 차체가 좌우로 쏠리는 현상이다. 따라서 롤 모션이 발생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차체의 옆구리를 미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 힘은 자동차 안에 스스로를 감금하고 나오기를 거부하는 누군가를 독촉하기 위해 차를 흔드는 팔 근력일 수도 있고, 지상 1.5 m 부근을 할퀴고 지나가는 태풍일 수도 있으며, 방향 변경으로 인한 관성일 수도 있다. 이 같은 횡력이 만들어내는 롤 모션의 강도를 롤 모멘트 (Roll Moment)라고 한다. 자동차 차체에 작용하는 전체 롤 모멘트의 크기를 100 이라고 가정하면, 자동차의 서스펜션은 반드시 100 만큼의 롤 모멘트를 지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동차는 뒤집힌다. 자동차에는 앞과 뒤, 두 개의 바퀴 축이 있고 롤 모멘트는 이 두 축의 서스펜션이 나누어 부담한다.

‘롤 커플 (Roll Couple)’은 두 개의 바퀴 축이 전체 롤 모멘트를 공동으로 지탱함을 나타내는 용어이고, 두 바퀴 축의 고통 분담 비율을 가리켜 ‘롤 커플 비 (Roll Couple Distribution)’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전체 롤 모멘트를 앞뒤 축이 동일한 크기로 지탱한다면 롤 커플 비는 50:50 이다.

여기까지 읽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해도 걱정할 필요 없다. 자동차의 롤링 역학은 쉽지 않다. 롤 커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바퀴 수가 다른 네 종류의 자동차를 예로 들 것이다. 자동차의 바퀴 수가 바뀌면 주행 중 발생 가능한 여러 롤링 상황에서 역학적 반응이 달라진다. 이들이 보이는 역학적 반응의 차이를 통해 롤 커플의 개념에 한결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할 시나리오를 준비하자. 측면에 동일한 힘이 가해진다면 롤 모션의 차이를 결정짓는 유일한 요소는 차체에 작용하는 전후 방향 힘이고, 꼽아 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셋이다. 첫 째 롤링 중인 차체에 전후 방향으로 아무런 힘도 작용하지 않는 경우다. 이는 자동차가 정지 상태이거나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상태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각각 속도를 줄이거나 늘리는 와중에 횡력이 작용하는 경우다. 이제 이 세가지 롤링 시나리오에 네 종류의 서로 다른 자동차를 대입해보자 (이 세가지 롤링 시나리오는 아래 그림에서 순서대로 각각 1, 2, 3 으로 표시하였다).

첫 번째 자동차는 두 바퀴로 달리는 모터 바이크다. 모터 바이크에는 앞뒤 서스펜션 어디에도 롤 모션을 지탱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이를 롤 커플 비로 나타내면 0:0 이다. 모터 바이크는 정지 상태에서 절대로 홀로 설 수 없다. 좌우 힘의 균형이 깨지면 모터 바이크는 무조건 쓰러진다. 아무리 작은 롤 모멘트라 하더라도 서스펜션에서 전혀 지탱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 보조 수단 없이 보통의 모터 바이크를 제자리에 단 10 초라도 똑바로 세울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는 기인이나 달인 소리를 듣기에 충분하다.



모터 바이크가 쓰러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바퀴가 도로 표면을 타고 회전하는 것이다. 달리는 바이크가 롤 모션을 이기고 쓰러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회전하는 팽이가 꼿꼿이 서 있을 수 있는 힘의 원천인 자이로스코픽 효과이지 서스펜션에 롤 지탱 장치가 있어서가 아니다. 따라서 모터 바이크의 서스펜션은 코너링 성능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모터 바이크의 코너링 성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코너링에 필요한 타이어의 기울기를 정확하고 민첩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라이더의 판단과 운동 신경이다.



모터 바이크의 뒷 바퀴 축에 바퀴 하나를 더 달면 매우 서민적인 삼륜차가 탄생한다. 이로서 모터 바이크에선 찾아 볼 수 없었던 롤 모션 지탱 장치가 뒤 바퀴 축에 생겼다. 앞 바퀴 축은 여전히 롤 모션에는 속수 무책이다. 이를 롤 커플 비로 나타내면 0:100 이 된다. 정지 상태에서 롤 모션이 발생하면 뒷 바퀴 축이 롤 모션의 100 %를 지탱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쓰러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다. 이 자동차 디자인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속도를 줄이며 코너에 진입하는 상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 경우 코너링으로 인한 차체의 롤 모멘트는 감속으로 인해 앞쪽으로 더 쏠리지만 앞 바퀴축에는 롤 모멘트를 지탱할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에 뒤 바퀴 축 안쪽 타이어가 공중에 들린다. 싱글 프런트휠 삼륜차를 타고 급 브레이크를 밟으며 스티어링 핸들을 틀면 쉽게 앞으로 고꾸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상 감속의 크기가 가속의 크기 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이 문제는 가볍게 생각해선 안 된다.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이 삼륜 디자인은 자동차에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반면 가속 페달을 밟으며 코너를 빠져 나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가속으로 인해 롤 모멘트가 뒤 바퀴 축으로 쏠리기 때문이다.



