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모터사이클’하면 가장 먼저 GS 시리즈가 떠오르겠지만, 이 외에도 R, RT, S, RS 등 박서 엔진 기반의 제품들과 함께 S 1000 RR에서 파생된 S 1000 R, S 1000 XR 등 다양한 엔진과 장르의 제품들을 통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런 BMW가 딱 하나 아쉬운 부분이 있으니 바로 크루저다. 나름의 특색을 살린 크루저 제품인 R 1200 C를 시장에 선보였지만 소비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하고 단종됐고, 이후 한동안 BMW의 라인업에서 크루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크루저를 ‘아메리칸 크루저’라고 부를 만큼 이 시장은 미국 브랜드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브랜드에서도 일본에도 출시하지 않는 미국 시장 전용의 크루저 모델을 별도로 마련할 정도로 이 시장은 미국이 이끌어가는 모양새다. 그러다 지난 2020년 BMW는 심기일전하며 완전히 새로운 엔진을 탑재한 크루저 R 18을 선보이며 크루저 시장에 재도전을 시작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해 R 12 나인티의 등장과 함께 크루저 스타일의 R 12까지 더하며 크루저 라인업을 조금씩 늘려나가고 있다. 이 R 12가 국내 시장에도 판매를 시작해 시승차를 받아 BMW의 크루저는 무엇이 다른지 살펴보았다.

기본적으로 크루저의 스타일은 ‘롱 앤 로우(Long & Low)’가 일반적이지만, R 12는 그리 길지도, 그리 낮지도 않은 스타일이다. 물론 이것은 일반적인 크루저와 비교할 때 그런 것이고, 네이키드, R 12와 함께 발매된 R 12 나인티와 비교해보면 이 모델이 낮은 편에 속한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보다 높이를 낮춰 일반적인 크루저와 비슷한 높이로 맞출 수도 있었겠지만, BMW는 기존 크루저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이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보니 사실 크루저라는 느낌이 덜한 편인데, 이름에서 굳이 크루저를 상징하는 단어를 넣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물론 크루저 특유의 요소들도 갖춰져 있다. 외관에서는 뒤로 갈수록 살짝 치켜든 디자인의 나인티와 달리 R 12는 뒤로 갈수록 살짝 낮아지는 형태로 구성해 놓은 점도 그렇고, 시트고에서도 795mm의 나인티보다 훨씬 낮은 754mm로 구성한 덕분에 키가 작은 사람이나 이제 막 고배기량에 입문한 사람도 부담을 덜고 탈 수 있다. 차체 뒷부분은 장식 등을 최대한 배제하고 펜더만을 남겨 스타일을 살리는 등 BMW 나름의 해석을 더한 크루저를 완성했다.

국내 출시되는 사양에는 계기판에 슬림한 TFT 컬러 디스플레이를 적용했는데, 사이즈가 작긴 해도 필요한 내용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메뉴 등에서 한글을 지원해 차량 설정 등의 변경도 문제 없다. 계기판 아래로는 키박스처럼 보이는 것이 있지만 사실 R 12가 키리스 라이드, 흔히 말하는 스마트키를 지원하기 때문에 여기는 오로지 핸들을 잠글 때만 쓰면 된다. 차량 설정 등의 변경은 좌측 핸들바의 다이얼과 버튼을 조합해 변경할 수 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달려볼 시간이다. 당연히 R 12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최신의 R 1300 GS에 탑재되는 신형 엔진까진 아니어도 직전 세대 R 1250 시리즈의 엔진을 적용했으리란 예상이었는데, 그보다 이전, R 1200 시대의 1,170cc 수랭 2기통 엔진을 탑재한 점이 놀랍다. 최고출력은 95마력/6,500rpm, 최대토크 110Nm/6,000rpm으로, 크루저라는 성향에 맞춰 R 12 나인티보다 약간 더 낮은 회전에서 높은 파워를 발휘하도록 했다. 예전 R 18을 처음 경험했을 때는 일부러 엔진 회전수를 늦춰 2기통 특유의 리드미컬한 맥동감을 느끼며 달리는 재미가 있었지만, R 12는 그보다 높은 회전대에서 파워가 나오기 때문에 아쉽지만 회전수를 좀 높여야 한다. 대신 회전수를 높이면 시원스럽게 쭉쭉 뻗어나가는 차체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R 12 나인티와 성격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 물론 같은 엔진에 R 12라는 이름도 공유하긴 하지만 결정적으로 포지션에서의 차이가 큰 만큼 여기서 선택이 나뉠 것으로 예상된다.

