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스쿠터는 대체 뭐지?’ ‘예쁜데... 이름이 뭘까?’
많은 이들이 이 아름다운 두 바퀴를 보고 읊조릴 이야기들이다. 946이라 불리는 이 신형 베스파는 누가 봐도 단번에 매료될만한 아름다운 실루엣을 가졌다. 하나의 생명체 같은 유기적인 아름다움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뒤돌아보게 만든다. 베스파는 그런 스쿠터다.



1946년 98cc 엔진을 품은 베스파가 처음 세상에 선보인 이래, 많은 베스파들이 세상을 수놓고 있다. 차체 그 자체가 프레임 역할을 하는 튼튼한 모노코크 프레임은 무겁고 여러모로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베스파의 색깔이기도 했다. 이후 등장한 수많은 포스트 베스파들도 오리지널인 베스파가 가진 디자인 컬러를 담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게다가 누가 봐도 비효율적인 모노코크 프레임 방식을 공공연히 따라할 수도 없었다. 이래저래 베스파는 나름의 독창성을 무기로 많은 젊은이들의 추앙을 받아왔다.



전쟁이후 정비되지 않은 비포장 길을 달리기 위해 베스파는 운전자에게 좋은 이동수단이 되어주었다. 작은 차체로 단거리를 시간 지체 없이 주파할 수 있음은 물론 흙과 돌로 뒤덮인 길에서 튀는 오물로부터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베스파는 미학적인 아름다움 이전에 필요에 의한 디자인을 갖췄던 것이다.




신형 베스파인 946은 당신이 예상하는 바대로다. 1946년 베스파의 탄생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며 한 눈에 반할법한 미려한 디자인으로 프리미엄 클래식 스쿠터를 지향한다. 동시에 125cc 스쿠터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최첨단 전자장비도 실어놓았다. 거기다 핸드메이드 스쿠터다. 슬슬 당신의 주머니 사정이 걱정되지 않는지?



패션 스쿠터에 숫자로 조합된 스펙이 큰 의미는 있겠느냐마는 간단히 짚어볼 필요는 있다. 신형 3밸브를 사용한 엔진을 새 심장으로 채용했기 때문이다. 125cc 단기통 엔진은 시내주행용으로 적당한 배기량이다. 적은 배기량 덕에 공인연비는 무려 55km/L에 달한다. 어디까지나 공인연비라는 사실이 아쉽긴 하지만 대중교통 이용비용에 비해도 저렴한 유류대가 예상된다.



946은 욕심쟁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미려한 형태를 갖췄음에도 어마어마한 전자 장비를 모두 챙겼기 때문이다. 125cc 스쿠터에 웬 말인가 싶을 정도로 오버스펙인 트랙션컨트롤 채용 소식은 베스파 946이 처음 베일을 벗어던졌을 때부터 이슈거리였다. 배기량이 큰 퍼포먼스 모터사이클에 비하면 그다지 정밀하지 못한 트랙션컨트롤 시스템이라 해도, 오히려 산발적인 위험요소가 많은 시내 도로에서의 안전을 생각하면 요긴한 장비임은 틀림없겠다.



전/후 휠에 모두 디스크 브레이크를 장착한 946은 ABS(타이어 잠김 방지 브레이크)도 담았다. 네오 클래식을 지향한 디지털 계기반도 첨단 전자장비라 하기에 손색이 없는 퀄리티다. 시내에서 ABS의 도움을 받아 위험한 순간을 피했다는 사례는 적잖이 들려온다. 베스파 역시 패션 스쿠터이기 이전에 생명을 담보로 달리는 도심의 이동수단이기에 안전장비의 추가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다양한 컬러 조합과 주문시 가능한 여러 가지 커스터마이징 옵션 덕에 다양한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946. 댄디한 블랙 컬러, 심플하고도 젠틀한 화이트 컬러 등 무채색을 기본으로 안장이나 스로틀 그립 컬러를 일일이 지정할 수 있는 등 커스텀 가능한 핸드메이드 스쿠터의 매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겠다.




휠은 전/후 모두 12인치를 채용해 다양한 노면에서 훌륭한 승차감을 갖췄을 것이라 생각된다. 민첩함과 승차감, 그리고 디자인까지 고려해야 하는 측면에서 휠의 크기를 선택하기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14인치 이상의 빅 휠 스쿠터가 대세인 유럽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스쿠터가 달려야 하는 도심 속 도로가 우리나라처럼 매끈한 아스팔트로 덮여진 대신 울퉁불퉁한 돌이 촘촘히 박힌 구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유럽현지의 스쿠터들은 휠이 크면 클수록 주행안전성 측면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스팔트로 잘 정비된 우리나라 도심이라면 12인치 휠로도 충분하다.




만약 베스파 946에 큰 관심이 간다면 한 가지 반드시 짚어둘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스쿠터가 가진 큰 매력중 하나인 넓은 트렁크의 부재다. 미려한 디자인을 만족시킨 대신 안장 아래 수납공간은 과감히 생략했다. 이 덕분에 중량도 가벼워지고 아름다운 아웃라인을 얻었지만 라이더는 번거롭게도 헬멧을 별도의 공간에 수납하거나 손수 들고 이동해야 한다. 물론 멋스러운 가죽느낌의 리어백에 헬멧을 수납할 수 있도록 액세서리를 제공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946의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실용적인 스쿠터가 필요하다면 베스파가 아닌 넉넉한 사이즈의 빅 스쿠터를 찾아보면 될 일이다.




946은 기술적인 부분만을 논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패션 아이템이다. 하물며 베스파는 홈페이지에서도 그러한 패션 감각을 충만히 담고 있다. 말끔한 슈트차림에 어울리는 946, 캐쥬얼한 스포티룩에 어울리는 946, 시크한 오피스룩을 연출한 여성과 함께한 946 등 이같이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스쿠터는 많지 않다.




그렇다면 얼마를 지불해야 이 아름다운 스쿠터를 가질 수 있을까? 공시된 유럽 내 소비자가격은 9,946달러, 즉 우리 돈으로 약 1천만 원 초반을 기록하는 가격이다. 자, 다시 한 번 되짚어볼까? 끝내주는 디자인을 가진 패션 아이템이자 125cc 배기량의 스쿠터. ABS와 트랙션컨트롤, 디지털 계기반 등 첨단 장비는 덤으로 갖춘 공인연비 55km/L의 이동수단. 그럼에도 이 가격을 납득할 수 있다면 당신을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진정한 패셔니스타로 인정한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베스파와 같이 역사가 긴 브랜드야 말로 두말할 나위 없다. 신형 946은 베스파가 처음 탄생한 모델을 현대의 시각으로 스타일리쉬한 감각으로 재탄생한 의미가 크다. 특히 높게 책정된 가격 등을 살펴보면 베스파가 이 모델을 대량 판매해 수익을 책임지겠다는 의도보다는, 베스파 고유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는 심볼 모델로써 큰 의미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브랜드가 ‘역사’내지는 ‘전통’을 앞세우며 마케팅에 활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자고로 전통이란,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오랜 세월의 풍파 속에도 꾸준히 지키려는 의지와 투자가 있어야만 온전히 유지할 수 있다. 현실에 맞는 이동수단으로 시작했던 베스파는 전통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브랜드임이 이번 946의 런칭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그리고 전통의 가치를 이해하고 음미할 수 있는 식견을 가진 자만이 이에 걸맞은 비용을 지불하고 946을 손에 넣게 될 것이다.

제공 : 임성진 기자 / 라이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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