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R 파이어블레이드의 역사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 쓴 전편에 이어, 이번에는 CBR900RR을 개발했던 담당자의 인터뷰를 엿본다. CBR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로젝트 리더와 CBR의 테스트를 담당했던 테스트 라이더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1990년대 초기 새로운 슈퍼 스포츠바이크 시장이 나타났다. 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많은 라이더들, 그리고 레이싱 팬들은 플래그십 슈퍼바이크를 소유하기를 꿈꿨다. 제조사들은 당시 750cc로 제한된 레이싱 레귤레이션 내에서 라이벌을 이기기 위해 배기량을 쥐어짜며 엔진에서 가능한 많은 출력을 내기위해 애써왔다. 많은 라이더들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혼다는 새로운 인라인 4기통 893cc엔진으로 125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CBR900RR을 개발했다.
CBR900RR의 엔진은 레이싱 레귤레이션의 한계인 750cc보다 컸지만, 1,000cc 이상의 라이벌 플래그십보다는 작았다. CBR900RR은 모터사이클 특유의 거친 맛이 정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마니아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놀라울 정도로 가볍고 콤팩트한 디자인으로 전통적인 모터사이클 디자인 철학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전 혼다 레이싱 코퍼레이션(HRC) 웍스 라이더 히카루 미야기 :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나는 당신이 정말 대담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했죠. 900cc라는 클래스는 흔치않은 형태였으니까요. 당시의 대배기량 풀 페어링 슈퍼 스포츠 모델은 750cc 레이서 레플리카 혹은 1,000cc 클래스 스포츠 투어링 바이크가 대부분이었어요. 머릿속에 떠올리기 쉬운 1,000cc 바이크의 바디 사이즈를 버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어요. CBR900RR은 600cc 클래스 바이크의 휠베이스를 가질 정도로 작았어요. 프레임을 통해 보이는 모든 것이 콤팩트하게 디자인 되었고 페어링은 아주 얇게 만들어졌죠. 런칭과 함께 큰 센세이션이 일었어요.
1세대 CBR900RR 라지 프로젝트 리더(LPL) 타다오 바바 :
지금 말씀하신 대로 가벼움과 콤팩트한 디자인이 이 모터사이클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존재의 이유이기도 했구요. 선행 개발(advanced development)이 시작되었을 때 목표는 단 하나였습니다. 전일본 스즈카 8시간 내구 로드레이스에서 RVF750 HRC 웍스 레이서를 격파하는 것, 오로지 그것 뿐 이었습니다.
미야기 :
그래서 항상 머릿속의 기준선은 750cc 클래스였죠. 하지만 진짜로 당대 최고의 머신으로 평가 받던 RVF750을 격파하는 것을 목표로 할 줄은 몰랐어요. 과감하고도 맹랑하다고 생각했죠.
바바 :
당시에 시장에서 잘 팔리던 풀 페어링 스포츠 바이크의 핸들링은 일반 공도를 달리는 평범한 라이더들에게 너무 어려웠어요. 우리 모두가 레이서는 아니잖아요? 750cc 클래스 레이서 레플리카와 1,000cc 클래스 플래그십 슈퍼바이크 모두 해가 갈수록 더욱 파워풀한 바이크로 진화하고 있었죠. 하지만 몸집 역시 그에 비례해서 점점 무거워졌어요. 물론 무겁고 둔한 바이크를 컨트롤하고 마스터하는 즐거움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그 정도 레벨이 되는 사람은 거의 없죠.
미야기 :
라이더에게 강력한 파워와 큰 배기량은 무척 중요한 의미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바이크를 타는 라이더에게 쓸데 없이 많은 체력을 요구하고 라이더를 지치게 만든다는 게 문제였죠. 컨트롤하기도 쉽지 않구요. 당신 말처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렇게 무거운 바이크를 제대로 탈 수 있었죠. 우리는 그런 트렌드를 송두리째 바꾸고 싶었던 거고요.
