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나 모터사이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든 싫든 주변으로부터 ‘스피드 마니아’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라이더들은 대부분 속도에 대한 열망을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스피드에 대한 열망은 인간이 추구해온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목마름 중 하나였다.
그 중에서도 모터사이클은 자동차에 비해 ‘속도감’이 무척 풍부한 수단이다. 그야말로 온 몸으로 비상식적인 스피드를 체감할 수 있는 유일한 탈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달용 스쿠터나 언더본 모터사이클을 본 경험으로 판단해, 어지간한 모터사이클이 시속 100km 이상 달릴 수 있다는 점에 적잖이 놀란다. 그리고 ‘오토바이’로 그런 속도를 냈다가는 크게 다치거나 명을 달리할 수 있으니 탈 것이 못 된다며 손사래 치기 일쑤다.
하지만 모터사이클의 안정성은 일반인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 오히려 속도가 높아질수록 두 바퀴 특유의 불안정성이 사라지고 직진 안정성이 속도에 비례해 높아진다. 그런 속도로 달리다가 돌멩이라도 밟으면 뒤집어 지는 것 아니냐는 코웃음 섞인 비아냥거림이 대부분이지만 이는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의 짧은 추측일 뿐이다. 만일 모터사이클이 그렇게 불안정한 탈 것이라면 시속 300km를 쉽게 넘는 고속 투어링용 모델을 개발하는 초대형 브랜드들이 수십 년 동안 값비싼 고성능 모터사이클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일은 당연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모터사이클 브랜드마다 고성능 모델을 경쟁하듯 내놓는 이유 중 하나는 높은 안정성을 유지한 채로 고속을 낼 수 있는 모터사이클이야말로 자사의 기술력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이름만 언급해도 알 법한 전 세계의 유명 모터사이클 브랜드를 대표하는 지구상 ‘가장 빠른’ 모터사이클 대표주자들을 모아봤다.
고성능으로 대표되는 모델 중 그나마 접하기 쉬운 것은 일제 브랜드가 많다. 그 중에서 혼다는 CBR Fireblade라는 슈퍼스포츠 라인업을 구비했다. 대표 주자인 CBR1000RR은 제원상 여타 브랜드보다 출력 부분에서 다소 뒤떨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높은 밸런스와 타기 쉬운 특성으로 꾸준히 많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과거 심화된 출력 경쟁에서 벗어나 이제는 밸런스를 최우선으로 하는 일제 슈퍼바이크로써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모토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 바이크’다.
야마하 YZF-R1은 1998년 혜성처럼 등장해 경량 슈퍼바이크 경쟁에 불을 지핀 대표적 모델이다. 날렵한 디자인과 볼륨감 넘치는 실루엣은 당시 뭇 남성들을 설레게 했다. 현재는 MotoGP 챔피언 머신의 노하우인 크로스플레인 크랭크샤프트 폭발 방식을 채용해 독특한 개성을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기존의 병렬 4기통 대비 트랙션 특성을 간파하기 쉬워 적지 않은 슈퍼바이크 마니아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다. 야마하 특유의 섬세하고 날카로운 핸들링 특성을 꾸준히 유지하며 트랙은 물론 와인딩 마니아들에게 꾸준히 주목 받는 슈퍼바이크다.
