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 삶도 용기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이 허락한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의 말이다.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은 자전거를 타는 라이더에게도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다. 지난 5월 20일 강원도 인제의 산을 마음껏 달릴 수 있는 대회인 ‘2017 자이언트 설악그란폰도(이하 설악그란폰도)’가 개최됐다. 설악그란폰도는 2010년 10명의 라이더로 시작했던 라이딩 이벤트로, 사이클링 투어를 즐기는 동호인의 자전거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2014년 자이언트 코리아가 메인 스폰서를 맡았다. 이후 점점 성장해온 설악그란폰도는 올해 3,000여 명의 라이더가 참여하는 대규모 이벤트로 치러졌다.

그란폰도(Granfondo)는 이탈리아어로 장거리를 이동한다는 뜻이다. 100-200km의 장거리 코스를 정해진 시간 안에 완주를 목표로 달리는 비경쟁 대회다. 1970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Nove Colli’를 시작으로 그란폰도는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 매년 수많은 대회가 열린다. 설악그란폰도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설악산 인근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달릴 수 있는 이벤트이자 동시에 ‘국내에서 가장 어려운 그란폰도’로 알려지기도 했다.

설악그란폰도는 메디오폰도와 그란폰도 두 가지 코스로 나뉜다. 산악등급 2등급의 구룡령, 한계령, 조침령과 HC(Hardcore)등급의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208km 그란폰도 코스, 그란폰도 코스에서 HC등급의 오르막을 빼고 거리를 줄인 105km의 메디오폰도 코스가 그것이다.  

 

설악그란폰도의 아침 - 어디 몸 한번 풀어볼까?

오전 5시 30분, 이른 아침에 출발하기 때문에 대회를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자이언트코리아의 직원은 새벽부터 보급소에서 나눠줄 물품을 챙기고, 행사를 준비하면서 설악그란폰도에 참가하는 라이더를 맞을 준비를 한다. 

오전 6시가 되자 하나, 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접수대에 갑자기 많은 인원이 몰려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스태프의 능숙한 운영 덕분에 원활하게 시간 안에 접수를 마칠 수 있었다. 접수를 마친 참가자들은 웃으면서 포토존과 스타트라인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완주를 다짐했다. 

출발 신호와 함께 수많은 라이더가 출발하는 장면은 장관이다. 언덕이 나타나기 전까지 실력이 비슷한 라이더는 자연스럽게 그룹을 이루고 서로 선두를 교체하며,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교대로 막으며 달린다. 

 

구룡령 - 산이 그곳에 있으니 오른다 

약 30km정도 지점에 해발고도 1,013m의 고개인 구룡령의 시작점이 나온다. 오르막에 능숙하거나 힐클라임 대회 경험이 있다면 침착하게 오르겠지만, 그란폰도와 같은 이벤트에 처음 참가하거나 산길 경험이 별로 없는 라이더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고 용기를 탈탈 털어내기에 충분한 산길이다.

그러나 사실 구룡령은 높은 해발고도를 자랑하지만 이미 출발지점의 해발고도가 높기에 정작 올라야 하는 고도는 약 400m 밖에 되지 않는다. 서울의 라이더라면 많이 다니는 북악스카이웨이 코스가 조금 길어진 정도다. (단, 그란폰도 코스를 달리는 도중 역방향으로 오르는 구룡령 산길의 험난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게 언덕을 오르면 제1보급소에 도착한다. 보급소에서 에너지 젤과 바나나 등 보급식을 받을 수 있다. 이때 보급식을 충분히 먹고, 휴식을 취하고 가면 다음 언덕을 조금 더 수월하게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언덕인 조침령도 쉽지 않은 언덕이고, 자전거는 말 그대로 ‘먹은 만큼 간다.’

구룡령의 내리막은 굉장히 길다. 내리막이 시작되기 전에 브레이크가 잘 작동하는지, 이물질이 묻어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내리막은 정승처럼 가라고 했다. 되도록 중앙선은 넘지 않고, 안전한 라이딩을 할 수 있도록 하자.

 

조침령 - 누가 코스 중간에 벽을 세웠나

구룡령의 긴 내리막을 내려가 좌회전을 하면 평균 경사도 10.9%의 조침령이 나온다. 조침령의 뜻부터 ‘높고 험해서 새가 하루에 넘지 못하고 잠을 자고 넘었다‘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많은 참가자가 여기서 ‘헉’하는 소리를 내며 좌절한다. 

급한 경사도에 굽이굽이 조침령을 오르다보면 어느덧 70km지점을 통과하게 된다. ‘몸이 녹는다’라고 표현할 만큼 이번 설악그란폰도 당일의 기온이 높다보니 많은 참가자가 힘든 라이딩을 했다. 

