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량 스포츠카 세븐으로 유명한 자동차 메이커 케이터햄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EICMA(국제 모터사이클 박람회)에서 케이터햄 바이크라는 브랜드로 전기자전거를 공개했다. 케이터햄이 공개한 전기자전거는 두 가지 모델인데 저마다 독특한 콘셉트로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여타 전기자전거들과 차별화하고 있다.
 

케이터햄 클래식 E-Bike는 클래식 모터사이클의 형태를 빌린 전기자전거다. 할리데이비슨이나 인디안 모터사이클 등의 초기 모델은 자전거에 엔진을 달아놓은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개중에는 페달과 엔진이 모두 달린 모페드라는 종류의 탈 것도 있다.
 

케이터햄의 클래식 E-Bike는 디테일한 부분까지 고전 모터사이클의 모습을 잘 담았다. 프런트의 서스펜션은 두 개의 포크가 링크와 스프링으로 연결된 고전적인 방식을 재현했다. 마치 모페드처럼 페달과 전기모터를 모두 사용해서 달리는데, 클래식한 스타일의 하드테일 프레임에 마치 V트윈 엔진을 닮은 모터유닛을 장착했다. 물론 이 모터유닛은 한눈에 봐도 진짜 엔진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 상당히 유머러스한 느낌이다.
 

이 전기자전거에는 클래식 바이크의 현대적 재해석 따위의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기보다는 어른을 위한 장난감 이륜차라 부르는 편이 나을 듯하다. 면허가 없는 청소년도 탈 수는 있겠지만, 아르바이트를 해서 쉽게 살 수 있을만한 물건은 아니다.
 

성능 차트를 보면 이 클래식 E-Bike가 보기처럼 만만한 물건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페달을 밟는 힘에 36V 모터가 최대 250와트의 힘을 더해 달리며, 확장 가능한 12암페어의 리튬이온 배터리팩이 장착된다. 이만하면 사실 모터의 힘만으로 시속 50km/h를 쉽게 낼 수 있지만, 모터의 힘을 바퀴를 직접 굴리는 대신 사람의 힘을 보조하는 역할만 함으로서 전기 모터사이클이 아닌 자전거의 모습으로 남았다.



한편 또 다른 전기자전거인 카본 E-Bike는 클래식 E-Bike와 전혀 다른 콘셉트다. 배터리와 모터의 사양은 클래식 E-Bike와 동일하지만, 외모만 봐도 범상치 않은 전기자전거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프레임과 포크, 스윙암 등을 카본과 알루미늄을 써서 만들었고 앞뒤 서스펜션의 구조도 무척 독특하다.
 

특히 독특한 부분은 프런트의 포크다. 구조를 자세히 보면 평행사변형의 링크 내부에 단단하기와 리바운드 댐퍼(압축된 서스펜션이 원래 형태로 돌아갈 때의 반동을 흡수하는 장치)를 조절 가능한 MTB용 에어서스펜션을 달았다. 이러한 방식의 서스펜션 포크는 일부 고급 모터사이클에 사용되기도 한다. 지면 뿐 아니라 전방의 장애물에 바퀴가 부딪혔을 때 오는 충격도 쉽게 흡수하며, 큰 충격을 받았을 때 차체가 앞쪽으로 심하게 숙여지며 전복될 가능성도 적다.

직경 26인치의 바퀴에는 폭 4.8인치의 두터운 오프로드용 타이어를 달았다. 부드러운 흙 길에서 진흙탕까지 못 갈 곳이 없는 세팅이다. 변속기는 뒷바퀴의 허브 내부에 기어박스가 내장된 시마노 넥서스 8단을 장착했다. 브레이크는 유압 디스크 방식을 사용하며, 특히 앞바퀴에는 직경이 엄청난 디스크로터를 장비해 고속으로 달리다가도 두 손가락 힘만으로 무거운 차체를 간단히 멈출 수 있다.
 

이러한 전기자전거는 사실 전혀 실용적이라 말할 수는 없다. 교통수단을 대신할 전기자전거라 보기에는 지나치게 고성능이며 고가의 부품들을 장착했다. 카본 E-Bike는 그야말로 오프로드 주행의 재미만을 철저히 추구한 모델이다. 산과 들을 마음껏 누비며, 도심에서도 불쾌한 고음의 엔진소리 없이 경쾌하게 달릴 수 있다.

재미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콘셉트 모델이니 그림의 떡이라고? 케이터햄은 클래식 E-Bike와 함께 카본 E-Bike를 내년 봄부터 일반 판매할 예정이다. 게다가 수 천만 원이 넘는 한정판 모델이 아닌 양산형 모델을 준비하고 있다 하니, 관심 있는 분은 지금부터라도 찬찬히 용돈과 월급을 통장에 넣어두기를 바란다.

스펙으로 예상하건대 아마 케이터햄 카본 E-Bike의 가격은 2천만 원 근처가 될 듯하다. 차라리 차를 사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물론 많겠지만 모터가 달리지 않은 자전거 중에도 웬만한 소형차보다 비싼 녀석은 찾아보면 생각보다 수두룩하다. 많은 자전거 마니아들이 오로지 재미와 즐거움을 위해 비싸지만 지갑을 열고 이를 구입하는 것이다. 케이터햄의 E-Bike도 마찬가지다. 이런 녀석들을 타면 하루하루가 훨씬 더 재미있게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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