스즈키는 대표 슈퍼바이크 GSX-R1000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보다 스즈키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모델로 GSX-1300R 하야부사가 있다. 하야부사는 10여 년 전 첫 등장부터 스즈키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 ‘초고속 모터사이클’의 대명사로 불려왔으며, 한자로 매를 뜻하는 ‘準’을 이미지로 많은 남자들에게 동경이 대상이 되어왔다. 또한 실측 300km/h를 돌파하는 첫 모터사이클로 기록되고 있기도 해 모터사이클 역사에도 한 획을 그은 중요한 모델로 평가 받는다. 덩치나 무게에 비해 코너링 특성도 크게 둔하지 않으며 안정감 넘치는 고속 와인딩을 즐기기에 좋다. 특히 공기역학을 최우선한 유선형 디자인 덕에 데뷔 10년이 지난 모델이지만 고속에서의 안정성은 아직까지도 양산 스포츠 바이크 중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즈키가 하야부사를 전면에 내세웠다면 가와사키에게는 ZZR1400이라는 굵직한 대항마가 존재한다. 언제나 비교대상이 되는 두 모델은 최고속 오버 300km/h를 논할 때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는 브랜드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6연장 헤드라이트를 채용해 ‘괴물’과 같은 이미지를 가진 ZZR1400은 전통적인 트윈 스파 프레임(프레임이 둥근 항아리모양으로 엔진을 감싸는 형태)을 포기하고 엔진 배치 레이아웃에 좀 더 자유로운 모노코크 프레임 설계로 하야부사보다 배기량에서 우위를 점했다. 자연히 출력도 크게 향상돼 200마력을 마크하며 제원 수치상 하야부사를 넘어섰다. 카리스마 넘치는 덩치와 눈에 띄는 디자인으로 항상 주목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판매량으로는 하야부사가 오랜 시간 쌓아온 명성에 미치지 못한다.
모터사이클을 제작한지 올해로 90년을 기념한 BMW 모터사이클이 자랑하는 모델은 무엇이 있을까? 주저 없이 슈퍼바이크인 S1000RR을 꼽을 수 있다. S1000RR은 BMW가 WSBK(월드 슈퍼바이크 챔퍼인쉽)에 참전하기 위해 개발된 초고성능 모터사이클이다. 최고출력 193마력에 건조중량 183kg이라는 믿기 힘든 수치로 오랜 시간 ‘엔진 파워’를 승부로 걸어왔던 일제 메이커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게다가 퀵 쉬프터, 트랙션컨트롤, 레이스ABS 등 레이스 장비를 대거 채용해 ‘타기 쉬운데다 엄청나게 빠른’ 슈퍼바이크로 명성을 쌓고 있다. 경쟁 모델 대비 워낙 고출력이라 한 클래스 위인 오버리터(배기량이 1리터를 넘는)급 하야부사나 ZZR1400과 함께 ‘하이퍼스포츠’로 분류되며 그 틈바구니에서도 400미터 드래그 테스트 1위를 석권하는 등 놀라운 기록들을 쏟아내고 있다.
두카티는 오랜 기술력의 L형 2기통 엔진을 무기로 한다. 특히 ‘데스모드로믹’이라는 기계식 밸브 개폐방식을 이용해 레이스에서 오랜 시간 명성을 떨쳐왔다. 그런 두카티에서 가장 빠른 모터사이클은 바로 1199 파니갈레다. 2기통 1200cc 클래스 슈퍼바이크로 무려 195마력의 파워에 164kg 경량 차체를 자랑한다. 이 역시 다양한 첨단 전자 장비를 채용해 이전 이탈리안 모터사이클이 가졌던 ‘스파르타’식 라이딩 대신 한결 다루기 쉬운 슈퍼바이크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이탈리안 특유의 간결하고도 매혹적인 디자인이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히며 고회전 2기통 엔진 특유의 짜릿함을 간직하고 있다. 그 외에도 배기시스템 및 서스펜션의 독특한 배치 등 요소마다 독특한 카리스마가 넘친다.
두카티와 같이 이탈리아에 본거지를 둔 MV 아구스타는 F4를 가장 빠른 모터사이클로 꼽는다. 첫 등장부터 파격적인 디자인 콘셉트를 자랑해 많은 이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F4는 이제껏 큰 디자인 변경 없이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최고속도가 실측 312km/h라는 이유로 F4 312를 이름표로 단 적도 있다. F1 머신을 방불케 하는 메카니컬 노이즈와 날카로운 엔진음이 큰 매력이며 무엇보다 소량 생산이므로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희소성 높은 슈퍼바이크로 이미지화 되어 있다.
