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는 2009년부터 서울모터쇼에 모터사이클을 조금이나마 전시하고 있었지만 올해는 달랐다. 할애된 공간은 적었지만 이례적으로 8종의 모터사이클로 전시장을 꽉 채우고 그중 5종은 신모델을 배치하며 모터사이클에도 제법 비중을 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 가운데서 가장 주목받는 기종은 단연 풀체인지 된 슈퍼스포츠 바이크 'FireBlade' CBR1000RR SP였다.

이름에 걸맞은 화끈한 모습으로 돌아온 CBR1000RR은 많은 예상을 깨고 SP 버전이 전시되며 모터사이클 팬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뿐만 아니라 날렵하면서도 묵직한 디자인은 모터사이클을 모르는 일반 관람객의 눈길까지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CBR1000RR SP는 혼다 부스에서 확실한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굳이 관람객의 반응이 아니더라도 X-ADV와 CBR1000RR SP는 별도의 프레스 컨퍼런스를 진행하였고 레이싱 모델을 배치하는 등 혼다 측에서도 높은 기대감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CBR1000RR은 SP 버전까지 수입되고 X-ADV 역시 과감한 결정인만큼 관람객만이 아닌 혼다의 입장에서도 X-ADV와 함께 가장 주목하는 모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파이어블레이드는 25주년을 맞으며 7년 만에 풀체인지되는 셈이다. 사실 슈퍼바이크 간의 무게, 출력경쟁과 전자장비 고급화가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CBR1000RR은 7년간 큰 변화가 없이 유지돼 성능 경쟁에서 다소 뒤처지는 수치를 보여줬다.

혼다는 ‘Total Control'을 강조했지만 177마력의 출력과 토탈 컨트롤만으로 200마력 내외의 경쟁기종을 넘어서기는 힘들었다. 실제 운전에는 핸들링과 밸런스에 집중된 CBR1000RR이 유리할지도 모르지만 슈퍼바이크 소비자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법이다. 아무래도 높은 출력과 화려한 옵션이 더 큰 구매욕을 주고 판매량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출격 예정인 CBR1000RR라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밸런스와 조작성만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이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외형부터 엔진까지 모든 것이 달리기를 위해 새롭게 디자인됐고 이제 높은 출력을 마음대로 다루는 토탈 컨트롤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보여주고 있다. 마치 그동안 성능경쟁의 한을 푸는 것만 같다.

휠베이스는 그대로이지만 차체가 매우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주행성능 향상을 위해 연료탱크 30mm, 어퍼 카울 24mm, 미드 카울은 18mm가 작아졌다. 덕분에 이전보다 아담하고 꽉 찬 느낌을 준다. 페어링의 형상도 기존보다 입체적으로 변했고 훨씬 날카롭다.

특히 공력 성능을 위해 헤드라이트 측면에 커다란 공간을 남겨둔 공격적인 디자인은 일본 바이크에서는 만나보기 힘든 과감함이다. LED 듀얼 헤드라이트는 이전 두 세대의 모습이 섞인듯한 모양새로 잔뜩 인상 쓴 모습이다.

SP버전은 혼다의 레이싱 컬러 ‘빅토리 레드’ 색상으로만 발매될 예정이다. 상직적인 의미로도 CBR1000RR에 잘 어울리는 색상이다. 의미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CBR의 레이싱 이미지에 걸맞은 배색이고 메인이 되는 빨간색은 금색의 파츠와도 궁합이 잘 맞는다.

세부 사양에서 가장 화려한 것은 서스펜션이다. SP버전에는 올린즈와 혼다가 공동으로 개발한 Smart EC 시스템이 장착된 전자식 서스펜션이 장착된다. 이 서스펜션은 현재 주행상태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상황에 맞는 감쇠력을 제공한다. 물론 수동으로 세세한 설정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공도에서는 승차감 향상에 기여하는 바도 있지만 진정한 이점은 스포티한 주행에서 나온다. 가속, 브레이킹, 코너링 등 여러 상황에 따라 최적의 효율을 제공해주는 감쇠력을 제공해주고 이에 따라 가속성능, 브레이킹, 트랙션 성능까지 향상할 수 있는 것이다.

