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당대를 풍미한 모터사이클들

모터사이클 시장이 언제나 황금기일 수만은 없다. 사실 모터사이클이 황금기인 시절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났다. 모터사이클 시장을 이끄는 4대 브랜드가 속한 일본이 버블경제로 한창 달아올랐을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지금으로는 상상 못 할 제품들을 만들어 시장에 공급했고, 당시 출시된 모터사이클은 30~40년 된 것들이 즐비함에도 아직 시장에서 명차로 불리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타원형 피스톤이 적용된 혼다 NR1

이렇게 달아오른 분위기는 21세기를 앞두고 일어난 버블경제의 붕괴 시기 일명 ‘잃어버린 10년’을 기점으로 확 꺾였고, 이후 제품들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의 엔진을 하나의 제품에만 사용하던 추세에서 벗어나 하나의 엔진으로 다양한 제품들에 확대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으로, 엔진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임으로써 기업의 이윤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발 과정에서 미처 찾아내지 못한 문제가 발견되어 비용을 들여 사후처리하는 것보다는 검증된 엔진을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어 추가적인 지출을 줄이는 것 역시 이윤을 높이는 방법이니 말이다.

변화는 대중 브랜드에서부터 시작됐다. 고객의 접근성을 높이려면 가격 장벽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레이스에서 사용되는 슈퍼스포츠는 명맥을 이어가는 노력이 이어졌다. 그러나 악재들은 이어졌다. 우선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환경규제에 맞춘 제품을 생산하려면 이에 맞는 엔진을 개발해야 하는데, 최소한 성능은 이전 수준을 유지하면서 환경규제에 맞는 엔진을 개발하는 것조차도 막대한 비용이 들었고, 그렇다고 성능을 낮춰가며 환경규제에 맞추게 되면 소비자들의 원성을 들을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전 세계 물류 운송에 차질이 빚어지며 물류비도 상승하기 시작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로 인한 경제 제제가 이어지며 원자재와 천연가스 등의 가격이 상승해 생산비 역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2024년 1월 현재 2,000만 원 초반대로 구입 가능한 리터급 슈퍼스포츠 2종. 왼쪽부터 야마하 YZF-R1, 스즈키 GSX-R1000

여기에서 브랜드들은 선택을 해야 했다. 무리해서라도 생산을 이어갈지, 아니면 단종할지 중에서 말이다. 그나마 판매량이 높았던 1,000cc 슈퍼스포츠는 생산을 이어가는 쪽으로 결정되며 살아남았지만, 나머지 600cc 전후의 슈퍼스포츠 모델들, 그리고 여기에 탑재되던 4기통 엔진들은 모두 단종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결국 주요 브랜드들의 미들급 호몰로게이션(레이스 규정에 맞는 공인 차량) 모델들은 시장에서 사라졌다. 여기에 대중 브랜드라 할 수 있는 일본 4대 브랜드의 1,000cc 슈퍼스포츠 모델이 2,000만 원을 훌쩍 넘어선 상황에서 미들급 슈퍼스포츠를 이어가기에는 2,000만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격에 대한 심리적 저항선으로 인해 판매량을 장담할 수 없는 것도 주요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단종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제품 하나를 단종시켰다면, 그 자리를 메울 수 있는 대체품이 필요하다. 기존 4기통 엔진의 높은 생산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 단순히 부품 숫자만 놓고 봐도 기통 수를 줄이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런 식이라면 단기통 엔진이 가장 제조 단가를 낮출 수 있지만 출력이나 진동 면에서 유리한 점이 없는 만큼 브랜드들은 패러렐 트윈, 즉 병렬 2기통의 엔진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BMW의 수평대향 2기통 엔진

물론 이러한 2기통 엔진도 다양한 형식이 존재한다. 한때 두카티 라인업을 책임지던 90° L트윈 엔진도 있고, 크루저 뿐만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에서 2기통 감성을 전달하던 V트윈 엔진도 있으며, BMW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수평대향 2기통 엔진도 있다. 그러나 브랜드 입장에선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한 선택이 필요했고, 2개의 실린더가 하나의 엔진 블록에 배치된 병렬 2기통 엔진을 선택한다. 그러면 엔진 전체의 부피나 부품 배치 등에서도 다른 형식의 2기통 엔진에 비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야마하 YZF-R7

이 부분에서 가장 유리했던 건 야마하였다. 야마하는 이미 2014년부터 CP2 엔진을 통해 MT-07과 같은 제품을 선보여왔기 때문. CP 시리즈 엔진을 밀고 있던 야마하에게 4기통 600cc 엔진을 대체하는 제품을 고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야마하는 지난 2019년 YZF-R7을 선보이며 YZF-R6의 빈자리를 채워넣기 시작했다.

