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욕심은 당연히 갖게 되는 마음이다. 다만 그 모든 욕심을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 이성적으로 판단해 가능한 부분과 가능하지 않은 부분을 나눠 한쪽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모터사이클에서도 그러하다. 모든 욕심을 다 만족시킬 수 있는 모터사이클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중요도에 따라 순서를 매겨 가장 많은 부분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모터사이클을 선택하는 것이다.

3기통 엔진을 탑재한 모터사이클도 이러한 연유로 탄생한 제품들이다. 단기통, 2기통, 4기통 등 다양한 실린더 숫자를 갖춘 모터사이클이 있지만, 미들급 이상에서는 2기통의 강력한 토크와 4기통의 고출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선다. 여기서 둘 중 하나를 포기할 수 없는 소비자들을 노려 제조사에서는 양쪽을 두루 만족시켜줄 수 있는 3기통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오래전부터 출시되어 온 3기통 모델이지만,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브랜드는 몇 없는데, 그중 3기통 모델을 앞세워 라인업을 구축한 영국의 브랜드, 트라이엄프의 신형 스트리트 트리플 시리즈가 국내 출시와 함께 시승회를 진행해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지, 3기통의 매력을 잘 살렸는지 직접 시승을 통해 하나씩 살펴보았다.

잠자리를 닮은 듯한 전면부가 인상적이었던 스트리트 트리플 시리즈지만, 신형에선 그런 얘기들이 쏙 들어갈 만큼 날카로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주간주행등을 더한 헤드라이트와 상단 커버의 조합으로 스트리트 트리플이 가진 공격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전면부를 지나 슬림하게 잘 빠진 차체 역시 연료탱크나 후미부 등을 조금씩 위로 치켜들고 날카롭게 다듬어 전면에서 보던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가는 모습이다.

시트에 앉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계기판이다. RS 사양에는 전체적인 흐름에 맞춰 TFT 풀컬러 디스플레이를 도입한 덕분에 상황에 맞춰 최적의 표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심이나 교외 투어링에서라면 차량의 다양한 정보들까지 한꺼번에 표시하는 쪽이 낫지만, 서킷 주행에서라면 가장 중요한 부분, 속도와 엔진 회전수 등을 큼직하게 표시해 정보를 빠르게 파악할 수도 있다. 또한 차량에 적용된 전자장비 등의 설정을 변경하는 것도 수월하며, 이것마저 번거롭다면 다양한 주행모드 중 하나를 선택해 엔진 응답성을 비롯한 전자장비 개입도 등의 설정을 일괄적으로 변경할 수 있다.

핸들바는 R과 RS 모두 파이프 방식이 채택됐는데, 너비를 이전보다 12mm 더 넓힌 덕분에 조종이 한결 쉬워졌다. 한정판으로 발매되는 모토 2 에디션만 유일하게 세퍼레이트 방식의 클립온 핸들이 적용됐다. 시트고는 R이 826mm, RS가 836mm인데, 로우 시트 장착으로 28mm를 낮출 수 있고, 추가적으로 전용 리어 서스펜션 액세서리까지 더하면 10mm 더 낮출 수 있어 798mm의 시트고로 부담을 확 끌어내릴 수 있다.