바바 :
맞아요.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클래스에서 가장 가볍고 콤팩트한 바이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세웠던 겁니다. 만약 HRC RVF750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타 브랜드 경쟁자들의 750cc 바이크보다 낫고, 누구나 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타입의 스포츠바이크가 탄생할 것이라 생각했죠. 그렇게 우리는 가볍고 콤팩트한 인라인 4기통 엔진을 사용한 새로운 슈퍼 스포츠바이크 개발을 시작했고, 수면 아래에서 오랫동안 작업했습니다. 우리는 토털 컨트롤(Total Control)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이 모델의 이미지를 설정했고, 이를 베이스로 모든 기능과 퍼포먼스 특성을 개발했습니다. 이 모델의 특성과 완벽하게 매치되는 영어 표현이 없었는데, 우리는 많은 토론 끝에 결국 토털 컨트롤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했죠.
동급에서 가장 경량이며 콤팩트할 것. 스즈카 8시간 내구 로드레이스에서 RVF750 HRC를 꺾을 것. 모든 라이더에게 제공되는 토털 컨트롤. 이러한 목표와 함께 선행 개발된 모터사이클이 바로 CBR900RR이다. 개발팀은 이러한 기본을 명확히 보여주는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바바 :
기본적인 생각은 이런 거였죠.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만든다. 타 브랜드가 아닌 우리 혼다 라인업의 다른 바이크와 직접 경쟁한다. 왜 기존 카테고리의 750cc 레이서 레플리카와 1,000cc 플래그십 스포츠 바이크를 초월하지 못하는가?' 다행히 우리는 모든 라이더에게 토털 컨트롤을 제공하기 위한 750cc 바이크의 정확한 치수, 무게중심의 위치, 그 밖의 모든 디테일한 정보를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이런 것들을 잘 버무리는 것이었죠.
무엇보다 우리는 독일의 아우토반과 같은 환경이 목표였습니다. 우리는 플래그십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이 원하는 속도의 영역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아우토반의 많은 구간에는 속도제한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평균 160km/h의 속도로 달립니다. 사실은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죠. 우리 목표는 0에서 160km/h까지 속도를 올리는 시간을 1,000cc 클래스 바이크와 최소한 같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출력대비 중량에 의존했고, 그 과정에서 750cc의 배기량으로는 파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물론 우리는 여전히 750cc 패키징을 고집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연구 끝에 893cc의 배기량이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미야기 :
하지만 그건 당시의 트렌드를 거슬러 오르는 것이었죠. 안 그런가요? 개발 과정에서 많은 진통이 있었을 텐데요.
바바 :
맞아요. 이때는 엔진 파워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였으니까요. No.1의 엔진파워, No.1의 스피드, No.1의 배기량. 이런 것들이 있으면 모터사이클을 팔기가 쉬웠죠. 우리는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유럽 계열사의 라이더들을 일본으로 초청해 새로운 모터사이클을 테스트하게 했을 때, 그들이 아주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어요. 그렇게 우리는 제품 개발을 어렵사리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의 우리 계열사들은 ‘900’이라는 이름으로는 절대 홍보하고 싶지 않다고 했고, 그래서 이 모터사이클에는 ‘파이어블레이드’라는 이름을 붙였죠.
파이어블레이드가 런칭된 후, 초경량 스포츠바이크의 등장에 전 세계 라이더들은 뜨겁게 환영했고, 개발팀이 가졌던 걱정은 금방 사라졌다. 그 결과 모터사이클 성능이 숫자에 의해 정의되었던 시대가 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900cc라는 숫자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유럽에서도 점차 이를 받아들이게 됐다. 비로소 원래 계획대로 CBR900RR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애초부터 CBR900RR은 레이서 레플리카로 만들어진 바이크가 아니었다. 전 세계의 각종 레이스 혹은 월드 슈퍼바이크 챔피언십(WSBK)의 규정에 맞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서킷에서 최고속도 기록을 낼 수 있도록 디자인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더들은 이 바이크를 레이싱용으로 사용했고, 많은 레이스에서 기록을 세우기 시작했다.