 

그란폰도와 메디오폰도의 갈림길

조침령을 넘고 내리막을 내려가면, 그란폰도와 메디오폰도의 갈림길인 진동2교 삼거리에 도착한다. 그란폰도 코스는 우회전, 메디오폰도 코스는 좌회전이다. 먼저 우회전을 하면 가장 먼저 쓰리재가 보인다. 쓰리재를 넘으면 떨어진 보급식을 채울 수 있는 제2보급소가 나타난다.

메디오폰도는 오미재를 마지막으로 코스가 끝난다. 메디오폰도는 민준식 라이더가 3시간 16분, 민병애 라이더가 3시간 44분으로 각각 남녀 라이더 중 가장 먼저 도착했다. 라이딩이 끝난 참가자는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완주의 기쁨을 만끽했다.

 

역방향 구룡령 - 오르막의 ‘하드코어’를 보여주마

그란폰도 참가자들은 처음에 올랐던 구룡령을 반대로 다시 올라가게 된다. 역방향으로 오를 때, 용이 구불구불 아흔아홉 구비를 넘어가는 모습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구룡령의 진가를 맛볼 수 있다. 이미 엄청난 거리를 달린 상태에서 획득고도 870m에 길이 20km의 길고 긴 오르막을 오르는 것은 몸과 영혼 모두 정말로 힘들다.

오르막을 오른 후 마지막 보급소가 나타난다. 중상급의 실력을 가진 라이더도 이곳에 도착하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힘들어서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하지만 완주가 얼마 남지 않았다. 목표가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번 설악그란폰도를 완주한 사람은 총 2,150명. 그 중에서 메디오폰도를 완주한 사람은 996명이고, 그란폰도 코스를 완주한 사람은 1,154명이다. 그란폰도 코스를 가장 빨리 달린 라이더의 주행시간은 6시간 39분으로, 선수 출신의 정우람 라이더의 기록이다. 여성 중 가장 빨리 달린 라이더는 이성희 라이더로, 8시간 48분을 기록했다. 처음 들어온 사람에게 시상을 하기는 하지만 기록과 무관하게 모두 완주자이며 승리자인 대회가 바로 그란폰도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2,150명 라이더를 보며, 한 사람의 사이클리스트로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레이스 에필로그 - 모두 함께 만드는 대회, 왜 자전거를 타는지 잊지 말자

설악그란폰도는 장거리 라이딩에 목마른 라이더에게 단비가 되어 주는 멋진 이벤트다. 운영도 자이언트코리아와 여러 스태프가 차츰 노하우가 쌓이면서 더 노련해졌다. 하지만 사람이 늘어나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문제점이 있다. 바로 코스 주변에 버려지는 쓰레기 문제다. 현재는 동호인을 위해 자이언트 코리아와 인제군, 인제경찰서 등 민관이 힘을 모아 대회를 진행하고 있지만, 원래 설악그란폰도는 동호인이 주축이 되어 만든 대회다.

누군가 버린 쓰레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비난 받고, 누군가는 그걸 처리해야 한다면 그게 과연 옳은 일일까? 이번 대회 중에 생긴 많은 쓰레기를 자원봉사자와 동호인, 자이언트코리아의 직원이 함께 정리했다. 우리가 대회에 나가서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누군가의 고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전거를 타는 이유는 다양하다. 건강을 위해서, 아름다운 자연을 보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서, 달리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대명제는 변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대회를 진행하기 위해서 많은 동호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이언트 설악그란폰도와 참가자 모두가 함께 성장하며 세계적인 자전거 축제를 만들어가기를 기대해본다.

 

설악그란폰도 참가 라이더 간단 후기

이상우 라이더 - 펑크로 인해 힘들었지만, 기록에 상관없이 참가자가 모두 함께하며 즐겁게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완주하신 모든 분 존경하고, 설악그란폰도 포에버!!

이태희 라이더 - 오전 7시 출발이었지만 날씨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너무 더웠어요. 이번에 다행스럽게 컨디션이 좋아서 만족할 만한 성적이 나왔습니다. 아! 그란폰도에서 보급식은 꼭 열심히 드세요!

강영구 라이더 - 대회가 전체적으로 매우 잘 정돈된 느낌이었습니다. 구룡령의 풍광에 감동하고, 조침령은 경사에 울고, 메디오폰도 마지막에 올랐던 오미재는... 코스 만든 분을 한 번 뵙고 싶네요! 

김영수 라이더 - 개인적으로 그란폰도를 준비하며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 정말 기쁩니다. 다만 함께 참가한 친구가 조침령 다운힐에서 낙차 후 DNF를 하게 되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열심히 운영해주신 대회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만약 참가를 원하는 라이더라면 무작정 도전하는 게 아니라 꼭 만반의 준비를 해서 다치지 않고 완주하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자 © 라이드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