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열정여행가입니다.”
그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했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열정여행가 김훈호 씨는 지난 2016년 5월 말 한국을 떠나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20,000㎞를 달려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했다. 알래스카에서 아르헨티나까지 15개국을 여행한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그를 만나 보았다.

직접 만난 그는 사진과는 달리 면도를 하고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단정한 모습이었다. 귀국한 지 열흘, 사진에서 보여준 여행 당시의 수염과 긴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의 그을린 피부와 자전거만이 긴 여행의 흔적을 보여준다.

김훈호 씨의 오랜 여행을 함께한 애마는 캐논데일의 2016년식 투어링1이다. 이 자전거는 캐논데일의 국내 유통사인 산바다스포츠가 협찬했다. 그 인연으로 산바다스포츠 콘셉트스토어 위클에서 그를 만났다.

 

Q. 라이드매거진 : 아메리카 대륙 종단을 하고 왔는데, 처음의 계획과 목표는 무엇이었죠?

A. 처음 목표는 300일 동안 16개국, 25,000㎞를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출발은 2016년 5월 27일이었고요. 하루 평균 80-90㎞ 거리를 달리고, 8시간 라이딩으로 계산하면 시속 10㎞/h 조금 넘는 속도로 달리면 되니까 그다지 무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는데, 실제로 나가보니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많더라고요.

Q. 어떤 나라들을 거쳤는지, 주행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A. 알래스카에서 1,100㎞, 캐나다 3,500㎞, 미국 3,100㎞, 멕시코 3,000㎞,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까지가 1500㎞, 콜롬비아 600㎞, 에콰도르 600㎞, 페루 2,500㎞, 볼리비아 600㎞, 칠레 2,500㎞, 아르헨티나 1,500㎞ 정도로 다 합치면 20,000㎞가 조금 넘습니다.

Q. 원래 16개국 방문을 계획했다고 했는데, 혹시 방문할 수 없었던 나라가 있었던 건가요?

A. 멕시코, 과테말라와 국경이 맞닿아 있는 벨리즈라는 나라입니다. 멕시코 동쪽 끝에 있고, 가는 길에는 산도 많습니다. 애초에는 멕시코 칸쿤까지 갔다가 벨리즈를 지나 과테말라로 내려올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멕시코 타파출라에 도착하니까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벨리즈에 가려면 4,000㎞정도 거리가 늘어나죠. 아메리카 대륙 종단이 목표라면 갈 필요가 없는 곳이기도 하고요. 돌아보면 욕심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요. 아팠던 날도 있고, 자전거를 타지 못한 날도 있고, 목표했던 거리를 달리지 못한 날도 있었어요. 여행 기간이 예상보다 너무 길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어서 아쉽지만 벨리즈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Q. 아팠던 날도 있었다고 했는데, 여행 중 힘들었던 일들은 어떤 일이 있었나요?

A. 출발하고 초반에는 안장 때문에 엉덩이가 너무 아팠습니다. 하루 8시간 정도를 생각했는데, 생각과 달리 10시간 이상 라이딩을 해야 했어요. 또 짐이 많다 보니 생각했던 속도가 안 나더라고요. 그렇게 안장 때문에 고생한 것이 40일 정도 됩니다. 다른 자전거여행자를 볼 때마다 안장만 본 것 같아요.

그런데 살펴보니까 오랫동안 여행한 사람들은 다 같은 안장을 쓰더라고요. 저도 그 안장을 써야 겠다 싶었죠. 고맙게도 산바다스포츠에서 브룩스 안장을 보내줘서 안장통은 해결이 됐어요.

그다음 미국 오리곤에서 한번 크게 아팠던 적이 있었어요. 어느 집 마당 한쪽을 빌려서 텐트를 쳤어요. 친절한 집주인이 다음날 아침 식사를 대접해 줬습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힘내서 출발한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슬슬 배가 아파 오더라고요. 울고 싶은데 때려준다고 하나요? 그 와중에 비까지 오는 거예요.

도저히 더는 못 가겠어서 길가에 누워서 울고 있었어요. 지나가던 차들이 한두 대씩 서기 시작하더라고요. 담요를 덮어주는 사람도 있고, 그대로는 안 되겠던지 구급차를 불러준 사람도 있었어요. 20㎞ 정도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죠. 도와준 사람들이 참 고마웠습니다.

문제는 다음날이었죠.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CT촬영까지 하고는 병원비가 5,000달러라는 겁니다. 분명 어젯밤까지는 고마웠는데, 병원비 얘기를 듣고 나니까 구급차를 불러준 사람이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 돈이면 여행경비 전부인데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다행히 바로 병원비를 내지는 않아도 된다고 해서 일단 계속 여행을 진행했죠.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미국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기금이 있고 그 기금으로 병원비가 처리됐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게 있는지 혹시 누군가 대신 병원비를 내준 건 아닌지 한 번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크게 아팠던 것은 콜롬비아에서였어요. 어느 집 마당 한쪽에 텐트를 치고 길거리를 둘러보기 위해 나왔는데, 고기를 팔고 있더군요. 맛있게 먹고 잤는데 배탈이 나서 일어나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대낮까지 못 일어나고 있었더니 집주인이 걱정됐는지 저를 깨웠어요.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실려가 하루 동안 입원하고, 퇴원하고도 5일 동안은 푹 쉬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안장 빼고는 두 번 다 먹을 것 때문에 탈이 났네요. 먹는 즐거움을 빼놓고 여행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조심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Q. 음식 때문에 고생했는데, 그럼 평소에는 어떤 음식을 먹었나요?

