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램 GX 이글, 땅으로 내려온 독수리

“이건 몇 단이에요?” 기어 단수가 좋은 자전거의 기준이던 시절이 있었다. ‘알루미늄 18단 자전거’가 대단히 좋다는 듯 홍보하던 때도 있었다. 18단이라고 하면 요즘에는 앞 2단 뒤 9단을 생각하겠지만 당시에는 아니었다. 앞 3단에 뒤 6단이었다. 로드바이크가 별로 없기도 했고, 당시 MTB는 보통 3장의 체인링을 사용했다. 그렇게 18단에서 21단, 24단으로 기어는 계속 늘어날 것만 같았다. 이번에 소개하는 GX 이글은 12단이다. 높은 단수는 아니지만, 개수로만 따져서는 안 되는 특별함이 있다.

기자의 첫 MTB는 24단이었다. 당연히 앞 3단 뒤 8단이다. 곧 27단이 등장했다. 앞 3단에 뒤 9단이다. 이 제품은 22-32-44T 체인링과 11-34T 스프라켓으로 구성돼 있었다. 30단의 등장을 기다렸으나 27단 다음에 등장한 것은 20단이었다. 지금까지의 흐름에서 벗어나 단수가 줄었다. 뒤는 10단으로 늘어난 대신 앞을 2단으로 줄였다.

27단이 대세이던 시절, 선수들은 작은 체인링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경량화를 위해 떼기도 했다. 여기서 잠깐 변속 폭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다. 변속 폭은 가장 가벼운 기어와 가장 무거운 기어의 비율로 이야기한다. 22-32-44T 체인링과 11-34T 스프라켓을 사용하면 618%, 가장 작은 체인링을 뗀 32-44T를 기준으로 하면 425%다. 처음 공식적으로 등장한 20단은 몇 가지 체인링과 스프라켓 규격이 있었는데 많이 쓰인 것은 26-39T 체인링과 11-36T 스프라켓이다. 이때 변속 폭은 491%다.

618%에서 491%로 줄었을 때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작은 체인링을 안 쓰던 선수들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변속 폭이 늘어난 셈이다. 계속 늘어나던 단수가 줄어드는 것은 20단에서 멈추지 않았다. 뒤가 10단에서 11단으로 바뀌면서, 앞은 하나만 남겼다. 27단에서 20단으로, 다음에는 20단에서 11단이다. 변속 폭이 너무 줄어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스램은 XD 드라이버 바디라는 새로운 규격의 프리허브바디를 만들고 가장 작은 스프라켓을 11T에서 10T로 줄였다. 10-42T, 변속 폭은 420%다.

변속 폭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앞을 1단으로 만든 것은 이유가 있다. 페달링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산악자전거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포크 트래블이나 컴프레션, 리어쇽 모드, 시트포스트 높이를 조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리모트를 달면 핸들바가 매우 복잡해진다. 장착 위치에 따라서는 동시에 사용할 수 없는 리모트 레버도 있다. 리모트가 있든 없든 손이 매우 바쁜 것은 분명하다.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앞변속기를 없앴다. 그러면서 무게도 줄고, 큰 바위 등을 넘을 때 체인링이 걸릴 일도 줄었다. GX 이글 또한 앞이 1단이며, 이런 장점을 갖추고 있다.

1단의 장점은 분명했지만, 변속 폭이 줄어든 것은 분명히 단점이다. 타는 코스에 따라 체인링을 바꿔서 사용할 수 있는 선수들이야 딱히 문제가 없지만, 일반인이 사용하기에 420%는 부족하다. 산에서 편하자고 작은 체인링을 달면 도로에서 속도가 안 나고, 큰 체인링을 달면 산에서 오르막이 힘들다. 이글의 출시는 그래서 더 반가웠다. 27단, 20단, 11단으로 점차 줄어들던 기어 단수는 오랜만에 하나가 늘어 12단이 됐고, 10-50T, 500%의 변속 폭을 자랑한다.

