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실력을 우습게 볼 수 없다. 아니, 중국을 아는 사람이라면 우습게 본다는 말을 듣고 헛웃음을 터뜨릴지도 모르겠다.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는 기업을 보고 농담조로 ‘외계인의 우주선을 주웠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번 제네바모터쇼에 등장한 차 중 외계기술을 투입해 만든 것 같은 모델을 꼽는다면 단연 첫 번째는 중국 테크룰즈(TECHRULES)의 ‘렌(至仁, REN)’이다.

테크룰즈는 작년 제네바모터쇼에서 AT96, GT96이라는 두 대의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이 두 대의 슈퍼카 콘셉트는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테크룰즈의 TREV(Turbine Recharge Electric Vehicle)라는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탑재했다. 엔진과 전기모터의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은 이미 많은 자동차메이커가 사용하고 있는 방식이지만, 테크룰즈의 TREV는 일반적인 차량용 4행정 가솔린 엔진 대신 ‘터빈’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모터로 차를 움직이는 색다른 시도로 주목받았다. 

올해의 제네바모터쇼도 그렇지만,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뿐 아니라 관련된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이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모터쇼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테크룰즈는 본격적이다. 기술을 보여주기 위한 콘셉트로 끝나는 것이 아닌, 실제 자동차를 생산해서 판매하는 것까지를 계획하고 있다.

테크룰즈의 TREV는 기존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상식을 깨는 파격적인 구조뿐 아니라, 놀라운 효율을 자랑한다. 80리터의 디젤 연료로 터빈을 돌려 발전하고, 이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하거나 혹은 바로 모터에 공급해 1,170km의 거리를 달릴 수 있다는 것이 테크룰즈의 설명.

리터당 14.6km 정도를 달리는 셈이니 언듯 보기에 엄청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성능을 살펴보면 이런 생각이 쏙 들어간다. 이번 제네바모터쇼에 등장한 테크룰즈 렌은 전면에 2개, 후면에 4개 총 6개의 전기모터를 탑재해 시스템 출력 1,350마력, 795kg.m의 최대토크를 낸다. 

전기모터를 이용한 드라이브트레인의 특징 중 하나가 ‘에너지의 공급’에 비례하는 출력을 낸다는 점이다. 때문에 전기차 혹은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배터리는 저장 용량뿐 아니라 단시간에 얼마나 큰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지가 무척이나 중요하다. 아무리 큰 물탱크라도 수도꼭지로 물을 뽑아 쓴다면 제대로 활용할 수 없듯, 저장된 전기에너지를 순간적으로 대량 방출할 수 없다면 낮은 출력밖에 낼 수 없다. 전기 파워트레인의 성능이 모터보다도 배터리 기술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이유다. 

TREV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은 항공 우주기술을 도입해 개발되었다. 마이크로터빈으로 유입된 공기가 압축되고 연료와 혼합되어 점화되면서 배출될 때 터빈을 돌린다. 이 터빈은 10만 RPM에 가까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발전기를 돌리고, 공기를 압축하며, 일부 열에너지를 다시 회수해 새로 유입된 공기와 연료 혼합기를 점화하게 된다.

테크룰즈가 밝힌 내용대로라면 렌의 TREV는 6개의 전기모터를 구동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꾸준히 공급할 수 있는 파워트레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기존 엔진을 이용한 거리 연장형(Extended-range)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과 비교해 콤팩트하고 가볍다.

테크룰즈 TREV는 장착된 전기모터의 수에 따라 3가지 베리에이션을 제공한다. 드라이브트레인은 영국 YASA가 제작한 2축, 4축 혹은 6축 플럭스 수랭식 모터를 사용한다. 모터는 1:3.3 기어비의 감속기를 통해 각 휠을 구동한다. REN에는 한 개의 마이크로터빈이 장착되지만, 테크룰즈는 2세대 TREV는 30kW 고효율 혹은 80kW 고출력 터빈 옵션을 사용할 수 있고, 다양한 조합으로 광범위한 전력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렌의 차체는 이탈리아의 LM 지아네티가, 디자인은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파브리치오 주지아로 부자가 맡았다. 테크룰즈는 렌의 실제 생산은 LM 지아네티가 담당한다. 하지만 TREV 파워트레인이라는 핵심기술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단순히 중국 자본이 투입된 유럽차라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지 않을까?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렌의 디자인이다. 전투기 콕피트를 떠올리게 만드는, 운전석의 창과 지붕을 위로 들어 올려 뒤로 슬라이드해 여는 독특한 방식을 적용했다. 운전석은 차의 중앙에 있고, 뒤쪽 좌우로 두 개의 동승자용 좌석이 배치되어 있는데, 각 좌석마다 물방울 모양의 캐노피를 적용했다. 그야말로 고전 SF 영화에 나오는 우주선이 따로 없다.