A. 아침, 점심을 딱히 구분하지는 않았어요. 빵에 피넛버터를 발라먹거나, 바나나, 그래놀라 같은 걸 먹었어요. 저녁은 싼 현지 라면을 먹었는데 매운 맛이 그리워서 아히가루(마늘가루로 추정됨. 스페인어로 ‘아히요’가 마늘이라는 뜻 - 편집자 주)를 넣고 가끔 계란도 풀고 했어요.

남미 쪽에서는 타코를 주로 먹었어요. 길거리에서 파는데 프로모션 할 때가 있더라고요. 지름 10㎝정도 되는데 20개씩 먹어도 3,000원 정도였어요. 좀 멀어도 프로모션 하는 곳을 찾아다니기도 했고요, 그런 때가 아니어도 5,000원 정도면 충분히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좋았죠.

Q. 블로그에서 보니까 중간에 배를 탄 얘기가 나오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A. 미국 서쪽 해변을 따라 내려왔잖아요? 국경을 넘으면 만나는 곳이 바하칼리포르니아예요. 이게 반도 지형이고, 멕시코 본토와의 사이에는 코르테스 해가 있죠. 본토로 들어가서 계속 자전거로 이동할지, 바하칼리포르니아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건널지 선택할 상황이었죠. 왠지 코르테스해변보다는 태평양이 멋있을 것도 같고, 배로 바다를 건너면서 조금 쉬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쪽으로 가기로 결정했어요.

 

Q. 자전거가 많이 상했네요. 좌우 레버도 다르고 긁힌 곳도 많고요. 부품도 순정 상태는 아닌 것 같은데 바꾼 이유가 있나요?

A. 제가 탔던 자전거는 캐논데일 투어링입니다. 여행용으로 만들어진 만큼 기능적이고 아주 튼튼하죠. 그런데 자세가 조금 불편해서 스템을 바꿨어요. 핸들이 무겁다보니까 앞으로 숙인 자세가 불편했거든요. 또 스프라켓이랑 뒤 변속기를 바꿨는데, 크랭크의 체인링이 2단이어서 순정 부품으로는 무거운 짐을 싣고 오르막을 오르기가 좀 힘들었거든요.

그리고 양쪽 레버가 다른 건 사연이 좀 있어요. 알래스카, 캐나다, 미국, 멕시코까지는 길이 좋은 편이었지만, 과테말라 이후의 도로 사정은 엉망이었어요. 보통은 도로 사정이 안 좋은 곳이 힘들겠지만 저는 공교롭게도 길이 좋은 멕시코에서 위기가 한 번 있었어요. 마사틀란부터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 자체는 좋은데, 포장된 곳과 포장되지 않은 곳의 단차가 커요.

게다가 큰 차들이 위협하면서 달리기까지 했어요. 어쩔 수 없이 비포장길로 내려갔다가 다시 도로로 올라가던 중 넘어졌고, 오른쪽 레버가 부러졌어요. 변속도 제동도 할 수 없었고, 많이 힘들었어요.

멕시코로 넘어오고부터는 말도 잘 통하지 않고 환경도 좋지 않았는데 이런 일까지 벌어지니까 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강도를 만났다고 하고 돌아갈까?’ ‘교통사고라도 당해야 하나?’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혼자였으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멕시코에 와서 만난 레이라는 친구 덕분에 마지막까지 여행을 마칠 수 있었어요.

Q. 같이 여행한 친구가 있었나 봐요? 언제 만났어요? 어떤 사람인가요?

A. 멕시코로 넘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만났어요. 바하칼리포르니아로 안 내려오고 본토로 갔으면 못 만날 뻔했죠. 프랑스 사람이고 캐나다 횡단 후 아메리카 종단을 하는 중이었어요. 저하고 거의 같은 루트여서 같이 여행하기로 했죠. 상당히 유쾌하고 친절한 친구예요. 레버가 부러진 상태에서 히치하이크로 3일 동안 500㎞를 이동하면서 큰 도시에서 겨우 구형 105 레버를 구할 수 있었어요. 레이는 멕시코 공용어인 스페인어를 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됐죠.