본격적인 시승의 첫날은 강원도 인제 지역의 일반도로에서 진행됐다. 인제를 관통하는 44번 국도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온통 굽잇길이 이어지는 만큼 이곳에선 가볍고 운동성이 좋은 모델이 제격이다. 스트리트 트리플 RS와 함께 계곡 옆으로 이어지는 길을 내달리면서 그 생각은 더욱 확실해졌다. 좌로 우로 기울이는 과정이 이렇게 경쾌하다니, 200kg이 되지 않는 가벼운 무게도 한몫했고, 고성능의 쇼와 41mm BPF와 올린즈 STX40 쇼크업소버로 구성된 서스펜션도 적잖은 역할을 한다. 특히 일반도로인 만큼 노면의 이물질이나 맨홀 뚜껑 같은 크고 작은 요철들이 존재하는데, 주행 내내 불안함 없이 충격은 잘 걸러주면서 타이어가 튀거나 하는 일 없이 접지력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서킷에서라면 당연히 스포츠 모드를 선택하겠지만, 일반도로에서라면 조금 부담스럽다. 로드로 맞추고 달리기 시작하니 놀라우리만치 부드럽게 출력이 뻗어 나와 순간 ‘내가 4기통 모델을 탔었나’하고 착각하게 될 정도다. 부드러운 반응성이지만, 그렇다고 성능이 결코 뒤떨어지지는 것도 아니다. 스로틀 레버를 끝까지 당기면 차체가 화살같이 튀어 나가는 강력함도 보여준다. 트라이엄프가 모토GP의 모토 2 클래스에 엔진을 공급하고 있는 만큼 레이스에서 쌓은 노하우가 고스란히 엔진에 녹아들어가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 이번 신형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를 거쳐 출력을 끌어올려 R은 120마력/11,500rpm, RS는 130마력/12,000rpm의 최고출력을 낸다. 이렇게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엔진 압축비의 수정인데, 기존 12.65:1에서 13:25:1로 4.7% 증가시킨 것. 물론 단순히 압축비만 끌어올릴 경우 엔진 내구성 저하로 이어지는 만큼 피스톤이나 커넥팅 로드, 피스톤 핀 등 부품의 강성을 끌어올리고 밸브와 캠축 등을 새로 설계하는 등 흡배기계에 대한 수정도 함께 진행됐다. 즉 이번 신형은 성능과 내구성을 함께 끌어올린 업그레이드가 적용됐다는 것이다.

방향을 살짝 틀어 44번 국도에 올라 동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면 섭섭하지 않을까. 아직 단풍이 오려면 멀었지만, 그래도 한계령은 언제나 즐거움을 주니 말이다. 아직은 푸른 숲이 여름의 기운이 남았음을 보여주지만,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에서 곧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한계령 입구로 다가갈수록 낮아지는 기온에 열어놨던 재킷의 통풍구를 모조리 틀어막고 손목까지 단단히 조여준 후 한계령을 오르기 시작했다. 짧은 코너가 이어지는 한계령 구간에서도 여전히 스트리트 트리플의 움직임은 경쾌하다. 시선처리만 확실히 해줘도 코너들을 돌아나가는데 어려움이 없다. 여기에 이번 신형부터 기본으로 채용된 퀵시프트는 주행이 한결 편해진다. 클러치 레버를 잡을 필요 없이 가볍게 레버를 위아래로 조작해주는 것만으로 변속이 되니 한결 빠르게 코너를 빠져나올 수 있고, 진입 전 다운시프트를 놓친 상황에서도 빠르게 원하는 기어 단수에 맞출 수 있다.

문제는 올라갈수록 점점 낮아지는 기온이다. 오르기 전 산자락에 걸린 구름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계기판에 표시되는 기온이 점점 낮아져 20도 아래로까지 내려간다. 대낮에 이 정도라니, ‘산에서는 날씨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던 어른들의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 다행히 한계령 정상에 늘 한결같이 자리하고 있는 한계령 휴게소에서 따뜻한 음료로 몸을 녹이고 나니 다시 달릴 수 있는 기운이 솟아난다. 고갯길을 타고 넘어가는 구름들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산 아래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첫날의 시승을 마무리했다.

다음날은 이번 시승의 메인 행사라고 할 수 있는 인제스피디움에서의 시승이다. 문제는 아침부터 바닥이 온통 빗방울로 촉촉이 젖어있는 상태. 비가 멈추고 해가 오르길 간절히 기다렸지만 정성이 부족했던 탓일까, 오히려 빗줄기가 굵어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젖는 걸 각오하고 트랙에 RS를 타고 나섰다.

워머를 감아 타이어를 예열해놨다고는 하지만, 타이어 워밍업을 겸한 첫 랩에선 타이어 온도를 높이는 것과 함께 노면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같은 날이라면 더더욱이나. 아무리 신경 써서 차체를 최대한 세우려고 해도 헤어핀 코스들이 존재하는 만큼 부득이하게 차체를 기울이게 되는데, 조금씩 뒷바퀴가 미끄러지려는 듯한 불안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하필 타이어도 슬릭까진 아니어도 하이그립 사양이 적용되어 있어 오늘같은 빗길에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하필 레인타이어를 장착한 다른 참가자가 슬립해있는 모습까지 보고나니 더더욱 마음이 위축되어 마른 노면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저속으로 코너를 돌아나간다.