앞 바퀴가 두 개인 삼륜차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자동차의 구조와 역학은 앞서 등장한 싱글 프론트휠 삼륜차를 180 도 회전하면 얻을 수 있다. 롤 커플 비율은 앞뒤가 뒤바뀌어 100:0 이다. 정지 상태에서 롤 모션이 발생하면 앞 바퀴 축이 롤 모션의 100 %를 지탱하기 때문에 역시 쓰러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다. 이 자동차의 경우 급 브레이크를 밟으며 코너에 진입해도 안정성에 큰 무리가 없다. 앞 바퀴 축이 롤 모멘트를 지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너를  빠져나오며 가속하면 롤 모멘트가 뒤 축으로 쏠린다. 그 결과 앞 바퀴 축 안쪽 타이어가 공중으로 들려 차체가 뒤로 기울어지거나 넘어질 수 있다. 왠지 고급스럽고 날렵해 보이는 디자인지만 코너링 가속이 형편 없으니 빛 좋은 개살구다.

싱글 휠이 어느 축에 달려 있건 간에 삼륜차는 롤 모션의 고통을 한 축이 모두 부담하게 하는 가혹한 시스템이다. 스트레스를 나누지 않고 한 곳에 전가하는 자연계의 시스템은 불안하고 쉽게 무너진다. 분배의 정의가 무너진 사회도 삐걱거리긴 마찬가지다. 세상의 이치는 그렇게 통한다.



자동차의 바퀴가 네 개가 되면 앞서 삼륜차의 치명적 단점으로 지적된 롤링 시 자동차 뒤집힘 문제가 덜해지고 자동차의 안정성이 한결 나아진다. 코너링 시 자동차가 웬만해선 뒤집히지 않는다는 것은 드라이버의 안전 측면에서도 큰 이득이다. 자동차의 코너링 안정성이 신뢰할 만한 수준으로 확보되면, 레이스 성능을 최대로 끌어올릴 방법에 눈을 돌릴 여유도 생긴다. 여기에 안티롤바를 더하면  더 과격한 롤 모션도 충분히 지탱할 수 있게 되고 롤 커플 비를 적절하게 맞추면 같은 코너도 더 빨리 달릴 수 있다.




공정한 분배는 전체를 이롭게 한다

이 모두를 좌표축에 모아 정리하면 원점에는 모터 바이크, 양 극단에는 삼륜차가 자리한다. 따지고 보면 이륜차, 삼륜차도 사륜차의 한 축 바퀴 사이의 간격을 0으로 만든 형태여서 이 다이어그램은 네 바퀴 자동차에 적용 가능한 모든 롤 커플 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간 지대에는 무한한 선택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레이스카 엔지니어의 임무는 이 중간 지대에서 자동차의 코너링 성능이 최대가 되는 점, 즉 최적의 롤 커플 비를 찾는 것이다.



롤 커플 비는 코너링 시 자동차의 언더스티어 혹은 오버스티어 특성과 직접적인 상관 관계를 갖는다. 이 롤 커플 비를 조절할 수 있는 파워풀한 튜닝 수단이 바로 앞 뒤 축에 붙은 안티롤바다. 차체에 발생하는 롤 모멘트 100 % 는 좋건 싫건 앞뒤 바퀴 축이 나누어 지탱하게 된다. 한쪽 안티롤바를 부드럽게 하면 (< 50 %) 반대편이 상대적으로 강해지기 때문에 (> 50 %) 더 많은 롤 모멘트를 지탱하도록 만들 수 있다. 안티롤바가 더 단단한 쪽 (> 50 %)의 바퀴축은 더 많은 롤 모멘트를 지탱하기 때문에 안쪽 바퀴가 들릴 가능성이 더 크고, 그 결과 접지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앞쪽에 더 단단한 안티롤바를 달면 언더스티어 경향이, 그 역으로 하면 오버스티어 경향이 강해진다.

뒤쪽 바퀴의 접지력이 부족해 오버스티어 경향이 심한 레이스카를 치료하는 방법은 이론상 1. 뒤쪽 안티롤바를 부드럽게 하거나 2. 앞쪽 안티롤바를 강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접지력이 부족한 뒤쪽의 안티롤바 강도를 낮추어야 한다. 앞쪽 안티롤바를 보강하더라도 오버스티어 현상 자체는 줄어들겠지만 이는 앞뒤 바퀴 모두 평행하게 미끄러져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접지력이 부족한 바퀴축에 더 소프트한 안티롤바를 사용하라”는  서스펜션 튜닝 팁에는 이러한 배경이 숨어있다.

F1 카 안티롤바의 원리도 로드카의 안티롤바와 100 % 동일하다. 다만 사용하는 안티롤바의 디자인과 메커니즘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일반 자동차와는 달리 F1 카 서스펜션의 코너 스프링과 안티롤바는 서로 완벽하게 독립적이어서 역할이 서로 중첩되지 않는다. F1 카 서스펜션의 코너 스프링은 휠이 동시에 상하로 움직일 때만, 안티롤바는 휠이 상하로 엇갈릴 때만 힘을 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안타깝게도 영업 비밀이라 소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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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호의 F1 스토리 모아보기 링크]
http://ridemag.co.kr/section.php?thread=15r04



글 : 로터스 F1팀 퍼포먼스 엔지니어 김남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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