독특함을 추구하는 여타 이탈리안 모터사이클과 달리 높은 품질감을 무기로 ‘이탈리아의 혼다’라는 별명을 가진 아프릴리아. 옛 시절 성황 했던 2스트로크 레이스 챔피언 타이틀을 다량 보유한 아프릴리아는 대배기량 부분에서 꾸준히 V형 2기통 모터사이클을 고집하다 RSV4를 개발하면서 슈퍼바이크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RSV4는 흔치 않은 엔진 형식인 V형 4기통 레이아웃으로 고출력과 운동성 모두를 노린 획기적인 아프릴리아의 승부수다. 특히 최고사양인 APRC는 런치 컨트롤 등 WSBK에서 쓰이는 고가의 전자장비 채용으로 고출력과 밸런스 모든 부분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마치 125cc 모터사이클을 보듯 작은 차체에 숨겨진 놀라운 파워는 아프릴리아의 걸작으로 기록할 만하다. 획기적인 성능에 비해 마케팅 부족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한 비운의 슈퍼바이크다.
전통적인 3기통 엔진으로 유명한 영국의 트라이엄프는 본네빌 등 클래식 바이크로 유명한 메이커다. 트라이엄프의 슈퍼바이크 라인업인 ‘데이토나’는 트라이엄프의 숨겨진 진주로 평가받는다. 축적된 3기통 엔진 기술력으로 개발한 데이토나 675는 미들클래스 슈퍼바이크의 떠오르는 강자로 주목 받고 있다. 경쟁 미들클래스를 압도하는 충분한 출력과 토크, 그리고 탁월한 코너링 밸런스 등 오랜 시간 슈퍼바이크 레이스를 주름잡아 온 명장 브랜드들을 오히려 앞서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해외 전문 매체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하다. 비록 국내에 수입되지는 않지만 주목할 만한 고성능 모터사이클이다.
코멧으로 알려진 GT650R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슈퍼바이크로 국/내외 모두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S&T 모터스의 가장 빠른 스포츠 바이크이며 650cc 급 V형 2기통 엔진을 사용해 시속 200km/h 정도는 쉽게 넘나드는 고성능을 자랑한다. 국내에서는 가장 접하기 쉬운 대배기량 모터사이클로, 해외에서는 가격 대 성능비가 우수한 모터사이클로 적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스트리트와 와인딩을 넘나들며 부담 없는 레저용 스포츠 바이크로 즐기기에도 좋다. 특히 유일한 국산 대배기량 스포츠 바이크인 만큼 저렴한 유지비용이 가장 큰 매력이다. 해외에서는 원 메이크 로컬 레이스가 열릴 정도로 사랑 받고 있다.
‘이동의 편리’, ‘자유의 만끽’ 등 여러 가지 매력을 들어도 스포츠 바이크의 본래 목표는 ‘스피드’다. 많은 사람들이 날렵한 스포츠 바이크를 보면 자연스레 고성능을 짐작하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디자인이 매혹적이어서 눈길을 끄는 이유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디자인이 설명하는 바가 바로 ‘스피드’로 응축되기 때문이다.
스피드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끝이 없다. 하지만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브랜드의 기술력을 즐기는 우리는 컨트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스피드를 즐겨야 한다. 무모한 실험정신 따위 발동해 목숨이 과연 한 개인지 테스트할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스피드를 달성하기 위한 목숨을 건 많은 테스트들은 전문 테스터들의 손에 이미 끝났다. 우리가 멈출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스피드를 만끽하는 것이 바로 고성능 스포츠 바이크를 대하는 현명한 태도다. 바로 그 안에서 스피드에 죽고 사는 스포츠 바이크들의 가치가 더욱 빛나게 될 것이다.
제공 : 임성진 기자 / 라이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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