미야기 :
CBR900RR은 당시 레이스를 휩쓸었던 RVF750 RC30과는 다른 경로로 등장했으니 레이서 레플리카라고 부르기 어려울 것 같네요.
바바 :
맞아요. CBR900RR은 레이서 레플리카가 아닙니다.
미야기 :
나는 미국 에리온 레이싱 팀 시절에 CBR900RR로 달려봤습니다. 이 바이크로 오픈 클래스를 출전했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랐어요. 데이토나 인터내셔널 스피드웨이의 뱅크커브를 달리는 슈퍼바이크 웍스 머신 라이더를 제칠 수 있을 만큼 빨랐죠. CBR900RR이 전 세계 레이스에서 활약했던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죠? 여전히 레이서 레플리카가 아니라는 대답을 하실 건가요?
바바 :
맞아요. 우리는 우선적으로 라이더들이 공공도로에서 스포츠 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바이크를 만든거니까요. CBR900RR이 레이싱에서도 성공적일 수 있었던 건 사용자들이 참여하여 모터사이클을 튜닝하고, 레이싱 머신으로 성장시켜 나갔기 때문입니다. 바이크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했고 저희 개발팀은 그들이 최대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권장했을 뿐이에요. CBR900RR을 투어링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들은 주로 와인딩 로드를 달렸습니다. 레이싱용으로 사용한 사람들도 이와 마찬가지 입장인 거죠.
미야기 :
사용자들이 만들어가는 CBR900RR, 이런 부분은 저도 정말 마음에 듭니다. CBR 개발팀이 런칭 후에 오너들과 직접 만났을 때가 기억나네요. 당신도 CBR 오너들과 직접 만나고 이야기한 적이 많죠?
바바 :
네, 맞아요. 나는 CBR900RR 오너들을 직접 만나보고 그들의 시각에서 '토탈 컨트롤'이 주는 즐거움을 만들어나가고 싶었습니다. 나는 유럽과 미국을 방문했고, 모든 브랜드와 모든 종류의 바이크를 타는 라이더들과 만나 솔직하게 툭 터놓은 대화를 했어요. 음, 예를 들자면 한 라이더는 저에게 야마하 R1을 좀 더 타기 쉽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기도 했고, 나는 기꺼이 제가 생각하는 답을 이야기 했습니다. 물론, CBR로 바꾸라고 말하진 않았어요. (웃음) 하지만 이런 대화를 통해 라이더들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고 중요하게 여기는지 이해하게 됐죠.
미야기 :
CBR900RR은 기존 슈퍼바이크의 콘셉트에 대한 개념을 바꿔놓았어요. 저는 CBR900RR을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솔직히 많은 즐거움을 느꼈거든요. 아마 다른 많은 라이더들도 그랬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바 :
우리가 모터사이클을 개발하며 목표로 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라이더가 자신의 몸처럼 생각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제대로 땀 뺐어!'라고 말하게 될 정도의 느낌이요. 지칠 대로 지쳐서 식은땀을 흘리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멋진 투어를 마치고 라이더가 집에 도착해서 라이딩기어를 벗고 샤워를 한 후 음료수를 마시며 소파에 앉아 생각하는 거예요. '오늘은 정말 제대로 탔어.' 하루를 마치고 돌아볼 때의 이런 기분 좋은 피곤함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토털 컨트롤' 콘셉트에 깔린 비전이라 할 수 있어요.
혼다 CBR900RR이 탄생했을 당시 최전방에서 프로젝트를 지휘했던 바바와 그를 테스트했던 웍스 라이더 미야기의 인터뷰가 무척 흥미진진하다. 이 슈퍼바이크는 첫 등장으로부터 무려 23년이 지난 모델이다. 지금 다시 들여다봐도 최신 바이크와 나란히 달리기에 아무 문제가 없을만큼 완성도가 높다. 그런 CBR을 만들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CBR900RR의 후속작인 CBR929RR을 개발한 담당자의 생생한 뒷이야기가 이어진다.
제공 : 임성진 기자 / 라이드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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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성진 jin@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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