XX1 이글과 XO1 이글은 동시에 출시됐다. 의외인 것은 엔듀로 시리즈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XX1 이글이 아닌 XO1 이글을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처음 등장한 이글은 꽤나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세트 기준으로 XX1 이글은 200만 원이 조금 못 되고, XO1 이글은 그에 비해 30만 원가량 저렴하다. 구동계 가격만 어지간한 MTB 수준이니 독수리라는 이름처럼 하늘을 날아다니고 내 손에 들어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스램 구동계의 등급을 아는 사람은 XX1 이글, XO1 이글 다음에 X1 이글이 나오리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례적으로 스램은 한 단계를 건너뛰고 GX 이글을 선보였다. 하늘을 날던 독수리가 드디어 땅으로 내려왔다. 더 이상 하늘 위의 독수리 보듯 쳐다보기만 하지 않아도 된다. HK코퍼레이션이 수입, 공급하는 GX이글의 세트 가격은 XO1보다 100만 원이 저렴한 65만 원에 불과하다.

XX1 이글, XO1 이글이 카본 크랭크를 사용하는데 GX 이글은 알루미늄 크랭크를 사용한다. 스프라켓은 X-DOME 구조가 아니다. X-DOME 방식은 가볍고 튼튼하지만 크롬몰리 덩어리를 통째로 깎아서 만드는 만큼 재료의 사용이 많고 비용이 많이 든다. GX 이글의 스프라켓은 프레스 가공한 스프라켓 낱장을 핀으로 결합한다. XO1 이글과 비교하면 크랭크 가격은 ⅓, 스프라켓 가격은 절반 수준이다.

단순히 ‘구동계’를 구입한다면 딱히 좋은 가격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경쟁사에는 더 저렴한 제품도 있고, 비슷한 금액이면 최상급 바로 아래의 고급 부품을 구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속 폭을 생각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싱글 체인링을 쓸 때 경쟁사의 최대 변속 폭은 418%다. 같은 변속 폭을 만들기 위해서는 앞변속기와 더블 체인링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변속 폭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싱글 체인링의 장점이 매우 크다.

싱글 체인링과 넓은 변속 폭 말고도 이글의 장점은 또 있다. 트리거 시프터와 그립 시프터 중 원하는 것을 골라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스펜션과 시트포스트 등의 리모트 레버는 그 형태 등으로 인해 장착할 수 있는 위치가 다소 제한적이다. 경우에 따라 오른쪽 아래에 장착해야 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트리거 시프터와 동시에 사용하기 어렵다. 그립 시프터를 사용하면 그런 어려움을 피할 수 있다. 물론, 라이더 취향에 따라 그립 시프터를 사용할 수도 있다.

다양해지는 규격에 대해서도 대응책을 내놓았다. 142㎜ 액슬 방식에는 6mm 오프셋 체인링을, 148 부스트 규격에는 3mm 오프셋 체인링을 사용하면 된다. 체인링은 오프셋 규격 외에 T수에 따라서도 나뉜다. 30, 32, 34T가 있으며, 개인의 체력 상태나 주로 라이딩하는 코스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11단 XX1이 처음 등장했을 때 앞변속기가 없어 단순해진 핸들바, 싱글 체인링으로 향상된 장애물 돌파력은 매우 큰 장점이었다. XX1 이글, XO1 이글이 등장하면서 좁은 변속 폭은 해결했으나 선수들마저 최상급을 쓰지 못할 만큼 높은 가격이 문제였다. GX 이글은 싱글 체인링의 장점과 충분한 변속 폭을 제공하면서도 상위 모델에 비해 매우 낮은 가격으로 출시됐다. GX 이글과 함께 더 많은 곳을 자유롭게 달려 보자.

글

함태식 기자 tsham@ridemag.co.kr

제공

라이드매거진(ridemag.co.kr)
라이드매거진은 자동차, 모터사이클, 자전거 등 다양한 탈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전문매체입니다. 각 탈것들의 전문적인 시승기부터 국내외 관련뉴스, 행사소식, 기획기사, 인터뷰, 칼럼,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는 문화 이야기까지 다양한 볼거리들을 제공합니다.

트윗하기

함태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