Q. 다행이었네요. 치안 문제는 없었나요?

A. 아무래도 걱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죠. 남미에서는 마당을 빌리는 대신, 소방서로 갔어요. 이 지역 소방관들은 다른 사람을 돕는 게 자신이 할 일이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어서, 저희를 아주 잘 대해줬어요. 잘 수 있는 공간은 당연하고, 소방대원이 쓰는 침대를 내주는 곳도 있었습니다. 방문하는 소방서마다 불 끄는 일이 자주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보다는 그 지역 갱끼리 싸운 후에 시신을 수습하는 일이 많대요. 그 얘기를 들으니까 소방서로 가길 정말 잘했다 싶더라고요. 

계속 소방서를 들렀더니, 그 중 한 곳에서는 저희에 대한 설명을 적고, 이런 사람들이 있으니까 환대해 주라는 종이를 적어 줬어요. 그 전까지는 소방서에 가면 마치 구걸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이 종이가 생기고부터 당당하게 요청할 수 있었어요. 한 번은 소방서가 눈에 띄지 않아서 시청으로 갔어요. 그리고 이 종이를 보여줬죠.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호텔을 잡아 주기도 했고, 버스로 시티투어를 시켜주기도 했어요. 이 종이만 내밀면 모든 게 마법처럼 이뤄졌죠. 마법의 종이, 매직페이퍼였어요. 

Q. 과테말라 이후로 남미 쪽을 여행할 때, 나쁜 도로 상황 말고도 특별히 신경 쓸 게 있나요?

A. 도로 상황이 어느 정도냐면, 길 한가운데에 웅덩이가 있을 정도예요. 그것뿐이면 그나마 피해서 지나갈 텐데, 치킨버스 때문에 그것도 쉽지 않았어요. 치킨버스는 우리나라 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아주 화려하게 꾸며진 버스예요. 우리나라 버스들은 지정된 정류장에서만 멈추는데, 이건 승객이 있으면 아무 곳에서나 멈춰요. 뒤를 확인하지 않고 급하게 오른쪽으로 차를 붙이니까 깜짝깜짝 놀라죠.

게다가 인터넷은 얼마나 느린지, 사진 네 장을 올리는데 한 시간이 꼬박 걸렸어요. SNS에 올린 사진은 오랫동안 노력한 결과입니다.

Q. SNS에 꽤 많은 사진이 올라왔던데 그게 그렇게 오래 걸린 거였다고요?

A. 솔직히 자전거로 이동을 마친 후에는 거의 할 게 없어요. 셀카도 찍고, 자전거 정비도 하고, 사진도 올리고 하는 거죠.

Q. 길도 좋지 않고, 버스 때문에 위험하고, 인터넷도 느리네요. 하지만 좋은 일도 있었을 것 같은데...

A. 흠… 콜롬비아가 좋았어요. 거기 소녀들이 저를 많이 좋아해 주더라고요. 지금도 페이스북으로 메시지가 날아오는데, 기억나지 않는 친구도 있고, 스페인어여서 잘 읽지 못해요. 워낙 메시지가 많아서 일일이 답장은 못 하지만, 시간 날 때마다 번역기라도 돌려서 답장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최종 목적지인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까지 도착을 했어요. 여행하면서 깨달은 점이나,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A. 여행 초기에 자전거 여행을 하는 부부를 만났어요. 벌써 10년 이상 여행을 했고, 꽤나 알려진 분이죠.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자전거 여행은 어차피 거지처럼 하는 거니까 짐을 줄여라. 그 얘기를 듣고 나름대로 열심히 버렸어요. 그런데 귀국 준비를 하면서 보니까 여전히 버릴 게 많더라고요.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말은 ‘짐이 많은 것보다 무서운 건 생각이 많은 것’이라는 얘기였어요. 이건 직접 여행해 보기 전에는 아마 이해하기 힘들 거예요. 목표가 있고 꾸준히 가면 짐이 많은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그런데 생각이 많으면 어디로 가질 못하고 방황하게 되니까 그게 정말 무서운 거죠. 레버가 부러졌을 때가 아마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독자 분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A. 이제 돌아온 지 열흘 정도 됐어요. 먹고 싶었던 한국 음식을 배불리 먹으며 좀 쉬고 나서, 여행하며 얻은 노하우와 팁을 많은 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6월쯤 압구정 위클에서 그런 시간이 있을 예정인데, 정확한 날짜는 결정되면 말씀드릴게요. 아직까지 자전거여행 계획은 없지만, 수단이 뭐가 됐든 조만간 다시 떠나게 되겠죠. 저는 열정여행가니까요.

※ 예정됐던 열정여행가 김훈호 씨의 강연 일정 안내입니다.
시간 : 2017년 6월 9일 금요일 오후 7시
장소 : 압구정 위클(서울 강남구 선릉로 157길 22, 02-548-5199, 압구정로데오역 5번출구에서 도보 5분)
주제 : a Bicycle change your life
내용 : 자전거를 타고 15개국을 누빈 청춘의 가슴 뛰는 이야기, 그리고 자전거 여행에 대한 모든 꿀팁

더 자세한 내용은 산바다스포츠 블로그(blog.naver.com/sanbadasp) 또는 캐논데일코리아 공식 SNS 계정(https://www.facebook.com/cannondalekr/)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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