이런 디자인을 적용한 이유에 대해 ‘가장 넓은 시야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탑승자의 머리 주변에 어떤 방해물도 없이 투명한 창만이 존재하니 분명 넓은 시야를 제공할 것이다. 물론 실내 공간은 비좁겠지만, 이 차를 구입하고자 하는 이가 실용적이라는 이유를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마치 ‘연극의 주인공처럼’ 등장할 수 있다고. 분명 우주선같은 차가 도착해 거기에서 내리는 주인공이라면 모든 사람의 시선을 끌 것은 분명하리라.

인테리어는 고급 소재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만질 수 있는 모든 부분에 최고급의 이탈리아산 가죽과 오트쿠튀르 의상 제작 회사인 판탈로니 토리노가 생산하는 특별한 데님 소재를 사용했다. 차량에는 백미러가 없는 대신 카메라 사용해 후방 180도를 비춘다. 운전석에는 3개의 스크린이 위치해 터빈의 RPM, 온도, 배터리의 상태, 출력 같은 운전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며 좌우의 동승자와는 마이크와 스피커, 스크린을 이용해 화상통화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또 캐노피를 연 상태에서도 낮은 속도로 주행이 가능하다고.

더 놀라운 것은 테크룰즈 렌이 콘셉트가 아니라 ‘실제 양산될 모델’이라는 점이다. 파격적인 디자인 그대로 양산을 결정한 이들의 과감한 결정에는 놀라움과 함께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양산될 차량이기 때문에 고성능 파워트레인의 바탕이 되는 섀시의 성능에도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LM 지아네티는 테크룰즈 렌의 차체를 레이스카에 버금가는 기준으로 설계했고, 작년 여름부터 렌 프로토타입의 테스트를 진행해왔다.

차체는 카본파이버와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 강철로 제작된다. 터빈용 연료탱크는 FIA의 인증을 받았고 탱크에 손상이 발생하더라도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되었으며, 렌의 트랙 버전을 생산할 때를 대비해 알루미늄 안티 롤 바를 장착할 수 있고 운전석에는 강철제 롤 케이지도 장착된다. 이외에도 레이스에서 타이어 교환을 위해 빠르게 차량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에어 잭도 설치할 수 있다. 사실상 모터스포츠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되었다.

서스펜션은 레이스카에 주로 사용되는 푸시로드를 이용한 더블위시본 방식을 앞뒤 모두 적용했고, 수평 장착되는 3방향 조절식 코일오버 스프링 쇼크옵서버 유닛을 사용한다. 

브레이크는 고성능에 걸맞게 경량의 380mm 카본 세라믹 디스크를 사용하며, AP레이싱의 6피스톤 캘리퍼를 사용한다. 또 전자식 파워 어시스트 스티어링과 함께 운전자의 취향에 맞도록 스로틀 반응과 출력, 트랙션, ABS 등을 제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맵이 포함된다.

LM 지아네티의 CEO 파올로 지아네티는 이탈리아 몬자 서킷에서 테스트한 렌의 전기 드라이브트레인과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개발 목표 이상의 주행성능을 보였으며, 이후 유럽의 유명 서킷을 돌며 다양한 테스트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크룰즈는 렌에 적용된 TREV 파워트레인이 장래 SUV, 패밀리세단, 콤팩트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플랫폼에 적용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아직 그 성능과 내구성, 안전성 등이 완벽하게 검증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신기술이 자동차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테크룰즈 렌은 제네바모터쇼에서 고객의 주문을 받고, 2018년부터 실제 생산이 이루어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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