스즈키 GSX-8R

스즈키도 마찬가지로, 스즈키의 경우 GSX-R600과 R750 2개의 모델을 단종시키며 이를 메울 모델이 필요했는데, 앞서 설명한데로 기존 SV650 등에 사용되던 V형 2기통 엔진의 경우 개발비를 절감할 수는 있지만 생산 과정에선 효율성이 더 요구되는 데다 배기량이 비슷해 출력 면에서 고객들의 아쉬움을 채워주기엔 한참이나 모자랐기 때문. 그래서 스즈키는 신형 엔진의 개발을 서둘렀고, 병렬 2기통 776cc 엔진을 앞세워 GSX-8S와 8R, 브이스트롬 800DE를 선보였다. 다만 신제품들이 단종된 모델들의 정통성을 잇지는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이름에서 차이점을 두며 명확하게 선을 그엇다.

혼다 CBR650R

혼다는 방향이 조금 달랐는데, 이런 상황을 예견했던 것인지 NC 시리즈와 CB500 시리즈로 병렬 2기통 엔진을 탑재한 제품들을 일찌감치 선보여왔다. 여기에 먼저 선보였던 4기통의 CB650 시리즈까지 있어 미들급 라인업이 충분해 보였지만, 혼다는 기존 NC 시리즈에 탑재되던 엔진을 대체하는 새로운 고성능의 750cc 엔진을 개발, CB750 호넷을 시작으로 XL750V 트랜잘프를 선보였고, 여기에 CRF1000L 아프리카 트윈에서 업그레이드된 CRF1100L 아프리카 트윈의 엔진을 바탕으로 투어러인 NT1100이나 크루저 레블 1100, 일본 내수용 모델인 스포츠 모델 호크 11 등에 탑재하며 미들급과 리터급을 동시에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23 밀라노 모터사이클쇼에서 CBR600RR(국내 미출시)의 부활을 선언하며 1위 브랜드다운 폭넓은 라인업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가와사키 닌자 650

일본 4대 브랜드 중 가장 독특한 행보를 보이는 곳은 가와사키다. ZX-10R을 제외하고는 호몰로게이션 모델은 일찌감치 단종시켰고, 미들급 모델은 배기량을 살짝 높인 ZX-6R을 선보인데 이어, 최근에는 1980~90년대 4기통 400cc 호몰로게이션 모델을 연상시키는 ZX-4RR을 선보이는 등 완전히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현재 양산차 중 유일하게 슈퍼차저를 탑재한 H2 시리즈를 다양한 형태로 선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4기통 제품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2기통 엔진을 탑재한 650 시리즈나 2기통 300cc에서 업그레이드를 거듭한 500 시리즈와 엔트리 모델인 2기통의 250 시리즈 등 다양한 실린더와 배기량의 모델들을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자체적으로 개발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한 닌자 7 하이브리드와 Z7 하이브리드 등까지 더하며 엔진 라인업을 늘려가고 있다.

아프릴리아 RS660

유럽쪽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보이는데, 대표적인 곳이 아프릴리아다. 아프릴리아의 경우 RSV4나 RS125 정도가 슈퍼스포츠 라인업의 전부여서 허리가 비어있었고, 그렇다보니 자사 제품으로 입문한 소비자들이 최상급으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를 이어줄 만한 제품을 고민한 아프릴리아는 RSV4에 사용되던 V4 엔진을 가로로 자른 병렬 2기통 엔진을 채택하고 배기량을 살짝 높여 RS660이라는 신제품을 선보였으며, 이후 어드벤처인 투아렉이나 로드 스포츠 모델인 투오노 등에도 적용하며 부족했던 라인업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 쿼터 클래스의 부재가 아쉬웠는지 단기통의 RS457까지 더해 125부터 리터급까지 차근차근히 밟아올라갈 수 있는 단계별 라인업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CF모토가 새로 개발한 675cc 3기통 엔진

이 밖에도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CF모토나 베넬리, 보그, 존테스 등 중국 브랜드들 역시 단기통이나 2기통 엔진으로 라인업을 구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타 브랜드와 제휴를 맺고 엔진이나 완성차를 생산, 공급해왔는데, 생산품이 대부분 미들급 전후의 가성비 제품 위주였던 만큼 앞서 설명한 이유와 함께 여기서 쌓은 노하우와 기술력으로 4기통 모델들을 개발하기엔 역량이 부족한 부분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CF모토의 경우 올해 중으로 새로 개발한 675cc의 3기통 엔진을 기반으로 신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어 브랜드마다 자체적으로 기술 개발에 얼마나 역량을 쏟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상황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용들이 일부 브랜드에 한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제품의 가격은 앞으로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오를 것이다. 물론 제품의 개발부터 생산에까지 들어가는 비용이나 신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적용하는데 들어가는 비용 등 여러 요인이 있는 만큼 인상이 불가피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르는 가격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신규 유입은 물론이고 기존 라이더들도 모터사이클 시장에서 이탈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많은 브랜드들이 병렬 2기통 엔진으로 제품을 구성함으로써 소비자들이 가격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라인업의 변화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문화가 변화하든, 기존과는 다른 획기적인 방안으로 가격을 낮추든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결국 모터사이클 시장은 부자들만이 즐기는 취미가 되어 규모가 서서히 작아져 존폐의 위기에 놓이게 될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든, 현 상황을 타개할 방안을 통해 모터사이클 시장이 더욱 커지던지, 최소한 현 상태를 유지하며 계속 이어지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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