커브에서 달리는 과정도 크루저치고는 꽤나 스포티하다. 속도를 높일수록 자연스럽게 코너 안쪽으로 몸을 빼 체중이동을 하게 된다. 크루저지만 스포티함이 꽤나 가미된 ‘스포츠 크루저’의 맛이다. 대신 R 12 나인티만큼은 아닌 것이 앞뒤 모두 17인치 휠에 전형적인 로드스터 스타일로 구성된 나인티와 달리 R 12는 앞 19인치, 뒤 16인치 구성으로 상대적으로 운동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포지션에서 훨씬 편하다는 강점이 있다. 어떤 쪽에 좀 더 초점을 둘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크루저지만 일반도로에서 만나면 얕볼 수 없는 것이 충분히 검증된 엔진을 바탕으로 스포티함 위주로 구성했는데, 여기에 기어 시프트 어시스트 프로, 즉 퀵 시프트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흐름이 끊기지 않은 채 빠른 변속으로 순식간에 가속해나가는 크루저라니, 여기에 무게도 300kg에 육박하는 다른 크루저와 달리 227kg에 불과(?)하기 때문에 크루저라기보단 좀 더 편하게 탈 수 있는 로드스터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주행모드는 ‘롤(Roll)’과 ‘록(Rock)’ 2개를 제공하고, 우측 핸들바 버튼으로 변경할 수 있다. 물론 개발진들이 ‘록 앤 롤(Rock & Roll)’ 같은 느낌의 언어유희를 생각하고 이렇게 결정하지 않았나 싶은데, 처음 접하는 소비자들에겐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재미도 좋지만 그냥 나인티처럼 레인, 로드, 다이나믹 등 조금 더 보편적인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이 혼동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브레이크는 브렘보 4피스톤 캘리퍼가 좌우 양쪽으로 장착되어 높은 제동력을 발휘하는데다 코너링에서도 안정적으로 멈춰설수 있게 도와주는 ABS 프로까지 더해져 직선에서든 커브에서든 안전하게 차체를 멈춰 세울 수 있다. 서스펜션은 앞에 마르조키의 45mm 역방향 텔레스코픽 포크를, 뒤에 프리로드를 조절할 수 있는 모노 쇼크 업소버를 적용했다. 그리고 트리플 클램프 쪽으로 스티어링 댐퍼를 더해 주행 중 앞바퀴에 강한 충격이 가해져 조향이 틀어지는 위험한 상황을 방지한다.

시승하면서 불편했던 점이라면 강력한 주행풍을 이겨내야 한다는 점이다. 시승차는 바람을 막을 방법이 없어 속도를 높일수록 오롯이 이를 몸으로 막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 다양한 옵션 장비들이 함께 발매되기 때문이다. 국내 출시 사양에선 미리 적용된 것들도 있지만, 이걸로 아쉽다 싶은 것들은 추가로 장착이 가능한데, 조금 전 방풍 성능을 높이기 위한 윈드스크린은 물론이고 스타일을 살려주는 휠이나 각종 파츠들, 투어를 떠난다면 짐을 실을 수 있는 각종 수납용 가방 등 다양한 옵션들이 선보이는 만큼 취향대로 골라 더하면 된다.

BMW 뿐만 아니라 크루저 시장 전체적으로 라이더들의 고령화와 신규 유입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으로 고민이 많다. 아예 앞으로 크루저를 만들지 않겠다면 상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고, 누구나 아는 확실한 방법은 신규 유저의 유입을 늘릴 수 있는 제품을 선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스타일리시함과 스포티함, 젊은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주요 요소들을 두루 갖춘 R 12의 출시가 앞으로 크루저 시장에 자극제의 역할을 넘어 시장 전체를 다시 부흥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앞으로를 지켜보자. 

<저작권자 © 라이드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