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리스트의 천국, 혹은 죽음에 가장 가까운 레이스를 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두말할 것 없이 영국의 맨 섬(Isle of Man)으로 떠나야 할 것이다. 일부 마을 구간을 제외하면 섬 전체 공공도로에 속도제한이 없고, 해마다 투어리스트 트로피(Tourist Trophy)라는 공공도로 레이스가 열린다.

아마 독자 여러분 중에서도 모터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이들 중에서도 투어리스트 트로피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분이 많겠지만, 아마 ‘맨 섬 TT’라고 하면 바로 무릎을 치며 표정이 달라질 분도 있을 것이다. 맨 섬 TT는 그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드레이스지만 한편으로는 매년 사고가 끊이지 않아 죽음의 레이스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매년 모터스포츠광들, 그리고 목숨을 걸고 맨 섬 TT 포디엄에 오르고자 하는 이들이 이 섬을 찾는다. 올해의 맨 섬 TT는 현지 시각으로 5월 27일 공식 연습과 예선이 시작되었다.
(맨 섬 TT 타임테이블 : https://www.iomtt.com/~/media/Files/2017/TT_Schedule_2017.pdf)

맨 섬 TT기간 동안에는 섬 전체가 축제장으로 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이스의 연습과 예선이 저녁에 진행되는 것은 섬 주민이 실제로 사용하는 도로이기 때문이다. 섬을 한 바퀴 도는 도로가 곧 맨 섬 TT 경기장이다. 심지어 하루, 혹은 주말 동안만 열리는 레이스가 아닌, 2주 간에 걸쳐 진행되는 모터스포츠 축제다.

맨 섬 TT는 슈퍼바이크/슈퍼스톡/슈퍼스포츠/라이트웨이트/사이드카의 다양한 종목으로, 배기량 별로 세분화되어 치러지며, 2009년부터는 전기모터사이클을 이용한 ‘TT 제로’ 클래스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코스 길이는 한 바퀴가 60.7km로 국제 모터사이클 경기 코스 중 가장 길다. 단순한 서킷이 아니라 219개의 커브와 410m의 엄청난 고저차를 가진 실제 도로에서 열리는 경기라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사고 발생의 위험을 줄여줄 시케인 구간이 없다. 심지어 코스를 벗어나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는 일조차 발생한다. 맨 섬 TT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 박진감 넘치는 액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영화가 아닌 현실이며, 참가하는 선수들은 목숨을 걸고 달린다. 1907년부터 2016년까지 24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매년 사망자가 발생했으나 2001년에는 사망자가 아무도 없었는데, 이는 구제역의 확산을 막기 위해 섬을 폐쇄하고 대회를 개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맨 섬 TT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거둔 선수는 조이 던롭(Joey Dunlop, 1952-2000 7. 2)이다. 그는 맨 섬 TT에서 무려 26회의 우승을 거두었고 공도 레이스의 황제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에스토니아에서 열린 125cc 레이스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그의 동생과 조카 역시 레이서였는데, 동생인 로버트 던롭 또한 레이스 중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맨 섬 TT가 아닌 어떤 레이스라도, 심지어 도로를 달리는 중에도 수많은 위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맨 섬 TT는 통제된 환경에서 레이서들이 한계에 도전할 수 있는 많지 않은 이벤트라는 점을 말하는 이들도 있다. 

모토GP나 슈퍼바이크 같은 레이스와 달리, 맨 섬 TT는 타임트라이얼 방식으로 진행되는 기록경기다. 예선의 순위로 출발 순서가 달라지지만, 선수들은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출발하며 도착 순위가 아니라 누가 가장 빨리 도는지 기록으로 경쟁한다. 따라서 선수들의 라이벌은 앞서 달리는 선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상대방보다 빠른 주향이 아닌, 스스로의 기록을 경신하기 위해 끊임없이 한계에 가까운 주행을 해야 한다. 이것이 유독 맨 섬 TT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맨 섬 TT는 선수로 출전하고자 하는 이들, 우승을 노리는 선수들, 선수들을 보며 꿈과 영감을 얻는 팬 모두의 꿈이 담긴 레이스다. 선수 중에는 대형 모터사이클 메이커의 후원이 아닌 개인이 팀을 꾸려 참가하는 이도 있고, 포디엄의 정상에는 오르지 못할지언정 매년 참가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한편 모터사이클 메이커 또한 맨 섬 TT를 주목하고 있다. 과거 1950년대 혼다가 ‘맨 섬 TT 참가’를 선언하며 회사의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로 모터사이클 메이커에게는 중요한 이벤트였다. 재미있게도 혼다는 가장 많은 맨 섬 TT 슈퍼바이크 우승을 차지한 메이커이기도 하다. 

한편 오랫동안 맨 섬 TT의 최고 랩타임은 17분대였으나 2014년 마이클 던롭이 BMW S1000 RR을 타고 마의 17분벽을 허물며 16분 58초 25로, 평균시속 224km/h를 기록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탑승자의 실력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고성능 모터사이클의 개발을 위한 메이커의 노력은 이 같은 레이스의 결과로 드러나게 된다.

올해의 맨 섬 TT는 이제 막 예선이 시작되었다. 어떤 새로운 기록이 세워질지, 혹은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올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포디엄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선수의 안전과 한계를 넘어 새로운 기록을 세운 영웅의 탄생을 기원한다.

<저작권자 © 라이드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