다행히 서스펜션들이 바삐 일해주는 덕분에 타이어가 노면에 최대한 밀착하도록 유지해 그나마 안심하고 코너를 돌아나갈 수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코너를 지나 펼쳐지는 메인 스트레이트에서라면 안심하고 속도를 높이지 않을까 했는데, 앞에서 달려가는 다른 차량들의 뒷바퀴에서 만들어지는 물보라가 영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200km/h 이상 달릴 수 있는 파워를 최대한 자제하고 평소보다 일찍 부드럽게 제동을 걸며 코너로 접어든다. 브렘보 스타일레마 모노블럭 캘리퍼가 좌우 양쪽으로 달려있어 자칫 앞바퀴가 잠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 들었지만, 제동력이 일정하게 상승하기 때문에 우려하던 일 없이 원하는 만큼 속도를 쉽게 줄일 수 있었다.

안전을 위한 선택이지만 온 신경을 집중하니 느리게 달렸는데도 평소보다 체력이 뚝 떨어진 채로 첫 세션을 마쳤다. 다음 세션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 체력을 회복하면서 비가 그치길 간절히 빌어보지만, 이날 하늘은 우리편이 아니었나보다. 오히려 더 많이 뿌리는 빗줄기에 투덜거리며 두 번째 세선에 스트리트 트리플 R을 타고 진입했다. R 사양의 앞 서스펜션은 RS의 BPF보다 조금 사양이 낮은 쇼화 SFF-BP이지만, OEM으로 장착되는 것보다는 훨씬 대응범위가 넓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물론 여전히 내리는 빗줄기로 속도는 평소의 절반 정도 수준이지만, 그래도 타이어 그립력이 꾸준하게 나와주니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걱정하던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스로틀 레버를 최대한 부드럽게 조작하기 위해 애썼다.

다행인건 여러 주행모드 중 레인모드가 있어 선택했는데, ABS나 트랙션 컨트롤 등의 개입이 크게 늘어나고 엔진 응답성이 가장 더뎌지는 모드로 바뀌며 조작에 조금은 신경을 덜 쓸 수 있었다. 자칫 다른 모드에서 스로틀을 조금 급하게 조작해 뒷바퀴에 구동력이 강하게 걸리면 젖은 노면에선 휠스핀이 일어나 여지없이 슬립으로 이어지는데, 엔진 응답성이 더뎌지고 출력이 부드럽게 전달되어 1차적으로 사고를 예방하고, 여기에 2차로 트랙션 컨트롤까지 받쳐주는 덕분에 이날 전 세션을 마칠 때까지 안심하고 달릴 수 있었다.

하루종일 내리는 비로 서킷에서의 진면모를 확인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스트리트 트리플 765 시리즈는 확실히 이름에 걸맞은, 아니, 이름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모델임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일반도로에서는 편하게 탈 수 있으면서도 어떤 커브길이나 와인딩 코스를 만나더라도 겁나기는커녕 오히려 즐겁게 내달릴 수 있는 경쾌한 운동성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고성능, 고사양의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사고 방지를 위한 ABS와 TCS, 주행모드 등의 기능들까지 더해져 안심하고 달릴 수 있다. 여기에 모토 2 엔진 공급 업체로 활약하며 쌓은 기술력을 고스란히 녹인 신형 엔진은 부드러우면서도 라이더가 원할 때는 언제든 강력한 파워를 선사하기 때문에 스포츠 주행이나 서킷에서도 부족함 없이 내달릴 수 있다. 만약 스트리트 트리플 R과 RS로도 만족하기 어렵다면 더욱 고사양의 파츠와 한정 발매로 소장가치를 높인 스트리트 트리플 모토2 에디션으로 끓어오르는 열정을 만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예상을 뛰어넘는 다재다능함을 보여준 신형 스트리트 트리플 시리즈의 등장은 국내 네이키드 시장에 긴장감과 함께 좀 더 뜨거운 접전을 가져오기에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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