현행 MotoGP 머신 기반의 슈퍼바이크 RC213V-S에서 사용됐던 스로틀 바이 와이어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어 빠르고 자연스러운 스로틀 반응을 노렸다. 슈퍼스포츠 차량답게 업/다운이 가능한 퀵시프터, 토크 컨트롤(TCS), 엔진브레이크 컨트롤, 파워 셀렉터를 제공하고 상세한 세팅까지 할 수 있다. 앞, 뒤 연동이 되는 코너링 ABS는 당연히 기본 사양이고 CBR만의 전자식 스티어링 댐퍼 HESD도 건재하다.

각종 전자 장비를 조작하는 계기반은 TFT 패널을 사용해 화려하고 선명한 색채가 인상적이지만 이 계기반의 진가는 폭넓은 세팅 범위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여러 전자 장비를 다단계로 세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스펜션, 변속 경고등 타이밍까지 직접 세팅할 수 있다. 게다가 백라이트나 무늬, 레이아웃 등 외형적인 부분까지 변경할 수 있는 아주 다양한 기능을 보여준다.

192마력/13,000RPM의 엔진스펙은 177마력/12,000RPM인 이전 연식 데이터와 비교해보면 15마력이 증가한 출력이다. 200마력이라는 상징적인 수치를 넘어서고 있는 경쟁 기종의 스펙과 비교해보면 다소 아쉬운 수치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스펙을 보고 다시 생각해보면 틀린 생각임을 알 수 있다. 바로 무게를 고려해야 되는 것이다.

CBR1000RR SP는 무게감량을 위해 거의 모든 부분에 변경을 가했다. 스윙암, 프레임과 같은 차체는 말할 것도 없고 시트레일과 윙커, 헤드라이트 등 거의 모든 곳에서 감량의 흔적이 보인다. 브레이크에서도 새로운 ABS 모듈을 사용해 3,000g을, 엔진은 커버 재질 변경을 통해 2,000g을 덜어냈다.

특히 주목해야 될 점은 연료탱크다. SP 버전에만 탑재되는 연료탱크는 양산차량 최초로 풀 티타늄으로 제작해 1,300g의 무게를 줄였고 머플러 역시 순정 제품이 티타늄 재질로 제작돼 2,800g이 가벼워졌다. 결과적으로 이전 연식대비 15kg의 감량에 성공해 4기통 경쟁기종 중에서 가장 가벼운 무게를 달성했다. 마력당 무게도 약 1,01kg까지 낮아져 경쟁 상대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

혼다가 강조하는 토탈 컨트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최근까지 이 단어는 아쉬운 출력을 무마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신형 CBR1000RR은 높은 출력과 가벼운 무게를 기본으로 조작성을 위한 다양한 장치를 갖추고 있어 토탈 컨트롤이라는 포인트가 확실히 와 닿는다.

출력은 높아졌지만, 혼다다운 부드러운 출력곡선은 여전하다. 더 커진 스로틀바디, 서보모터가 적용된 가변배기 시스템, 듀얼 인젝터는 저속 출력과 스로틀 반응속도를 위한 것이다. 또한 낮아진 무게와 더불어 질량 집중화를 통해서 관성모멘트를 감소시켰다고 하니 토탈 컨트롤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

슈퍼바이크는 모든 제조사가 혼신을 다하는, 기술이 집약된 장르인 만큼 가장 치열한 스펙경쟁이 일어난다. 특히나 올해에는 신모델의 투입이 늦었던 일본 메이커들의 슈퍼바이크까지 모두 물갈이되면서 한층 더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물론 스펙은 상향평준화 되었고 각자 장단점이 존재하는 만큼 승패를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CBR1000RR SP의 행보는 주목해볼 만하다. 고출력 알러지가 있던 혼다가 이전의 이미지를 갈아엎는 수준의 고성능화와 고급화를 이뤄낸 기종이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예상을 깨고 SP버전이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올해 CBR1000RR을 통해 기술 적용과 신차종 투입에 소극적이라는 혼다의 이미지 쇄신을 할 수 있을지 귀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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